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63화 (163/183)

옆동네 미친놈 (4)

특급 게스트를 모시는 방송.

나는 결국 방송을 시작하고야 말았다. 내가 말한 특급 게스트의 정체를 알게 된 한서진은 옆에서 계속 ‘미쳤어, 미쳤다고!’를 중얼거렸다.

나는 편안한 표정으로 그녀를 다독였다.

“걱정 말아요. 저기 위에 있는 사람들한테는 내가 다 말해놨거든요.”

저기 위에 있는 사람? 한서진의 머릿속에서 여러 후보가 떠올랐다. 저기 위에 있으면서, 특급 게스트에 대해서 알만한 사람.

“설마 대통령이 이걸 허락했다고요?”

“어···. 대통령이요?”

내가 말한 위에 있는 사람들은 미국과 유럽의 정계였다. 케네디와 발렌베리 가문을 비롯한 가문연합에서 이번 사건을 문제가 없도록 막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차민태 대통령은···. 사실 생각도 못 했다.

“당연히 대통령도 좋아할 겁니다.”

그러고 보니 특급 게스트를 모시고 방송을 한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도 말해줘야 하는 건가?

내가 잠깐 고민하자 한서진은 굉장히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따가운 눈초리에 나는 말을 돌렸다.

“에,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가 잘 있는지 확인해볼까?”

“수상한데.”

“자자, 다들 일 합시다. 일.”

김정안은 관저에 CCTV를 덕지덕지 깔아놨고, 위성을 통해 북한 네트워크를 털어버린 캐리온이 CCTV 회로에 접근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내가 CCTV 화면을 띄우자 한서진도 궁금했는지 어느새 곁에 와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녀가 감탄했다.

“와···. 엄청 잘 먹고 다니네요.”

김정안은 본인의 화려한 저택 안에서 옆에 여자를 끼고 음주를 즐기고 있었다.

반쯤 벌거벗은 여자들이 양옆에서 그에게 아양을 떨었고, 홀을 가로질러 쫙 펼쳐진 식탁에는 온갖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 포비드 사태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새끼는 해당 사항이 없나 본데요?”

저 남산만큼 부른 배를 보니 괘씸해졌다. 배가 불렀으니까 겁도 없이 내 공장을 폭파하려는 계획도 세웠던 거겠지?

나는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럼 북한 주민들도 경애하는 위원장 동지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서진이 한숨을 쉬었다.

“···아 모르겠다. 그래도 재미는 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북한의 김정안 위원장이 게스트로 나오는 사상 초유의 방송이 시작됐다.

*

저녁 8시. 북한 사람들은 고된 하루를 끝마치고 TV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조선중앙TV 뉴스에는 오랜만에 류정희 아나운서가 나오고 있었다.

류정희 아나운서는 80살이 넘은 고령에도 아나운서를 맡고 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평소에는 그녀의 후임인 젊은 아나운서가 나오지만, 중요한 보도를 할 때는 류정희 아나운서가 직접 나왔다.

오늘도 그랬다. 이건우의 기자회견을 접하고 극대노한 김정안 위원장 동지의 말을 전하기 위해 그녀가 직접 나섰다.

"리건우역도는 우리 공화국을 비난하며, 본인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짖어대고 있다."

다그치는 듯한 어조의 강한 목소리로 웅변을 이어나갈 때였다.

지지지직

순간 화면이 흔들리며 방송이 끊겼다.

“어?”

뉴스를 보며 김정안의 전언을 경청하던 한 가족이 당황했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라 그래?”

“고장이 났나 본데요.”

“가서 한번 쳐봐라.”

기계가 고장 났을 때 몇 대 쥐어박는 것은 남북을 가리지 않는 방법이었다. 아버지의 말에 아들이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지직거리던 화면이 다시 돌아오더니 한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

“??”

조금 전 류정희 아나운서가 애타게 부르짖던 ‘리건우 역도’였다. 이건우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북한 주민 여러분.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네요. 이건우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입을 벌렸다.

“저게 뭐야!”

하지만 이건우는 시청자들의 반응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모양이었다.

“제가 방송에 몇 번 나온 적은 있긴 하지만, 무려 북한 방송에 나오다니. 남한 사람 중에서는 처음 아닙니까? 이거 영광이네요.”

