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로 받았으면 말로 줘야지 (3)
잠시 열린 중국의 내부망.
캐리온은 마음껏 중국 서버를 휘젓고 다녔다. 심지어 장웨이 주석이 모든 권한을 부여해줬기 때문에 걸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표면에 드러난 자료부터 내부 저 은밀한 곳에 있는 것까지. 모든 것이 캐리온의 통제에 들어왔다.
캐리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리펑 총리의 세력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리펑 총리와 조금의 접점이라도 있는 인물은 모조리 찾아낸 뒤, 그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조사하여 추려놓았다.
나는 그 방대한 자료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남부 곡창지대는 전멸했다고 하더니 여기는 풍년이 따로 없네.”
이게 대륙의 스케일인가? 뭐 이렇게 많이 해 먹은 거야? 더 놀라운 것은 이게 겨우 1년 치 자료라는 것이다.
나는 이 자료를 그대로 장웨이 주석에게 보냈다. 실각 직전이라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주석이고,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세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 정도 증거물이라면 장웨이 주석 스스로도 윌리엄과 리 가문의 세력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장웨이 주석은 여론까지 조작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사람들의 불만을 숨길 수는 없다. 어차피 장웨이 주석이 못난 놈이라는 것은 온 중국 사람들이 알게 된 사실이다.
하지만 워낙 무능력한 사람으로 인식되다 보니, 한두 가지만 잘 하더라도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신 나는 제안했다.
“중국 원하오 제약에게 특별히 포비드 치료제 위탁생산을 맡기지요.”
원하오 제약은 중국 정부에서 가장 밀어주는 제약회사이다.
원하오 제약과 KW 제약이 손을 잡고 포비드 치료제 생산을 하면 꽤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치료제를 위탁생산을 하는 만큼, 중국 내부에서 치료제를 구하는 것도 쉬워질 것이다.
지금 중국은 포비드 사태 때문에 엄청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만일 이 시국에 장웨이 주석이 나서서 성공적으로 포비드 치료제를 들여온다면?
거기에 캐리온이 양념을 좀 쳐서 찬양 기사를 몇 줄 적어준다면, 사람들의 태도는 단숨에 달라질 것이다.
내 제안에 장웨이 주석은 감격했다.
“정말 고맙네. 자네와 손을 잡는다는 기사만 나와도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이참에 중국에 와서 나랑 사진을 좀 찍는 게 어떤가. 내가 귀빈으로 모시겠네.”
“아··· 그건 좀.”
“아니 왜? 14억 인민들이 모두 자네를 반겨줄걸세.”
“귀찮아요.”
“······.”
어쨌든 장웨이 주석은 내 제안을 반가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든 상황은 나와 손을 잡는다면 해결할 수 있다.
파워온부터 희토류까지 중국은 나에 대한 반감이 꽤 깊지만, 그러면서도 은근히 배터리와 반도체, 그리고 치료제를 원하는 눈치였다.
이번에 나와 손을 잡고 성공적으로 KW의 물건을 수입한다는 이야기가 퍼진다면, 장웨이 주석이 지난날 저질렀던 잘못도 어느 정도 씻겨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건 계획대로였다.
장웨이 주석이 발표했다.
“KW 제약과 협력해 총 2700억 규모의 위탁생산을 계약했습니다. 이건우 사장의 뜻깊은 결단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많은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래대로라면 원하오 제약 사장이 발표해야 하는 일이지만, 장웨이 주석이 어떻게든 지지율을 끌어모으려고 나섰다.
“또한 KW 제약에서는 포비드 치료제 500만 명분을 우선적으로 공급해주기로 했습니다. 이는 위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우선 공급할 예정입니다.”
발표와 동시에 장웨이 주석은 신문판공실과 중앙선전부에 있던 관리들을 싹 물갈이해버렸다.
내 도움 덕분인지 장웨이 주석의 인기는 확 올라가버렸고, 명분이 생긴 주석의 숙청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지자 겁을 먹은 신문판공실과 중앙선전부 관리들은 다시금 장웨이 주석을 찬양하는 기사를 갖다 쓰기 시작했다.
<이건우-장웨이 1시간 통화, “긍정적인 관계 검토”>
<장웨이, “민생에 주력”···포비드 치료제 500만 명분 계약, 추가도입 검토 중>
<원하오 제약-KW 제약 치료제 위탁생산 계약 체결>
<포비드 사태 이대로 종식되나?>
그동안 푸르죽죽하게 물들던 중국 경제 시장에 모처럼 빨간색이 들어왔다. 바닥을 치고 있던 원하오 제약 주식을 시작으로 바이오 주식이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치료제를 공급한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중국은 기대감에 물들었다.
