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파티 (2)
새로운 올로프의 등장.
사람들의 눈빛이 갈팡질팡했다.
특히 올로프 파벌 쪽 사람들은 혼돈 그 자체였다.
다만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라울은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올로프의 파벌 때문에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속이 다 시원했다.
역시, 이건우의 컨설팅은 완벽했다.
올로프와 똑같은 로봇이라니!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로봇은 올로프 사소한 습관까지 감쪽같이 따라했다.
완전자율주행을 만들 때 썼던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올로프의 행동을 분석하고 학습했다고 하는데, 조카인 라울도 그 차이를 전혀 알아낼 수 없었다.
새삼 그의 능력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궁금했다.
이건우는 그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도 않는데,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기술을 볼 때마다 저게 바로 천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두가 당황한 가운데, 캐리온은 대역에게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손가락질을 했다.
“당신 누구야! 뭔데 감히 내 흉내를 내고있는거야?”
대역은 입을 뻐끔거렸다. 그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남자는 진짜 올로프인 건가? 아니면 자신처럼 가짜인 건가?
헷갈렸다.
분명 자신의 손으로 머리와 가슴에 총알을 한 방씩 먹여주었다. 죽은 것을 확인하고 소각까지 끝난 사람이 돌아왔다고?
진짜가 돌아온 것도 문제이긴 한데, 만약 가짜라면 도대체 누가 그를 보낸 것일까?
수많은 생각이 뒤죽박죽 맴돌며 혼란을 일으켰다. 그사이 캐리온은 그를 더 몰아붙였다.
“경비! 당장 이 사람을 끌어내!”
눈을 굴리고만 있던 경비원은 캐리온의 명령에 급히 대역에게 다가갔다. 이대로 있다간 쫓겨날 판이었던지라 대역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멍청한 놈들. 이제는 누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는 거야? 저쪽이 가짜란 말이다.”
“내가 올로프야!”
“내가 올로프라고! 넌 뭐야?”
“이 가짜 새끼가. 증명해봐!”
“뭐? 이 자식이 누구보고 가짜라는 거야!”
두 명의 올로프는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싸움이 절정에 치달을 무렵, 캐리온은 콧김을 씩씩 뿜어내며 한 사람을 지목했다.
“이보시오. 월터 씨. ”
“예?”
“자네 지난주에 나하고 웨딩턴에서 저녁을 같이하지 않았는가. 그때 자네가 샤토 무통을 가지고 와서 함께 마셨지.”
“아, 그렇지요. 제가 보기엔 아무래도 이 분이 진짜인 것 같습니다.”
그러자 대역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다른 사람을 지목하며 가지고 있는 에피소드를 늘어놓았다.
불쌍한 경비원들은 두 가짜 사이에 낀 채 우왕좌왕했고, 심지어 두 올로프가 하는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 다른 사람들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라울은 필사적인 웃참을 시도했다.
‘정말 감쪽같군.’
올로프는 흥분할 때 콧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말끝에 악센트가 들어가며 과장된 제스처를 사용하기도 했다.
캐리온은 그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따라하고 있었다.
라울도 모르고 봤으면 정말 올로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라울은 억지로 근엄한 표정을 만든 다음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 이제 슬슬 이 코미디를 끝낼 때가 왔다.
“조용히 하십시오.”
가주의 말에 모두가 라울을 주목했다. 그가 말했다.
“누가 진짜인지 알아내는 것은 간단합니다."
라울은 본인의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 그걸 흔들어 보였다.
"여기 제 머리카락이 있습니다. 이걸로 유전자 검사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역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캐리온은 당당하게 유전자 검사에 응했고, 대역은 우물쭈물하다가 유전자 검사에 응하는 척하면서 도망가려고 했다.
그러다 경비원에게 들킨 그는 라울의 손짓에 따라 어디론가 질질 끌려 가버렸고, 캐리온은 완벽하게 올로프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은 언론에도 다뤄졌다.
<알고보니 가짜 올로프?>
<발렌베리 가문에 올로프가 두 명이 나타났다!>
<‘발렌베리 그룹 회의실’ 올로프 대역 등장에 발칵>
윌리엄은 소리를 지르며 신문을 내던졌다.
