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42화 (142/183)

노벨상 시상식 (2)

나는 이상한 느낌에 그 남자를 급히 따라가려고 했지만, 어느새 인파 속에 섞인 남자는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엘렌 앞으로 다가온 한 사람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엘렌이 그녀를 보고 미미하게 인상을 찡그렸다.

“벨라.”

“오랜만이야. 엘렌.”

세계 최대의 제약 회사인 로렌제약의 CEO이자, 로스차일드 가문의 장녀. 그녀가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가 등장하는 순간 나는 로스차일드가 계속해서 얽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에드먼드는 석유업 때문에 부딪히고, 클로이는 아크리액터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 발로 찾아왔고.

이번에는 제약을 맡고있는 벨라까지···. 같은 사업 부문을 맡았으니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런데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번 만남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엘렌이 빨리 꺼지라는 뉘앙스로 말했다.

“보다시피 우리는 얘기 중이라서.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면 나중에 얘기하면 좋겠는데.”

물론 벨라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재미있는 말을 들었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 파이저에서 레스커상을 받는다니. 그건 두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거 말투는 왜 저래?

에드먼드는 이상한 놈이긴 해도 저 정도로 싸가지가 없지는 않았으며, 클로이는 그냥 얌전한 숙녀 같았다.

그런데 벨라는 뭐랄까,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 남을 까내리는 사람 같았다.

그따위 말을 들으니 내 입이 다 근질거린다.

"두고 봐야 한다니요?"

"저희 로렌제약에서도 곧 임상을 마칠 예정이거든요."

기다렸다는 듯이 당당하게 대답하는 벨라.

뭐,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수많은 국가와 제약회사에서 치료제 개발에 들어가긴 했지만, 임상 2상까지 온 곳은 3곳밖에 없다.

나와 엘렌이 합동으로 연구하는, KW-파이저 제약

벨라가 있는 스웨덴과 합작회사인 로렌제약

중국의 원하오 제약.

원하오 제약은 그냥 무시해도 되고. 그런데 로렌제약은···. 내가 듣기로는 부작용이 아주 심각하다던데.

"풉."

이미 로렌제약의 부작용을 알고있는 나는 참지 못하고 웃었고, 벨라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웃어요?"

“아, 죄송합니다. 로렌제약의 백신을 맞고 탈모가 될 사람을 생각하면 웃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탈모.

바로 로렌제약이 가지고 있는 부작용 중 하나였다.

신경세포를 손상시키거나 염증을 일으키는 심각한 사례도 종종 보고되긴 했지만, 탈모는 글쎄···. 그런 것들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딜 그런 부작용을 가지고 임상을 운운해?

벨라는 얼굴이 붉어져 소리를 질렀다.

“그쪽은 생식능력 저하잖아요!”

탈모가 올 바에야 차라리 고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 부작용을 해결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몰랐습니까?”

벨라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는 걸 보니 정말 몰랐나 보다. 엘렌이 픽 비웃었다.

“정보가 그렇게 늦어서 되겠어? 로렌제약은 치료제를 만들기 전에 먼저 발모제부터 만드는 게 어떨까?”

"이익!"

이어지는 엘렌의 연타. 벨라는 얼굴이 머리카락만큼이나 더욱 붉어지더니 휙 뒤돌아서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엘렌은 개운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시원하다. 저년이 자꾸 시비를 걸어서 짜증 났는데.”

“시비를 걸어요?”

아무리 친하게 지내더라도 CEO가 다른 CEO에게 대놓고 시비를 거는 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더욱이 내가 지금까지 만난 로스차일드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에드먼드는 개새끼의 ‘ㄱ’도 입에 담지 않을 만큼 체면을 차렸고, 클로이는 그냥 요조숙녀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몰라요. 성격이 좀 꼬였어요.”

엘렌의 투덜거림과 함께 시상식 전의 짧은 만남은 끝이 났다.

*

스웨덴 스톡홀름에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였다. 원래 시상식에는 수상자와 가족, 스웨덴 왕가, 학술회 회원을 포함한 귀빈이 총 1300명 모인다.

하지만 포비드로 인한 인원 제한으로 300명 남짓한 최소 인원으로 준비했다.

