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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로 받았으면 말로 줘야지 (4)
그를 부르는 소리에 찔리는 게 많은 마철규는 흠칫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김수일 총참모장이 있었다.
“아. 총참모장님.”
김수일은 김정안의 처남이었다. 당연히 김정안과는 무척 가까운 사이. 하필이면 여기서 김정안의 심복을 만나다니.
'혹시 이건우와 내통하는 걸 들킨 건 아니겠지?'
마철규의 심장이 쫄깃해졌지만, 갈고닦은 처세술로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입니까?”
[이건우 님의 전언을 듣고 왔습니다. 여기에 가면 부위원장님을 만날 수 있다더군요.]
“···네?”
마철규는 눈을 끔벅거렸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김수일이 이런 말을 한다고?'
방금 저건 진심인가? 아니면 나를 떠보는 건가?
말하는 게 겉모습만 김수일을 닮은 다른 누군가 같았다. 마철규는 모르는 척 물었다.
“이건우 님이라니요?”
김수일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이건우 님이 ‘조랑말 엉덩이에 달린 천둥번개’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거라고 하던데. 암호는 왜 이따위 것으로 정했습니까?]
왜냐하면 그래야 아무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지.
마철규는 이제야 안도하며 활짝 웃었다.
“세상에. 저와 함께할 동지가 총참모장님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건 그에게 좋은 신호였다. 김수일은 김정안의 처남이다. 그가 함께하면 김정안을 쳐내야 한다는 당위성이 좀 더 부여된다.
하지만 이건우가 말한 것은 군대. 겨우 김수일 한 사람만으로 군대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웠다. 마철규의 표정에 아쉬움이 깃들었다.
'역시. 아무리 이건우라도 북한에 군대를 보내는 게 쉬울 리가 없지.'
그 표정을 읽었는지 김수일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만 온 게 아닙니다.]
“네?”
마철규는 의아했다. 누가 봐도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 온 게 아니라니?
그때 김수일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동시에 하늘에서 드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처럼 나타난 수백 대의 전투 드론이 하늘을 꽉 채운 모습은 장관이었다.
“헉!”
그 규모에 마철규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북한은 아직 스텔스 드론을 감지할 기술력이 없었다. 있다고 하더라도 이건우가 전부 무력화시켜놨다.
공중에 떠있던 드론 중 절반은 기계음을 내며 재조립이 되더니, 어느새 팔다리가 달린 로봇의 형태로 변해서 땅에 상륙했다.
처음 보는 형태의 소화기부터, 각종 중화기와 통신설비까지. 군대의 편제를 이루고 있는 로봇들이 일사불란하게 오와 열을 맞춰 시립했다.
최첨단 전투 기능을 갖춘 미니온 군단의 등장이었다.
마철규는 벌린 입을 다룰 줄은 몰랐다.
“이, 이게 무슨···.”
[이건우 님의 전투 부대 미니온 군단입니다. 아프리카 공장에서 제조되어 시험 테스트를 마치고 바로 이곳으로 투입됐지요.]
김수일의 말투에는 왜인지 묘하게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마철규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것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기술력을!”
가끔 중국 인사와 교류할 때 이건우에 대한 소식을 종종 듣고는 했다. 중국 인사들은 하나같이 이건우를 욕하면서도 그가 가진 기술력을 부러워했다.
미니온 군단을 보니 마철규는 그들의 심정에 동의할 수 있었다. 동시에 김정안에 대한 욕이 절로 나왔다.
‘김정안 미친새끼. 이런 걸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 포격을 날려?’
조금 전까지는 이건우를 기다리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김정안이 이건우를 적대했고 이건우는 그를 짓밟기로 마음먹었다면, 김정안은 이제 끝이다.
마철규는 이건우에게 붙기로 다짐했다. 미니온 군단이 있으니 그에게 더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잠시나마 김정안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에서 왔던 불안감은 날아가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좋습니다. 바로 가지요!”
그가 호기롭게 외치는데 김수일이 그를 붙잡았다.
[잠시만요.]
“네?”
또 뭐가 있나?
위이이잉
그때 드론이 공중을 선회하더니 마철규의 눈앞에 섰다.
철컥
수백 대의 드론 아래서 뭔가가 빠져나왔다. 작은 사각형의 물체에 마철규는 이게 또 뭔가 싶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저 수납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튀어나왔을 뿐이다. 박스 안에는 작은 약병들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이건?”
[포비드 치료제입니다. 식량은 부피가 있는 탓에 국경에 있습니다. 일단 포비드 치료제를 이용하면 사람들을 회유할 수 있겠지요.]
포비드 치료제라니.
마철규는 손을 뻗어 슬쩍 한 개를 집었다. 그도 포비드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저도 한 개만.”
