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50화 (150/183)

드러나는 윤곽 (3)

150화

캐리온 프로젝트.

캐리온은 자신의 몸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진행하고 있었다. 나노온이나 뉴클리온을 개발하는 와중에도 캐리온은 프로젝트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프로젝트에는 캐리온이 아닌 다른 총책임자도 있었다.

바로 백하영.

그녀는 예전에 미니온-메딕의 도움을 받아 피부재생술을 완성한 전적이 있다. 당시 백하영은 기술적 어려움으로 연구가 꽉 막힌 상황이었는데, 미니온-메딕의 서포트로 성공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화상을 치료해주기 위해 시작한 일을, 캐리온의 도움 덕분에 마무리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피부재생술은 포비드에 걸린 환자의 상한 피부를 재생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이로 인해 그녀는 엄청난 돈을 챙길 수 있었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할 일이 없었다.

평생소원인 완벽한 피부조직의 재생은 이미 이루었고, 남들이 벌 수 없는 돈을 충분히 벌었다.

그리고 이건우가 그녀를 끌어들일 때 제시했던 연구비 천억 원은 펑펑 썼는데도 아직도 다 쓰지 못했다.

바로 그때, 이미 죽어버린 닥터 온의 신분을 이용한 캐리온이 그녀에게 접근했다.

인간을 닮은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를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처음에는 그저 허무맹랑한 소리로 생각했다. 휴머노이드라니. 아직 일러도 너무 이른 기술이었다.

하지만 캐리온이 보내준 자료를 읽어보는 순간, 백하영의 생각은 바뀌었다.

'이거 생각보다 가능성이 있겠는데?'

신체변형기술, 유전자를 조작하는 생명편집기술, 인공 세포나 인공혈액을 만드는 나노기술 등. 이미 휴머노이드 제작과 관련된 수많은 기술과 이론이 정립되어 있었다.

숙원을 이루고 새로운 목표를 찾지 못한 그녀에게, 캐리온의 제안은 무척 흥미가 동했다.

결국 그녀는 캐리온의 제안을 수락했다.

백하영이 담당한 일은 인공으로 만든 피부, 혈액, 그리고 관절 등을 이용해서 캐리온의 신체를 구현하는 일이었다.

연구는 거침이 없었다. 어딘가 막히는 게 있다 싶으면 캐리온이 적절한 조언을 해줘 모두 뚫어주었다.

백하영은 막힘없는 연구에 푹 빠졌고, 밤낮 가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캐리온의 몸이 완성되기 직전이었다. 백하영은 캐리온의 신체가 담긴 신체를 보았다. 이제 저 몸에 프로그램만 업로드하면 완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이건우에게 연락하는 걸 망설이고 있었다.

“···캐리 교수”

휴머노이드의 얼굴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캐리 교수와 똑 닮아있었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접근한 닥터 온과 저기 누워있는 캐리 교수의 이름.

조합해보면 캐리온이었다.

그리고 캐리온은 그녀에게 ‘휴머노이드 프로젝트’라고만 알려줬지만, 백하영은 프로젝트의 말미에 정확한 명칭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캐리온 프로젝트.

익숙한 이름이었다. 백하영은 연구소장이자 캐리온을 개발해낸 개발자를 떠올렸다. 일 년 전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비운의 개발자.

그가 죽으면서 캐리온은 사라졌고, 그녀가 참여하고 있던 생물학 무기 감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그런데 그 잔재를 여기서 찾게 될 줄이야.

생각해보면 의심될만한 점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먼저 방역에 톡톡히 공헌한 미니온-트래킹이나, 치료제 개발을 주도한 미니온-메딕은 보통 인공지능이 아니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예전에 이건우와 만나서 대화했던 걸 기억해냈다.

- 축하드려요. 평생소원을 이루겠네요.

자신의 피부재생술을 두고 ‘평생소원’이라고 일컬었다. 백하영은 이건우에게 자신의 소원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때 이건우는 ‘피부조직의 완전한 재생. 그 정도 성과면 누군가에게는 평생소원이 아닐까요?’라며 얼버무리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하니 미심쩍기 그지없었다.