나는 투자하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저들끼리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여기에 캐리온이 약간의 양념을 해서 장웨이 주석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적어나르자, 다시 사람들은 장웨이 주석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중국은 워낙에 주석의 힘이 강한 나라이다. 국민의 지지를 업은 주석은 강력했다.
장웨이 주석은 본격적으로 숙청에 나섰다.
그는 말했다.
“사실 경제가 망한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비리를 저지르면서 민생을 어지럽혀서이다. 나는 민생을 위해서 깨끗한 중국을 만들겠다.”
명백한 책임전가였다. 왜냐하면 비리를 저지른 것은 장웨이 주석 계파나, 리펑 총리의 계파나 다 거기서 거기인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에게는 씹어먹을 뼈다귀가 필요했다.
당장 일어나고 있는 경제 침체와 포비드. 아무도 원망하지 않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 역할이 장웨이 주석이었다. 윌리엄과 리 가문에서 먹기 좋게 발라놓은 장웨이라는 뼈다귀를 사람들은 열심히 물어뜯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물어뜯으면서도 영 찜찜했다. 장웨이 주석을 비난하다가 걸려서 공안에 잡혀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투덜거리다가도 혹시라도 걸릴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러던 와중 장웨이 주석이 새로운 뼈다귀를 던져줬다. 이번에도 물어뜯을 증거는 명명백백했다.
이놈들도 진짜 나쁜 놈들인데다, 장웨이 주석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씹어먹다가 걸려도 뒤탈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장웨이를 물어 뜯을 때보다 더욱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리펑 총리가 그동안 뭐 많이 해 먹었던데.”
“저번에는 경제 부흥을 외치더니. 나라를 아주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네.”
“그놈이 그놈인 것 같은데, 그럴 바에야 구관이 명관이지.”
“맞아. 이번에 주석께서 포비드 치료제를 들여왔다며?”
“내 친구의 사촌의 딸이 중증 환자인데 이번에 대기번호를 받았다더군.”
“나는 고위 관리들 먼저 나눠줄 줄 알았는데 우리까지 돌아오는구먼.”
“이보게. 주석이 민생이 우선이라면서 관리들을 본보기로 조졌는데, 그 와중에 치료제를 빼돌릴 간이 큰 관리가 어디 있나.”
일이 이렇게 되자 리 가문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말 다 된 밥이었다. 이대로 장웨이의 권력을 빼앗고 군사를 일으켜서 북한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건우가 재를 뿌렸다.
아니, 재를 뿌린 수준이 아니라 리 가문의 세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애써 베이징 정계에 꽂아놓은 인사들이 모조리 날아가게 생겼다.
이번 일로 리 가문과 리펑 총리의 세력은 완전히 수면에 드러났고, 장웨이 주석은 그들을 싹 모아다가 한 번에 쳐냈다.
리펑 총리도 무사하진 못했다. 곧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할 예정이다.
당분간 리 가문에 중국의 정권을 잡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리 가문의 당주는 화가 잔뜩 나서 윌리엄에게 따졌다.
“당신 말대로 했는데 상황은 더 악화됐잖소!”
하지만 윌리엄도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캐리온.”
“뭐?”
윌리엄은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항상 그놈의 캐리온이 문제였다. 이번에도 캐리온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캐리온을 무력화하지 않으면 이건우를 잡아낼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캐리온을 무력화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문득 이전에 이건우가 자신의 통신시설을 폭파했던 일이 떠올랐다. 통신시설 특성상 주요 거점만 파괴하면 전체가 불능이 된다.
당연히 캐리온도 기본적으로 전산망을 이용한다. 윌리엄은 이건우가 전세계 곳곳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다녔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거기에 아이디어를 얻은 윌리엄은 미소지었다.
“이건우의 데이터센터를 공격해야겠군.”
윌리엄은 아직도 머무르고 있는 리 가문의 당주를 봤다.
“뭐야, 아직도 안 갔나?”
“뭐?”
윌리엄의 말에 리 가문의 당주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지금 누구 때문에 내가 이 지경에 처했는데!”
“누구 때문이기는. 바로 당신의 욕심 때문이지.”
결국 모든게 사람의 욕심 때문이다. 그 대단하다던 리 가문의 가주도 당장 욕심 때문에 이 꼴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때마침 비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 배우들이 모두 집결했습니다.
