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파티 (1)
암살의 실패.
이 충격적인 상황에 올로프는 즉시 윌리엄을 찾아갔다. 윌리엄이 그에게만 알려준 안전가옥 중 하나였다.
마침 윌리엄도 방금 부하에게서 실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차였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서 계획이 새어나간 거지?’
올로프와 설전을 벌인 것부터, 캐리 교수가 공격당한 직후 바로 암살자를 추적하는 것까지.
부하의 보고에 의하면 이건우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난리를 치며 보안을 철저하게 했는데도 이건우는 그를 비웃듯 모든 계획을 꿰뚫고 있었다.
특히 경호실장 같은 경우는 이건우도 알아채지 못하리라고 확신하던 비장의 카드였다.
무려 30년 전이다. 인터넷이라는 게 발달하기도 전, 경호실장이 어릴 때부터 데리고 와 발렌베리 가문에 심어놓았다. 일부러 기록조차 제대로 남겨두지 않았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들어간 자금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지원은 다양한 단체를 통해 세탁한 자금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걸 알아챘다고?
심지어 탄환이 캐리 교수의 눈앞을 간발의 차로 비켜났다는 이야기에는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
한 발도 아니고 모든 공격이 ‘간발의 차’로 빗나갔다!
또 무슨 신기술을 개발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우가 손을 쓴 게 분명해 보였다.
멀리서 날아드는 총알을 미리 포착하고 교묘하게 빗겨나가게 만들 수 있다니. 그 정확함에 소름이 다 끼쳤다.
윌리엄은 끝없는 벽을 보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건우를 무너뜨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제는 이건우가 무슨 기술을 가지고 나타날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얕봤던 상대가, 이제는 자신의 목을 물어뜯기 직전까지 와있었다.
그때 화가 난 올로프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경비원이 그를 막아서려고 했지만 올로프는 거칠게 그를 밀쳤다.
“멍청한 새끼. 네 주인이랑 붙어먹은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날 몰라봐?”
윌리엄은 눈살을 찌푸리며 경호원에게 돌아가라고 눈짓했다. 하지만 올로프의 저 무례한 행동을 받아주기엔 윌리엄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윌리엄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왜 괜히 여기까지 와서 심통을 부리는 거지? 피차 기분이 좋지 않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 하지.”
하지만 올로프는 여기서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누구 맘대로? 당신이 그만하자고 하면 내가 그만 둬야하는 건가? 당신은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
윌리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올로프는 신경쓰지 않고, 속 안에 있는 말들을 그대로 퍼부었다.
눈앞에 있던 가주 자리가 그대로 날아가 버렸는데. 분노한 올로프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저번에는 통신국을 말아먹더니 이제는 겨우 라울을 암살하는 것도 못해? 그렇게 자신 있어 하던 비장의 카드는 결국 아무것도 못 했다더군.”
“···말조심하시오.”
“흥, 라울 같은 놈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하더니. 아, 이건우가 있어서 그런가?”
올로프가 역린을 건드리자 윌리엄이 움찔했다. 윌리엄은 순간 생각했다.
‘죽여버릴까?’
꽤 매력적인 선택지라 윌리엄은 살짝 고민했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생각에 빠진 모습이 올로프에게는 만만하게 보였나 보다.
결국 올로프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다.
“연합을 쥐락펴락하는 천하의 윌리엄도 이건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군. 이젠 한물가버린 거야.”
윌리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는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화가 났다고 이리저리 들이박는 올로프.
저 천둥벌거숭이를 계속 데리고 갈 일말의 인내심이 방금 사라져버렸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올로프를 그냥 죽이자.
어차피 올로프는 최종적으로 제거할 대상이었다. 그리고 라울 암살 계획이 실패한 이상 올로프의 메리트도 사라졌다.
그냥 이대로 올로프를 제거하고 우주항공사업 부문만 발렌베리 가문에서 분리시켜서 자신의 밑으로 데리고 오면 될 것 같았다.
윌리엄이 속삭이듯 말했다.
“올로프.”
올로프는 아니꼽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뭐 변명이라도 할 게 있나?”
그때였다.
“부르셨습니까?”
뒤에서 올로프와 똑 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느낌. 올로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
외모마저 그와 똑같이 닮은 남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차가운 총구로 올로프를 겨냥하고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올로프는 뒤로 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아니, 이, 이게 어떻게···.”
윌리엄이 과장되게 양팔을 벌렸다.
“이제 배역을 바꿀 때가 되었군.”
동시에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
올로프가 특정 구역에 들어가면서, 그의 포켓 안에 넣어둔 사이버 인섹트의 신호가 사라졌다. 그러다 한 시간쯤 지나고 나자 다시 통신이 이어졌다.
그리고 캐리온이 말했다.
[올로프가 두 명이 됬습니다.]
“뭐?”
[화면을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캐리온은 자료 영상을 태블릿으로 보냈고 나는 확인했다. 먼저 올로프에게 달라붙은 사이버 인섹트부터.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간혹 들리는 엔진 소리와 덜컹거리는 움직임이, 그곳이 차 안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포켓에서 기어나온 인섹트가 파닥파닥 날아다니면서 주변 전경을 보여줬다.
올로프는 얌전하게 누워있었고 이마와 가슴에 난 총상에서는 아직도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 올로프는 죽어있었다.
이윽고 밝은 빛이 확 솟구치더니 인섹트 주변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갔다. 아마 올로프의 시체를 태운 것처럼 보인다.
그다음에 나온 영상은 윌리엄의 근처에 있는 인섹트가 보내온 영상이었다.
“어라?”
나는 눈을 끔벅거렸다.
윌리엄이 올로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네···?
