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47화 (147/183)

왜 내 물건에 손을 대고 그래 (2)

내가 손짓하자 옆에 있던 한서진이 서류를 건넸다.

“알아보니까 대표직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많이 해 드셨더라고.”

나는 책상 위로 파일을 하나씩 집어 던졌다.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백신 입찰 담합 의혹 건.”

“대량 납품 비리 혐의에다가”

“리베이트는 관행처럼 계속 해왔으며”

“별장을 샀는데 실거래가 조작도 일어났고”

“이쯤 되니 비서랑 바람이 나는 건 귀여워 보일 정도네.”

내가 말을 마쳤을 때, 책상 위에는 장현태의 비리를 증명해주는 서류가 산처럼 쌓였다.

무자비하게 드러나는 진실에 장현태는 반쯤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아, 아니···. 이걸 어떻게···.”

최선을 다해서 숨겼던 비밀이, 어느새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저 손안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마지막 남은 서류를 꺼내 들었다.

“벌써 넋이 나가면 안 되는데. 제일 중요한 게 남아있잖아.”

내 손에서 팔랑팔랑거리는 서류. 장현태는 그 서류가 뭔지 알 것만 같았다.

벨라에게 약점을 잡힌 바로 그 서류가 분명했다. 이걸 이건우가 알게 된 이상, 자신은 끝이었다.

장현태의 얼굴에 절망이 서렸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최선을 다해 숨긴 비밀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 비밀을 꺼내버렸다.

문득 예전에 들은 말이 떠올랐다.

그는 시험약을 빼돌리면서 고위층과 인맥을 쌓았고, 그들은 종종 이건우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건우의 엄청난 기술력과 사업수완.

그리고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사람을 내처 버리는 잔혹함.

아버지를 물러나게 하고, 외삼촌을 보내고 오성 ENP를 장악했으며, 중국과 일본을 주무를 때 있었던 뒷얘기를 그는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그와 맞섰던 모든 사람은 그 끝이 좋지 않았다. 그러면서 충고를 건넸다.

‘장 대표도 혹여나 이건우 사장과 맞설 생각을 하지 말게.’

‘허허. 이 사람도 참. 장 대표가 그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파이저 제약은 지금 KW 제약과 같이 일하고 있는데.’

장현태는 그들의 말이 과장된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도 빠짐없이 사실이었다.

장현태는, 잘못 걸린 것이다. 그는 몸에서 힘을 축 늘어뜨렸다.

“···도대체 어떻게 안 겁니까?”

나는 손을 좌우로 까딱거렸다.

“네가 물을 질문은 그게 아닌 거 같은데.”

뭔가 여지를 가지고 있는 나의 말. 장현태는 그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읽었다.

“그러면 저를 살려주기라도 할 겁니까?”

물론 나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지만, 그 희망을 지금 꺾을 필요는 없다.

“네가 하는 걸 봐서.”

사실 장현태를 이용해서 기밀을 빼내려고 한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일.

과연 윌리엄 미네르바 같은 인물이 이런 계략을 썼을까?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려고 하는 사람이?

절대 아닐 것이다.

캐리온이 정체도 알아내지 못한 사람이 겨우 이 정도일 리 없지.

이건 누가 봐도 벨라가 독단적으로 한 짓이다.

윌리엄 미네르바가 뭘 원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벨라를 통해서 로스차일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

그러면 나도 놈이 쓰려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바로 벨라를 통해서 놈의 정체를 파악하는 방법.

나는 준비해둔 USB를 꺼냈다.

“포비드 치료제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는 자료이다. 이걸 벨라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돼.”

“네?”

장현태는 이걸 왜 나한테 주냐는 듯 되물었지만, 나는 더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뺨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뭘 꾸물거리고 있어? 그 하찮은 목숨을 조금이라도 연명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아, 예. 예!”