이제 리 가문은 더이상 필요 없다. 자신이 직접 나설 차례였다.
*
장웨이 주석은 약속을 지켰다. 김정안은 중국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군대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오지 않았다.
장웨이 주석은 바보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넘어간다는 걸 잘 알고있다.
하지만 장웨이 주석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체제 안정이었다. 자신이 권력을 잃고 나면 북한을 잃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고로 나는 이제 버려진 북한을 줍기만 하면 됐다.
이번에는 차민태 대통령도 승인한 작전이다. 정확히는 ‘내 승낙이 필요한가? 어차피 알아서 다 할텐데.’라고 툴툴거린 거지만, 나는 내가 알아서 다 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나는 캐리온에게 들은 북한 정황을 되새겼다. 현재 북한에서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세력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중 가장 끗발이 쎈 놈이 하나 있다.
마철규 부위원장.
나는 그에게 연락했다.
“누구시오?”
“이건우입니다.”
마철규는 고개를 기우뚱했다.
‘이건우? 이 익숙한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
“헉, 이건우?”
며칠 전 북한을 마구잡이로 들쑤신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연락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반응이 늦어버렸다.
사실 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차라리 이건우 사칭범이면 모를까, 어떻게 이건우가 북한에 있는 자신에게 연락한단 말인가!
“진짜 이건우입니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요즘 김정안 몰래 군 관계자를 만나고 다녔지요. 근데 고작 그걸로 김정안을 배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 그걸 당신이 어떻게···.”
라고 말하려다가 위성을 해킹해서 협박하는 놈인데 이 정도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철규는 머리를 굴렸다.
이건우가 접근한 이유는 뭘까?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내부에 사람이 필요한 겁니까?”
“말이 잘 통해서 좋네요.”
마철규는 속내를 조금 털어놓았다. 남조선에 있는 이건우가 묘수를 낼 수 있을지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김정안 집권 체제를 뿌리째 흔든 실력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조금 섞였다.
“제가 군 관계자를 좀 만나고 다니기는 했는데 거기 뚫기가 좀 어렵습니다. 간부 중에 불만이 있는 친구들이 좀 있어서 한번 떠봤는데, 다들 김정안 위원장을 너무 두려워해서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더군요.”
“군대는 내가 보내줄 테니까 필요 없습니다.”
“예?”
“군대, 식량, 포비드 치료제. 이 세 가지를 제가 지원하지요. 당신은 하나만 대답하세요. 김정안.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김정안. 북한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자 동경에 대상이다.
하지만, 마철규의 입에서는 금방 대답이 나왔다.
“당연히 할 수 있지요. 다만 지원은 확실해야 합니다.”
북한 정복을 위한 앞잡이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
김정안.
그는 북한 간부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마철규가 지금까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바로 김정안이었다.
김정안은 미친놈이었다. 그가 위원장에 오르고 나서 죽인 장성만 무려 100명이 넘었다. 마철규는 뛰어난 처세술로 어찌어찌 숙청을 피했지만, 그 시기를 겪으면서 김정안에 대한 두려움이 뼈에 박혔다.
하지만 이제 김정안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생겼다.
바로 이건우.
‘세상에. 김정안보다 더한 새끼가 나올 줄이야.’
그런 이건우가 마철규에게 접근해서 제안했다. 군대를 보내줄 테니까 내부에서 폭동을 일으키라고.
그런데,
'갑자기 군대라니. 대체 군대가 어디서 나온 거지?'
마철규가 아는 이건우는 그저 사업가일 뿐, 군사에 관련된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이건우가 군대를 보내준다는 위치에 갔다.
포비드 사태를 빌미로 통금이 내려져 있었기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몇몇 안전원들이 돌아다녔는데, 그들은 마철규의 계급장을 보고 경례를 붙이며 갔다.
‘이쯤이었는데···.’
이건우가 가르쳐준 곳은 평양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여기에 어떻게 군대를 보내준다는 걸까?
여기까지 군대가 들어온다면 이미 국경에서부터 소식이 왔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주변이 너무나도 조용했다.
‘설마 이건우 사칭범이었나? 하지만 진짜 이건우가 아니고서는 이런 일을 할 수는 없을텐데···.’
사실 마철규도 이건우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저 밑져야 본전이고, 만약 없으면 그냥 돌아가려는 마음으로 나왔다.
그때였다.
[마 부위원장님?]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