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카르텔 해체 (2)
손을 잡자는 나의 말.
무함마드 국왕은 혹하는 눈치였다. UAE는 OPEC의 어떤 나라보다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하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서 그 성과가 엄청나다고는 할 수 없었는데,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자네가 나한테 이런 제안을 하는 건 핵융합 발전소를 준다는 거겠고, 그럼 나에게서 원하는 게 뭔가?”
이런 걸 대놓고 묻다니. 걸걸한 입담에 맞게 시원시원한 성격이 아주 마음에 든다.
얼마 전 미국에 핵융합 사업을 할때는 법안을 뜯어고치고 청문회를 하는 등 무척이나 복잡한 과정을 거치느라 머리가 아팠었는데.
여기는 핵융합로를 설치하는 건 아예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협상을 하려고 한다.
국왕이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나오자 나도 쌈박하게 말할 수 있었다.
“돈이요.”
“···뭐라?”
“UAE에 제일 많은 게 석유고, 그다음으로 많은 게 돈이잖아요. 돈 주세요.”
무함마드 국왕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가진 게 돈밖에 없는 건 맞긴 한데···. 이렇게 당당하게 돈을 요구하는 놈은 또 처음 봤다.
그런데 이런 협상, 나쁘지 않았다. 무함마드 국왕도 빙빙 돌려가면서 질질 끄는 협상은 질색이었다. 이렇게 서로가 뭘 원하는지 터놓고 말하는 게 낫지.
무함마드 국왕은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껄껄껄. 그래, 우리가 돈 하나만큼은 많지. 그런데 자네도 돈은 많지 않나?”
“그렇지요.”
"그렇게 벌면서도 돈이 또 필요하다고?"
지금 파워온과 나노온을 팔아서 수십 조를 쓸어 담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전부 공장을 짓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들어간다는 것이다.
전세계에 파워온과 나노온 공장을 깔아버리는 것도 돈이요,
캐리온의 신체를 구현하는 ‘캐리온 프로젝트’도 돈이요,
독도에 묻힌 자원을 개발할 기술을 연구하는 것도, 민간 우주 기업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모조리 돈이다!
전부 다 돈 빨아먹는 하마이다.
그리고 핵융합 발전 사업은 기본적으로 도급 계약이다. 발전소를 다 짓고 난 후에 보수를 지급받기 때문에, 그 전까지의 모든 공사비는 내 돈으로 해야한다.
핵융합 발전소를 하나만 짓는다면 문제가 안 되지만, 내 목표는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모든 발전소의 핵융합 화.
앞으로 전세계에 핵융합 발전 시설을 깔려면, 내가 가진 여유자금으로는 택도 없다.
그래서 나는 UAE의 마르지 않는 돈줄이 필요하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죠.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매장량이 제일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산유국 사이에서 맏형을 자처하고 있지요. UAE가 꿀릴 게 뭡니까. 이제 UAE도 중동의 메카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강력한 동맹을 맺고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아서 만년 2등이나 하고 있었다.
동맹 내부에서도 사이가 썩 좋지는 않은 관계.
하지만 석유라는 중요한 문제 때문에 대놓고 싸우지 않았을 뿐, 미묘한 위치를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그래서 자네의 핵융합 기술이 있으면 우리나라가 중동의 메카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못할 게 뭡니까?”
무함마드 국왕은 뭐가 그리 마음에 들었는지 껄껄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패기는 좋구만. 동맹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도록 하지."
말을 마친 무함마드 국왕은 내 쪽으로 몸을 숙이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자네와 얘기해보고 싶은 중요한 안건이 하나 더 있기는 한데.”
“말씀하시지요.”
“자네는 사업가이지만 뛰어난 개발자이기도 하지. 분야도 가리지 않고 말이야.”
“그건 그렇지요.”
나는 궁금해졌다. 무슨 말이길래 이 국왕이 이렇게 뜸을 들일까?
무함마드 국왕은 은근하게 물어왔다.
“혹시나 말일세, 해수 담수화 기술도 개발할 수 있겠는가?”