“젠장 이건우!!!!!!!!”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이번에도 분명 이건우의 짓이 뻔했다.
그놈 때문에 도대체 되는 게 없다.
윌리엄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사람의 몸속에 있는 유전자를 바꿀 수는 없다.
아니, 원래 계획대로라면 유전자 검사를 준비할 필요조차 없었다.
진짜 올로프는 죽어버렸고, 윌리엄이 준비한 대역은 아무런 의심 없이 올로프 역할을 대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또 다른 가짜가 나타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도대체 어디서 가짜를 구해온 거지?”
윌리엄은 이건우가 준비한 놈이 가짜라고 확신했다.
진짜 올로프가 죽은 것까지 확실하게 확인했고, 화장차에 다 태워버려서 재로 남은 것까지도 확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야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일이다. 십수 년에 걸쳐 성형수술을 시키고, 목소리와 행동을 연습시켜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그 대역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건우는 어디서 올로프와 똑같은 사람을 뚝딱 만든 걸까?
“미치겠군.”
이건우가 준비한 가짜 올로프는 진짜 행세를 하면서 우주항공산업을 모조리 장악할 것이다. 그리고 발렌베리 가문은 라울에게 완전히 넘어가 버리겠지.
몇십 년에 거쳐 발렌베리 가문을 장악하려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원래는 가문연합의 손을 빌려서 이건우를 죽이려고 했지만, 이건우가 연합을 파투내는 바람에 그 일도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직접 움직이는 수밖에.”
그는 비서를 불렀다.
“배우를 모두 불러라.”
비서는 깜짝 놀라며 윌리엄을 쳐다봤다. 배우를 소집한다는 말은 윌리엄이 양지로 나아가겠다는 의미였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음지에서 보낸 미네르바 가문이, 고작 이건우 하나 때문에 드러나게 생겼다.
비서는 되묻지 않고 고개를 숙이며 나갔다. 윌리엄은 이건우에 대한 자료가 덕지덕지 붙은 보드판을 손으로 쓸었다.
제일 그룹, 사랑하는 할아버지, 각국에 퍼져있는 공장들, KW의 직원들과 건물들, 심지어 그가 젊었을 때 함께 즐겼던 여자들까지.
이건우가 살아온 모든 행적이 거기 정리되어 있었다.
“가진 게 많으면 숨길 줄도 알았어야지.”
이건우가 가진 모든 것.
이건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마지막으로 이건우 본인까지.
모든 것을 처참하게 박살 낼 것이다.
자신을 양지로 끌어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윌리엄의 손끝이 한 곳에서 멈췄다.
*
캐리온은 올로프 행세를 하면서 투덜거렸다.
[저는 이런 아저씨 역할을 원한 건 아닙니다.]
“곧 있으면 전권을 라울에게 넘겨주고 물러날 거잖아. 나중에 그럼 다른 몸으로 아이돌이라도 해보던가.”
[그럴까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캐리온이 너무 진지하게 반응했다.
머머리 아저씨가 눈을 빛내면서 아이돌을 할까? 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은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캐리온의 활약 덕분에 발렌베리 가문은 드디어 안정을 되찾았다. 캐리온-올로프는 라울에게 굉장히 협조적이었고, 곧 있으면 우주항공사업 부문을 완전히 정리한 후 라울에게 모두 넘겨주고 은퇴할 계획이다.
그렇게 나와 캐리온이 올로프의 사무실에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라울이 찾아왔다.
라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원수도 갚고 회사도 안정화할 수 있었어요.”
“뭐, 공짜도 아닌데요. 설마···. 입 싹 닫는 건 아니죠?”
“하하, 물론입니다. 제가 가문의 온 힘을 쏟아서라도 당신을 돕겠습니다.”
든든하다. 내가 라울의 삼촌인 올로프를 쫓아내는 대가로 내건 조건은 세 가지이다.
첫째, 가문연합에 남아 윌리엄과 대립각을 세울 것.
처음에 내 말을 듣고 라울은 의아해했다.
