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51화 (151/183)

드러나는 윤곽 (4)

캐리온과 신체의 동기화.

덕분에 나는 며칠 동안 캐리온이 없는 채로 생활했다.

처음 캐리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릴 때는 정말 놀랐었는데.

이제 머릿속에서 늘 땍땍거리던 애가 없어지니 이 조용함이 꽤 낯설었다.

캐리온이 없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은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다.

나는 다음 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연구소의 서버를 확인해보니 캐리온 프로젝트를 하면서 로봇공학과 관련된 기술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각종 정밀 부품의 설계에서부터 복잡한 구조역학까지. 로봇 외에도 어디에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넘쳤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을 가장 잘 써먹을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는 방위산업이다.

최고의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전투나 정찰, 경계 등의 업무를 대신 해준다?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낸 모든 발명품이 그랬듯, 현대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버릴 것이다.

대박의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적당한 방위산업체 한 곳을 알고 있다.

바로 제일자동차와 제일중공업.

제일자동차에서는 군용차량, 주포와 함포, 전차 및 장갑차 등을 만들고 있다.

또한 제일중공업은 정밀 공업을 바탕으로 미사일과 어뢰를 개발하고 있으며, 해양 방위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나름대로 이쪽 계열에서는 알아주는 곳이었다.

이를 위해서 나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내가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자 할아버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방위산업에 뛰어들고 싶다고? 진심인 게냐?”

“뭘 또 놀라고 그러세요.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건우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이건 국방부와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거···아, 그래서 할애비를 찾아왔구나.”

나는 싱긋 웃었다. 이제는 척하면 척이었다.

사실 단순히 제일 그룹의 협조가 필요한 거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내도 된다.

하지만 국방부의 지원은 말이 다르다.

방위산업에서 슈퍼 갑은 정부이다. 소비자의 90%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긍정적인 답변을 해놓았다.

“국방부 쪽으로는 내가 운을 띄어놓겠다. 그리고 제일중공업에도 협조 요청을 해주마. 네 삼촌이 덕분에 자율운항선박을 만들어냈다고 얼마나 좋아하던지.”

둘째 삼촌은 지난번 자율운항선박을 협업한 뒤 역대급 매출을 달성하셨다.

기본적으로 클로이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수주를 넣어버렸으며, 다른 회사에서도 프리미엄을 주고 자율운항선박을 구하려고 난리였다.

덕분에 제일중공업 직원들은 휴일도 없이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심지어 몇몇 군수업체와 항공 및 우주산업에서도 소형핵융합로를 팔 생각이 없냐면서 나에게 은근슬쩍 물어왔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건 조만간 내가 써먹을 거거든.

할아버지께서 이야기를 해두신다고 했으니, 나는 둘째 삼촌에게 사업제안서와 몇 가지 제품에 대한 도면을 보냈다.

아마 둘째 삼촌은 이번에도 펄쩍 뛰면서 KW 본사로 찾아오겠지.

나는 이후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눴다.

"우리 손자가 언제 이렇게까지 컸을꼬. 이제 결혼만 하면 되는데. 할애비가 처자를 알아볼까?"

“···됐어요.”

일 년 전만 해도 가문의 망나니이자 할아버지의 아픈 손가락이던 이건우. 하지만 이제는 할아버지의 제일가는 자랑이 되어 있었다.

요즘 할아버지가 회장님들의 모임에 나갈 때마다 손자 자랑을 그렇게 늘어놓는다고 한다. 나는 괜스레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 모든 게 캐리온 덕분이지.'

아마 캐리온이 없었더라면 나는 진즉에 이정혁에게 찍혀 저기 시골에서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었겠지.

괜히 캐리온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그때였다.

[동기화 완료되었습니다.]

내 머릿속에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

나는 연구소로 빨리 향했다. 이번에는 자율주행모드를 쓰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밟았다.

백하영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저녁이라서 퇴근한 건가?

대신 한 여자가 캡슐에 걸터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새하얀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까만 단발머리.

티 한점 묻어나오지 않는 눈빛이 나를 올려다본다.

눈망울은 무조건 사슴 같아야 한다고 우기더니, 엄청 예쁘네.

캐리온은 일어나서 제자리에서 핑그르르 돌았다. 내가 미리 마련해둔 새하얀 원피스가 사르르 소리를 내며 하늘거렸다.

