외전 1. 예비역 병장의 북한 통치기 (2)
북한.
김정안 정권이 무너진 이후 북한 인민의 삶은 조금 좋아졌다. 정말 아주 조금.
먼저, 기본적인 의약품을 포함한 포비드 치료제가 보급되었다.
위중증 환자를 우선으로 치료했고, 그들은 모두 며칠 지나지 않아 완치되었다.
물론 포비드 치료제는 한국 정부가 아니라 이건우의 이름으로 보급되었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건우의 이름이 널리 퍼져나갔다.
치료제의 효과를 목격한 사람들이 감탄했다.
“남조선의 물건이 쓸만한 데는 있습디다.”
“아이고. 쓸만하다 뿐일까. 이게 참 용하더라고. 저쪽 아주머니 딸이 치료제를 맞고 사흘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잖아.”
“남조선에는 별별 물건이 다 있네요.”
“그런데 그거 들었는가? 저번에 테레비에서 나온 금마 있잖아. 그놈아가 치료제를 만들었다더라.”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이 눈을 끔벅였다.
'그놈이라면···.'
청년의 머릿속에는 한 달 전 조선중앙TV에 나와서 ‘대북 먹방’을 했던 남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또라이가요?”
북한 사람들은 이건우를 한번 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한 번으로도 충분히 이건우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미친놈이지.’
북한이 해방된 이후 사람들은 어째서 갑자기 이건우가 나타난 것인지, 그리고 왜 김정안이 박살이 난 것인지 알게되었다.
포탄 몇 발 날렸다고 상대를 박살 내 버리다니. 미친놈도 그런 놈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우의 과격한 행보만큼, 그가 선보인 대북방송은 북한 사람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날 방송을 본 북한 사람들은 이건우의 시원시원한 행동에 매료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먹방이라는 것부터, 단숨에 김정안을 끌어내리는 일까지.
이건우가 보인 퍼포먼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방송 이후로 북한의 대학생들 사이에는 암암리에 이건우 팬클럽이 생길 정도였으며, 장마당에서는 이건우의 기사가 담긴 USB가 거래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건우가 지원해준 덕분에 사람들은 서서히 포비드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활동반경이 넓어지면서 포비드 사태로 금지되었던 국경무역이 재개되었다.
북한은 국경무역을 통해 각종 생필품을 들여오는데, 포비드 사태로 금지되면서 공급이 줄어들고 관련된 물품의 가격이 확 뛴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경무역이 재개되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물가도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둘째로, 치료제에 이어 한국 정부에서 식량을 보내왔다. 마침 보릿고개라서 먹을 게 없었던 그들은 쌀이 대량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쌀밥이라고?”
몇 년 전에는 대북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쌀 지원을 해주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건 군 간부나 상류층에게 돌아갔을 뿐 일반 서민들은 구경도 못 했다.
그들은 쌀 수백 가마니가 들어오는 진귀한 광경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근처를 지나가던 대학생이 말했다. 그는 장마당에서 한국 드라마나 음악을 몇 번 거래해봤던 전적이 있어서 한국 문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제가 들었는데 남조선에서는 건강을 위해서 현미밥을 먹는대요. 그래서 쌀밥보다 현미밥이 더 비싸다던데요.”
그 말을 들은 한 중년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현미밥이 더 비싸다고? 나라가 남조선으로 넘어가더니 별별 소문이 다 도는군.”
“그래도 입에 금칠하게 생겼어요. 이 귀한 쌀을 먹게 된다니.”
사람들은 조금 행복해졌다. 김정안 집권 아래에 있을 때보다 훨씬 살만해졌다. 적어도 언제 질병에 걸릴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밥이 없어서 배를 곪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직까지 북한에 가난한 사람은 넘쳐났고, 쓰레기 같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판을 치고 있었다.
혁신적인 변화는 없었다.
*
이건우는 곧장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마철규가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제발 좀 남아있어달라고 사정을 했다.
이건우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니, 왜요? 저보다는 얘가 더 일 처리를 잘 한다니까요.”
딱 봐도 귀찮아하는 말투. 금방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마철규는 조급해졌다.