누가 보면 초대받은 줄 알겠다.

황당해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건우는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

“어쨌든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의 앞에 나서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경애하는 위원장 동지가 제 공장에 포탄을 좀 날렸거든요?”

자료화면이 이어졌다. 강원도의 하늘에 화려하게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장면이었다. 목표물인 공장을 향해 쏘아진 포탄은···.

꽈앙 꽈과과광!

···하늘에서 장렬하게 산화했다.

이를 지켜보던 가족은 당황했다.

‘남조선에 대한 공격이 성공한 거 아니였어?’

분명 며칠 전에도 류정희 아나운서가 나와서 분명 남조선 괴뢰에 한 방 시원하게 먹여줬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화면에서 나오는 걸 보니, 수백 발의 포탄이 쏟아졌는데도 통한 건 ‘한 방’도 없었다.

화면 속의 이건우가 말했다.

“보다시피 별 타격은 없지만 누가 제 공장을 공격했다니까 짜증이 나더라고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누가 여러분의 집에 포탄을 갖다 박으면 빡이 치겠습니까, 안 치겠습니까.”

“원래라면 배상금을 받아야겠지만 솔직히 배상금 줄 돈 없잖아요. 북한이 가난한 건,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알고 세계도 아는 사실이니까 특별히 당사자에게 적당히 사과만 받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적당한 사과. 이 정도면 이건우가 그간 했던 짓거리에 비해서는 상당히 온건한 처분이었다.

물론 그 당사자인 김정안 위원장이 그렇게 생각할지는 의문이지만.

이건우는 씩 웃으며 화면을 넘겼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토록 경애하는 위원장 동지를 만나볼까요?”

이건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이 두 개로 분할되면서 한쪽에는 이건우가, 다른 쪽에는 김정안 관저의 CCTV가 올라왔다.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가족들이 외마디를 내질렀다.

“헉!”

“이, 이게 무슨!”

화면 속의 김정안은 반쯤 벗은 채 불뚝한 배를 내놓고 있었다. 그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여자들을 끼고 즐겁다는 듯 연신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앞에는 산해진미가 산처럼 널려있었는데, 대부분 북한 주민들을 듣도 보도 못한 음식들이었다.

TV를 보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그들의 반상을 쳐다보았다.

너무나도 초라했다.

지금은 겨울이라 곡식도 넉넉하지 않은 시기인데다 포비드 사태가 겹치면서 그 식량난이 가중되었다. 오늘도 풀에다가 밥알 몇 개를 풀어서 푹 끓인 죽을 먹었다.

사람인 이상 김정안 위원장에 대한 불만 어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어려서부터 받아왔던 주체사상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항상 공화국이 대단하다고는 하는데, 실상은 매일같이 피죽도 못 먹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렇게 복합적인 마음속에서 김정안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아쉽게도 직접 들리지는 않았고, 대신 친절하게 자막으로 나왔다.

- 하하하, 멍청한 인민들은 모두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컥거리는 뭔가가 생겼다. 그때 분할된 화면 속의 이건우가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이런. 위원장 동지가 너무 신이 났나 보네요. 이러면 우리가 서운한데 말입니다. 보기만 하면 대화가 안 되니까 한번 전화를 걸어볼까요?”

이제 본격적으로 게스트가 등장할 타이밍이 되었다.

*

김정안은 지금 TV에서 자신의 모습이 송출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네트워크를 해킹한 캐리온이 일부러 통신망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김정안에게 연락이 되지 않자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용인들은 보고하기 위해 직접 다시 관저로 돌아와야 했고, 그 시간 동안 김정안의 사생활이 전 국민에게 퍼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우가 김정안에게 연락을 해야하니 캐리온이 통신 채널 하나는 풀어주었다.

별안간 김정안의 방에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김정안이 이 방에 있으면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고서는 전화를 하지 않는데 말이다.

한창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아서 불쾌한 김정안은 보통 일이 아니면 죽여버려야겠다 생각을 하며 손짓했다.

그러자 김정안에게 붙어있던 여자가 조심히 일어나 공손히 전화기를 갖다 바쳤다. 김정안은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가?”

