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49화 (149/183)

드러나는 윤곽 (2)

로렌 제약의 데이터가 몽땅 사라졌다.

일반 직원에 대한 인사기록부터, 중요한 내부 기밀문서까지.

심지어 포비드 치료제 개발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개발했거나 새로 개발 중인 모든 약품들에 정보까지 날아가 버린 것이다.

당연히 회사는 발칵 뒤집혔고, 회사의 중진들이 모두 소집되었다. 정확한 내막을 모르는 그들은 그저 벨라의 말만 듣고 해커의 공격으로 이 사달이 벌어졌다고 알게 되었다. 덕분에 보안실 책임자는 대회의실에 끌려가 된통 깨지고 있었다.

“도대체 보안을 어떻게 했길래 해커가 이 난리를 치는 거야!”

“자료가 모두 없어지다니! 이 사실이 밖에 알려지면 로렌 제약은 끝장입니다!”

"당장 파이저는 치료제 생산에 들어갔다는데, 우리는 어쩔 겁니까!"

벨라도 이 상황이 끔찍했지만 그래도 완전 패닉에 빠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책을 강구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윌리엄에게 받아온 자료.

그녀는 윌리엄이 준 자료를 확인했고, 자료는 기존의 치료제보다 월등했다. 벨라는 전문가를 고용해 임상 데이터와 비슷한 형식으로 완벽하게 조작해냈다. 누가 보더라도 흠잡을 데 없어 보였다.

탕탕탕

그녀는 침착한 얼굴로 책상을 두드리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사들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거칠어진 숨소리. 그들이 얼마나 이 상황에 당황스러워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벨라는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다.

만약 이 위기를 극복하는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오히려 로렌 제약 내에서 그녀의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해줄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가문의 산업 지배구조를 팔아넘겼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서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일단 그녀라도 살고 봐야지.

벨라는 눈앞의 이득을 보며 애써 죄책감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벨라가 입을 열었다.

“자료는 지금 복구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태를 덮으려고 할수록 오히려 눈에 띌 겁니다. 차라리 다른 건수를 터뜨려서 시선을 돌려야겠지요.”

"혹시 어떤 방안이라도 있습니까?”

벨라는 싱긋 웃었다. 자신만만한 미소였다.

“저희 연구진이 마침내 포비드 치료제를 완전히 개발해냈습니다. 다행히 이 자료는 다른 장소에 보관해서 해커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오!”

“역시 대표님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파이저 제약에 이은 신약의 개발. 당장 일어난 해킹 사건쯤은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뉴스였다.

어느덧 사람들은 벨라의 이름을 추켜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 같아 벨라는 기분이 들떴다.

“신경세포가 괴사하는 문제도, 근막에 염증이 생기는 부분을 비롯해 자잘한 부작용까지 완벽하게 해결했어요. 파이저 제약이 먼저 만들어냈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치료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빨리 치료제 개발을 하고, 영국 정부에 말해 긴급승인절차를 밟기로 동의했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들은 즉시 보도자료로 뿌려졌다.

보도가 나간 직후, 벨라의 핸드폰은 불이라도 난 듯 울리기 시작했다. 다들 기사를 본 것일까? 연락이 엄청나게 오고 있었다.

‘치료제 개발에 대해 축하 전화를 해주는 것이겠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물론 자료의 복구는 여전히 어려워 보였고, 로렌 제약의 발판은 흔들리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핸드폰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지만, 벨라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가 기다리는 전화는 따로 있었다. 벨라는 그 전화가 올 때까지 꾹 참았다.

그리고 마침내 왔다.

아이작 로스차일드의 전화가.

벨라는 기대가 되었다.

아버지가 칭찬을 해주시겠지? 공로는 확실하게 인정해주시니까 나에게 선물을 줄지도 몰라. 뭘 달라고 할까?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오는 고양감.

그녀는 클로이처럼 애교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 벨라, 너 뭘 하고 다니는 거냐.

아이작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는 약간의 분노가 담겨있었지만, 들떠있던 벨라는 미처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떠들었다.

