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 연합 (2)
윌리엄을 털어버리는 일.
그것은 꽤 재미있었다.
나는 사이버 인섹트 위에 올려놓은 초소형 카메라로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쿠쿠쿠쿠쿵!
폭탄이 터질때마다 기둥이 터져나갔고, 기둥이 터져나갈 때마다 내 속도 뻥뻥 뚫렸다.
옆에서 캐리온이 현장 중계를 해주었다.
[방금 폭파로 인한 피해 추산액은 총 110억 달러입니다.]
하나가 무너질 때마다 피해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서로 연결되어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곳까지 타격을 받는 기지국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통 통신망이 훼손되면 다른 망을 우회하여 통신이 끊기지 않도록 이중화 작업을 한다.
하지만 나는 이중화된 망까지 모두 파괴했기 때문에 피해는 더 극대화됬다.
“이거 윌리엄의 얼굴을 못 보는 게 아쉬울 정도인걸.”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놈에게 한 방 먹여주었다는 사실이 기분을 더 좋게 만들어주었다.
영상을 보는 건 이쯤으로 하고 다른 일에 집중했다.
사이버 인섹트는 드론뿐만 아니라 해킹툴을 담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엄중한 보안시설을 뚫고 들어가서 칩을 삽입하면 통신망이 내 손안에 들어온다.
그리고 캐리온이 이를 타고 들어가자, 새로운 정보가 등장했다.
그렇게 꼬리를 물고 점점 놈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중이었건만, 어느 순간 정보가 뚝 끊겼다.
[정보가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윌리엄이 먼저 손을 쓴 것이다. 과감히 사업을 접는 것을 택하는 것으로.
조금 아쉬웠지만 나는 이정도로 만족했다. 지금까지 뽑아낸 정보 안에서 충분히 재미있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바로 '가문 연합'의 정체.
에드먼드가 저번에 말했던 ‘연합’에 대한 정보가 여기서 튀어나온 것이다.
로스차일드, 발렌베리 등을 비롯한 일곱 가문의 연합체.
그들은 연합을 만들어서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고, 시장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또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면 제거하며 자신들의 체제를 공고하게 했다.
이번에 윌리엄은 다시 한번 회의를 소집한 모양이었다.
연합의 행보에 중대한 변수가 되어버린 나를 제거하기 위해서.
회의장 위치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곱 가문의 가주를 추적해보니 독일의 한 지점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나는 즉시 캐리온을 대동하고 독일까지 날아갔다.
회의장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으며, 교회 뒤편에 있는 언덕에 있는 작은 성이었다.
내가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마을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나를 막아섰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우르르 몰려들어 커다란 방벽을 형성했다.
“들어오면 안 됩니다.”
“싫은데요.”
내 당당한 태도에 상대가 조금 당황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초대장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
사람들은 저들끼리 독일어로 욕설을 지껄이더니 경비봉을 들고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너 뭐하는 새끼야!”
“어? 나 몰라요?”
이상하다. 이제는 내 얼굴이 많이 알려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좀 더 분발해야겠다.
그래도 이 시간 이후, 마을 사람들만큼은 내 얼굴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캐리온.”
새로 태어난 캐리온이 직접 몸에 기억을 새겨줄 거거든.
딱 봐도 가녀린 여자가 앞을 가로막자, 상대는 피식 웃으며 시비를 걸듯 캐리온의 어깨를 툭 쳤다.
“넌 뭐하는 ㄴ···어?”
하지만 캐리온은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고, 상대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거대한 돌덩이를 민 느낌. 아니, 아예 사람이 아닌 단단한 강철을 건드린 것처럼 느껴졌다.
놈이 당황한 표정으로 캐리온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캐리온은 팔꿈치를 들어 그대로 놈의 얼굴을 찍었다.
“꽥!”
지금 캐리온의 신체는 미스리늄 금속으로 변환되었기 때문에 마치 철퇴를 맞는 듯한 느낌일 것이다.
그대로 얼굴이 함몰되며 상대가 쓰러졌다.
호리호리한 여자의 팔꿈치에 얻어맞고 훨훨 날아가는 거구의 남자. 다른 사람들이 놀라서 달려왔다.