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해맑고 친근한 목소리였다.

“어, 정안아. 잘 지냈어?”

순간 김정안의 사고회로가 정지됐다. 그의 이름을 ‘정안아’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사람은 돌아가신 아버지 말고는 없었다. 그는 바보같이 말을 더듬었다.

“뭐, 뭐라고? 너 누구야?”

“새끼, 당황하기는. 네가 준 선물은 잘 받았다. 어떻게 내 공장에 포탄을 먹일 생각을 다 했냐.”

‘공장에 포탄을 먹여?’

김정안은 생각했다. 최근에 그가 포탄을 보낸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바로 남조선의 리건우. 하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남조선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관저로 전화를 걸 수 있는가.

“너, 너, 뭐하는 놈이야.”

상대가 키득키득 웃었다.

“우리 정안이, 귀엽네. 당황하면 말을 더듬는구나?”

“이 새, 새끼가!”

“이해해. 당황하면 그럴 수 있지. 그냥 티비를 켜는 게 어때? 그러면 이해가 빠를 거 같은데.”

수화기에서 넘어온 친절한 설명에 김정안은 여자에게 시켜 TV를 켜도록 했다. 바로 조선중앙TV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화면에는···.

“으허억!”

배를 내놓은 채 전화기를 들고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분할된 화면에 있는 이건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어때, 이제 좀 상황 파악이 되려나?”

*

나는 텅 빈 화면을 보았다.

아쉽게도 CCTV에는 더이상 김정안의 모습이 잡히지 않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김정안의 성격이라면 TV를 부수거나 CCTV를 부수거나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김정안은 너무 당황한 것인지 그냥 도망치듯 빠져나왔고, 여자들만 남아서 허둥지둥거렸다.

어쨌든 김정안은 사라졌고 나는 다시 분할된 화면을 원래대로 돌린 다음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경애하는 위원장 동지께서 매우 당황하셨나 봅니다. 이렇게 도망칠 줄은 몰랐네요. 뭐, 이해는 합니다. 그도 상황을 파악할 시간은 필요하겠지요.”

“음. 위원장 동지를 위해서 삼십 분 정도 쉬다가 가겠습니다.”

나는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막간의 시간을 위해서 고생하는 국군을 대신해 대북방송(?)을 하기로 했다.

대북방송은 휴전선에서 스피커로 남한 소식을 쏘는 것인데, 20km 반경까지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나는 특별히 북한 전역에 조선중앙TV를 통해서 대북방송을 해보려고 한다.

그때 캐리온이 말했다.

[북한의 조선중앙TV 시청률이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반가운 소식이다. 화면에 항상 나오던 뉴스가 아니라 잘생긴 내 얼굴이 나오니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나 보다.

아마 오늘 조선중앙TV 개국 이래로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찍지 않을까?

내가 또 이렇게 북한의 방송역사에 한 획을 긋고 간다.

어쨌든. 내가 준비한 콘텐츠는 바로···.

“여러분. 아이돌이라고 들어보셨나 모르겠네요.”

아이돌과 함께하는 먹방 콘텐츠였다.

KW 미디어에 ‘세나’라는 아이돌이 있다.

한때 필승 기획 소속의 아이돌이었던 세나. 그녀는 아이돌 그룹의 리더였지만, 당연히 망하고 KW 미디어에서 댄스가수로 재데뷔를 했다.

캐리온의 부캐인 ‘개리’의 프로듀싱을 받아서 작년에 앨범을 냈고, 그게 대히트를 쳐서 지금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세나를 섭외했고, 세나는 흔쾌히 나오기로 했다.

물론 그녀는 이게 대북방송이라는 건 전혀 몰랐다.

스튜디오에서 사인을 보내주자 대기하고 있던 세나가 양손에 포장 음식을 가득 들고 들어왔다.

“와, 세나야. 이게 뭐야?”

“오랜만이에요 사장님! 치킨, 족발, 떡볶이, 김밥 그리고 피자까지 싸 왔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은 누가 보더라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피죽도 못 먹는 북한 주민들이 보면 아마 눈이 돌아가겠지?

역사상 최초로, 북한에서의 먹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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