“아, 기사를 보셨구나. 별거 아니에요. 엘렌 홉스보다 조금 늦었긴 했지만···.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치료제를 완성해냈어요.”

- 너···.

말을 잇지 못한 채 넘어오는 깊은 한숨 소리.

그제야 벨라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버지?”

- 당장 본가로 돌아오너라. 참, 그전에 기사를 확인하는 게 좋겠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하고는 말을 섞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매몰찬 말이었다.

벨라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끊어진 전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기사를 확인하라니?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는 듯한 뉘앙스는 또 대체 무엇인가.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컴퓨터를 켜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메인 화면에 박힌 기사를 보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로렌 제약 임상 데이터 조작···보건 당국 “확인 중”>

<로렌 제약, 생체 실험 의혹 제기>

벨라는, 로렌 제약은 이제 끝장이었다.

*

윌리엄은 벨라가 가져다준 자료를 검토해서 이를 기반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의 사업을 차지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로스차일드가 여러 산업에 손을 뻗고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중심은 금융업이었다.

로스차일드의 직계든 방계든 모두가 금융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드러나 있는 규모만 하더라도 가히 나라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조만간, 로스차일드의 그 부를 윌리엄이 집어삼킬 예정이었다. 미네르바 가문 또한 수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물밑에서 경제를 장악해왔다. 아무도 모르는 그 은밀한 손길은 로스차일드의 뿌리를 조금씩 썩게 만들 것이다.

벨라가 자료를 정리하고 발표하는 동안, 윌리엄 쪽도 로스차일드 가문을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벨라가 건네준 지배구조에 대한 자료는 유용했다. 이걸 바탕으로 로스차일드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조만간 로스차일드도 윌리엄의 손아귀에 넣고 흔들 수 있을 터였다.

‘기특한 녀석’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 벨라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다. 윌리엄은 미소를 지으며 공격을 시작했다.

윌리엄의 공격은 항상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목표에 접근해서 그들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탐욕을 건드리는 것이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표물이 된 사람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윌리엄에게 모든 것을 내주게 된다.

마치 벨라가 윌리엄에게 넘어왔던 것처럼.

그들은 제 발로 윌리엄에게 모든 걸 건네주고 자멸한다.

윌리엄은 느긋하게 책상에 앉아 그의 조직원들이 가지고 올 결과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비서가 헐레벌떡 서재로 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윌리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지?”

“그게···. 로렌 제약의 임상 데이터가 모두 조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생체실험을 했다는 것까지 모두 밝혀졌습니다. 빨리 끊어내지 않으면 저희까지 엮여 들어갈지 모릅니다.”

윌리엄은 코웃음을 쳤다. 별거 아니었다. 이건우가 그렇게 할 줄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 벨라와의 연결고리는 다 끊어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그런데 비서가 우물쭈물하는 것 아닌가.

“또 무슨 일이 있는가?”

“로스차일드의 사업에 대한 지배구조가 모두 조작되어 있었습니다.”

이건 좀 더 충격이었다. 윌리엄은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조작됐다고?”

“예. 지금 저희가 작업에 들어간 기업들은 로스차일드와 전혀 상관없는 사업체들이었습니다.”

“······.”

윌리엄은 일의 전말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이건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아무리 되짚어봐도 그의 계획은 철저했다. 그 어디에도 이건우가 개입할 틈은 없었다.

벨라를 통해 지배구조를 파악하려고 했던 계획은 아무도 몰랐다.

그는 이건우가 로스차일드 가문을 계속 감시하고 있다가, 단 한 순간 보안망이 뚫린 틈을 타서 순식간에 조작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머리가 혼란으로 휩싸였다.

이건우.

만만하게 본 적은 없지만, 이 정도로 정보전에 뛰어날 줄은 몰랐다.

그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한 가지 생각에 미쳤다.

‘이건우가 왜 나에게 조작된 정보를 넘겨준 거지?’

의문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답을 알 수 있었다. 등골을 스치는 서늘한 감각.

‘설마 나를 꾀어내려고?’

그는 비서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더 남은 듯 침울한 표정으로 서 있는 비서.