장현태는 부리나케 뛰어나갔고 나는 웃으며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

장현태는 밀실에서 벨라를 다시 만났다. 대신 이번에 그의 몸에는 초소형카메라와 녹음기가 달려있었다. 캐리온이 특별히 만들어 낸 이 장비들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탐지기에도 웬만해선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허튼짓을 못 하게 한서진까지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다.

장현태는 벨라에게 USB를 건네주었다.

“가져왔습니다.”

장현태의 손은 긴장으로 땀이 흥건했지만, 벨라는 그 긴장이 도둑질의 여파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벨라는 옆에 있는 기술자에게 USB를 넘겨주었다.

“확인해봐.”

이건우는 IT 쪽으로도 유명하다. 중국 국가안전부 서버망을 털어먹은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당연히 그걸 잊어버리지 않았다.

본사 컴퓨터에 꽂기 전에 온갖 검사를 거쳐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여기서 핵심 자료만 추출해서 가져갈 생각이었다.

기술자가 온갖 장비가 주렁주렁 달린 컴퓨터에 USB를 꽂는 순간 장현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설마 들키는 건 아니겠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건우가 USB에 무슨 짓거리를 해놨다는 건 알고있다. 그게 여기서 들켜버린다면?

화난 벨라가 자신의 모든 비밀을 폭로해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미 이건우가 알고있는 시점에서 엘렌 홉스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겠지만··· 그에게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갈 때 가더라도 챙길 건 다 챙기고 싶었다.

그 욕심에 장현태는 안절부절못했고, 벨라는 그런 그를 수상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왜 그러죠?”

“아, 아닙니다. 그냥 더워서···.”

“흐음···.”

말도 안 되는 변명. 지금은 12월 중순이었다. 장현태에 대한 벨라의 의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벨라의 의심이 짙어지는 와중, 검사를 마친 보안실장이 말했다.

“깨끗합니다.”

벨라는 힐끔 장현태를 보더니 USB를 받아 챙겼다. 장현태는 아직도 긴장한 채 있었다.

이렇게 담이 작은 사람이, 어떻게 시험약을 빼돌릴 생각을 했는지 몰라.

그녀는 장현태의 어깨를 툭툭 치며 나갔다.

“걱정하지 마. 네 비밀은 지켜줄 테니까.”

벨라가 떠난 후, 장현태는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아.”

벨라도 속였고, 이건우가 준 숙제도 마쳤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겼다.

‘왜 USB에서 아무것도 발견된 게 없지? 가짜 자료인가? 그러면 연구소에서 검사하면 바로 들통날 텐데.’

어찌되었든 그가 알 바는 아니었지만.

오직 이건우만이 모든 비밀을 알고 있을 것이다.

*

USB에는 캐리온의 분신, 미니온이 들어가 있었다.

이미 예전에 중국 서버를 거하게 털어먹은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USB에 해킹 프로그램을 심어두는 방식은 이제 먹히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해킹 프로그램을 넣기보다는, USB 자체를 하나의 인공지능으로 만들어버렸다.

미니온을 조종하던 캐리온이 말했다.

[벨라가 테스트를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가소롭다는 캐리온의 말투.

그도 그럴 것이다. USB에는 해킹툴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인공지능 외에는.

벨라 측의 장비와 실력으로는 미니온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캐리온이 다시 말했다.

[연구소 서버망에 접속했습니다.]

나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시작해.”

연구소 자료가 통째로 날아가면 벨라는 어떤 식으로 나올까?

기대되었다.

*

“꺄아아아아악!”

벨라는 비명을 질렀다.

“그만해! 멈춰! 멈추란 말이야!”

로렌 제약에 있는 모든 자료가 삭제되고 있었다. 몇 겹으로 만들어둔 방화벽도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백업해둔 자료까지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싹 다 없어졌다.

전원을 차단해도 이미 미니온이 장악한 서버망은 말을 듣지 않았다.

범인은 딱 하나였다. 이건우.

