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46화 (146/183)

왜 내 물건에 손을 대고 그래 (1)

프라이빗 룸의 내부.

벨라는 자신을 보자마자 나가려는 장현태 대표를 보고 비웃음을 흘렸다.

“경쟁사 대표랑은 밥도 먹지 않는다는 건가? 충성심이 대단하네요.”

장현태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칼같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요즘 중요한 시기라 괜한 말이 나오는 건 피해야겠지요.”

“내가 괜한 사람을 붙잡아뒀네요. 들어가세요.”

장현태가 뒤돌아서 나가려는데 벨라의 마지막 말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간도 크게 그런 일을 저지르더니 이렇게 애사심이 강할 줄은 몰랐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장현태의 귀에는 또렷이 박혔다. 장현태는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벨라는 화들짝 놀라더니 손을 내저었다.

“어머 들었어요?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닌데. 미안해라.”

하지만 벨라의 표정은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장현태는 한숨을 참았다. 여기서 더이상 저 여자랑 얽히고 싶지 않았지만 ‘간도 크게 그런 일’이라고 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도대체 벨라는 뭘 알고서 저런 말을 내뱉는 걸까.

그가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으로 빤히 쳐다보자, 벨라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다듬어진 손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냥 이 자리에 앉아있다 보니까 여러가지 소문이 들리더라고요. 예를 들어, 장 대표님이 시험약을 빼돌렸다던가.”

그러다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아요. 설마 우리 장 대표님이 뭐가 아쉽다고 그런 일을 저지르겠어?”

장현태는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벨라는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어머, 그 반응 뭐야? 그렇게 굴면 진짜인 것 같잖아.”

벨라의 말은 사실이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임상. 한국에서 시행하는 임상은 전적으로 장현태가 주도했었다.

사실 말이 임상 2상이었지 거의 공식 치료제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이 임상에 참여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임상에 참여하는 인원수는 제한되어 있었고, 위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지원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장현태에게 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아들이 이번에 포비드에 걸렸는데 임상 2상에 넣어달라.

내 어머니가 고령이신데 포비드에 걸려서 위험하다. 제발 도와다오.

치료제가 완전히 입증된 게 아니라서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렇게 뒷돈을 받고 임상에 참여시켜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은 사람들은 별다른 부작용도 없이 지금까지 쌩쌩하게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치료해줘서 고맙다며 그에게 더 큰 돈을 안겨주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회사에 들킨다고 해도 문책만 받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 일어났다.

상류층 사이에서는 장현태가 몰래 돈을 받고 임상에 참여시켜주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사이에 포비드에 걸린 자녀와 친척들에게 시험약을 공급해달라며 청탁이 들어왔다.

그중에서는 장현태가 쉽사리 청을 거절할 수 없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임상시험용의약품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장현태의 위치라면 티 안 나게 장부를 조작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약을 빼돌리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티 나지 않게 한 달에 몇 개 정도만 빼돌렸다. 그것만으로도 제약회사 대표가 벌어들이는 수입 그 이상을 만질 수 있었다.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기회를 통해 각계각층과 쌓을 수 인맥, 이는 그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줄 터였다.

또한 평소라면 먼발치에서 바라봤어야 하는 고위 공무원과 재벌가 일원들이 돈을 싸들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그에게 쾌감을 주었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장현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포비드 2상 치료제를 빼돌리는 것은 이제 그에게 하나의 사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경쟁 회사의 대표가 이 사실을 알아버렸다.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밀이 새어나갈 일은 없었다.

장부는 철저하게 조작했고, 그의 고객들이 이 사실을 누설할 일은 없었다.

아니, 이제와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바로 상대방이 목줄을 쥐고 있다는 것.

“뭘 원하는 겁니까?”

엘렌 홉스였다면 아마 당장에 그를 해고한 후 고소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겠지.

하지만 벨라의 말을 들어보니 협상의 여지가 있었다.

장현태는 그 점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역시나, 그녀는 바라는 것이 있었다.

“말이 잘 통해서 좋네요. 아주 간단한 일이에요.”

장현태의 침울한 표정. 벨라는 모든 걸 손에 넣었다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파이저의 포비드 치료제 개발자료와 CMO(위탁생산)에 맡길 레시피, 나에게 갖고와요. 그러면 당신의 비밀은 영원히 묻힐 거예요.”

장현태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

지중해에 있는 어느 섬.

윌리엄 미네르바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요트에 누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옆에서 묵묵히 수행하던 비서가 물었다.

“벨라에게는 왜 그냥 자료를 줬습니까?”

“불만인가?”

“제가 어찌 감히. 단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말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벨라가 알아서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을 텐데요.”

윌리엄 미네르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벨라는 아직 궁지에 덜 몰렸어.”

비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서류를 가지고 장현태 대표를 협박해서 경쟁사의 신약 개발자료를 얻어내면, 오히려 궁지를 벗어나는 게 아닐까요?”

윌리엄 미네르바는 하하 웃었다. 그 유쾌한 웃음에 비서의 표정에는 점점 더 의문이 차올랐다.

“자네는 이건우를 너무 쉽게 보는군. 그가 겨우 그까짓 협잡질에 놀아날 사람으로 보이는가?”

“···그러면?”

“벨라는 분명 실패하고 말걸세. 그리고 이건우는 자신에게 수작을 건 벨라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고 말이야. 벨라는 더욱 궁지에 몰리고 그때서야 나를 찾게 되겠지.”

그리고 스스로 목줄을 채우고 그 줄을 자신에게 기꺼이 건네줄 것이다.

