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카르텔 해체 (3)
스웨덴에서는 왕립과학원 회원이 모여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다음 주면 수상자를 발표해야 하는데 물리학상 후보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원래 정해둔 후보가 있기는 있었다.
며칠 전에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후보를 선정하는데 고민에 빠질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과학원 회장이 중얼거렸다.
“···한국에서 핵융합을 이렇게 빨리 실증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다. 바로 김상현 교수와 캐리 교수의 핵융합이 실증된 것이다.
그들의 핵융합 이론은 분명히 대단했고,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지금까지 핵융합에 가장 근접한 이론이라고 찬양했지만, 안타깝게도 증명된 게 없었다.
그리고 과학계에서 ‘그럴듯하지만 실증이 되지 않은 이론’은 널리고 널렸다.
만약에 나중에, 적어도 몇 년만 더 있다가 실증되었다면 위원회도 별 고민 없이 그들에게 물리학상을 수여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하필 올해가 돼버린 것인지. 그것도 노벨상 후보를 발표하기 바로 직전에 말이다.
그렇다고 수십 년간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핵융합 기술을 보란 듯이 증명해냈으니, 상을 안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과학원 원장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미 정해둔 수상자를 바꿔야 할까요?”
이 사안 때문에 그들은 검토 작업에 외부 인사까지 초빙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인 맷 존슨 교수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상현 교수와 캐리 교수의 핵융합 발전 이론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실증한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지요. 단지 이미 정해둔 후보가 있다고 해서 이 위대한 발명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존슨 교수는 학계에서도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노벨 물리학상 후보에도 올라간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강력하게 주장하자 외부 고문들도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겨우 두 명이서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술, 원료의 불순물을 제거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 핵융합로 안에서 자체적으로 자기장을 구축하는 기술 등 각종 난제를 극복했습니다.”
“남들이 수십 년을 달라붙어도 못한 연구를 둘이서 집대성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반대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김상현 교수는 화학상도 수상 예정입니다. 한 번에 두 분야에서 상을 받는다니요."
김상현 교수가 노벨 화학상을 받을 예정이라는 것.
미스리늄이라는 새로운 광물을 발견하고, 세계 어디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활용 공식까지 발명해낸 공로로 화학상을 받기로 한 것이다.
두 분야의 노벨상을 동시에 수상한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곧장 반박이 들어왔다.
“화학 분야에서 업적을 세웠다고 해서, 물리학 분야의 업적을 과소평가하면 안 되지요.”
"맞아요. 세기에 다시 없을 천재에게 고작 그런 현실적인 문제로 상을 수여하지 않는다는 건 과학에 대한 모독입니다."
김상현 교수와 캐리 교수의 핵융합. 그것은 무시하기에 너무나도 큰 업적이었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렸다.
위대한 발명은 현실에 눌려서는 안 된다.
"이번 노벨 물리학상 후보는 김상현 교수와 캐리 교수로 하겠습니다."
“김상현 교수에게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동시에 수여하도록 합시다.”
갑작스러운 후보의 교체와 두 분야에서의 수상.
캐리온이 노벨상의 역사를 바꾸어버렸다.
*
김상현 교수는 요즘 캐리 교수의 지도 아닌 지도를 받으며 대학원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정신없는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무렵, 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울려왔다.
피곤한 김상현 교수는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네. 김상현입니다.”
- 축하합니다. 킴 교수님. 노벨 화학상과 물리학상을 동시 수상하게 됐습니다.
김상현 교수는 잠결에도 피식 웃음이 났다.
'개꿈도 이런 개꿈이 없군. 노벨상을 동시에 두 개나 받다니 말이야.'
하긴, 주위에서 하도 노벨상 수상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
노벨상 시즌이 다가오자 동료 교수부터 시작해서 ‘미스리늄을 발견했잖아요. 당연히 교수님이 화학상을 수상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심지어 캐리 교수는 불쑥 전화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노벨 물리학상은 저희가 받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대인기피증이 있으므로 교수님이 대신 제 메시지를 전해주세요.]
그러면서 영상 파일을 전해주는 태도가 어찌나 당당하던지. 이미 노벨상을 받은 사람 같았다.
