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시도 (2)
올로프는 교활한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갔다.
특히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윌리엄과 잘 맞는 구석이 있었다.
심지어 올로프는 자신의 형인 전대 가주를 죽이면서도 한 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전대 가주는 형제였던 올로프를 전적으로 믿고 그에게 가문의 중요한 사업 부문인 우주항공 부문을 맡겼는데, 그는 형을 배신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그러고서도 가주가 되지 못하고 그 자리가 조카에게 넘어가자, 그 조카마저 바로 죽여버리려고 한 전적이 있었다.
오죽하면 윌리엄이 그렇게 빠르게 일을 진행하면 사람들이 의심할 거라며 그를 말릴 지경이었겠는가.
지금도 그랬다. 윌리엄이 딱히 말을 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서 계획을 짜냈다.
“라울은 평소에는 철저하게 보호를 받기 때문에 틈을 파고들기가 어렵소.”
아버지의 의심스러운 죽음.
그 후 라울은 철저할 정도로 신변 보호에 신경을 썼다.
음식 검사는 물론이요, 한시도 주변에 경호원을 떼놓은 적이 없다.
이틀에 한 번씩 보안업체를 불러서 집안 전체에 도청장치를 비롯한 감시장비가 있는지 확인하고, 라울을 만나려는 사람은 누구나 빠짐없이 몸수색을 거쳐야 했다.
심지어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는 것조차 꺼리며, 라울은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신변에 집착했다.
하지만, 조만간 기회가 생길 예정이었다.
“마침 곧 있으면 노벨상 수상자의 강연회가 있지요.”
노벨상 수상자들은 수상한 후 이른 시일 내에 강연할 의무가 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두 사람이 공동수상을 했는데, 그중 한 명은 스웨덴 사람이다. 그리고 스웨덴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치고 발렌베리 재단의 후원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번에도 역시 발렌베리 재단에서 후원하는 스웨덴 사람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렌베리 그룹의 회장인 라울 발렌베리가 강연회에 참석하게 됐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었을 때야말로 암살하기 딱 좋다.
“이때 라울을 죽이고 테러단체에 뒤집어씌우는 것도 좋겠군요. 마침 며칠 전에 누군가가 당신의 통신국을 공격하지 않았소?”
올로프는 무심하게 던진 말이었지만 윌리엄은 무언가에 찔린 사람처럼 크게 움찔했다.
여기서 올로프가 이건우에게 당했던 일을 꺼낼 줄은 몰랐다. 미네르바 가문을 지탱하던 기둥 하나가 뿌리째 뽑혀나갔고, 이로 인한 손실은 천문학적이었다.
그때 일이 떠올라 울화가 치솟아 올랐지만, 그는 인내심을 끌어모아 눌렀다.
불쾌한 것과는 별개로 올로프의 아이디어는 마음에 들었으니까.
‘만약 통신국 테러가 이건우 짓이라는 걸 밝힐 수만 있다면?’
이건우가 증거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없는 증거를 꾸며내는 건 윌리엄이 가장 잘 하는 일중 하나이다.
거기에 라울의 암살 건까지 이건우에게 덮어씌울 수 있다면?
이건우를 잡아끌어 내릴 수 있다.
“좋은 계획이요. 하지만 이건우를 만만히 보지 마시오. 그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방비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올로프는 계책을 하나 더 냈다.
“그러면 이건우의 시선을 돌리면 되겠지요. 그의 정신이 쏙 빠질만한 선물을 준비하면 좋겠는데.”
윌리엄은 가문 연합에서 이건우와 함께 왔던 여자를 떠올렸다. 이번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캐리 교수.
그런 여자를 연합 회의장까지 데려오다니. 분명히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윌리엄이 캐리 교수를 공격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자, 올로프는 반색하며 좋아했다.
“확실히 보통 관계는 아니겠군요. 그녀가 당한다면 이건우도 당황할 겁니다.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가 공격을 당했으니 회의장도 혼란에 휩싸이겠지요. 그 틈을 노려서 공격하는 겁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윌리엄이 직접 세우기로 했다.
캐리온에게 들키면 안 되므로 당일 CCTV를 꺼두고 전자기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이건우가 예측할 수 없게 올로프와 윌리엄, 양쪽 모두와 접촉한 흔적이 없는 사람을 쓸 것이다.
어느 정도 방안을 마련하자 윌리엄은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그는 라울을 제거하고 올로프를 그 자리에 올릴 수 있다.