이딴 미친 짓거리를 하는 놈은 세상에 이건우밖에 없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책상을 쾅쾅 내리쳤다.

“이건우! 장현태! 이 개새끼들이이이익!”

윌리엄이 준 자료도, 지금까지 임상시험을 했던 자료도 모두 삭제되었다. 치료제를 만들어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다는 그녀의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 년 동안 수천억을 쏟아부은 프로젝트였다.

모든 연구원과 주주, 그리고 이사들이 이 프로젝트가 성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자료가 몽땅 날아가?

지금 성공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비웃었던 에드먼드보다 더한 결과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에드먼드는 후계 경합에서는 배제되었지만, CEO 직위는 유지되었다.

만약 그녀가 이 일을 수습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을 지고 CEO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벨라는 핏발이 선 눈으로 연구소장을 돌아보았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야?”

“그, 그게 저도 잘···.”

연구소장도 어쩔 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가 한 거라곤 벨라가 모두 확인을 마친 USB를 꽂은 것뿐. 프로그래머도 아닌데 그걸 자신에게 물어보면 어쩌라는 말인가?

연구소장으로 있은 지 벌써 십수 년.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어봤지만, 제약회사의 자료가 싹 날아간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일이다.

이 초유의 사태에, 그는 원론적인 말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업체에 연락해서 자료 복구를 요청하는 수밖에···.”

“당장 연락해!”

연구소장은 도망치듯이 나왔다. 벨라는 손톱을 씹었다. 예쁘게 정리된 손톱은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자료 복구가 안 되면 어떡하지?

마음 같아서는 이 사단을 만든 이건우와 장현태를 고소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이 산업 스파이를 보낸 것이 먼저 문제가 될 게 뻔했다.

데이터가 모두 날아간 지금, 벨라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이건우와 엘렌이 치료제를 만들어 승승장구하는 것을 구경하는 수밖에.

아니, 한 가지 방법이 남아있기는 했다. 노벨상 시상식 때 만난 그 남자. 그 남자는 치료제에 대한 완벽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만 가져와서 데이터를 조작한다면 이 위기는 극복할 수 있는데.

그런데 벨라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는 그 남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연락처도, 사는 곳도, 심지어 이름까지도!

그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받았을 뿐, 그와 연락할 수단이 없었다.

“어떡해···아아···. 곧 있으면 치료제를 완성했다고 발표해야 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아버지의 실망한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꼭 인정받고 싶었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인 걸까.

억울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이런···. 상황이 많이 안 좋으신가 보군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벨라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중절모를 쓰고 독특한 브로치를 단 남자가 어느새 뒤에 서 있었다. 벨라가 그토록 원하던 사람, 윌리엄 미네르바였다.

윌리엄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며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벨라는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상했다. 시상식 때부터, 노란 봉투를 보냈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언제나 필요할 때만 귀신같이 나타났다.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죠?”

윌리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그게 궁금한가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제발···. 시상식 때 당신이 준 그 자료가 필요해요. 부탁할게요.”

벨라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시상식 때 보였던 도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흐음. 그때 이후로 별말이 없길래 필요없는 줄 알았는데.”

윌리엄이 살짝 빼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벨라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이 남자밖엔 없었다.

“아니에요. 그냥 그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당신도 나에게 그걸 보여준 이유가 주려고 그런 거 아닌가요? 시간이 좀 늦어졌다고 마음이 바뀐 건 아니죠?”

겉꺼풀이 모두 벗겨진 벨라는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갖고 싶은 걸 달라고 떼를 쓰는 듯한,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다른 건 신경쓰지 않는 듯한 아이.

윌리엄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신 이번에는 저도 대가를 받아야겠는데.”

“뭐든 다 줄게요. 돈이든, 제 지분이든, 뭐든 다 줄 수 있어요.”

윌리엄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원하는 건 고작 그런 게 아니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가진 산업 전반에 대한 정확한 지배구조. 그걸 가져온다면 생각해보지요.”

벨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