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54화 (154/183)

암살 시도 (1)

스웨덴은 재벌 중심 경제체제의 원조 격이다.

그중에서도 발렌베리 가문은 로렌 제약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도 보유하고 있다.

라면부터 미사일까지.

안 끼는 곳이 없을 정도인지라 스웨덴에서의 발렌베리의 영향력은 보통 재벌가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 대의 가주에서 발렌베리의 견고한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주가 너무 어린 나이에 승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발렌베리의 6대 가주인, 라울 발렌베리.

그의 현재 나이는 34세로, 아이작의 차남인 에드먼드보다 더 어리다.

그리고 피치 못한 사정으로 예상보다 일찍 발렌베리 그룹의 회장이 되었고, 그를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이 있다.

바로 라울의 삼촌.

라울과 삼촌의 관계는 마치 현대판 단종-수양대군을 보는 듯했다.

이에 대항하여, 라울은 제약 산업에서 로스차일드 가문과의 협력하며 삼촌을 견제하려 했지만, 이건우가 제약을 털어버리는 바람에 그 계획도 무산됐다.

그러던 와중에 이건우가 알려준 것이다.

그가 견제하던 삼촌의 뒤에 윌리엄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료에는 윌리엄이 어떻게 삼촌을 앞세워서 발렌베리 가문을 잡아먹으려고 하는지 샅샅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대한 비밀까지도.

라울 발렌베리는 회의장에서는 관심없는 척했지만, 호텔로 돌아와서는 사람을 시켜 교차검증을 했다.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건우가 제시한 증거가 들어맞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삼촌이 아버지를···.”

당장이라도 삼촌을 찾아가 따지고 싶은 마음이 목끝까치 치솟았지만, 그는 감정에 휩쓸려 일을 망치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대신 라울은 이건우를 찾아갔다.

이 모든 사실을 알려준 그에게 무슨 방도가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

화려한 스위트룸.

나는 호텔까지 찾아온 라울 발렌베리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명성이 자자한 분을 이제야 뵙는군요.”

라울은 억지로 분노를 누르는 듯했지만 행동만큼은 젠틀했다. 회의장에서는 정 반대되는 태도였다. 그는 이어 캐리온에게도 인사를 했다.

“이 분은 캐리 교수님이군요. 노벨상 시상식에서 본 적이 있지요.”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겠지만요.]

그때는 영상화면으로만 나갔었으니까.

라울은 캐리온이 휴머노이드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옅은 화장을 하고 겨울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정말 사람 같았다.

라울이 올 줄 알았기에 이미 다과는 준비되어 있었다.

찻잔을 들자 그윽한 향이 코에 스며들었다. 캐리온이 다도를 학습했다며 시험 삼아 내린 건데, 의외로 맛이 좋았다.

라울은 내가 차를 마시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차 맛이 좋군요.”

“캐리 교수님의 솜씨입니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해 보여서요.”

“이런. 티가 많이 나나 보군요.”

라울은 마른세수를 하며 씁쓸하게 말했다.

사실 나는 라울이 이렇게까지 마음을 열 줄은 몰랐다. 내가 로렌 제약의 데이터를 날려버린 게 바로 몇 주 전이니까.

내가 건네준 자료가 조금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꽤 효과가 좋은걸.

어쨌든.

우리는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다.

나는 라울이 필요했다.

윌리엄은 가문연합의 힘을 이용해서 나를 본격적으로 견제하려고 하고 있다. 그 틈을 파고들어 와해시키려면 라울의 도움이 필요하다.

라울 또한 윌리엄과 삼촌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 그가 말했다.

“윌리엄이 가주 계승 건에 이렇게 깊이 개입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윌리엄이란 독은 발렌베리 가문을 잠식해나가며, 마침내 라울의 턱 끝까지 도달했다.

“사실 제가 가주가 되기에는 너무 어리긴 하지요. 아직도 준비되어있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가끔은 이 직분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라울은 3년 전 31살의 나이에 발렌베리 가문을 맡았다. 가문연합에 있는 가장 젊은 사람보다 12살이나 어린 것이다.

그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가문을 맡게 된 것은 전대 가주였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윌리엄의 개입으로 인해.