물론 김상현 교수는 캐리 교수가 얼마나 뛰어난지 매일매일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닥터 온과 비슷한 수준의 연구자이며, 언젠가는 분명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미 후보가 정해진 올해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김상현 교수는 제 주제를 알았다.
미스리늄은 닥터온의 논문을 거의 보고 베낀 수준이었고, 핵융합은 캐리 교수에게 묻어갔다.
그는 노벨상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자, 수화기 건너편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 저기, 교수님?
아무리 꿈이라도 고맙다고는 해야겠지?
휴대폰을 쥔 채 김상현 교수는 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스웨덴에 가면 한턱 쏘지요.”
- ······.
말을 마친 김상현 교수는 다시 잠에 들었다. 캐리 교수가 내준 산더미 같은 연구자료를 정리하려면 조금이라도 잠을 자는 게 이득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습관처럼 신문을 편 김상현 교수는 1면에 대문짝만하게 박힌 자신의 이름을 보고 당황했다.
<노벨 화학상에 김상현 교수, “미스리늄 발견은 또 다른 혁신의 시작점”>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미스리늄을 발견한 공로로 김상현 교수를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김상현 교수는 한국대학교에서 재직 중이며 KW 에너지의 연구소장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미스리늄을 발견하고 제련하는 과정을 공식화함으로써 리튬이온전지의 딜레마를 극복해···.」
그는 하마터면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동료들도 뉴스를 접했는지 하나둘 전화를 해오기 시작했다.
먼저 이건우를 소개해준 백하영부터.
“교수님 축하드려요! 와, 우리나라에도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구나!”
“봐요. 내가 교수님이라면 노벨상을 탈 거라고 했죠?”
“교수님은 저희 대학의 자랑입니다. 저희가 연구 지원에 최선을 다할 테니 제발 대학을 떠나지만은···.”
모든 연구자의 소원이라는 노벨상을 받다니. 김상현 교수는 이것만으로도 꿈만 같았다. 이제 더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제 꿈이라고 생각했던 전화가 떠올랐다.
‘잠깐만. 어제 전화가 와서 뭐라고 했더라?’
잠결에 들은지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분명 동시 수상이니 물리학이니 하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이미 노벨 화학상을 받았는데.
그날 하루, 쏟아지는 무수한 축하에 김상현 교수는 정신없이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김상현 교수는 티비 속보로 나오는 자신의 이름을 보고 결국 머그컵을 떨어뜨렸다.
카펫이 커피로 젖어 들어갔지만, 그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김상현 교수, 세계최초로 물리학상·화학상 2관왕 수상!>
뉴클리온의 노벨상 수상. 이건우가 준비한 첫 번째 카드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
그리고 준비한 두 번째 카드.
바로 로날드의 재선이었다.
로날드는 성공적으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심지어 이번 대선의 표 차이는 역대급이었다. 청문회 사건 이후 베일리의 지지율은 땅바닥을 뚫고 내려갔고, 결국 그 하향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선을 치르고 말았다.
덕분에 로날드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대선에 임할 수 있었다. 로날드는 선출되자마자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미스터 리! 당선되자마자 자네에게 전화를 걸었네. 이건 자랑해도 좋네.”
로날드가 가장 먼저 전화한 사람이 나라니. 이거 신문에 나면 기자들이 뜯어먹기 좋겠는데?
“어? 진짜 자랑할까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커흠.”
로날드는 금세 말을 바꾸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에서 자네 사업은 내가 확실하게 밀어줌세. 내 첫 번째 사업은 바로 뉴클리온 프로젝트가 될 테니 기대해도 좋을거야.”
대통령이 이렇게 직접 말해주니 내 마음이 다 든든해진다.
로날드가 신경을 써주는 티가 확 난다.
우리는 덕담 몇 마디를 나눈 다음 전화를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로날드는 약속을 지켰다.
- 미국은 KW의 뉴클리온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제 임기 전까지, 미국의 모든 발전소를 핵융합 발전소로 바꾸겠습니다.