“호오.”
생각지도 못한 무함마드의 질문. 근데, 이거 좀 끌리는데?
중동과 아프리카는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는 담수가 없을 뿐이지, 바닷물은 주변에 넘치게 있다.
중동 국가 대부분은 지중해와 아라비아해를 접하고 있고, 아프리카도 지중해와 홍해를 두고 있다.
풍부한 바닷물을 생활용수로 바꿀 수만 있다면?
중동과 아프리카를 내 손에 쥘 수 있는 무기를 얻는 셈이다.
나는 이번에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해줬다.
“기술이 문제겠습니까? 돈이 문제지요.”
돈만 있으면 그깟 기술 얼마든지 개발해서 제공해줄 의향이 있다.
나의 호기로운 말에 무함마드 국왕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보였다.
[···이건우 님이 개발하는 거 아니잖아요.]
물론 캐리온의 소심한 반발이 이어졌지만.
*
담수화 기술과 핵융합 발전 사업에 한 발 걸치도록 해준다는 말.
무함마드 국왕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UAE는 이건우와 손을 잡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곧장 에드먼드의 귀에 들어갔다.
“···UAE가 등을 돌렸다고?”
에드먼드는 마른세수를 했다. 너무 공교로운 타이밍에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OPEC의 국가들과 정유회사를 한데 묶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결정한 게 바로 얼마 전이다. 그런데 벌써 이탈이 일어나다니.
에드먼드는 평소와는 다르게 분노를 숨기지 못했다. 다소 거칠어진 눈빛은 그가 얼마나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지 보여줬다.
비서가 그를 안타깝게 쳐다보며 말했다.
“회의에서 그런 조짐이 보이기는 했잖습니까.”
“그건 그랬지.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UAE처럼 큰 나라가 독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어.”
UAE는 시작일 뿐이었다. 이러다가 다른 회원국의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 예전과 달리 OPEC의 결속력은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태이다.
OPEC은 기본적으로 고유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생산량을 통제한다.
그런데 문제는, 쿠웨이트와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회원국들의 추가 생산능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늘어난 생산량을 바탕으로, 감산이 아닌 증산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유가를 포기하더라도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스탠스였다. 그리고 이 주장은 OPEC 국가들 사이에서 조금씩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지금 이건우라는 거대한 적이 등장해 산유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하나로 똘똘 뭉쳐 대응해도 모자란 이 상황에서, UAE가 합의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도 각자의 이득을 따지며 각자 갈 길을 갈 게 뻔했다.
아마 여기서 한두 국가만 더 이탈하면, 겨우 만들어놓은 반-이건우 동맹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동맹이 무너지면 자신은 끝장이었다.
“아무래도 본보기를 보여줘야겠군.”
에드먼드는 OPEC에서 가장 힘이 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표와 연락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UAE의 행동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했다.
원래 UAE를 아니꼽게 생각하던 사우디였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그러면 UAE를 OPEC에서 제명하도록 하지요.”
사우디아라비아는 OPEC의 비정기회의를 소집해서 UAE에 대한 제명안을 제출했다. 그럴듯한 이유도 있었다.
“중대한 에너지 위기를 맞이해 독자적인 행동을 나서는 국가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몇몇 국가는 강력한 처분에 놀랐다.
물론 예전에도 OPEC에서 탈퇴한 국가가 있긴 했지만, 제 발로 나가는 것과 남이 쫓아내는 건 의미가 달랐다.
심지어 UAE는 중동에 있는 국가 가운데 명실상부한 이인자였다.
그만한 강자를 쫓아내도 되는 건가 싶은 나라들이 망설였지만, 에드먼드는 그들에게 확실한 미끼를 내던졌다.
“UAE를 울타리에서 쫓아낸다면, 여러분들께 UAE가 가지고 있던 생산 쿼터를 다시 할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 개발에 성공할 것이고, OPEC에 속하지 않은 나라는 그 거대한 석유 시장을 누릴 수 없을 겁니다.”