라울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승계하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비밀을 이건우 씨가 들고있을 줄은 몰랐군요.”

당연히 라울도 그 미심쩍은 사건을 조사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주가 되고 난 후 권한을 이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대 가주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려고 해도 알아낸 것은 없었다.

윌리엄이 수십 년에 걸쳐 작업한 것들을, 신임 발렌베리 가주가 알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나를 통해서 그 베일이 벗겨진 것이다.

윌리엄은 라울의 삼촌을 이용해서 발렌베리 가문을 장악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아이작의 형을 죽여서 아이작을 로스차일드 가주로 만들었던 것처럼, 같은 일을 발렌베리 가문에서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작전은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었다.

발렌베리의 전대 가주는 뒤늦게 동생이 가문을 배신하고 윌리엄과 한편이 되었다는 걸 알아챘다.

이후 혼신의 힘을 다해 아직 젊은 아들을 가주로 앉혔다. 직접 사장단과 가문의 원로를 찾아다니면서 이들의 아들의 세력이 될 수 있도록 설득했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나감과 동시에 살해당했다. 마지막 유언이나 다름없게 된 그의 부탁으로 인해 라울 발렌베리는 사장단과 원로의 지지를 등에 업고 가주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이 꼬여버렸다.

윌리엄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것이다. 라울의 삼촌을 가주로 만들기 위해서 수십 년간 밑 작업을 다 해놓고, 가문연합의 가주를 죽이는 리스크까지 감수했다.

그런데 갑자기 라울이 그 자리를 홀라당 채간 것이다.

물론 아직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라울은 가주가 된 후, 가문의 사업을 장악하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지지기반이 예전의 가주들처럼 튼튼하지 않았다.

그 사이 삼촌은 윌리엄의 지원을 받으며 조금씩 세력을 키워 라울을 위협하고 있었고.

라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윌리엄은 무서운 작자입니다.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고 이용하는 능력만큼은 타고났지요.”

아이작도, 라울의 삼촌도, 최근에는 벨라까지. 모두 그에게 넘어가버렸다.

어쩌면, 그의 아버지를 죽였던 것처럼 라울을 죽일지도 모른다.

나도 윌리엄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살인을 저지르는 놈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있었다. 심지어 전생의 내가 바로 그 피해자가 아닌가.

물론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죽으면 의심을 살 수 있겠지만, 지금 나 때문에 눈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 윌리엄이 그런 것을 신경이나 쓸까?

라울은 분명 삼촌과 윌리엄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제가 발렌베리 가문에서 삼촌을 치워드리겠습니다.”

“네?”

그의 삼촌이 맡은 부문은 항공우주산업이다. 아마 윌리엄이 쓰고 있는 독자적인 통신망을 구축해준 곳이 삼촌일 가능성이 컸다.

삼촌을 탈탈 털면 윌리엄이 사용하고 있는 통신망에 접근할 방법이 생길 것이다. 어차피 해야할 일, 라울에게 생색이나 좀 내야겠다.

항상 자신을 힘들게만 하던 삼촌을 치워주겠다는 말. 라울은 어떻게 삼촌을 쫓아낼 수 있는지 의아한 눈치였지만, 내 화려한 전적을 알고 있기에 기대를 숨기지 못했다.

내가 또 누구를 치워버리는 건 전문인지라.

“대신 당신이 해줘야 할 일이 있습니다.”

라울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을 없애주기만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주겠습니다."

좋아. 그럼 전문가의 컨설팅 시작합니다.

*

가문연합의 회의는 결국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하고 끝이 나버렸다.

아이작과의 기 싸움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이건우가 난입한 것도 모자라 놈은 자신의 치부를 뿌려대며 다른 가주들을 뒤흔들었다.

이건우를 잡으려고 소집한 가문연합 회의였건만, 연합이 반 토막이 되어버리는 결과만 나버렸다.

가장 신경에 거슬리는 건, 이건우가 라울 발렌베리에게 건넨 서류가 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라울의 표정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지만, 윌리엄은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

라울의 아버지를 죽인 전적이 있기에, 그리고 이건우에게는 그걸 파헤칠 능력이 있다는 걸 알기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발렌베리 가문에 저지른 잘못을 라울이 알게 된다면?

