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67화 (167/183)

되로 받았으면 말로 줘야지 (2)

나는 윌리엄에 대해서 생각했다.

얼마 전 있었던 북한의 공격. 바로 윌리엄이 지시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윌리엄이 왜 북한에게 나를 공격하라고 했을까?

단순히 화풀이를 위해서 내 공장을 박살내기 위해서?

물론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망친 그의 계획이 몇 개였더라?

벨라를 통해 로스차일드 가문을 장악하려던 것부터.

올로프의 대역을 만들어서 발렌베리 가문을 삼키려고 했던 걸 저지했으며,

그가 각 가문에 심어둔 스파이를 모두 폭로해서 가문연합을 와해했다.

덤으로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통신시설을 폭파시켰지.

음. 이렇게 까놓고 보니 윌리엄이 나를 죽이려고 환장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윌리엄이 과연 그런 감정만으로 움직였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그는 영악한 사람이다. 윌리엄의 계획은 항상 이중, 삼중으로 된 노림수가 있다.

일 단계가 실패하면 이 단계는 성공하도록. 그마저도 실패하면 적어도 삼 단계만큼은 이루어지도록.

그리고 역시나, 캐리온의 보고가 들어왔다.

[김정안이 리아이핑을 만났습니다.]

저번에 인공위성이 해킹당한 이후, 김정안은 인공위성과 관련된 모든 시설을 폐기했다.

그렇다고 캐리온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북한이 폐쇄적이라서 들어오기가 어렵지, 한번 들어오는 데 성공하면 보안망을 뚫는 건 쉽다.

북한에 뿌리내린 캐리온은 이미 전역의 네트워크를 장악했다.

[리아이핑에게 보호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리아이핑은 리 가문의 방계 혈족이자 당주의 최측근 중 하나이다. 그는 이번 북한과 윌리엄의 거래에서 책임자로 나섰으며, 아직 귀빈 대접을 받으며 북한에 머물러있었다.

집권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김정안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지, 리아이핑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군사를 보내달라고 했다.

이제 윌리엄의 의도가 확실히 보였다.

‘북한을 앞세워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거로군.’

북한에 중공군을 보낸다면 당연히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윌리엄과 리 가문은 신경쓰지 않고 군대를 계속 주둔시키며 북한을 이용해 무력적인 도발을 할 것이다.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고,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윌리엄은 전쟁을 핑계로 나를 공격할 것이다. 그는 나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서 한국에 핵을 쏘고도 남을 놈이다.

당연히 그는 뒤에 숨어있기 때문에 적어도 겉으로는 북한과 중국만 미쳐 날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케네디 가문에서도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들었는지, 대럴 케네디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 북한에서의 작품은 잘 봤네. 좀 적당히 하지 그랬는가.

“이 정도면 적당히 한 겁니다만?”

나는 미사일을 전부 해킹해 그대로 북한 땅에 꼬라박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바다에 빠뜨려 폐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상당히 관대한 처분이 아닌가?

하지만 대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이번에 자네가 보여준 인공위성 도킹 기술 때문에 전세계의 군 관계자들이 굉장히 당신을 경계하고 있다네. 혹시나 자국의 위성을 도킹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물론 미국도 마찬가지고.

“혹시 미국에서도 저를 건드리려고 하나요?”

- 미쳤다고 그러겠는가!

“그럼 안심하라고 하세요. 저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습니다.”

나는 나를 건드리는 놈만 확실하게 팬다. 그 밖의 사람들과는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내가 미친놈도 아니고 막무가내로 물어뜯고 다니지는 않는다.

- 그래도 앞으로의 행보를 조심하게. 이번 일을 수습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대럴 같은 묵직한 양반이 투덜거릴 만큼 수습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나보다. 그래도 대럴의 걱정이 마냥 틀린 것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발명해낸 기술들은 하나하나가 산업 안보에 큰 위험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걸 넘어서 군사 안보마저 위협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평화를 주장한다고 해도, 내가 들고있는 기술을 본다면 사람들은 경계하기 마련이다.

내가 적당히 수긍하는 것처럼 보이자, 대럴은 타박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 중국에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네. 북한이 중국 주요인물과 접촉했다는 보고를 받았네.

나는 얼마 전 입수한 구체적인 정보를 전해주었다.

“윌리엄이 중공군을 움직여서 북한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 음···.

대럴은 침음을 흘렸다.

- 전쟁인가?