‘여기서 이건우가 다시 남조선으로 돌아간다고?’
그건 안 될 말이다. 그가 지금 권력을 잡고있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전부 이건우의 덕분이다. 다른 정적들이 이건우가 그의 뒤를 봐준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든 이건우를 끌어들여서 친분을 과시해야 한다. 마철규는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아니, 남조선에서 이건우 동지를 보낸다고 했는데 그대로 돌아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잘못 했다가는 저희가 박대해서 동지를 쫓아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대접받았다고 말해둘게요.”
마철규는 이건우의 태연한 대답에 속이 터졌다.
“제발 저희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며칠만 있어 주십시오. 여기까지 왔으니 적어도 뭐라도 하고 있다는 모습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사실 그건 그렇다. 이건우가 북한에 예비군 대신 온 만큼, 일하는 시늉은 해야한다. 이곳저곳에 얼굴이라도 비추면서 뭐라도 하는 척은 해줘야 말이 안 나오지.
이건우가 고민에 빠지자 마철규가 캐리온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리고 저자가 아무리 일 처리를 잘한다고 해도 지금 북조선에 필요한 건 이건우 동지입니다. 지금 이건우 동지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 아십니까?”
이건우는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제 인기가 높다고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마철규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니. 북한을 뒤집어놓은 장본인이 누군데, 뭐가 어째?
“북한 전역에 김정안 정권을 비판하는 방송을 내보내고, 신문물을 설파하는 선전방송을 하고, 김정안 정권을 무너뜨린 다음, 포비드 치료제를 공급한 건 누가 한 걸까요?”
“아, 그러게요. 그런 일이 있었지요.”
일일이 짚어주니 이제야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
마철규는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어쨌든 지금 북조선에는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이건우 동지가 제격이지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이건우는 더이상 돌아가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왕 북한에 온 거 싹 갈아버리고 가자. 어차피 한번은 해야 했던 일이니까.’
물갈이만 딱 끝내고 돌아가기로 결심한 후, 이건우는 관저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이건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둥의 위치와 가구의 배치가 묘하게 눈에 익었다.
“처음 오는 곳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네요.”
“그럴 겁니다. 김정안을 협박할 때 김정안이 여기에 있었거든요.”
“···아하.”
CCTV에 나온 그 장소가 여기였구나.
이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고, 캐리온과 마철규도 이건우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철규는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일단 부패한 공무원부터 싹 쳐내야지요.”
내가 캐리온에게 눈짓하자, 캐리온은 미리 북한에 대해 조사해온 자료를 꺼냈다.
[직위를 박탈해야 할 명단입니다.]
그 자료의 양이 상당했다. 마철규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분명 저 안에는 수많은 정적의 비리가 있을 것이다.
이건우를 이용해서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확고하게 다질 계획이 실현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철규는 반색하며 명단을 받았다.
‘흐흐. 드디어 숙청이 시작되는군. 역시 사람이 줄을 잘 잡아야 해.’
그리고 명단을 펼친 마철규의 표정이 굳었다. 명단의 최상단에 있는 이름.
- 마철규 국무위원회의 부위원장 및 조선로동당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헉.”
바로 본인의 이름이었다.
마철규는 눈을 끔벅였다. 이게 꿈인가 싶어 다시 봐도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맨 위에 떡하니 박혀있었다.
“아, 아니, 저···.”
“왜 그러시죠? 뭐가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그게, 그러니까···.”
마철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심지어 서류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비리가 빠짐없이 나와있었다. 정말 엄청 오래전에 있었던 일 몇 개만 누락되었을 뿐, 대부분 내용이 들어맞았다.
마철규의 표정은 황당과 당황, 놀라움과 공포가 섞인 미묘한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이건우는 그의 표정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말했다.
“오랫동안 꽤 많이 해 드셨더라고요.”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마철규가 급히 변명했다.
“이보시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원래 북조선에서는 이 정도는 그냥 눈 감고 넘어갑니다. 이 자리에 있다보면 어쩔 수 없이 청탁을 받아야될 때가 있어요.”