그리고 이건우가 그 점을 이용해 라울과 손을 잡는다면?

전대 가주 때부터 공들인 발렌베리 가문이 날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장 큰 적인 이건우에게 날개가 달리는 셈이다.

“빨리 막아야겠군.”

윌리엄은 굳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그는 라울의 삼촌인 올로프 발렌베리를 찾아갔다.

*

올로프와 윌리엄은 손잡고 전대 가주를 제거했다.

전대 가주가 죽기 전 아들인 라울을 가주의 자리에 앉히는 것에 성공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일 거라 생각했다.

애송이 하나 치워내는 것은 윌리엄에게 일도 아니었으니.

확실히 애송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 이건우가 붙는다면?

캐리온에게 올로프의 비리를 캐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이다.

올로프의 치부가 손에 들어가는 순간, 라울은 얼씨구나 하며 올로프를 쳐낼 것이다.

윌리엄이 올로프를 걱정해서 다급하게 찾아간 건 절대 아니었다.

올로프의 사업 분야는 항공우주부문.

윌리엄은 그의 위성망을 이용해 독자적인 정보망을 구축해왔다.

올로프의 목숨과 그의 보안이 직결된 상황이다.

윌리엄은 이건우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전자통신이 아닌 서신을 주고받으며 움직였고, 전자기파를 차단하는 장치가 되어있는 밀실에 들어갔다.

그렇게 온갖 난리를 친 다음에야 윌리엄이 안심하고 말했다.

“이건우랑 라울 발렌베리가 손을 잡았소.”

이건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올로프는 코웃음을 쳤다.

“그 동양인 사업가 말이오? 라울도 이제 똥줄이 탔나보군.”

“당신의 비리와 관련된 흔적을 모두 지워야 하오.”

“걱정 마시오. 내가 어련히 잘 처리했을까.”

올로프는 여유롭기만 했다. 윌리엄은 답답했다. 올로프는 아직 이건우의 진정한 능력에 대해서 몰랐다.

사실 캐리온에 대해서 말하면 편하겠지만 캐리온만큼은 비밀로 하고 싶었다.

윌리엄은 캐리온이 탐났다. 막상 캐리온의 능력을 보니, 과거에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는 이건우에게서 캐리온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캐리온의 정체에 대해 함구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올로프를 차근차근 설득했다.

“당신이 중국 국가안전부보다 보안이 철저한가?”

올로프는 반년 전에 있었던 빅 이벤트를 떠올렸다. 스웨덴도 그 경매에 참여했기 때문에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올로프는 그걸 단순한 중국의 실수라고만 생각했다.

“당시에는 중국 측의 실책이 있었다고 들었소만···.”

“그리고 최근에는 로스차일드 가문도 털렸소.”

물론 로스차일드 가문과 함께 윌리엄 본인도 털렸지만, 윌리엄은 그 내용은 쏙 빼고 말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올로프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실, 중국국가안전부보다 더 털기 어려운 게 로스차일드의 보안이다.

먼저 접근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되어 있다.

가주의 개인용 컴퓨터 외에는 이용할 수 없는데, 저택의 경비를 뚫고 가주의 서재에 침입해서 개인 컴퓨터에 접속하는 건 쉽지 않다.

어찌어찌 접속했다고 해도 수십 겹의 방화벽과 각종 생체 인증까지 해야지 뚫을 수 있는 보안망을 털었다는 것은, 올로프 역시 언제든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올로프가 이제야 좀 알아먹는 것 같아 윌리엄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 발렌베리 가주는 호시탐탐 당신을 치려고 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당신이 철저하게 그 증거를 숨겨왔으니 그럴 수 없었소.”

올로프는 통신보안과 관련된 기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라울은 그의 비리에 대한 정보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우와 손을 잡는다면 앞일을 장담할 수 없소.”

캐리온이 있으면?

올로프가 박살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올로프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차라리 가주를 빨리 죽여버리는 게 낫겠군요.”

윌리엄은 미소를 지었다. 바로 정답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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