[그거 백신이 아니라 치료제입니다. 멀쩡한 사람이 맞아봤자 소용이 없어요.]
김수일, 아니 캐리온이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이후 일은 일사천리였다. 총참모장인 김수일이 반기를 드니, 그의 휘하에 있던 군인들은 자연스럽게 김수일을 따랐다. 망설이던 나머지 군인들도 군중심리에 휘말려 김수일과 함께했다.
김수일이 군대를 장악하는 사이, 마철규는 인민들을 설득했다. 그는 말 그대로 약을 팔았다.
“여기 남조선에서 들여온 포비드 치료제가 있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치료제를 나눠주겠다.”
북한 인민 대부분이 이건우의 방송을 봤다. 아니면 이건우에 대해 건너 들었거나. 북한 사람 중에는 이제 이건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김정안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이 대다수였다. 지금까지는 돌아다니는 안전원이 무서워서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뿐.
그런데 마철규라는 조선로동당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며, 동시에 국무위원회의 부위원장이나 되는 사람이 직접 포비드 치료제를 나눠주며 김정안에 대한 반기를 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억눌러있던 사람들의 마음에 불이 붙었다.
마철규가 그들을 선동했다.
“내 가족이, 내 형제가, 내 이웃이 감염병에 걸렸다. 그런데 위원장은 무얼 하고 있었나!”
“미사일이 날아오는데 식탁 밑에 숨어있지 않았던가. 역도의 위협에 인민을 팔아넘기지 않았는가.”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겠다. 병에 걸린 사람은 누구나 와서 받아가라.”
지금껏 병에 걸린 사람들은 가차없이 격리되었다. 그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 더이상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웃과 가족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사라진 가족, 친구를 기다리며 그들은 격리시설에 ‘버려진’ 가족을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앞으로 나섰다.
“저, 저 주세요!”
먼저 나선 여자는 흠칫 놀랐다. 사람들은 모두 불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대로 안전원에 의해 끌려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마철규가 그녀에게 다가와서 포옹했다.
“···아!”
“용기를 내줘서 고맙네 동무. 여기 치료제가 있네.”
여자가 치료제를 받았다. 그 순간 봇물 터지듯이 사람들이 아우성쳤다.
“저도요!”
“아버님이 병에 걸렸어요. 도와주세요.”
“비켜. 내가 먼저야!”
원래 치료제는 이런 식으로 나눠줘봤자 소용없다. 전문의료기관에 맡겨서 철저한 관리 아래 접종해야 한다.
하지만 마철규가 이런 식으로 일을 꾸민 건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건 하나의 쇼였다. 마철규의 쇼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의 생각에 물들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동무들! 치료제는 넉넉히 있으니 나를 따르면 모두 낫게 해주겠소.”
사람들의 눈에 열기가 돌았다. 그 모습을 보며 마철규가 웃음을 지었다.
쇼는 대성공이었다.
*
북한의 상황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김수일로 위장한 캐리온이 군대를 이미 장악했으며, 마철규는 성난 군중을 데리고 김정안의 관저 앞으로 향했다.
그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소식을 뒤늦게 들은 김정안은 지하벙커로 피신하려고 했으나 군중은 이미 관저를 완벽하게 포위했다. 김정안의 주변에는 그를 도와줄 사람이라곤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김정안은 산채로 사로잡혔다. 김정안이 소리쳤다.
“김수일! 마철규! 네놈들이 감히 나를!”
마철규가 김수일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이건우 님은 김정안을 국경으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래야지요.”
하지만 북한 인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수십 년동안 그들을 힘들게 한 존재. 부모가 굶어 죽은 것도, 형제가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한 것도 다 놈의 탓이었다. 김정안은 인민들의 고혈을 빨아 모조리 저 탐욕스러운 배때기에 쳐넣은 악당이었다.
그들에게 김정안은 살려둬서는 안 되는 놈이었다.
사람들에게 끌려 내려오던 김정안은 화가 난 인민들을 마주했다.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은 김정안을 노려보았다.
사람들 사이를 회오리치는 분노가 마치 손에 잡힐 것처럼 선명했다.
그 순간, 한 남자가 발작하듯 튀어나갔다.
“너!”
뼈밖에 없는 앙상한 남자의 몸에서 나왔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남자도 소리를 질러놓고도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그보다 김정안이 더 충격을 받았다. 감히 벌레 같은 놈에게 ‘너’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김정안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뻐끔거리고 있자, 남자는 용기를 얻었는지 그의 가슴팍을 밀쳤다.
“너 때문에! 내 여동생이 수용소에 끌려갔어! 너 때문에!”
그제야 정신이 든 김정안도 남자를 밀쳤다. 워낙 체급에서 차이가 있던지라 남자는 힘없이 밀려나서 계단을 굴렀다.