“아마도요.”

- 자네가 북한이 가진 미사일을 무력화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북한이 무력화되면 한반도에 온전히 미국의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면 동아시아에서 전체에 미국의 영향력이 조금 더 확대될 수 있다.

이참에 북한이 자멸한다면 중국과 한국이 국경을 직접적으로 맞대며, 중국을 조금 더 압박할 수 있겠지.

이번에 내가 미친듯이 날뛰었는데도 미국이 최대한 손을 써서 일을 무마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이 움직이면?

동아시아 전체의 기류가 불안정하게 돼버린다. 이는 미국이 원하는 일이 아니다.

- 여튼 중공군이 움직인다면 제7함대와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해군을 움직이도록 하겠네.

“중공군이 들어오지 않는 게 베스트이긴 하지만 미국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대럴과의 대화가 끝나고 한서진이 들어와서 알려왔다.

“사장님. 청와대에서 오라고 하는데요? 급하다고 합니다.”

“아.”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차민태를 떠올렸다.

임기 한 달 남은 시점에서 북한과의 전쟁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한 차민태를 말이다.

*

차민태는 길길이 날뛰었다.

“아니, 이건우 사장! 이런 일을 어떻게 나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진행했나!”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상의했으면 못하게 했을 거잖아요.”

“당연하지! 세상에 북한 주파수를 탈취해서 김정안을 놀리고 먹방을 내보내···어억 뒷골이!”

차민태는 혈압이 치솟는지 뒷목을 잡았고, 옆에 있던 보좌관이 ‘대통령님!’하고 소리치며 그를 부축하려 했다.

동석한 국방부 장관이 나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꼭 그렇게 해야만 했소? 지금 당신 때문에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생겼단 말이오.”

“엥? 그럴리가 없을텐데요?”

“그럴리가 없다니! 북한이 이러다가 핵이라도 쏴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어째 소식이 좀 느리다?

“북한에 있는 미사일 발사체는 제가 다 폐기했습니다만?”

뒷목을 잡던 차민태가 놀란 듯이 눈을 끔벅거렸다. 국방부 장관도 입을 벌렸다.

“미사일을 다 폐기했다니?”

“그거 전부 바다에 수장시켰어요.”

“그럼 핵은···.”

“그거는 발사체가 있어야 핵을 쏘든지 말든지 하겠죠.”

“그래도 지금 북한에 중국에 보호를 요청했다는 소식을 들었네. 중공군이 북한에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이건 알고 있구나. 그래도 우리나라 정보력이 완전 바닥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다.

“방금 미국이랑 통화 끝냈어요. 제7함대랑 오키나와 해군기지에 있는 병력을 보내준대요.”

차민태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미국이랑은 언제 또 얘기했대···.”

한국 외교부가 나설 틈도 없었다. 모든 상황을 내가 깔끔하게 정리해버렸다.

차민태는 괜히 과장한 게 민망한지 얼굴을 붉혔다.

그때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이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와서 전화를 받았다.

“이건우 사장?”

“그렇습니다만?”

낯설지 않은 목소리. 나는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봤는지 생각했다.

“장웨이이네. 이렇게 직접 목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군.”

나는 캐리온에게 들은 정보를 되짚었다. 지금 중국이 어떤 상황인지.

장웨이 주석은 실각 위기에 놓여있다.

바로 윌리엄과 리 가문의 공격 때문에 말이다.

듣기로는 오늘내일하고 있다던데, 장웨이가 이 상황에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잘하면 이 상황을 이용해먹을 수 있겠네.’

장웨이 주석.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사이였지만, 원래 적이라도 이득을 위해서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이 바닥 아니겠는가?

내 입에 미소가 짙어졌다.

*

나는 북한이 자멸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김정안의 집권체제에 흠집을 냈다.

김정안의 북한은 지금 툭 건드리면 터지는 폭탄과도 같은 상태이다.

그런데 여기에 중국이 들어오고 미국마저 개입한다면?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극도로 높아진다.

따라서 최고의 방법은 중공군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체제를 유지하지 못한 북한은 알아서 자멸할 것이고, 한국은 그런 북한을 줍줍하면 된다.

김정안이 중국 쪽에 도움을 요청하며 그걸 막을 가능성이 희박했는데, 장웨이 주석의 전화 한 통으로 길이 열렸다.

나는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친근하게 통화할 사이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 섭섭하게 왜 이러는가. 내가 직접 사과도 했거늘.