모든 정황증거가 명백해 보였다.

'정말 이 ‘캐리온’이 그 ‘캐리온’일까?'

그녀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

캐리온이 나를 재촉했다.

[제 몸이 완성됐습니다.]

“그래서 연구소로 가고 있잖아.”

[자율주행모드를 해제하고 빨리 밟으십시오!]

“인마. 그거 신호위반이야.”

[언제부터 법을 잘 지켰다고.]

캐리온이 투덜거렸지만 준법정신이 투철한 나는 캐리온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해줬다.

연구소로 들어온 나는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는 휴머노이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워낙 규모가 큰 프로젝트이기에 연구동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으며, 관계자 이외의 사람은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곳이었다.

랩실 안에는 백하영이 먼저 와 있었다. 그녀 앞에는 커다란 캡슐이 있었다.

“이건가요?”

백하영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캡슐 앞에 섰다.

마침내, 뚜껑이 열리며 캐리온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드러났다.

캐리온이 뿌듯하게 말했다.

[위대한 인공지능을 담을 신체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 같은 뽀얀 피부에, 인공모발을 이식한 검은 단발.

그리고 미스리늄으로 구현한, 물리적 공격에도 끄떡없는 인공 피부조직.

전류가 담긴 혈액, 수억 개의 양자 센서가 달린 세포조직.

얼굴은 캐리온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캐리 교수였다.

노벨상 시상식 때 전세계가 아름답다고 찬양하던 외모가 그대로 담겨있었다.

“그럼 프로그램을 업로드 할게요.”

마무리 작업은 내가 맡기로 했다. 캐리온은 늘 내 곁에 있었는데, 이게 뭐라고 가슴이 다 떨렸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을 들고 스스로 끼워 넣었다.

간단한 조작이 끝나고 입력 버튼을 누르는 순간,

[프로그램 업로드를 시작합니다]

위이이잉

반투명한 캡슐이 스르르 닫히고 푸른 빛으로 휩싸였다. 나와 백하영은 긴장된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방대한 데이터가 전송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캐리온?

마음속으로 불러봤지만 캐리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체와 동기화하는 데 온전히 집중하는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조용해진 머릿속이 아쉽기도 했다.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던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한 기분.

나는 그 감정을 곱씹다가 백하영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

나는 백하영과 커피를 하나씩 들고 산책로를 걸었다. 우리는 각자 생각에 잠겨 침묵 속에 그저 발걸음이 가는 대로 걸었다.

먼저 생각이 정리된 백하영이 입을 열었다.

“작년에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 죽었어요.”

“······.”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누구를 말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백하영이라면 나에게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캐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그리고 캐리 교수의 얼굴을 봤다면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겠지.

지금까지 참고 기다려준 그녀가 고마웠다.

백하영이 말했다.

“의문의 사고였어요. 동료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렀죠. 범인은 찾을 수가 없었고, 경찰에서도 아무 말 없이 사건을 종결하고 넘어갔어요. 동료가 하던 프로젝트도 흐지부지 끝났고요.”

그랬었구나.

내 사고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들은 건 처음이었다.

내가 죽은 지 이제 1년이 되었다. 지금껏 나의 죽음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어려워 피하고만 있는데, 이 기회에 제대로 맞닥뜨리게 되었다.

백하영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사장님을 만났죠. 저한테는 휴머노이드 프로젝트라고만 알려줬지만, 일을 진행하다가 정식 명칭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캐리온 프로젝트.”

“맞아요. 사실 사장님이 미니온이란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던 건데···.”

백하영은 줄곧 의심하던 걸 차근차근 늘어놓았다. 나란히 걷던 우리는 어느새 발걸음을 멈추었다. 백하영은 나를 돌아보았다. 진실을 요구하는 시선이 나를 올곧게 바라본다.

“사장님이 캐리온을 가지고 있는 것 맞죠?”

