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59화 (159/183)

편 가르기

이건우의 제안에 라울 발렌베리는 다시 가문연합회의를 소집했다. 물론 모든 가문을 부른 것은 아니었다.

윌리엄의 미네르바 가문과 그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듀퐁 가문은 제외했다.

캐리온이 조사한 결과, 듀퐁 가문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네르바 가문의 사람들이 대역 놀이를 하면서 모든 것을 장악한 상태였다.

그렇게 두 가문을 제외하고 다섯 가문이 발렌베리의 요청에 따라 모였다.

회의장에 들어서던 그들은 자신들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망둥이가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꼴하고는.”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몇몇 가주들은 역정을 내며 눈살을 찌푸렸고, 몇몇 가주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건우가 있었다.

*

나는 가주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줬다.

“요즘 우리 자주 보네요?”

케네디의 가주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인사를 받아줬지만, 나에게 석유와 제약을 털린 아이작은 있는대로 인상을 구겼다. 그는 라울 발렌베리에게 따졌다.

“지금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줘야겠소만. 왜 연합의 일원이 아닌 사람이 여기에 있는 거지요?”

라울은 침착하게 말했다.

“윌리엄 미네르바가 연합의 신뢰를 깨뜨릴 만한 행동을 했고, 이건우는 그 일의 증인으로 왔습니다.”

“증인?”

아이작은 윌리엄이 가문의 정보를 빼내 가려고 했다는 걸 떠올렸다. 이건우가 중간에 조작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위기에 처했을 뻔했다.

윌리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아이작은 다행히 더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고, 다른 가주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나는 일어섰다.

“며칠 전 발렌베리 그룹에서 있었던 ‘쌍둥이 올로프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발렌베리 그룹의 회의실에 올로프 두 명이 나타났고 그 일을 목격한 사람만 수십 명은 되었다.

그룹 차원에서 입을 단속하려고 했지만, 워낙 엽기적인 사건인지라 일이 새어나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언론에서 이 일을 알아챘다.

완전히 똑같은 사람 두 명이 그냥 나타나더라도 화제가 되는 판에, 발렌베리 그룹은 보통 기업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손을 뻗지 않는 곳이 없는 굴지의 기업.

덕분에 이 일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그 일을 안주거리 삼아 떠들어댄 적이 있었다.

젊은 사람이 가주가 되더니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며.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자기네 가문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이제 놈들도 뒤통수를 쎄게 얻어맞을 차례가 왔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말했다.

“다행히 발렌베리 가주님이 현명하게 대처를 해서 진짜를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둘 다 가짜였지만 진실은 올로프와 함께 잿더미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짜가 윌리엄이 키우고 있던 대역이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여기에 갑자기 윌리엄이 끼어든다고?

아이작이 날카롭게 말했다.

“진짜가 버젓이 살아있는 걸 알면서도 윌리엄이 대역을 보냈다고? 너무 멍청하지 않소?”

“윌리엄은 진짜가 살아있는 줄 몰랐습니다. 윌리엄은 직접 올로프를 죽이려 들었고, 올로프는 정말 죽기 직전까지 몰렸었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대역을 썼던 겁니다.”

나는 라울과 말을 맞춰서 진실을 적당히 각색했다.

“하지만 제가 우연히 계획을 알아채고 죽어가는 올로프를 구출했습니다. 덕분에 윌리엄의 계획이 무산되었지요.”

내 이야기를 들은 가주들은 충격에 빠졌다.

윌리엄은 일전에 로스차일드 사업의 지배 구조를 알아내려고 했던 전적이 있다.

그 일도 도를 넘는 것이기는 했지만, 서로 경쟁하는 입장에서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앞서 일과 차원이 달랐다.

만약 올로프가 윌리엄의 계획대로 죽었고, 대역이 버젓이 발렌베리 가문 내에서 활동했다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발렌베리 가문의 사업 하나가 윌리엄에게 종속되는 것이다.

남의 집에 자신의 알을 집어넣는 뻐꾸기와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라울 발렌베리가 말했다.

“문제는 이 일이 저희 가문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라울의 말에서 미묘한 어조를 읽었다.

‘아니라는 겁니다’라니?

마치 이미 일어났다는 것처럼 얘기하지 않는가?