“뭐야!”
“제압해!”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캐리온이 날아올랐다.
“???”
마을 사람들은 달려오다 말고 입을 쩍 벌렸다.
보통 사람은 기껏해야 몸을 띄어 올려 허공에 몇 초 버틸 뿐인데, 캐리온은 정말로 ‘날아버린’ 것이다.
그들이 잠깐 멈칫하는 사이 화려한 발차기가 사람들을 덮쳤다.
빠바바박!
사람들의 턱이 돌아가며 기절했다.
짝짝짝!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박수를 쳤다.
각종 실전 무술의 데이터를 입력한 효과가 엄청났다.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고난도의 움직임을 구현하니 마치 무협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것 외에도 많은 기능이 있지만 고작 마을 사람을 상대하는 데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쓰러진 사람들의 몸수색을 하자, 미처 사용하지 못한 각종 무기와 통신장비가 튀어나왔다.
“그냥 마을 주민이 아니었군.”
작은 성을 둘러싼 마을.
전부 성을 경호하는 경비원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통신장비까지 모두 먹통으로 만든 후 거대한 철문을 밀었다.
끼이익
쿠웅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린 철문.
나와 캐리온은 당당하게 가문 연합 회의가 열리는 장소 안으로 들어갔다.
*
물론 성안에도 경비원이 있었다. 하지만 캐리온이 연락망을 진즉에 파괴해놓은 덕분에 놈들은 우리가 난입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캐리온이 그들을 간단하게 제압했고, 나는 마침내 회의장 앞까지 도달했다.
문을 열자 제일 먼저 고성이 들려왔고, 이내 아이작과 윌리엄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가주들은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에 집중한 터라, 내가 들어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나도 그들 틈에 섞여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윌리엄과 아이작의 말다툼은 꽤 재밌었다.
윌리엄은 그간 연합 내부에서 분열을 일으키며, 그 틈을 파고들어 자신에게 권력이 집중되도록 해왔다.
그는 사람의 탐욕을 건드리는 교묘함은 마치 이브를 유혹하던 에덴의 뱀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지금까지 가문 연합과 세계를 뒤에서 주물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능력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나라는 변수에 대항해 연합 세력을 결집해야 하는데, 그가 지금까지 일으켰던 문제들이 터져 나오면서 결집은커녕 이대로 뿔뿔이 흩어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는 나에게 기회가 되었다.
이참에 가문 연합을 와해시키고 새로운 세력, 이를테면 ‘이건우 연합’ 같은 걸 만들어 볼까?
내 생각을 읽은 캐리온이 말했다.
[작명 센스는 여전히 구리군요.]
시끄러.
그때 두 사람의 싸움은 절정에 이르렀다. 아이작이 윌리엄에게 비아냥거렸다.
“여러분도 조심하시오. 윌리엄 저 작자가 언제 다른 가문에게···.”
“그만!”
윌리엄이 쾅 책상을 치며 그의 말을 끊었다.
“쟁점을 흐리지 마시오. 우리의 가장 급선무는 이건우요.”
이렇게 나를 찾아주는데, 또 내가 나서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내가 뭘요?”
회의장에 변수가 난입했다.
*
나는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원탁에 앉았다.
당연히 내 자리는 없었지만, 주변에 있던 의자를 드르륵 끌어다 놓았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나에게서 떠날 줄 몰랐다.
특히나 윌리엄이 나를 열렬히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관심을 받으니 부담스러운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건우 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내 편이 될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
먼저, 중국의 리 가문.
명말청초부터 있었던 가문으로 영국의 홍콩점령 시점부터 가문 연합에 편입해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었다.
그들은 실질적인 홍콩의 주인이며, 삼합회 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알려졌다.
또한 윌리엄이 중국 내에서 포비드 치료제에 관한 생체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들도 이들 덕분이다.
그만큼 윌리엄과 리 가문의 관계는 끈끈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을 박살내면서 놈들의 세력도 같이 박살난 터라 나를 곱게 볼 리 만무했다.
그다음은, 록펠러 가문.
