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카르텔 해체 (5)
캐리온은 요즘 부쩍 나에게 투덜거렸다.
[일이 너무 많습니다.]
“처리용량이 20%나 남은 놈이 뭔 소리야.”
[뉴클리온 프로젝트 때문에 지금 캐리온 프로젝트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거 아직도 안 접었냐?”
캐리온의 신체를 만들기 위한 휴머노이드 프로젝트는 캐리온이 아직도 야심차게 진행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요즘 뉴클리온 프로젝트부터 담수 기술을 만드는 것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아 캐리온 프로젝트의 진행이 더뎌지고 있었다.
하지만 캐리온이 투덜거리기는 해도 열심히 설계도를 뽑아내고, 세계 각국에 널려있는 하청업체를 찾아내서 발주를 넣었다.
덕분에 연관된 수백 개의 건설 및 정밀기계 업체들은 로또를 맞아 행복해했고, 전세계에 때아닌 건설 호황이 불어 들면서 경기가 되살아났다.
사람들은 내 이름에 열광했다.
먼저, 관련 업체들의 주가가 동반 상승했다. 특히 건설 쪽은 포비드 사태의 영향으로 다 같이 죽 쑤고 있었으므로 그 반동 폭이 꽤 컸다.
- 와 어제 유니온스틸 주가 오른 거 보고 울 뻔했잖아.
ㄴ 그거 아직도 들고 있었음?
ㄴ ㅎㄷㄷㄷ휴지조각이 떡상했네
- 이건우가 끼어들면 다 올라
- 그래서 다음에 이건우가 어디에 투자할까?
ㄴ 글쎄. 그건 워낙 종잡을 수 없는지라···.
배터리, 반도체부터 시작해서 핵융합로까지. 각종 공사가 들어간 지역은 그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 나는 애리조나주 사람인데 여기 완전 장난아님ㄷㄷ
- 어? 나도 애리조나에서 장사하는데 매출이 엄청 뛰더라. 공사현장이랑 붙어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여튼 ‘이건우 이펙트’가 있긴 하더라고
- 이건우 이펙트? 그게 뭐임?
ㄴ 이건우가 투자하면 경기가 살아난다는데, 한국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
ㄴ ㅇㅈ
이제는 ‘이건우 이펙트’가 공식 용어로 지정될 판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나와 KW를 향해서 환호를 보내고 있었고, 나는 돈을 갈퀴로 쓸어 담듯이 하고 있었다.
아직 공사가 다 끝나지 않은 지금도 이런데, 핵융합 발전소가 본격적으로 완공이 되면 얼마나 재산이 불어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모두가 행복해하는 와중, 캐리온이 재미있는 소식을 전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세 국가를 중심으로 한 산유국들이 회동을 한다고 합니다.]
UAE를 제외한 중동 산유국은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유가 폭락과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으로 역대급 불경기를 맞이한 가운데, 아프리카 프로젝트는 돈을 끝없이 잡아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쫄딱 망할 판이었다.
사실,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나에게 살려달라고 투항한 국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대답을 유보했다.
사람은 원래 제일 밑바닥에 처박혔을 때 동아줄을 내려줘야 고마운 줄 안다.
내가 침묵하고 있자 KW 본사는 또다시 외교의 장으로 변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동 대사관 직원이 들락날락하면서, 이러다 다 죽겠다는 둥 국민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둥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중동에 있는 남의 나라 국민까지 내가 신경을 써줘야 하나 싶지만, 이들 때문에 KW 본사 직원들이 불편해진 것은 맞다.
한서진이 말했다.
“프런트 쪽 직원들이 스트레스가 심해요.”
“대사관 직원이 찾아오면 그냥 쫓아내라니까 그러네.”
“···사장님과 달리 일반 사람은 외교관을 막무가내로 쫓아내기가 힘들답니다. 우리 회사가 국제분쟁의 원인이 될 수는 없잖아요.”
“원인이 돼도 상관없···”
···지만 한서진이 워낙 도끼눈을 뜨고 쳐다봤기에 나는 말을 바꿨다.
“직원이 불편하다면 안 되죠. 그렇지 않아도 이제 슬슬 적당한 대가를 받고 구제해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캐리온이 중동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상당히 조짐이 안 좋습니다. 이대로라면 무력시위를 할 가능성도 큽니다.]
뭐? 무력시위?
캐리온이 ‘가능성이 크다’고 했으면 정말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거 안되겠구만. 가서 한번 더 내가 어떤 놈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겠어.
“어디 중동도 한번 구경해보러 갈까?”
나는 곧장 한서진을 대동하여 회의가 열린다는 중동으로 향했다.
별다른 방해 없이 산유국이 모여있다는 회의장으로 갈 수 있었고, 마침 바로 앞에서 이란이 하는 재미있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 ···먼저, 그들이 짓고 있는 핵융합 발전소 내부에서 직원을 매수해서 폭탄을 터뜨리는 겁니다.
안내하던 직원이 진땀을 뻘뻘 흘렸고,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 새끼 봐라? 아직 정신 못 차렸구만?
*
나는 문을 벌컥 열고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놀란 사람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이건우?”
“아니, 당신이 여길 왜!”
내가 무슨 의도로 여기를 왔는지 탐색하는 시선.
저 썩을 놈 때문에 경제가 망했다는 적대감.
혹시 협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여러 감정이 섞인 시선이 날아 꽂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서 앉았다.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자연스럽게 회의장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때 조금 전부터 일장 연설을 늘어놓던 이란 대표가 말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 주제에 밖에서 엿듣기나 하고, 하여간 사업하는 놈들이란.”
나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아까부터 귀가 가렵더니 여기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랬군.