“그래요.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요.”
이건우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마철규는 안도했다.
‘그럼 그렇지. 그냥 단순히 협박하려는 용도였군.’
하지만 그는 이건우를 한참 잘못 봤다. 이건우가 말했다.
“저도 어쩔 수 없지만 저도 당신을 법대로 처리해야겠습니다. 제가 만들 북한에는 썩은 놈은 필요 없거든요. 이해해줄 수 있죠?”
마철규는 자신도 모르게 악을 썼다.
“나는 약과에요. 저보다 더 많이 처먹은 사람도 있단 말입니다!”
“그 사람도 같이 잘릴 테니까 걱정 마시고.”
하지만 이건우는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마철규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자신의 뒷배가 되어줄 줄 알았던 이건우는, 목을 옭아매는 올가미가 되었다. 절대로 풀리지 않는 올가미.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어필했다.
“그래도 저는 지금 김정안을 대신해서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사라진다면 북한은 안 돌아가요.”
그 말은 반만 맞았다. 마철규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태반을 날려도, 캐리온만 있다면 북한은 잘만 굴러갈 것이다.
그러나 이건우는 생각했다.
‘마철규. 오래 데리고 갈 사람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필요하겠지.’
이건우가 아무리 인기가 좋다고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외부인이다. 아무리 국가가 부패했다고 해도 외부자가 칼부터 들이대며 대대적인 개혁을 하면 반발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인공지능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체제는 거부감을 살지도 모른다.
이런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내부에 있는 사람을 이용해 스스로 자정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게 낫다.
‘그런 의미에서 마철규가 딱이야.’
약점을 틀어쥐고 있어서 쓸모가 다하면 언제든지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이건우는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생각해오던 계획을 구체화했다.
마철규를 이용해서 부패한 공무원을 싹 쳐낸다.
그 자리에 검증된 청렴한 인사를 등용한다.
이후 쓸모없어진 마철규는 버린다.
깔끔하고 심플하다. 결정을 내린 후 이건우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유예기간을 주지요.”
“네?”
“이건 확실히 해두지요. 나는 북한에 더이상 썩은 정치인이 자리 잡게 하지 않을 거고, 당신은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합니다. 동의합니까?”
마철규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달콤한 권력을 내려놓기 싫었다. 김정안을 죽인 후 그가 늘 앉던 왕좌에 앉았을 때 느꼈던 황홀함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차라리 이렇게 빼앗을 거면 주지를 말던가.
그는 이건우를 환영한다.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나 이건우가 자신의 편이 됐을 때 하는 이야기다. 지금 마철규의 마음속에 억울함과 반발심이 깃들었다.
이건우는 마철규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피며 말했다.
“대신 제 말을 잘 들으면 곱게 물러날 수 있도록 해드리지요.”
마철규는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이건우가 무섭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순순히 대답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위험한 생각이 스물스물 싹트고 있었다.
*
이건우는 명단에 있는 공무원과 정치인을 싹 다 불러모았다. 리일환은 평양시당 책임비서로 김정안 정권이 무너졌을 때 제일 먼저 마철규의 편으로 돌아섰던 사람이다.
그는 이건우가 사람들을 소집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관저로 향했다. 현 상황에서 이건우가 최고책임자였기에 눈에 띄며 한자리 얻을지도 모른다는 계산도 있었다.
그렇게 바삐 가던 와중, 리일환은 마철규를 보았다.
“부위원장님. 안녕하셨습니까.”
깊은 고민에 빠져있던 마철규는 그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아, 오랜만이오.”
“일찍 오셨군요. 혹시 이건우가 왜 우리를 부른지 아십니까?”
어제 마철규가 이건우를 독대했다고 들었다. 그 직후 각계인사를 소집한 것을 보면, 마철규는 뭔가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마철규는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건우가 너희를 다 족치려고 하니까 함께 성토하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이건우가 무서웠다.
그는 김정안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옆에서 직접 본 사람이다.
이건우는 남조선 저 멀리 떨어져서도 김정안을 박살 냈는데, 지금 여기에 와서는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철규는 갈등 끝에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