여기도 말할 것도 없다. 록펠러의 기반인 석유를 무너뜨린 게 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듀퐁 가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류 브랜드를 가지고, 문화예술 쪽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가문이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듀퐁 가문은 이미 윌리엄의 수족이나 다름이 없다.
이 세 가문은 윌리엄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겠지만, 나머지는 아니다.
첫 번째로 내 시선은 케네디 가문에 멈췄다.
케네디 일가는 미국 정치계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가문이다. 그리고 로날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로날드 대통령이 내 편을 들어주는 이상 나를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로스차일드.
아이작은 나를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외부인이 뻔뻔하게도 회의를 참여하려고 하다니.”
까칠하게 쏘아붙였지만 나는 싱긋 웃었다.
로스차일드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 아이작은 나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만큼 윌리엄도 적대하고 있다.
‘여기서 분열을 더 일으켜볼까?’
적어도 아이작이 윌리엄과 손잡을 일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준비한 서류파일의 첫 장을 빼서 건넸다. 아이작은 그게 뭔지 알아봤는지 눈을 부릅떴다.
“아니, 이걸 어떻게!”
“벨라가 빼돌리려고 하길래 제가 중간에서 가로챘죠. 윌리엄이 가지고 있는 건 가짜니까 안심해도 좋습니다.”
아이작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윌리엄이 조작된 파일을 가지고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내 손에 진짜 파일이 들고 있는 걸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이 일로 하나는 확실해졌다.
윌리엄이 진짜로 다른 가문의 사업을 공격하려고 했던 것.
그들은 기본적으로 이권이 맞아떨어져 뭉쳤지, 끈끈한 의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언제든지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들통났으니 얄팍한 신뢰 관계에 금이 갔다.
가주들이 윌리엄을 보는 눈초리가 변하면서 회의장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지금까지 없었던 의심과 경계심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윌리엄이 인터폰을 들어서 경비를 부르려고 했지만···.
삐-삐-삐
내가 들어오면서 해킹했기 때문에 통신은 두절되어 있었다.
윌리엄은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나에게 물었다.
“뭐 하자는 거지?”
나는 두 손을 들었다.
“별 의도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좀 싫어하는 것 같아서요. 무조건 절 적대할 필요는 없다고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괜찮은 놈이거든요.”
내 능글맞은 웃음에 윌리엄은 코웃음을 쳤다.
“발렌베리 가문을 앞에 두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자네가 로렌 제약의 데이터를 다 날린 덕분에 손실이 어마어마하단 말일세.”
그는 나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려고 그런 말을 꺼냈겠지만, 나에게는 기회였다.
“아, 발렌베리 가문! 잘 말해주셨습니다.”
“뭐?”
스웨덴의 유명한 재벌인 발렌베리 가문. 내가 마지막으로 끌어들여야 할 곳이다.
제약뿐만 아니라 정밀 가공, 항공과 우주에서 강세를 보이는 곳이다.
군수와 우주 항공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발렌베리의 협조가 꼭 필요하다.
이번에는 캐리온이 다른 서류파일을 건네주었다. 윌리엄은 나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발렌베리 가주에게 자료를 넘겼다.
“한번 읽어보세요. 윌리엄이 말한 대로 이번에 로렌제약을 털면서 재미있는 정황을 발견했거든요.”
발렌베리 가주는 의심쩍은 표정으로 서류를 받았다.
그는 다른 가주들 치고 무척 젊은 편이며, 미처 준비되기도 전 가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 말인즉슨 지지기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윌리엄은 이 점을 이용해서 발렌베리 가문을 틀어쥐려고 했고, 나는 로렌제약을 털면서 이런 정황을 발견했다.
내 자료를 읽는 발렌베리 가주의 표정은 심드렁하기 그지없었다.
“볼 것도 없군.”
가주는 그렇게 말하고 자료를 탁 덮었다.
하지만 캐리온은 그의 표정에서 미세한 변화를 읽어냈다.
[발렌베리 가주의 눈동자가 잠시 윌리엄에게 향하며 안면근육이 일시적으로 수축했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전세계를 좌지우지하던 가문 연합. 그들은 분열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