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56화 (156/183)

암살 시도 (3)

윌리엄의 시다?

올로프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언제까지나 둘은 동등한 관계에서 거래하는 사이였을 뿐.

그런데 뭐? 시다?

이건우의 말이 올로프의 강한 자존심을 건드렸다. 욱한 마음에 그는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동양에서 작게 성공했다고 너무 건방지군. 발렌베리 가문이 우습게 보이는 건가?"

"이런. 제가 말을 실수했군요. 발렌베리 가문 같은 명문가를 얕잡아보려는 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이건우가 순순히 사과하는 듯 하자 올로프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이어지는 말에 올로프는 다시 굳어버렸다.

“그냥 당신을 얕잡아본 건데요. 전대 발렌베리 가주를 살해하고도 가주가 되지 못한 얼간이가 누군지 궁금했거든요.”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비밀이 이건우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올로프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캐리 교수에게 정신이 팔려서 그들의 대화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분명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어야 하는 비밀이었다. 윌리엄과 본인이 작정하고 꽁꽁 숨겼건만, 어떻게 놈이 알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더러 이런 새끼를 마킹하라고?’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말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미친놈.

이런 새끼를 상대로 시간을 끌어야 한다니. 차라리 윌리엄과 역할을 바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시라도 이건우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올로프 씨 표정이 영 안 좋아 보이는데? 어, 혹시 뭔가 찔리는 게 있으신 건 아니죠?"

올로프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지만, 그의 표정은 더 괴상해질 뿐이었다.

올로프는 이를 악물고 당장이라도 욕을 한바탕 퍼붓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입조심 하시오. 안 그러면···.”

“안 그러면 뭐요? 저를 죽이기라도 하게요?”

이건우는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인 다음 속삭였다.

“오늘 라울에게 할 것처럼.”

그 말을 듣는 순간 올로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알고 있었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이건우의 석연치 않은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자신을 도발하는 듯한 언사 하며, 암살을 알고 있는데도 보이는 여유로운 태도까지.

놈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윌리엄이 이 젊은 사업가를 그토록 경계했는지 깨닫는 것과 동시에 윌리엄을 향한 욕이 저절로 나왔다.

‘멍청한 새끼. 그 난리를 치고도 들켜?’

어찌되었든 이건우가 알고 있었다면 이번 계획은 필패이다. 올로프는 윌리엄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

그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곧 강연을 시작할 예정이오니 참석자 여러분은 모두 블루 홀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안내방송이 나올 때 윌리엄은 계획을 시작하기로 했다. 올로프의 시선이 캐리 교수에게 향했다.

계획대로라면 밖에 있는 저격수가 캐리 교수를 공격하고, 시선이 캐리 교수에게 쏠린 틈을 타서 근처에 있던 암살자가 라울을 죽인다.

그러면 이중으로 겹친 공격에 강연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암살자는 혼란을 틈타 밖으로 빠져나온다.

하지만 이건우가 알게 된 순간 이 계획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안 돼!’

올로프는 소리쳐서 막고 싶었지만, 비명은 입안을 맴돌 뿐이었다.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안내방송마저 끝나는 순간.

쨍그랑!

창문이 박살 나며 첫 번째 탄환이 캐리 교수에게 날아갔다.

“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이 홀 안에 울려 퍼졌다.

올로프는 저도 모르게 이건우를 쳐다보았다. 이건우의 입가에는 기분 나쁜 미소가 걸려있었다.

*

상대가 CCTV를 다 먹통으로 만들었다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나는 건물 내부에 사이버 인섹트에 초소형 카메라를 매달아 배치해놓은 상태였다. 내가 설치한 카메라들은 시설점검을 핑계로 가동이 중지된 CCTV를 완벽하게 대체하고 있었다.

이제 이 건물에서 암살할 만한 포인트는 모두 캐리온의 감시 안에 들어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건물 밖에서 저격할 가능성도 놓치지 않았다.

캐리온은 총탄의 궤도를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서 지정된 동선 안에서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해당 동선을 저격할만한 위치를 역으로 계산해서 근처에 사이버 인섹트를 보냈더니, 쉽게 저격수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맞은편 건물 13층에 한 명, 옥상에 한 명, 그리고 60도 각도에 있는 건물에 한 명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어이구. 많이도 왔다.

[저격수의 움직임을 확인했습니다.]

[탄환의 경로를 계산합니다.]

[사이버 인섹트를 투입합니다.]

위이잉

저격수 근처를 맴돌고 있던 작은 벌레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 맞춰 그 앞을 가로막았다.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사이버 인섹트와 탄환이 충돌했다.

살짝 빗나간 궤도.

쨍그랑!

창문을 깨뜨리며 날아온 탄환은 캐리온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 그대로 벽에 박혔다.

마치 계산이라도 한듯한 절묘한 각도였다.

뒤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총알도 날아왔지만, 목적을 이룬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와장창창!

오히려 빗나간 총알은 테이블 위에 있던 애꿎은 식기와 가구들을 휩쓸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총이다, 총!”

흉하게 박살 난 유리창. 난장판이 된 연회장.

테이블에 있던 모두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거나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캐리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저격수가 철수하고 있습니다.]

어딜 도망가려고. 이럴 줄 알고 라울을 시켜 미리 경찰을 근처에 대기시켜 놓았다.

나는 올로프를 돌아보았다. 그는 경악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임은 끝났다.

이제 반격 시작이다.

*

윌리엄이 준비한 비장의 한 수.

그는 바로 라울의 경호실장이었다.