슬슬 발렌베리 가문을 잡아먹는 계획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두 사람이 헤어지고 난 후, 윌리엄이 중얼거렸다.
“올로프 발렌베리.”
“예.”
올로프의 목소리는 뒤편에서 흘러나왔다. 윌리엄이 돌아보자 올로프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서 있었다.
다른 가문은 윌리엄이 어떤 사업을 운영하는지 전혀 몰랐지만, 올로프는 달랐다.
올로프가 맡은 사업은 우주항공부문. 그는 한 해에만 수십 대의 소형 위성을 쏘아 올린다.
그 틈에 섞여 은밀하게 위성을 몇 개 쏘아 올렸고, 그 위성망은 지금 윌리엄이 사용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발각되지 않은 위성망 덕분에 그는 캐리온에 대항하여 보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윌리엄의 위성망이 보안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했다. 특히 지금처럼 이건우라는 적이 등장했을 경우 더더욱 그랬다.
발렌베리의 도움을 거쳐서 손에 넣고 있지만, 이제는 위험변수 없이 독자적으로 관리하고 싶었다.
가장 중요한 보안 문제는 남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윌리엄은 올로프를 가주에 앉히겠다고 작정했을 때부터 이런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 방법은 미네르바 가문이 오랫동안 음지에서 암약할 수 있었던 방법이기도 했다.
바로 똑같이 생긴 대역을 세워서 가문을 장악하는 것.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구나. 숨어 지내느라고 고생했다.”
“아닙니다.”
원래라면 삼 년 전 전대 가주가 죽었을 때 나왔어야 했지만, 라울 발렌베리가 가주가 되면서 그 시기가 덩달아 늦춰지고 말았다.
올로프가 워낙 얼굴이 알려졌다 보니 그동안은 지중해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숨어지냈다.
하지만 이제 때가 다가왔다. 바로 진짜 올로프를 갈아치우고, 발렌베리 가문을 완전하게 손에 넣을 때가.
*
라울은 기대가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삼촌을 쫓아낼 수 있을까요? 우주항공 부문에서 삼촌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그를 쫓아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욕심이 많은 만큼 빈틈도 많거든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캐리온이 서류박스를 세 개를 쌓아서 들고왔다. 라울은 깜짝 놀라며 박스를 들어주려고 했다.
“아니, 무겁지 않습니까?”
팔이 미스리늄인데 무거울 리가.
“쟤는 튼튼해서 괜찮아요.”
“그래도 어떻게 레이디한테 저런 일을!”
라울은 나에게 실망했다는 눈빛으로 쳐다봐서 왠지 억울했다. 쟤가 나보다 더 쎄다니까?
하지만 라울은 기어코 캐리온을 도와줬고, 캐리온은 가식적으로 웃으며 [어머, 우리 사장님과는 다르게 젠틀하시네] 따위의 말을 내뱉었다.
가증스러운 것.
캐리온은 올로프의 비리에 대한 정보를 싹 긁어왔다. 라울은 자료를 훑어보며 말했다.
“몇 가지는 저도 알고 있는 부분이군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이것만으로 삼촌을 끌어내리기엔, 그의 지지기반은 너무 강하거든요.”
전전대 가주때부터 수십 년간 올로프는 우주항공산업에 종사해왔다.
그리고 올로프는 사업수완만큼은 뛰어난지라 끊임없이 산업을 발전시키고 키워나갔다.
그 와중에 자신이 해 처먹는 돈도 많았다. 우주항공산업은 방산업체와도 연결되었기에 비리가 일어나기 쉬운 구조였고, 들어가는 돈의 액수가 천문학적인 만큼 떼어먹는 돈도 천문학적이었다.
그렇게 떼어먹는 돈을 자기 사람들과 인맥들에게 기름칠하는 데 썼기 때문에 올로프는 이 부문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었다. 항공우주 분야는 이미 올로프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만큼 올로프의 아성은 견고했지만, 나에게는 그 아성을 한방에 무너뜨릴 계획이 있었다.
나는 말했다.
“걱정마세요. 올로프는 알아서 자살골을 넣을 테니까요.”
“자살골이라니요?”
나는 라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당신을 죽이려고 할 겁니다.”
“음”
라울은 짐작하고 있던 일인지 그저 침음만 흘릴 뿐이었다.