이렇게 로스차일드의 후계자 하나가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비록 그 비중이 크지 않다고 해도, 그녀는 로스차일드를 지탱하는 여섯 후계자 중 하나.

‘아이작이 자꾸만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군. 이제 갈아치울 때가 됐지.’

그녀를 시작으로. 로스차일드를 완전히 그의 손아귀에 쥐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윌리엄 미네르바의 짐작대로였다.

*

나는 캐리온을 통해서 모든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단순히 통신 내역뿐만 아니라 CCTV과 음성장치를 동원해서 벨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또한, 호루스의 눈 문양.

그 문양이 나타나는 즉시 나에게 바로 보고가 오도록 했다.

하지만 결과는 썩 신통치 않았다. 윌리엄의 행적에 대해 몇 번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쫓아가려고 하면 이내 연기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확한 실체를 모르고 변죽만 두드리는 느낌.

그러다 마침내.

[벨라의 사무실에서 해당 문양으로 인장이 찍힌 서류가 도착했습니다.]

캐리온이 가느다란 실마리를 발견해냈다.

이번에도 벨라가 한 건 해낸 것이다.

벽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로렌제약의 홀 CCTV가 연결되었다.

한 남자가 벨라의 비서에게 서류를 건네고 있다. 얼핏 드러난 남자의 손목에는 같은 문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다음에는 대표실로 화면이 전환됐다.

서류를 열어보고 미소를 짓는 벨라.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같이 좀 읽어볼까?

“캐리온. 저 서류를 확대해 줄 수 있나?”

[확대해서 판독하겠습니다. 스캔한 결과를 태블릿으로 보냈습니다.]

나는 태블릿에서 자료를 확인했다.

첫 장에는 ‘파이저 제약 한국 지사 / 대표 장현태’ 라는 제목이 있었다.

윌리엄 미네르바가 벨라에게 보내준 자료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캐리온이 즉시 추가적으로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주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 새끼들 봐라? 내 물건을 건드리려고 하네?”

장현태 대표가 시험약을 빼돌려서 고위 공무원과 재벌가에 공급했다.

그리고 이 일을 빌미 삼아 벨라는 장현태에게 신약 개발에 관한 자료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태블릿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로렌제약과 경쟁하는 건 괜찮았다. 윌리엄에게 자료를 받아서 치료제를 만들든 말든 상관없다.

어쨌든 페어플레이였고, 나는 그냥 최선을 다해서 상대를 밟아주면 그만이다.

윌리엄 미네르바도 마찬가지.

그가 벨라를 이용해서 로스차일드를 장악하는 건, 신경 쓰이긴 해도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 감히 내 물건을 건드려?

선을 쎄게 넘네?

그때 화면이 전환되며 장현태가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연구소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기밀을 빼돌리려는 장현태.

이를 지시한 벨라 로스차일드.

그 뒤에서 모든 걸 조종하는 윌리엄 미네르바까지.

내 머릿속에 이들에게 엿먹일 계획이 순식간에 세워졌다.

먼저, 장현태부터 조지러 간다.

*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고층 빌딩.

넓은 대표실에 청년이 상석에 앉아있다.

그 옆에는 대표실의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서 있었다.

청년은 남의 대표실에 무단으로 침입해 앉아있는 건데도, 원래 제 자리인 마냥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웠다.

이건우는 물고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툭툭 치더니 운을 띄었다.

“대표님. 누가 내 물건에 손을 대면 되게 기분 나쁘죠?”

뜬금없이 나온 말에 중년 남자는 움찔하더니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물론입니다. 그럼요. 당연히 기분 나쁘죠. 하하하.”

“재수없게 웃지 마시고요.”

“넵”

까마득하게 어린놈의 말에 대표의 입은 조개처럼 꾹 다물어졌다. 이건우는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아주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이제 서른 살인 애송이가 무슨 옛날 타령을 하나 싶었으나 대표는 가만히 경청했다.

이건우는 꽤나 오래전,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풀어놓았다.

재벌가 장남의 몸에 빙의하기 전에 있었던 일.

“제가 학부생이었을 때 개쩌는 논문을 썼거든요. 진짜 쩔었어요. 세계 학회에 제출해도 될만한 발상이었지요. 더 깊이 연구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갔는데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그, 그게···.”

대표는 할 말을 잃고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어땠을지 충분히 예상이 갔으니까.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닌지 이건우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도교수였던 새끼가 내 아이디어를 뺏어가서 자기 이름으로 논문을 냈더라고요. 그럼 내가 빡이 치겠어요, 안 치겠어요.”

“에, 많이 화가 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내가 얘기했지요. 제 1 저자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내 이름은 올려달라고. 그런데 교수라는 놈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

이건우는 말을 하며 씨익 웃었다.

“그런데 마침 그 교수가 지도하는 학생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있더라고요.”

대표는 이건우의 입에 걸린 웃음이 불길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발로 뛰고 밤도 새며 증거를 잡았어요. 그리고 교수한테 가니까 바로 공동 저자로 내 이름을 올려주더군요. 전에는 내 말에 관심도 없던 양반이요.”

대표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 교수의 이야기가 남일같지 않았다.

전세계에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팬데믹.

이건우는 팬데믹을 종식할 신약을 개발해냈고, 대표는 그 자료를 빼돌리려고 했다.

불쌍할 정도로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결국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을 지고···.”

빙글빙글 웃던 이건우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책임은 당연히 지는 거고 대가도 치러야지. 그러니까 왜 내 물건에 손을 대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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