전전대 가주, 그러니까 라울의 할아버지 때부터 경호실에 있었던 사람으로 지금은 승진해서 경호실장까지 올라왔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라울까지.

3대를 모시고 있는 경호원이라 라울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경호실장은 무뚝뚝한 얼굴로 라울을 경호했지만 속은 누구보다도 어지러웠다.

‘어떻게 해야하지?’

원래 계획은 캐리 교수가 다치고 이건우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린 틈을 타서, 라울을 끌어내어 죽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저격수의 총알은 모두 캐리 교수를 빗겨나갔다. 저격수를 세 명이나 배치했는데, 단 한발도 명중하지 못했다.

발렌베리 가문에서 일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어봤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캐리 교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고, 이건우는 당황하기는커녕 친절하게 저격수의 위치를 알려주며 잡아오라고 시키기까지 했다.

그리고 라울의 경호는 더욱더 강화되었다.

‘일단 플랜비로 넘어가자.’

다행히 윌리엄은 각 상황에 맞게 계획을 세세하게 짜주었다. 그리고 캐리 교수의 암살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작전도 있었다.

경호실장이 라울에게 말했다.

“회장님. 위험합니다. 제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알겠네.”

경호실장은 미리 봐두었던 통로로 라울을 안내했다.

워낙 라울이 신변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인지라 그는 순순히 따라왔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귀빈용 안가로 들어왔다. 경호실장은 방 안에는 자신이 있겠다고 말한 후, 경호원을 방 밖으로 내보냈다.

라울이 말했다.

“누군가가 캐리 교수를 노린 모양이군.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건가.”

“사람 일이란 모르지 않습니까. 저도 모르게 원한을 살 일이 생길 수도 있고요.”

“그러는 자네는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 건가?”

“······.”

경호실장은 딱딱한 눈빛으로 라울을 바라보았다.

라울은 모든 걸 알고있었다. 이것 또한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경호실장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경호실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라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라울은 경호실장에게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지 짐짓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자네에게 잘못한 일은 없어서 말이야.”

“언제부터 알고 있으셨습니까?”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았다. 경호실장은 라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실수하신 겁니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저와 단둘이 남으면 안 됐었지요.”

그는 죄책감을 덜려는 듯이 말했다.

“사실 회장님은 좋은 주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목줄은 다른 손이 잡고 있어서요.”

윌리엄은 발렌베리 가문을 장악하려고 수십 년간 공을 들인 계획. 경호실장도 그 계획의 일부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윌리엄이 공들여 키워내서 발렌베리 가문에 집어넣은 세작이었다. 부모, 자식, 형제까지 모두 윌리엄의 손아귀에 있었다.

“죄송합니다.”

경호실장이 품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그 끝에는 푸르스름한 독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가 라울을 향해 손을 쓰려는 순간, 라울이 말했다.

“나는 미안해하지 않겠네.”

“?”

알 수 없는 말에 경호실장이 흠칫하는 찰나 목에서 따끔한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저도 모르게 목 주변을 쓰다듬었다. 그 순간 머리가 핑 돌면서 중심이 흔들렸다. 손에서 만년필이 스르르 떨어져 내렸다.

무릎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는 머리를 들려고 했지만 몸이 가누어지지 않았다. 고작 보이는 건 라울의 입가에 띤 흐릿한 미소뿐.

“어, 어떻게···.”

그리고 무너지는 경호실장의 등 뒤로 이건우가 나타났다.

*

어차피 노벨상 강연회는 명단이 다 정해져 있다.

캐리온은 그 사람들과 가족, 그리고 수행원까지 모두 뒷조사를 했다. 무엇을 샀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심지어 어린 시절의 교우관계까지 다 뒤졌다.

그렇게 추린 명단에는 총 열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서 경호실장은 유난히 수상했다. 겉으로만 봤을 때는 흠 잡을 데 없이 깨끗하다. 할아버지부터 라울까지. 삼대를 경호하며 젊은 시절부터 30년이 넘게 발렌베리 가문에 충성했다.

하지만 걸리는 부분이 한 가지 있었다.

혼자서 가족 모두를 부양하는데, 가족들은 그의 월급 이상으로 지출하고 있다. 처음에는 유산을 물려받았거나 대출을 했나 싶었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회삿돈을 빼돌려서 쓴 거라면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깨끗했다.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발목을 잡았다.

캐리온이 알아낼 수 없는 소득원.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깨끗하다는 것이 윌리엄과 똑같았다.

나는 이를 라울에게 알렸고, 그는 경호실장이 연루됐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경호실장은 전전대 가주인 그의 할아버지 때부터 있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알고 보니 배신자였다니.

라울은 씁쓸하게 말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엮여있는 건지 모르겠군요. 이래서야 여기가 미네르바 가문인지, 발렌베리 가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조만간 솎아낼 수 있을 겁니다. 경호실장과 올로프를 시작으로 미네르바의 세력을 엮어서 쳐내세요.”

“밥상을 떠먹기 좋게 차려주셨으니 저는 그저 숟가락만 들면 되겠군요.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올로프는 어디에 있나요?”

“윌리엄을 찾아간 것 같더군요.”

윌리엄은 캐리온의 정체를 파악한 이후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의 주변에는 EMP 필드가 있어서 추적이 안 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감시가 끊긴 지점으로 대충 어디 근방에 있는지 정도는 추정할 수 있다.

“나간 지 시간이 꽤 흘렀으니까 곧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마침 EMP 필드를 벗어났는지 캐리온이 머릿속으로 말했다.

[올로프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올로프가 두 명입니다.]

응? 이게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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