김정안은 늘 그랬듯 호통을 치려고 했다.
“저 더러운 게! 당장 끌고···.”
하지만 그의 말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굴러떨어진 남자의 자리를 대신해, 수많은 싸늘한 시선이 그의 몸에 꽂히고 있었다.
"이 개 쓰레기 같은 자식!"
"너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어···!"
"내 아들 살려내라!"
북한 주민은 마치 파도처럼 김정안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가슴을 밀치고, 때리고, 잡아뜯으며 수십 년의 한풀이를 하였다.
그날 김정안이라는 북한을 탄압하던 존재는, 북한 주민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
나는 지금 북한에 있는 캐리온에게서 직통으로 상황 보고를 들었다.
김수일로 변장한 캐리온은 김정안의 최후에 대해 말해주었다.
[김정안이 죽었습니다. 통일에 방해만 될 것으로 생각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
나는 김정안을 데리고 국경으로 내려오라고 두루뭉술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나머지 일은 캐리온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겼다.
변수는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캐리온의 상황판단 능력이라면 분명 이게 최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캐리온이 설명했다.
[북한 주민이 김정안에게 가진 반감이 예상보다 훨씬 엄청났습니다. 김정안이 있다면 오히려 평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은 북한의 민심을 잡아야 하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안을 멀쩡히 살려두고 그의 안전까지 보장해준다?
그건 통일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
차라리 북한 주민이 자신의 손으로 김정안을 죽이는 게 낫다. 스스로 체제를 무너뜨린 만큼 훨씬 적극적으로 통일 협상에 나올 것이다.
“알았어. 그럼 마철규와 함께 내려오고 있나?”
[네. 그리고 마철규가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해준다고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원래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지. 다시 한번 강렬한 퍼포먼스를 준비해야겠군.”
내가 대북 먹방을 한 탓에 북한 사람들은 남한만 가면 나처럼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나는 이 일과 논의하기 위해서 차민태를 찾아갔다. 차민태는 날벼락처럼 날아든 통일 소식에 정신이 없었다.
차민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임기 말은 편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관종이 이런 말을 하다니 의외다 싶었다.
“그래도 통일을 이룬 최초의 대통령 아닙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는데 다 자네 뒤치다꺼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
그는 정확히 정곡을 찔렀다.
“그럴리가요.”
어쨌든 지금 통일 트리는 이상적이었다. 북한은 알아서 자멸했고, 중국은 북한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한에 잔존세력이 남아서 저항을 하겠지만, 그건 미니온 군단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차민태가 말했다.
“그 미니온 군단 말인데. 성능이 상당히 좋아 보이더군. 그걸 활용한다면 아군의 피해를 줄이면서 다양한 전술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던데.”
“정확히 보셨습니다. 사람을 대체할 수 있으니 더이상 징병제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러면 장기적으로 국방비를 절약하면서도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나는 미니온 군단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자네라고 생각하네.”
갑자기 대화의 방향이 이상하게 간 것 같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그리고 지금 임기 말이네.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대북 정책도 바뀌고 그러면 혼란이 오겠지.”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뭔가 말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에 나는 수상쩍다는 듯 차민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요?”
차민태가 느긋하게 말했다.
“이번에 사령군이 북한에 가서 통치를 할텐데 차라리 자네가 가는 게 어떻겠는가? 마침 자네가 대북방송을 해서 북한 내에 인지도도 높은 데다, 미니온 군단도 자네의 것이니까 다루기가 쉽고, 자네라면 정권이 바뀌어도 영향을 받지 않을 거니 말이네.”
“그러니까 저보고 북한에 가라는 게···.”
“재입대를 하게. 내가 바로 한 자리 내어주지. 다른 이들도 반발을 못할 거야.”
그리고 내 입에서는 자동반사처럼 상소리가 튀어나왔다.
“미쳤습니까?”
나는 차민태의 헛소리를 무시했다.
재입대? 두 번 죽었다 살아나도 군대는 안 간다.
차민태가 이런저런 혜택을 늘어놓으면서 어떻게든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나는 도망쳤다.
북한에 관한 일은 모두 차민태에게 떠넘긴 다음, 나는 이번에 윌리엄이 북한을 통해서 접근하는 과정에서 흘린 흔적을 추적했다.
스페이스온 프로젝트로 인공위성을 띄우면서 내 정보력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그리고 캐리온은 리 가문과 윌리엄의 연결고리를 집요하게 찾아냈다. 흔적은 딱 하나 있었다. 윌리엄이 북한에 식량과 자금, 그리고 포비드 치료제를 전달해주는 과정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미네르바 가문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바로 지중해 한 섬.
나는 윌리엄의 본거지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