[어떤가요?]

“···나쁘지 않네.”

[이상하군요. 이건우 님의 입가 근육을 분석해본 결과 흐뭇해하고 있습니다. 왜 솔직하지 못하시죠?]

“······.”

쓸데없이 예리하기는.

그래, 맞다. 지금 내 기분은 무척이나 흐뭇하다.

내가 만든 인공지능이 현실에 구현되다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끝을 본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캐리온이 말했다.

[제가 잠든 사이 백하영 님께 일이 생겼군요.]

그 말이 내 감상에 빠진 나를 현실로 잡아끌었다.

“백하영에게?”

[예. 윌리엄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사람이 백하영에게 접근했습니다. 지금 연구소 근처 카페에 있군요.]

“위치가 어디···. 아니, 네가 앞장서면 되겠군.”

캐리온은 빙긋 웃었다. 얘가 이렇게 감정 표현을 할 수 있구나. 또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아 생경했다.

*

윌리엄과 백하영이 있다는 카페는 정말 근처였다. 연구소 바로 앞, 걸어서 오 분 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저녁이라 그런지 가로등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통유리로 된 창문 너머로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마침 백하영이 일어나 자리를 뜨려하고 있었다.

나는 초조하게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마침내 파란불이 들어오고 건너려는 순간이었다.

부와아아앙!

내 한편에서 우렁찬 배기음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페라리가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눈을 찌르는 듯한 헤드라이트.

“꺄아아아악!”

찢어지는 높은 비명.

시간이 멈췄다.

일 년 전. 내가 죽던 날이 겹치듯 떠올랐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운전자의 모습. 그리고 그의 양복 가슴에서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는 금색 브로치.

호루스 문양을 볼 때마다 느껴지던 신경을 긁는 듯한 느낌.

의식의 저변에서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깨닫는 게 너무 늦어버렸다.

멈췄던 시간이 돌아온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차는 이미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피하기는 이미 늦었다.

급격히 빨라진 심장박동에 마치 심장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이건우 님의 신변에 이상을 감지했습니다.]

[보호 모드에 들어갑니다.]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달려오는 자동차보다 빠른 속도로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끼이이익!

동시에 역주행하던 자동차가 뒤집히며 하늘로 붕 날아올랐다.

눈앞에서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마치 세상이 뒤집히는 느낌.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콰앙!

그리고 자동차는 나를 간발의 차로 스치며 뒤편에 떨어졌다.

[제거 완료. 이건우 님의 안전을 확보했습니다.]

기이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

두쿵 두쿵 두쿵 두쿵!

이제야 거센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캐리온이 나에게 다가와서 손목을 잡았다.

[괜찮으십니까? 혈압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졌습니다.]

내 손목을 잡은 캐리온의 손은 마치 사람의 것처럼 따듯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일단 상황 파악이 먼저였다.

사람들이 꺅꺅 비명을 지르며 119에 신고했다. 나는 그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전복된 페라리의 프레임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찌그러진 문 사이로 삐져나온 재킷에는 윌리엄과 똑같은 브로치가 달려있었다.

“···역시”

과거, 나를 죽음으로 몰았던 교통사고.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했던 교통사고는 우연이 아니었다.

언제 흥분했었냐는 듯 내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나는 차분히 시선을 돌려 카페를 쳐다보았다. 벌떡 일어나서 경악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윌리엄 미네르바.

내 원수였다.

*

윌리엄은 방금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했다.

이건우의 코앞까지 들이닥친 차가 갑자기 타이어와 창문이 펑하고 터지더니 그대로 하늘을 날아올랐다.

‘총인가?’

아니, 총이라고 하기에는 말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폭탄에라도 맞은 듯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탄약이나 탄피 같은 발사체의 흔적은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기술이었다.

윌리엄은 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끝없이 기술을 찍어내는 인공지능.

마르지 않는 자본과 탄탄한 산업기반.

이제는 거기에 가공할만한 무력까지 갖춰졌다고?

“이제 미뤄두면 안 되겠어.”

그는 포비드 사태를 이용해서 세계에 혼란을 가져오려고 했다.

정체된 세계의 흐름. 그 안에서 새로운 산업과 사람들이 나타났고, 윌리엄의 은밀한 운신은 점점 힘에 부치고 있었다.