“가문연합에 남으라고요?”
“원래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한 법입니다. 당신이 빠져나오면 남은 사람들끼리 똘똘 뭉칠 겁니다. 나는 당신이 거기에 남아 가문연합을 분열시켜줬으면 합니다.”
라울은 썩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수긍했다.
둘째, ‘스페이스 온’과 ‘미니온 군단 프로젝트’에 협력할 것.
스페이스 온은 내가 예전부터 준비한 민간우주기업 프로젝트이다. 이번에 발렌베리의 도움을 받아서 위성을 쏘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미니온 군단 프로젝트는 이번에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바로 아프리카 대륙을 개발하기 위해서.
나에게는 아프리카 공장이 있다. 예전에 산유국들에게서 뺏어낸 곳이다.
아프리카 대륙 개발권을 받아오는 건 좋은데, 문제가 있었다.
나는 첨단산업을 지향하는데 아프리카는 첨단산업이 발전하기에 어려운 구조이다. 인프라도 부족하고 굳이 아프리카까지 기술자들이 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캐리온 프로젝트’가 완성됐다.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과정을 체계화한 것이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휴머노이드를 양산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휴머노이드를 이용해서 공장을 돌릴 수 있다면?
캐리온과 같은 스펙은 바라지도 않는다. 온몸에 양자 센서와 미스리늄을 때려박는 건 돈도 많이 들 뿐더러, 시간도 많이 든다.
하지만 그것보다 다운그레이드된 버전인 ‘미니온’들을 양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발렌베리 가문의 자랑인 정밀공업은 미니온의 양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만든 미니온을 아프리카에 데려가서 각종 첨단장비를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최첨단 드론부터 시작해서 차세대 무기들을 양산할 계획이다.
라울은 대략적인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가문이 그런 쪽으로 상당히 발달해있지요. 특히 로봇과 정밀공정은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그는 캐리온을 힐긋 보고서는 말했다.
“저 정도 기술력이면 어디에 뒤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건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이미 너무 벌려놓은 일이 많아서 포화상태이다. 지금 내 여력의 대부분은 핵융합 발전소와 나노온 공장 설립에 들어가있다. 여기서 새로 회사를 세우고 인력을 뽑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차라리 이미 만들어진 라울에게 하청을 주는 게 낫다.
라울은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청을 받는 게 얼마 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좋습니다. 이참에 올로프가 이 일을 맡아서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 말에 캐리온이 화들짝 놀랐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 일을 하고 아이돌을···]
나는 그의 말을 잘라먹었다.
“저야 좋지만. 가문의 사업부문을 저한테 맡겨도 괜찮나요?”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라울은 나를 향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었다.
아이돌 데뷔의 꿈이 미뤄진 캐리온이 투덜거렸지만 나는 쌈박하게 무시했다.
이제 마지막 안건이 남았다.
바로 올로프가 관리하던 윌리엄의 위성망을 나에게 넘길 것.
역시나 윌리엄은 올로프를 통해서 위성망을 관리하고 있었다. 달걀을 여러 곳에 나누어 담는 신중한 성격답게 모든 정보를 올로프의 위성으로만 관리하던 건 아니었지만, 윌리엄이 가지고 있는 유의미한 자료들을 얻어냈다.
이 일은 이미 진행 중이었는데, 캐리온이 지금 자료를 분석하면서 ‘미네르바 가문’의 실체를 탈탈탈 털어내고 있었다.
벌써 창고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서류가 쌓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자료도 있었다.
내가 파일 하나를 흔들었다.
“여기에 발렌베리 가문에 뿌리내린 윌리엄의 세작이 있는데 보실래요?”
라울은 눈을 빛내며 집어들었다.
“호오. 이런 정보를 얻게 된다니. 당신과 손을 잡은 보람이 있군요.”
라울은 정신없이 자료를 탐독했고,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은근슬쩍 물었다.
“다른 가주들도 이 정보를 탐낼까요?”
“물론이지요. 그런데 왜 그럽니까?”
나는 씩 웃었다.
“좋은 건 같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소정의 정보료를 받고 다른 가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가문연합, 다시 한번 열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