“아, 그 유체이탈 화법 말하는 건가요? 그건 좀 인상 깊었네요.”

장웨이 주석은 속이 뒤집어졌다. 자존심을 굽히고 중국이 처음으로 사과를 했는데 그걸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하하다니!

그는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며 말했다.

- 내 진심이 담겨있었네. 그리고 자네에게 거액의 배상금도 내주지 않았는가.

장웨이 주석이 준 배상금이 300억 달러이다. 보통 이 정도로 큰 배상금은 몇 년에 걸쳐서 내지만, 나는 그냥 일시금으로 다 받아냈다.

사과문은 몰라도 배상금만큼은 요긴하게 썼다. 300억 달러라는 배상금 덕분에 수출이 막혀 망하기 직전이었던 많은 회사를 구제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치고. 어쩐 일로 저를 보자고 했습니까?”

- 크흠. 자네도 본국의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거라 믿네.

“리펑 총리한테 깨지고 있는 거요?”

- 깨지는 것까지는 아니고.

“어? 제가 듣기로는 실각 직전이라던데.”

장웨이 주석은 그것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리 가문만으로는 자신에게 상대가 안 된다. 정권을 얻고 나서 가장 신경 쓴 일이 바로 권력을 굳히는 일이었다.

지난 반년 동안 리 가문이 많이 치고 올라왔기는 했지만, 당장 자신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 윌리엄 미네르바라는 놈이 개입한 이후 판도가 달라졌네.

“그렇군요.”

내 담담한 대답에 장웨이 주석이 물었다.

- 자네가 알고있는 사람인가?

“모르지는 않죠.”

세상에서 윌리엄의 정체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바로 나다. 그리고 윌리엄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바로 나다.

내 말투에 장웨이 주석은 적어도 좋지 않은 사이라는 걸 짐작했나 보다. 그는 다소 자신감을 얻은 어투로 말했다.

- 리 가문과 윌리엄 미네르바는 중공군을 북한에 투입할 계획이야. 그리고 자네는 그걸 원하지 않겠지?

- 하지만 자네가 나를 도와준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중공군이 투입되지 못하도록 막아보겠네.

장웨이 주석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조건을 말했다.

- 대신 리 가문을 내 앞에서 치워주게. 자네한테 어려운 일은 아니잖나?

“그건 그렇지요.”

리 가문은 지금 신문판공실과 중앙선전부를 장악해서 여론을 휘둘렀다. 장웨이는 그걸 막지 못해서 휘둘리는 중이고.

그리고 내가 제일 잘 하는 게 여론전이다. 캐리온을 투입하면 빠르게 정리할 수 있다.

거기에 리 가문이 숨기고 있는 각종 비밀을 알아내서, 장웨이 주석의 정적을 전부 쳐낼 수도 있다.

장웨이가 원한다면 소정의 대가를 받고 중국에 도움이 되는 발언을 해줄 수도 있고 말이다.

이건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리 가문이 윌리엄에게 협력하고 있으니, 리 가문을 쳐낸다면 윌리엄의 세력이 깎여나간다.

윌리엄이 리 가문을 이용해서 나를 공격하려고 했으니, 나도 장웨이 주석을 이용해서 그를 공격하면 된다.

‘어쩌면 이 기회에 윌리엄의 몸통을 완전히 드러내게 할 수 있을지도.’

윌리엄은 지금까지 남의 뒤에 숨어서 계획을 꾸몄다. 하지만 리 가문까지 쳐낸다면 더이상 음지에 숨어서 일을 진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계산이 섰다. 이건 남는 장사이다.

그렇다고 맨입으로 하기는 좀 그렇다.

“대신 각 부서의 내부망을 저한테 완전히 열어주시죠.”

- 뭐? 우리가 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내가 뭘 믿고 자네에게 열어줘야 하나. 심지어 자네는 국가안전부 기밀을 빼돌려서 다른 나라에 팔았었지.

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봐요. 어차피 신문판공실과 중앙선전부를 장악하려면 그쪽 인트라넷에 접속해야 합니다.”

- 그, 그런가?

“해킹하면 시간도 잡아먹고 귀찮으니까 그냥 서로 편하게 가지요?”

장웨이 주석은 할 말을 잃었다.

그날 중국 내부망의 뒷문이 살짝 열렸다.

그리고 캐리온은 그 틈을 타 중국의 내부망을 완전하게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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