내 두 번째 카드도 완벽하게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
김상현 교수의 노벨상 2관왕. 그리고 미국의 뉴클리온 프로젝트 전격 참여.
두 가지 호재 덕분에 나의 휴대폰은 바쁘게 울리고 있었다.
처음은 KW 에너지 연구소에서 받게 된 노벨상 2관왕에 관한 축하 전화였다.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인재를 알아보고 소장을 맡겼나요?”
“이건우 사장님이 후원하는 교수가 2관왕을 달성하다니···. 이건 한국 과학계에서도 길이 남을 일입니다.”
“아니, 한국 과학계가 뭡니까. 이건 세계 과학계에서도 없던 일이예요!”
김상현 교수처럼 여러 분야에서 과학상을 받은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하다.
바로 마리 퀴리.
그녀는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김상현 교수처럼 한 해에 두 분야를 수상한 것은 세계최초였다.
차민태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백하영 교수, 심지어 요즘 뉴튜브에 빠져있던 윤단아에게서 축하 인사가 날아왔다.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니 괜히 뿌듯해진다.
“내가 대타 하나는 잘 골랐단 말이지.”
[이건우 님 이름으로 발표했다면 더 큰 영광을 얻을 텐데 말입니다.]
“영광과 함께 귀찮음도 따라오겠지.”
파이저 제약의 엘렌 홉스에게 닥터 온이라는 이상한 누명을 쓴 게 몇 개월 전이다.
그때 이후로 엘렌 홉스는 종종 나에게 연락해서 현 치료제 연구와 관련된 내용을 묻기도 했다.
그게 얼마나 귀찮았는지.
[···대부분의 답장은 제가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크흠. 어쨌든 내 이름으로 발표하면 엘렌 홉스가 달라붙는 거로 끝나지 않겠지.”
전세계의 수천 명의 학자에게 끌려다니면서 관심도 없는 논문에 관해 이야기한다?
차라리 죽고 말겠다.
내가 집중하고 싶은 건, 노벨상이 아니라 이 일을 가지고 어떻게 사업에 써먹는 지이다.
핵융합 논문이 노벨상을 받은 지금, 각국의 관심이 가장 뜨거운 상황이다.
그리고 얼마 뒤, 로날드 대통령의 핵융합 전격 도입이라는 발표가 전세계를 강타했다.
이제 각 국가에서도 더 이상 핵융합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핵융합은 하나의 흐름이 되었고, 도입을 미룰수록 산업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각국의 에너지부에서 연락이 들어왔다.
“한국에 KSTAR를 뜯어고쳐서 발전에 성공했다면서요? 우리나라 핵융합 시설도 개조해줄 수 있을까요?”
“영국에서는 이건우 사장과의 계약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당초 약속했던 핵융합로를 증설하고 싶습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의구심이 가득했던 뉴클리온은, 이제 없어서 못 파는 최고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
*
본격적으로 핵융합 발전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무함마드 국왕은 바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핵융합 발전 사업 부문을 싹 쓸어가 버렸다.
뭐, 어차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도 나밖에 없기는 하지만.
무함마드의 마르지 않는 돈과 나의 기술력이 합해지니 융합로를 짓는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이미 캐리온은 한국에 핵융합로를 건설하면서 모든 부품과 장비에 대해서 체계화를 해놓은 상황이었다.
또한, 건설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설계 과정은 캐리온이 하루 만에 끝내버렸으므로, 수주를 받는 즉시 건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달 전에 무함마드가 걱정하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무함마드가 신이 나서 전화했다.
“역시 미스터 리! 자네는 최고야. 정말 한 달 만에 상황을 이렇게 바꿔버릴 줄 내 상상도 못 했네.”
뒤이어 관리의 ‘전하 제발!’이라는 애원 소리가 넘어왔다. 하지만 무함마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소리쳤다.
"껄껄껄. 이 상황에서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자네 손을 잡은 건 최고의 선택이었네. 지금쯤 아프리카에서 열심히 삽질하고 있는 놈들의 표정이 궁금해지는구만."
나도 무함마드의 말에 같이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놈들은 곧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OPEC의 해체라는 대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