나는 고민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그녀에게 말해야 하는 것일까?

*

윌리엄 미네르바는 한국에 왔다. 백하영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백하영.

개발자가 죽기 전에 프로젝트를 함께 한 동료였기도 하면서, 이건우가 KW 제약을 설립할 때 가장 먼저 끌어들인 연구원이었다.

이건우와 개발자 사이의 유일한 교집합.

그는 백하영이 무언가를 알고있다는 걸 반쯤 확신했다.

백하영에게 접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일과는 판에 박힌 듯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 대학의 연구원인 척하면서 그녀에게 접근했다.

윌리엄은 생각했다.

‘그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백하영 주변을 감시하고 있을 텐데···. 뭐, 당장 백하영과 만나는 건 막지 않겠다는 건가.’

본인이 여기까지 온 이상, 이건우는 분명 나타날 것이다.

백하영과 접촉하는 걸 이건우가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는 내심 이건우가 오기를 바랐다. 그를 위한 선물도 하나 준비했는데, 오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았다.

연구소 근처의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자 백하영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바로 윌리엄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웨슬러 교수님?”

그녀는 윌리엄의 가명을 불렀다. 웨슬러 교수는 그가 가진 가짜 신분 중 하나였다.

윌리엄은 빙긋 웃었다.

“반갑습니다. 연구원님이 발명한 피부조직재생에 대해서 감명을 받아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메일로 보내주신 논문은 읽어봤어요.”

그들은 잠시 논문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윌리엄은 어차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흘려넘겼다.

그의 이상한 태도를 눈치챈 백하영이 말했다.

“단순히 피부조직재생 때문에 오신 건 아닌 듯하군요.”

그녀의 날카로운 말에 윌리엄은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정신이 팔려있었나 봅니다.”

“재미있는 소문이요?”

백하영은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연구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다고 해서 나왔는데, 상대가 딴소리만 늘어놓고 있으니 당연히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백하영을 흠칫하게 했다.

“캐리온에 대해서 아십니까?”

“네?”

캐리온. 그 이름을 들은 백하영이 동요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녀는 경계가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윌리엄은 속을 알 수 없는 듯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다.

“그냥, 그런 말이 들려서 말입니다. 이건우 사장과 캐리온이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말입니다.”

백하영은 불현듯 며칠 전 이건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 제가 캐리온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랑 소장님은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소장님은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는 걸 아시고 캐리온을 통제할 수 있는 코드를 저한테 넘기셨어요. 그리고 그다음 날 돌아가셨지요.’

‘죄송합니다. 이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군요. 소장님과의 약속이 있어서요. 비밀은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재벌 3세와 소장이 관련이 있는지, 갑자기 나타난 이건우의 정체는 또 무엇인지 등.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백하영은 진실을 말해준 이건우가 고마웠다.

사실,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 진실을 파내려고 하고 있었다.

“뭘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논문에 관한 게 아니라면 당신과 더 할 얘기는 없어요.”

백하영은 매몰차게 말하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윌리엄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녀는 단지 미끼였을 뿐이다.

카페 유리창 밖으로 다가오는 이건우의 모습이 보였다.

답을 확인한 윌리엄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을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겠군요.”

자신이 이건우의 비밀을 알고있다는 사실을, 백하영 또한 인지했다. 그의 불길한 말에 백하영이 주춤했다.

“그게 무슨···.”

딱, 윌리엄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카페에 있는 모든 손님이 백하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떠들던 소리가 사라지고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

그녀를 향한 무감정한 시선들.

핸드백을 잡은 백하영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소름이 쫙 끼쳤다.

윌리엄이 말했다.

“먼저 간 당신의 동료 곁으로 보내드리지요. 곧 있으면 이건우도 따라갈 테니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을 겁니다.”

마침 그가 이건우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시동을 걸고 있었다.

카페를 향해 다가오는 이건우와, 그런 이건우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푸른색 페라리.

일 년 전, 개발자를 죽였던 차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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