“저번에 가문연합 회의가 파투난 이후, 미네르바는 올로프와 만남을 가졌습니다. 수다나 떨려고 만난 건 아니겠지요.”
아쉽게도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캐리온도 파악하지 못했다.
윌리엄은 내가 캐리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난 후, 극도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나에게 통신시설을 들켰다고 해서 그걸 모조리 포기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아까워서라도 쩔쩔매다가 결국 남김없이 싹 다 털리는데, 윌리엄은 과감하게 전부 다 자기 손으로 없애버렸다.
칼 같을 정도로 이성적이고 철저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캐리온은 올로프가 취할 수 있는 1400만 개의 방법에 대해 시뮬레이션하고 분석했다.
[가장 가능성이 큰 건 라울 발렌베리를 암살하는 것입니다.]
암살하는 방법에도 수천 가지가 있다.
아이작의 형을 죽였을 때처럼 전세기를 폭파한다든지, 아니면 전대 발렌베리 가주를 죽였을 때처럼 독극물을 사용했다든지.
그중 가장 유력한 건,
“곧 있으면 노벨상 수상자 강연회를 이용할겁니다. 그때 발렌베리 회장으로서 참석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은 날일 텐데 그들이 저를 노릴까요?”
물론이지.
사람이 많은 경우, 보는 눈도 많지만 오히려 시선이 분산되어 암살자가 침투하기 좋은 상황이 만들어진다.
특히 라울은 평소에는 전혀 틈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들에게 나서는 순간이 더 보안에 취약하다.
그리고 캐리온이 ‘가능성이 크다’고 했으면 반드시 일어난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라울은 신변관리에 강박적으로 신경쓴다. 아버지의 죽음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라울이 물러서서는 안된다.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오히려 미끼가 되라고 했다. 올로프가 ‘라울’이라는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물 때, 우리는 그를 낚아 올릴 수 있다.
노벨상 강연회는 올로프가 처형당하는 장소가 될 것이다.
*
강연회 당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의 해설 강연이 있었다. 노벨상 시상식 이후 첫 강연이기 때문에 많은 기자가 몰려왔다.
수상자와 함께 주목을 받은 것은 발렌베리 그룹이었다.
특히 이번 수상자들도 발렌베리 재단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발렌베리는 ‘기초과학 분야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가문’으로 명성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라울이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강연장으로 입장했다. 경호원들이 철벽처럼 그를 지키고 있어서 인터뷰는 못 했지만, 그는 오늘 강연을 하는 수상자 못지않게 이목을 끌었다.
올로프는 그 모습이 못마땅했다. 원래는 저 관심이 그에게 돌아와야 하는데.
준비된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그저 형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물려받은 놈이다.
원래는 그에게 돌아가야 하는 자리를 빼앗은 라울.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내색하지 않고 친근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이구나, 라울.”
“삼촌”
라울은 미소지었다.
그는 아버지를 죽였고, 오늘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감정은 한 톨도 드러내지 않은 채 웃었다.
두 사람이 비수를 숨기며 대화하는 가운데, 날아다니던 무당벌레 한 마리가 올로프의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갔다.
*
윌리엄은 계획 전반을 컨설팅했다. 비밀 유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는 올로프에게조차 모든 계획을 말해주지 않았다.
이 계획의 성패 여부에 가주 자리가 달렸으니 올로프는 조금 초조해졌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계획을 여러 사람에게 공유하면서 이건우에게 들킬 리스크를 감수하느니, 차라리 윌리엄 혼자서 진행하는 게 나았다.
올로프는 이건우를 찾았다. 윌리엄이 그에게 맡긴 일은 이건우를 마킹하는 것.
이건우는 캐리 교수와 함께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젊은 수상자에게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이건우는 그 무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올로프는 자연스럽게 이건우에게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아, 올로프 대표님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이건우는 반색하며 손을 맞잡았다.
이건우의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자신을 반가워하는것 같았다.
자신이 라울을 죽이려고 하는 걸 알았다면 이렇게 반가워하지는 않았을 텐데.
윌리엄이 온갖 부산을 떨더니 결국 보안유지에 성공했나 보다.
그때 이건우가 물었다.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평소에 윌리엄의 시다바리로 사는 기분은 어때요? 저는 누구 시다 노릇은 해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 비꼬려는 건 아니고. 진짜 궁금해서.”
“······.”
평온하던 올로프의 표정에 커다란 균열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