왕 건더기가 나와서 이란 대표 쪽으로 튕기며 말했다.
“테러리스트 새끼가 뭐라는 거야.”
“뭐, 뭐?”
이란 대표는 얼굴이 붉어져 소리를 빽 질렀다.
“이, 이 발칙한 놈이! 지금 너만 없었어도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어!”
이란 대표가 먼저 포문을 터뜨리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쌓아둔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맞아. 지금 당신 때문에 석유 값이 얼마나 내려갔는지 알아?”
“지금 가뜩이나 가뭄이 들어서 마실 물도 없는데, 너 때문에···.”
“이러다가 사람들이 폭동이 일어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너 하나로 지금 중동 전체가 망하게 생겼다고!”
이러다가 아프리카 사업까지 내 탓으로 돌리겠구만.
나는 적당히 듣다가 손을 들어 그들의 말을 끊었다.
“해수담수화 기술”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이제야 조용해진 회의장을 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KW에서는 해수담수화 기술을 발명했습니다.”
그러자 이란 대표가 투덜거렸다.
“해수담수화 기술이야 우리도 가지고 있소.”
“그건 석유를 펑펑 쓰는 쓰레기고.”
내 당당한 태도에 각국의 대표들은 ‘혹시?’ 하는 마음을 품었다.
지금까지 KW에서 워낙 많은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해수담수화 기술 문제까지 해결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돋아난 것이다.
어딘지 모를 한 나라의 대표가 물었다.
“그럼 사장님 기술은 다릅니까?”
“다르지요. 에너지가 거의 없이 바닷물에서 바로 민물로 전환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가능합니까?”
“없던 기술도 만들어내는데, 기존에 있던 기술을 개량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죠.”
지극히 맞는 말이라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곧장 머리를 굴리며 계산기를 두드렸다.
지금까지 우리를 패던 이건우가 직접 여기까지 찾아왔네?
그것도 해수담수화 기술을 가져왔네?
이 기술만 있으면 중동의 고질적인 물 부족 현상도 해결할 수 있고, 그러면 원유도 다시 시추할 수 있고, 그러면 경기가 살아난다!
물론 에드먼드가 조금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기에 석유업은 이제 저무는 해였다.
이건우는 신기술을 들고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며, 에드먼드는 아프리카에서 열심히 삽질하고 있었다.
지금이 이건우의 손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모두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제 대세는 이건우다.’
여기까지 생각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대표가 말했다.
“흠흠. 사장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
빠른 태세전환.
이란 대표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다른 사람들은 꿋꿋했다.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사장님이 세계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그러니까요. 지금까지 발명한 기술만 보더라도 세계를 몇 단계나 진보시켰는데.”
“사실 저도 핵융합 기술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기에 발이 묶여서 그렇지 마음만은 늘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방금 나에게 불평을 늘어놨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가장 중요한 말을 내뱉었다.
“그럼 원하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그래. 이걸 위해서 내가 이 먼 중동 땅까지 왔지.
“아프리카”
“네?”
에드먼드랑 붙어먹고 놀다가 마지막에는 발전소 시설을 공격하려고 했던 놈들인데, 뭐가 이쁘다고 내가 맨입으로 구제해주겠는가.
그래도 아프리카 대륙을 통째로 삼킬 수만 있다면, 한번 생각은 해볼 수 있다.
나는 쌈빡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하는 아프리카 개발 프로젝트. 그거 내놓으세요.”
다들 입을 쩍 벌렸다. 이란 대표가 발끈해서 일어났다.
“아, 아니! 그거 하느라고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는데!”
나도 알고있다. 돈을 쏟아부어서 틀을 잘 닦아줬지.
그러니까 내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거고.
하지만 이 관계에서 내가 갑이었다.
“싫으면 석유 안고 뒈지시던가.”
“뭐? 뒈져? 이 어린 놈의 새끼가 어디서!”
이쯤이면 내 요구조건은 다 말했다. 나는 시계를 확인하며 일어섰다.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열세 시간 뒤에는 여기를 떠날 거라서 말이에요.”
*
이건우가 그대로 나가버렸다. 남은 각국의 대표는 당황하더니 저들끼리 얘기를 했다.
“아프리카 사업을 인수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달라니요!”
“저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사실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렸잖습니까.”
“끄응”
아프리카 대륙은 돈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지 확실히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하지만 다 개발하기 전에 그들이 망하게 생겼다.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빠르게 마음을 정리한 한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라리 아프리카 사업권을 이건우한테 넘기고, 그 밑에 들어가서 이득을 취하는 모양새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어차피 이건우 혼자서 아프리카 시장을 다 먹을 수는 없다.
주도권을 넘겨주는 대신, 옆에 붙어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자는 심산이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빠르게 이건우를 좇아서 나갔다.
한 사람이 마음을 먹자 일은 일사천리였다. 게다가 방금 나간 대표의 말이 영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혹했다.
‘그러면 빨리 이건우한테 붙어야지 떨어지는 콩고물이 더 많지 않나?’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일단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다른 놈들한테 선수를 뺏기겠지?’
‘이건우를 먼저 잡고 보자.’
하나둘씩 자리에 일어서서 바쁘게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당황한 이란이 도움을 요청하듯 사우디아라비아의 전권대리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할···”
말을 하던 그는 당황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전권대리인은 이미 수행원을 데리고 출발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대, 대표님?”
“나는 좀 바빠서 말일세. 나중에 얘기함세.”
“······.”
그렇게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이건우를 따라 나갔다. 회의장에 홀로 덩그러니 남은 이란 대표는 뭔가 좆됐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그날, 산유국들은 이건우의 밑으로 숙이고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이란은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