점점 짙어지는 의심과 불안함.

나는 서류를 한 부씩 돌렸다.

“여러분의 짐작이 맞습니다. 문서에는 윌리엄이 지금까지 어떻게 대역을 만들어냈고 각 가문에 침투시켰는지 나와 있습니다.”

"심지어 윌리엄의 계획은 한번 성공을 거둔 적이 있습니다.”

바로 듀퐁 가문이 살아있는 증거이다.

“제가 어째서 듀퐁 가문을 회의에 부르지 않았는지, 그 이유가 지금 보시는 문서에 적혀있습니다."

문서에는 윌리엄이 대역을 만들어냈던 과정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지금 듀퐁 가문의 가주를 대역으로 만든 과정부터, 각 사업을 담당하는 실무진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는 일련의 과정들은 매끄럽고 위험했다.

그들이 정신없이 서류를 다 읽었을 때쯤 깨달았다.

다음 장이 없다는 것을.

윌리엄이 가문에 대역을 써서 침투한 정황은 나와있는데, 정작 그게 누구인지 또 어디에 투입된 것인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다소 얌전해진 아이작이 누그러진 어조로 물었다.

“흠흠, 이게 전부인가?”

“그럴리가요. 설마 제가 이런 얄팍한 정보만 가지고 여러분을 불렀겠습니까.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지요.”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궁금하면 오백 원”

“······.”

*

가문으로 돌아온 아이작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미네르바의 암수가 상당히 깊게 퍼져있었던 탓이었다. 그들은 즉시 후계자들을 불러모았다.

에드먼드와 벨라를 제외한 모든 네 명의 후계자가 모였다. 평소에 에드먼드와 사이가 좋지 않던 콜린이 말했다.

“그 재수없는 얼굴을 안 봐도 돼서 좋네.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장남, 리처드가 말했다.

“너와 에디가 싸우지 않으니 덕분에 조용하긴 하구나.”

콜린은 일찌감치 형의 아래로 들어갔다. 최고가 되지 못하겠다면, 그 옆에서 이인자라도 되자는 마음이었다. 그는 형에게 살갑게 말을 붙였다.

“요즘 아버지가 저희를 부르는 일이 잦으신 것 같습니다.”

“음.”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그는 요즘 자금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느낄 정도이면,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는 아이작 또한 알고 있겠지.

그 순간 아이작이 문을 열고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다. 후계자들은 일어나서 예를 갖추었고, 아이작은 서론도 없이 바로 말했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구나. 대비해야겠다.”

다들 흠칫 놀라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아이작이 ‘모르겠다’라는 불확정적인 표현을 쓰는 일이 드물었을뿐더러, 그 일이 전쟁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아이작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항상 세계정세는 그를 비롯한 가문연합에서 주도해왔다. 하지만 이건우와 윌리엄 사이의 갈등은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곧이어 그는 콜린에게 명단을 건네주었다.

“이 사람들을 모두 쳐내거라.”

콜린이 맡은 사업 부문은 군수업. 특히 그는 러시아의 신흥 재벌들과 연관이 깊었다.

콜린은 명단을 훑어보더니 살짝 손을 떨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은 전부 회사에서 중역을 맡고 있거나 정·재계 쪽으로 인맥이 두터운 로비스트들이었다.

갑자기 이들을 쳐내라니!

콜린은 항변했다.

“방금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쳐내면 산업이 위축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코앞에 위기가 닥쳤는데 내부에 적을 품고 임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적이라니요?”

“그들 모두 미네르바 가문의 사람이다.”

미네르바 가문.

그 이름이 나오자 다들 조용해졌다.

벨라가 윌리엄에게 된통 당한 이후, 아이작은 아이들을 불러서 단단히 주의를 시켰기에 미네르바 가문이 얼마나 위험한 놈들인지 느끼고 있었다.

아이작은 다시 한번 경고했다.

“벨라 꼴이 나고 싶지 않으면 빨리 정리해야 할 거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에드먼드는 어디에 있는게냐?”

갑자기 직접 손으로 쳐낸 에드먼드를 찾자, 그를 늘 의식하고 있던 리처드가 눈썹을 추켜세웠다. 형의 심정을 알아챈 콜린이 부루퉁하게 물었다.