나는 이브닝 가운을 입은 엘렌 홉스를 에스코트해서 들어갔다.

김상현 교수는···. 알아서 잘 하고 있지 않을까? 청심환을 두 개나 먹었는데 말이야. 그 까칠하던 김상현 교수가 그렇게 긴장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달랐다.

이윽고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가운데 통로를 통해서 스웨덴 국왕과 수상자들이 들어왔다. 그중에서 김상현 교수는 제일 돋보였다.

대부분 머리가 하얗고 나이가 지긋한 수상자 중에서 유일하게 젊은 사람. 카메라가 김상현 교수에게 집중되는 것도 당연지사였다.

연신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김상현 교수는 얼어붙어서 들어왔다.

엘렌 홉스가 중얼거렸다.

“진짜 대단하긴 하네요. 겨우 사십 대에 2관왕을 달성하다니. 그것도 세계 최초로 두 부문 수상이라는 업적도 세우면서.”

주위에서도 비슷한 소리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최근 십 년간 수상자의 평균 연령은 60대 후반인 것을 감안하면 젊은 나이긴 했다. 심지어 물리학상, 화학상 동시 수상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니까 말이다.

정작 본인은 쏟아지는 관심에 결국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로봇처럼 걸어가고 있었지만.

그리고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스웨덴 국왕이 직접 상을 수여했고, 김상현 교수는 물리학상을 받고 또 화학상을 받았다.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수상자들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담백하고 깔끔한 말로 감사를 전했다. 가족과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등, 흔히 들을 수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김상현 교수의 차례가 왔다. 최초로 두 가지의 분야를 수상받는 그가 어떤 소감을 발표할지 사람들은 기대되는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상현 교수는 꽤 곤란해 보이는 표정으로 준비해둔 USB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USB에는 대인기피증에 걸린 캐리 교수가 찍은 수상소감이 들어있었다.

그 내용이 뭔지 알고 있는 김상현 교수는 이 영상을 틀어도 되는지 끝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영상을 틀지 않으면 앞으로는 절대 공동 연구를 하지 않을 거라고 협박했기에, 결국 두 눈을 꼭 감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캐리입니다.]

화면에서는 젊은 여성이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자로 잰듯한 정확한 발음과 운율이 기계 같은 느낌을 줬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 드러난 캐리 교수의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

“저렇게나 예쁘고 젊은 사람이 노벨상을 탔다고?”

기자들은 특종을 잡았다는 생각에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고, 시상식장의 모든 카메라는 캐리 교수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리고 캐리 교수는 그런 기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번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노벨 물리학상밖에 못 탔군요.]

“······?”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내년 노벨상의 수상 후보는 저 한 사람밖에 없을 겁니다.]

"······."

지금까지 이런 수상소감은 없었다.

수상 후보가 한 사람밖에 없을 거라는 오만한 말이 무엇인가, 6관왕을 달성하겠다는 뻔뻔한 포부가 아니던가.

맙소사. 나와 김상현 교수는 머리를 짚었고, 사람들은 잠시 벙쪄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젊은 사람이라서 배포가 다르군그래."

"암, 저런 아름다운 수상자라면 내년에 또 보고 싶구먼."

사람들은 캐리 교수의 말을 단순히 농담 취급하며 웃었지만, 그 정체를 알고 있는 나는 캐리 교수의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캐리 교수의 메시지 이후, 시상식장의 분위기는 밝아졌다. 덕분에 다소 긴장이 풀린 얼굴로 김상현 교수가 말했다.

“이 모든 영광은 저의 영원한 멘토인 닥터 온에게 돌리겠습니다.”

···젠장.

거기에서 또 닥터 온이 튀어나올 게 뭐람.

사람들은 ‘닥터 온’이 누구야? 하는 표정으로 수군거렸고, 그 정체를 알고 있는 엘렌 홉스만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파워온 배터리를 만든 게 당신이었어요?”

나는 시치미를 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엘렌 홉스는 혼자 고민하더니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노벨상을 탈 수 있는 거였는데 당신은 정말 욕심이 없는 사람이군요. 이 일은 당신과 나만의 비밀로 남겨둘게요.”

“······.”

죽고 싶다.