윌리엄은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포비드라는 대형 사태를 마련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다시 한번 세계를 장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때 어느 개발자가 만든 인공지능과 ‘생물학 무기 감시 프로젝트’ 때문에 들킬 뻔했지만, 그를 죽여버리는 것으로 상황을 해결했다.

원래대로라면 세계는 포비드로 잠식되어 최소 인구의 20%는 줄어들었어야 마땅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의 경쟁자들도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하였을 것이다.

윌리엄은 그저 그들이 남긴 것을 주워 먹으며 조용히 세를 불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우 한 사람 때문에 모든 게 박살났다.

어디서 준비한 것인지, 포비드가 통과할 수 없는 마스크 필터를 가지고 나온 것부터 일이 틀어졌다. 뒤이어 나온 미니온 트래킹이 전염병의 확산을 막았고, 미니온 메딕은 결국 치료제를 개발해냈다.

향후 몇 년은 더 기승을 부려야 할 전염병이 일 년만에 끝나게 생긴 것이다.

이건우를 죽이는 일. 이제 더이상 늦추면 안 된다.

그는 가문 연합을 소집했다.

*

나는 사고현장에 있었던 까닭에 경찰에게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왔다. 그 사이 윌리엄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교통사고와 엮였다는 것을 알게 된 기자들은 난리를 치며 ‘이건우 사장 뺑소니 당할 뻔해!’ 뭐 이딴 식의 기사를 갈겼다.

깜짝 놀란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차례대로 전화해서 조심하면서 다니라고 했고, 나는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내가 혼나는 거야?

어쨌든.

나는 다시 백하영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하영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물었다.

“그거···. 디스트론(Destron) 맞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향해 달려오던 페라리를 막아선 건 디스트로이 온, 줄여서 디스트론이었다.

캐리온의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조직은 미스리늄으로 분자인식, 물질수송, 에너지 변환, 정보처리 등의 기능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캐리온은 이 중 일부를 떼어내서 탄환으로 변환하여 쏘아낸 것이다. 순식간에 차를 전복시키는 폭발력의 정체는 바로 미스리늄이었다.

만들 당시에는 방위산업체를 만들 때 써먹을 용도로 시험적으로 넣어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내가 수긍하자 백하영은 약간 겁을 먹은 얼굴이 되었다.

“죽여도 괜찮은 거예요?”

“저를 죽이려고 했던 놈들입니다. 안 들키면 장땡이에요.”

세포조직만큼 작은 미스리늄은 폭발하면서 기화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말에 백하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봤지만 나는 딱히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를 한번 죽인 새끼인 데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을 죽였을 텐데 이걸 가지고 안타까워할 만큼 성인군자는 아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당신에게 왜 접근한 거죠?”

“아!”

백하영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탄성을 지르며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나와 캐리온의 관계를 파악한 것부터, 카페 안을 자기 사람으로 채워넣어 그녀를 죽이려했던 것까지.

“큰일날 뻔했네요.”

그건 그렇고 이거 되게 짜증 나네.

저 새끼가 감히 나를 죽이려고 하네? 아니 심지어 나를 한번 죽였네?

그렇다면 나도 똑같이 갚아줄 수밖에.

하지만 단순히 윌리엄만 죽이고 끝낼 일은 아니었다. 윌리엄을 죽이면 내 복수는 끝이지만, 그러면 제2의 윌리엄이 나타나겠지.

그는 똑같이 나와 캐리온을 노릴 것이다.

아예 미네르바 가문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게 낫다.

원래 되로 주면 말로 받는 법이 아니겠는가?

감히 나를 건드렸으면 가문을 잃을 각오 정도는 하고 있어야지.

나는 백하영을 돌려보낸 후 캐리온에게 말했다.

“그래도 화풀이를 할 상대는 필요하겠지?”

내 생각을 읽은 듯 캐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사업체에다가 폭탄을 한 개씩 배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벨라가 아이작에게서 가문의 사업 지배구조에 대한 자료를 빼내던 날.

나는 그 자료를 조작했다.

그리고 조작한 업체에 접근하는 사람은 윌리엄 미네르바밖에 없다.

나는 캐리온에게 시켜서 그 업체들을 싹 털어버리라고 했다. 추가로 놈이 부리는 업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파악했고.

“그래. 방금 보여준 디스트론이면 딱 좋을 거야.”

보이지도, 막을 수도 없는 미스리늄 폭탄.

복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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