“에드먼드는 왜요?”

“따로 상의할 일이 있다. 너는 알 것 없다.”

평소와 같은 차갑고 매몰찬 말.

하지만 콜린이 아니라 리처드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제와서 갑자기 에드먼드는 왜 찾는 걸까?

*

“···이건우.”

윌리엄은 이를 갈았다.

각 가문에 투입한 요원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며, 가문연합이 모두 적으로 돌아섰다.

수십 년간 들인 노력과 천문학적인 돈이 모두 헛된 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듀퐁 가문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썩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듀퐁 가문은 문화예술계를 장악하고 있다.

듀퐁은 에르메스, 샤넬과 더불어 프랑스의 하이엔드 명품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이다. 태생부터 귀족적이며 의류를 만드는 기술과 헤리티지는 독보적이다.

또한 이를 이용해 수많은 셀럽을 거느리고 있으며, 언론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소프트파워만큼은 남다른 면모가 있지만 그게 당장 큰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이건우는 캐리온을 이용해서 자유자재로 여론을 다룬다. 압도적인 성능에서 나오는 물량은 듀퐁 가문의 여론 조작 능력을 웃돈다.

하필이면 상성이 전혀 맞지 않은 패만 남아버린 것이다.

윌리엄은 고뇌에 빠졌다.

"놈을 당장 잡아내기에는 세력이 충분하지 않군."

적어도 한 가문. 한 가문만 더 윌리엄의 편에 서준다면 충분히 이건우를 도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리 가문의 당주가 그에게 접근한 것은.

“우리와 손을 잡지 않겠소?”

*

나는 가주들에게서 돈을 두둑하게 뜯어냈다. 다들 한가락 하는 집안이라 이런 데 돈을 아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보를 확인하는 가주들의 이마에는 실시간으로 핏줄이 돋아나고 있었다. 이제 윌리엄과 가주들의 사이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흐뭇하게 웃음 지었다.

남의 정보를 갖다 팔아서 돈도 벌고, 윌리엄과 각 가문 사이도 확실하게 갈라놓았다. 이제 가문연합은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가문들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먼저 발렌베리 가문은 확실하게 내 편이다.

케네디 가문 또한 로날드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한, 내 편을 들어줄 것이다.

다음으로 록펠러 가문과 로스차일드 가문은 중립적이다.

나에게 완전히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윌리엄에게 붙을 가능성은 없는 곳들.

록펠러 가문의 기반은 석유이다.

내 덕분에 파이가 반토막나기는 했지만, 에드먼드가 그랬듯 핵융합 에너지 부문에서 나와 협력할 여지가 남아있다.

조건만 잘 맞는다면 언제든지 내 쪽으로 붙을 수 있는 놈이었다.

로스차일드 가문 또한 나와 예전에 대립한 적이 있지만, 에드먼드가 나에게 협력하고 있고 클로이도 확실한 내 편이 이 되었다.

또한 이번에 윌리엄에게서 빼낸 자료를 주면서 아이작에게 큰 도움을 줬다. 아이작은 이성적인 사람인만큼, 아마 전처럼 무조건적인 적대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윌리엄에게 남아있는 건 듀퐁 가문밖에 없다. 그런 줄 알았는데.

[윌리엄이 리 가문의 가주와 만났습니다.]

“리 가문과?”

중국의 리 가문.

유럽과 미국 기반인 다른 가문과 달리 유일하게 동양, 그것도 홍콩을 기반으로 한다. 그만큼 다른 가문들에 비해서 윌리엄의 영향력이 덜 미쳤다.

또한 리 가문은 나를 향한 감정이 좋지 않다.

중국에 기반한 가문인 만큼, 지난번 희토류 전쟁 때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윌리엄의 손때가 덜 묻었으며 나를 향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리 가문이 공조할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있다.

나에게 반감을 품은 두 가문만이 만난다?

당연히 좋은 얘기가 나올 리가 없다.

특히 윌리엄은 KW 본사를 당장 폭파하러 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지.

“캐리온. 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호신용 사이버 인섹트를 붙이고, 각국에 있는 공장의 보안을 강화해.”

[알겠습니다]

갈라선 가문연합과 깊어져 가는 갈등.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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