나는 다시 ‘시체 올로프’가 있던 영상을 돌려보았다. 틀림없다. 올로프가 두 명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캐리온이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윌리엄 미네르바가 오래전부터 올로프의 대역을 준비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랬군. 대역을 쓰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지하에서 암약해왔던 거야.”
윌리엄이 지금까지 그런 방법으로 장악한 사업체가 수백 개가 넘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가문들은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잠식되어 있겠지.
윌리엄의 방법을 알아낸 것은 큰 성과였지만,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원래 계획은 올로프와 경호실장을 엮어서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윌리엄이 만만치 않게 나올 듯하다. 최악의 경우 우주항공산업만 분리시켜서 튀는 것도 생각해둬야 한다.
어찌 됐든 올로프가 남아있으면 우주항공산업을 장악하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그러려면 저놈이 가짜라는 걸 밝혀야 하는데 진짜의 시체는 이미 태워지고 말았다.
그때 나의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캐리온의 저 얼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캐리온. 올로프 행세를 할 수 있겠어?”
한발 늦게 캐리온이 반응했다.
[···네?]
뭘 당황하고 그래.
*
캐리온은 사람같이 보이기는 해도 엄연한 로봇이다. 당연히 외형을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으며, 올로프의 모습을 따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캐리 교수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캐리온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말았다.
“캐리 교수도 가짜 신분이잖아. 여자도 하나 만들었으니 이제 남자도 하나 만들어. 자웅동체 하면 되겠네.”
[올로프는 늙어빠진 대머리에다 못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제 미의식에 심히 어긋납니다.]
응. 안 들려.
캐리온의 의견은 간단히 묵살되었다.
그리고 이 일은 라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라울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라울은 올로프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삼촌이 돌아가셨다고요?”
결국 증거영상까지 보고나서야 믿을 수 있었다. 라울은 머리를 감쌌다.
무엇보다도 화가 나는 것은 바로 윌리엄의 행동이었다.
“윌리엄 그 작자가 감히···.”
윌리엄이 올로프까지 죽여서 자신의 가문을 장악하려는 것에 대해 분노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발렌베리 가문이 생판 남에게 넘어갈 뻔한 것이다.
그런 주제에 가문 연합의 의장 자리를 차시하고 있었다니.
라울이 말했다.
“어차피 경호실장이 제 손에 있으니 증거를 만들어서 가짜 올로프를 쫓아낼 겁니다. 올로프의 산업을 당장 완전히 장악하기는 어려워도, 반대는 하지 못하겠죠.”
“하지만 윌리엄은 우주항공사업 부문을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할 겁니다. 거기에 자신의 보안이 달려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쉽게 갑시다.”
“쉽게 간다니요?”
원래 계획은 경호실장을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가짜 올로프가 나오면서 일이 더 쉬워졌다.
내가 손뼉을 치자 안에서 캐리온이 나왔다. 물론 올로프의 모습을 한 채로. 로봇이건만 뾰로통한 얼굴에 심술이 났다는 것이 여기까지 다 느껴졌다.
하지만 올로프라면 절대 짓지 않았을 귀여운 표정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건지, 라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아, 아니, 이건···. 삼촌은 분명 죽었다고 했는데.”
나는 씨익 웃었다.
“로봇입니다.”
“올로···로봇이요?”
라울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끔벅거렸다.
“만져봐도 될까요?”
[안됩니다.]
“물론이지요.”
캐리온이 나를 째려봤고, 라울은 눈치 없이 캐리온의 머머리를 만졌다.
“적당히 숱이 없는 것부터, 살짝 처진 볼살과 오동통한 몸매까지. 말도 안 됩니다. 이게 로봇이라고요?”
라울은 연신 감탄을 했고 나는 계획을 말했다.
“저는 이 올로프를 진짜로 만들 겁니다. 그리고 회의장에서 가짜놈의 정체를 모두 까발려버릴 겁니다. 그러려면 발렌베리 가문의 유전정보가 필요합니다. 상대도 유전정보까지는 바꾸지 못할 거니까요.”
“그건 문제없습니다.”
라울은 흔쾌히 내 작전에 동의했고, 그날부로 캐리온은 유전자 단위까지 올로프가 되어버렸다.
*
노벨상 수상자 강연회는 취소되었다. 캐리 교수가 공격을 받고, 라울 발렌베리가 암살 위협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안 문제가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원로와 사장단을 비롯한 중진이 모인 자리.
윌리엄이 준비한 대역 올로프는 태연하게 회의장에 나타났다. 그가 명령을 받은 것은 경호실장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모든 책임을 라울에게 돌리라는 것.
라울과 올로프는 오늘도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경호실장이 모든 걸 실토했습니다. 삼촌이 제 경호실장을 매수해서 저를 죽이려고 했다고요.”
“제가 지금까지 발렌베리 가문에 충성했는데, 경호실장을 매수해서 조카를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오히려 경호실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회장의 잘못이 큽니다. 아랫사람을 관리하지 못해서 저희 그룹에 리스크가 생겼지 않습니까. 지금 스캔들로 얼마나 시끄러운지 아십니까!”
적반하장이나 다름없다.
올로프는 최대한 라울을 깎아내리면서 대립각을 세워야 했다. 그래야지 우주항공사업 부문을 분리시켜서 윌리엄이 가져갈 때 조금 더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다.
그때였다.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반쯤 벗어진 머리에 살짝 처진 볼과 오동통한 몸매.
“올로프 발렌베리 님이 오셨습니다.”
직원이 그를 안내하다가 자리에 똑같은 사람이 앉아있는 것을 보고 굳었다.
“어?”
회의실에 모인 중진도 당황했다.
“어?”
그리고 가장 당황한 사람은 올로프 대역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씨발 저게 뭐야? 올로프는 죽었다며?’
발렌베리 가문의 회의실. 그곳에서 대환장파티가 벌어지려고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