교묘한 회유와 협박이 합쳐지자 결국 모든 국가는 재제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UAE는 더이상 OPEC의 일원이 아니며, 비산유국이 함께하는 OPEC+ 회의에도 발을 들이밀지 못하는 것으로.
내친김에 그들은 다른 안건들도 처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증산 합의.
포비드 사태로 석유의 수요가 감소하였다. 질병으로 공장도 정상적으로 가동이 불가능했고, 운송에 사용되는 석유도 급격하게 준 까닭이다.
수요가 감소하니 가격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이런 상황에서라면 가격 방어를 위해서 감산하는 게 맞지만, 핵융합 에너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증산해서 원유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게 좋다.
덤으로 증산을 통해 각 국가는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는 속셈도 있었다.
유가 폭락으로 상당한 출혈이 있겠지만, 그들은 감수하고 증산하기로 합의를 했다.
당장 위협이 코앞에 닥친 데다 아프리카를 개척해서 수요를 확보한다면 그때 가서 가격을 올리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는 아프리카 대륙 개척.
“단순히 우리 돈을 들여서 개발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시장을 개척해주는 대가로 아프리카 대륙을 확실하게 우리 손에 넣는 겁니다.”
산유국과 메이저 정유사들이 자본을 출자하여, 아프리카 국가에 공장을 짓는다.
물론 공장을 짓는 돈은 공짜가 아니다. 아프리카 국가에 빚을 지우는 것이다.
인프라가 전혀 없는 아프리카 국가는 사회기반시설도 들어서고, 제조 공장도 생기는 데다, 새로운 시장까지 확보할 수 있으니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기반시설을 짓는 데에는 석유가 필요하고, 제조 공장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에도 석유가 필요하다.
이 모든 석유가 어디에서 나온다?
당연히 산유국과 정유사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들은 완전히 경제적으로, 에너지적으로도 종속되는 것이다.
훌륭한 계획이었다.
그들은 이 위기를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
OPEC에서 UAE를 제명했다.
이 갑작스러운 소식에 무함마드 국왕은 격분했다. 그뿐만 아니라 증산을 통해 작정하고 석유 가격을 낮추고 있었다.
“이 씨부랄 새끼들이! 감히 우리를 배척하고 지들끼리만 죽이 맞아서 논다고?”
“제발! 전하!”
관리가 내 눈치를 보며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국왕의 꼭지는 돌아간 후였다. 나는 느긋하게 말했다.
“편하게 일 보세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한참 날뛰던 국왕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씩씩거렸다. 목에 핏대가 선 게 화면을 통해서 보일 정도다.
무함마드 국왕이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저쪽에서는 이미 프로젝트를 시행했네. 아프리카가 진짜로 개발되고, 그곳에서의 석유 시장을 잃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그는 꽤 초조해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핵융합 발전소에 대해서 각 나라에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핵융합 발전소가 한두 푼 드는 사업도 아닌데, 확실하지 않은 시설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실험이 오직 한국에서만 이루어졌다는 것도 불안감에 한몫 했다. 파워온처럼 시제품이 나온 것도 아닌 상황에서, 조금 더 확실한 인증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단 다른 나라에서 발전소를 짓는 걸 보고, 성공하면 그들도 발주하겠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다.
미적지근한 상황에서 다른 산유국들은 새로운 시장을 장악하려고 나섰으니, 무함마드 국왕이 안달 난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걱정마세요. 한 달 후에는 상황이 바뀌어있을 테니까.”
“한 달?”
무함마드 국왕은 의아해했다. 한 달 뒤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먼저, 당장 일주일 후에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다.
수상자 선정과정은 비밀리에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나는 캐리온을 통해서 누가 수상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뉴클리온의 노벨상 수상. 그것만큼 확실한 인증은 없을 것이다.
둘째, 한 달 뒤에는 미국 대선이 있다. 그리고 로날드는 당선이 유력한 상황.
로날드가 당선되면 미국 내에서 핵융합 발전 사업은 따놓은 당상이다.
노벨상의 수상과 미국의 핵융합 도입.
이 두 가지라면 충분히 판을 엎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