*

윌리엄 미네르바는 가문 연합의 의장이었다. 가문 연합은 말 그대로 이권을 위해 움직이는 연합체이다.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

미국의 케네디, 그리고 록펠러 가문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

중국의 리가

프랑스의 듀퐁 가문

마지막으로 정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미네르바 가문.

그들은 기본적으로 독자적인 권한을 가지며, 수평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중대한 일이 있는 상황에나 협의한 행동을 할 뿐이지 평소에는 개별적인 존재들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대의 의장인 윌리엄 미네르바는 이 체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분권적인 형식이 아니라 자신에게 권력이 집중되기를 바랐다.

그는 물밑에서 각 가문의 가주나 후계자들에게 몰래 접근하여 조금씩 그들을 장악해나갔다.

그리고 이번 노벨상 시상식도 그 계획의 일환이었다.

'아이작이 자꾸 내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하는군. 이제 슬슬 후계자들로 눈을 돌려볼까.'

로스차일드를 장악하려는 것. 그것이 윌리엄의 첫 목표였다.

다들 시상식이 끝나고 연회장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가는 길.

그는 벨라 로스차일드를 찾았다. 그의 첫 번째 먹잇감이었다.

적당히 멍청하면서도, 적당히 욕심이 있는 여자.

하지만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엄청났다. 로스차일드와 발렌베리 가문의 합작회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굳센 성도 작은 균열에서 무너지는 법.

벨라 로스차일드가 가지고 있는 로렌제약은 그 균열을 위한 제물로써 딱 적합했다.

윌리엄은 뱀 같은 미소를 띠고는 골드 홀로 향하는 벨라에게 접근했다.

"로스차일드 양. 잠깐 얘기를 좀 나눌까요?"

*

벨라는 윌리엄을 보고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로스차일드에서 어려서부터 교육받은 그녀는 세계 각국의 유력자라면 대부분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도 윌리엄과 같은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시죠?"

그녀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례하게 굴지도 않았다. 시상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스웨덴 국왕의 귀빈이라는 뜻이고, 학문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윌리엄은 빙긋 웃었다.

"당신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죠."

하지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결코 말하지 않았다. 윌리엄을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곤 대화를 이어나갔다.

"시상식 전에 엘렌 홉스와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곧 2차 임상 완료를 앞두고 있다지요? 대단하시군요."

벨라는 콧대를 들었다.

'포비드 치료제의 2차 임상 완료'는 그녀의 기분을 좋게 하는 마법의 단어였다. 마치 인정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벨라는 가문 내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형제들은 모두 경합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아버지에게 저마다 능력을 어필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후계자라는 자리는 차지하고 있지만, 여자라는 위치 때문에 가주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점에서는 클로이와 같은 처지지만, 클로이는 또 특유의 활발한 매력으로 아버지를 휘어잡았다.

남자 형제들은 저들끼리 경쟁하면서 놀고 있고, 유일한 자매인 클로이는 아버지의 예쁨을 독차지했다.

벨라는 장녀인데도 그들의 세상에서 항상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인정받기를 원했다. 아버지에게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녀는 로렌제약에 모든 것을 바쳤다. 성과를 낸다면 누군가 자신을 인정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 당장 엘렌의 파이저가 자신을 앞서 나가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오늘 벨라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웬 남자가 자신의 업적을 인정해주는 듯한 말을 하자 기분이 갑작스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업계 소식에 밝은 모양이네요."

"제가 그쪽 업계에 한 발 걸치고 있기는 하지요. 그렇게 조작한 자료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

벨라는 흠칫 놀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작한 자료라니요?"

"이런···. 모른 척하는 겁니까? 로렌제약의 치료제에 있는 중대한 결함을요."

"당신 뭐야?"

벨라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윌리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걱정마세요. 새어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는 당신에게 도움을 주려고 온 거예요."

윌리엄의 어조는 느긋했다. 마치 털을 바짝 세운 고양이를 달래주는 사람처럼. 그리고 무척 달콤했다.

벨라는 갈등했다. 당장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윌리엄이 말하는 '도움'이 뭔지 들어보고 싶었다.

윌리엄은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듯 품에서 USB를 꺼내어 전해주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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