윌리엄은 혀가 바싹 타는 걸 느꼈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공격하기로 한 사업체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 그게”

“어떻게 되었냐니까!”

언성이 높아지자 비서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자료가 다 날아갔습니다.”

일부러 벨라와 똑같은 방식을 취해서 공격한 사람이 누구인지 암시하는 자신감.

윌리엄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참.”

이 정도면 완전히 이건우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게 아닌가. 늘 철두철미하던 그가 이렇게까지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음지에 숨어있었던 그의 가문에 속한 사업체들이 적발되었다.

가문 연합에서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사업체가 이건우가 손을 쓰자 단 한 번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미네르바 가문의 사업체의 일각이나마 드러났다는 것이 뼈아팠다.

그뿐만이 아니다.

벨라도 잃고, 벨라를 통해서 로렌 제약에 한 발 걸치려는 계획도 무산됐다.

로렌 제약이 어떤 곳이던가!

발렌베리 가문과 로스차일드 가문의 합작 회사이다.

두 가문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미치겠군.”

이건우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방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늘 그 이상을 보여준다.

특히 정보전은 윌리엄도 꽤 자신 있어 하는 분야이다.

하지만 이번에 로스차일드 가문의 정보를 빼낼 때는 완전히 탈탈 털리고 말았다.

이건 일개 개인의 해킹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상해. 이상하단 말이지···.’

뭔가 잊어버리고 있는 듯한 찜찜한 느낌.

분명 이런 능력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러다 문득 작년에 캐리온을 개발했다던 한 개발자를 떠올렸다.

윌리엄이 보기에 캐리온은 위험천만한 무기였다.

가문 아래에 있는 연구소에서 캐리온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의 일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일곱 가문은 쪽도 못 쓴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숨어있던 것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내고,

구시대부터 이어져 온 기득권을 폐하는.

스스로 새로운 혁명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그래서 일찌감치 놈을 죽여 없애버렸던 것인데···.

지금 이 상황은 마치 그 캐리온이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흐음.”

그 개발자가 죽고 캐리온은 사라졌다고 들었다.

아무도 캐리온을 통제할 코드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대로 봉인됐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건우와 캐리온 사이에 관련이 있는 걸까?

약간의 가능성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비서에게 시켜서 예전에 이건우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이건우의 모든 행적이 담긴 자료.

윌리엄은 안경을 쓰고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예전에는 망나니로 살다가 양소희 스캔들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복동생이 이건우를 쫓아내기 위한 함정이었지만, 이건우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오히려 이복동생에게 한 방 먹였다.

이후 이복동생과 아버지를 차례로 쫓아내고, 미디어를 장악했다.

그다음에는 KW 제약을 설립해서 포비드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고, 이후는 그들이 아는 대로였다.

한번 끝까지 읽고 다시 처음부터 탐독하던 윌리엄은 문득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시기가 공교로웠다.

캐리온을 개발한 개발자가 죽은 때가 11월 14일.

이건우가 스캔들로 두각을 나타낸 때가 11월 15일.

하루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개발자와 이건우가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개발자가 이건우에게 캐리온을 통제할 수 있는 코드를 넘겼다면?

지금으로 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었다. 그 가정을 하고 보니 보이는 게 더 많았다.

“그래. 개발자는 생물학 무기 감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지. 그 사실을 이건우와 공유했다면 이후 행보도 말이 돼. 그래서 이건우가 빨리 포비드의 위험성을 예측하고 치료제 개발에 나섰던 거야.”

중국의 국가안전부를 해킹한 말도 안 되는 해킹 능력도.

수많은 신기술을 찍어내듯 만든 것도.

모두 일리가 있었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필요했다.

“백하영.”

이번에 KW 제약에서 피부조직의 완벽한 재생을 해낸 사람으로, 포비드로 인한 환부를 치료하는 데 톡톡한 공헌을 했다.

그리고 과거의 캐리온과 현재의 이건우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한때 천재 개발자와 같은 프로젝트를 했으며, 현재 이건우의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만약 개발자가 이건우가 아는 사이라면, 백하영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작은 단서를 끄집어낸 윌리엄은 곧장 한국으로 출발했다.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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