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2)
KW 본사 사장실에서 나는 창밖을 내려다봤다. 그 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문득 이건우에게 빙의되기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캐리온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지.’
캐리온을 만들어낸 성과로 최고의 개발자가 되어 세계의 찬사를 받는 것. 당시에는 그것만이 내 목표였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이 세상에는 나의 흔적도, 캐리온의 흔적도 사라져버렸다.
대신 이건우의 몸에 빙의했다. 캐리온을 가지고.
이번에는 나의 흔적을 허무하게 사라지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KW 배터리로 돌아가는 자동차를 타고,
KW 소형원자로가 박혀있는 선박과 항공으로 물건을 운반하고,
KW 로고가 박힌 발전소에서 만든 에너지를 사용하며,
KW 공장에서 만든 물건을 세상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것.
그리하여 캐리온을 통해 내 영향력을 전세계에 떨치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꿈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었다.
첫 번째는 에너지원의 혁명.
석탄 문명으로 시작해서, 석유 문명에 머물러 있는 사회를, 핵융합 문명으로 넘어가게 하는 것.
나는 핵융합을 통해 세계 에너지 시장을 장악할 것이고, 장악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다른 산업을 장악할 것이다.
그 시작점은 핵융합 발전소였다.
*
이를 위해서 나는 청와대를 방문했다. 내가 로날드를 청와대에서 만나기 바로 직전이었다.
예전에 희토류 사업에 성공한 이후로 나는 청와대 비서실과 직통으로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핵융합 발전 사업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자마자, 차민태 대통령은 모든 일정을 미루고 나와 미팅을 잡았다.
차민태는 뉴클리온 프로젝트를 발표한 이후부터 그 사업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라고 명령했다.
관련 연구자들을 들들 볶은 덕분에 일주일 만에 그 내용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흠잡을 데 없습니다.”
“중수소에 미스리늄을 합친다면 플라스마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성공한다면 앞으로 에너지 산업의 구도는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이번에도 이건우가 또 한 번 뛰어난 기술을 발명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뭐 어쩌라고.
이것만으로는 차민태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
일단 차민태는 자기보신을 굉장히 중시한다.
뉴클리온 프로젝트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말을 들어보니 보통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 아니었다.
임기 말에 괜한 일에 손댔다가 욕을 들어먹기는 싫었다.
심지어 지금 그의 지지율은 국정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높았다. 헌정 역사상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차민태는 그냥 딱 지금 이 상태로도 너무너무 만족하고 있었다.
몇 번의 위기를 이겨내고 대한민국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대통령.
아마 후대에도 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연구자의 말대로라면 핵융합 발전소를 짓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어차피 그의 임기 내에서는 요원한 일로 보이니, 근처에도 가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래. 이 정도면 훌륭하지. 더는 욕심 부리지 말자.’
그런데 로날드가 발표한 소식은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이건우 때문에 미국 대통령이 에너지법을 바꿔준다고?”
로날드가 뉴클리온 프로젝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물론 로날드의 성향이 차민태와 달리 모험적이기는 해도, 대선을 2개월 앞두고 국가 중대 프로젝트를 실행할 정도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본 차민태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대선 직전에 있는 로날드가 수락할 정도면 진짜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
무려 미국의 대통령이 보증한 사업이다. 대한민국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가진 미국인데, 당연히 다방면으로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보고서 수락을 하였을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차민태는 조금씩 욕심이 조금 생겼다.
‘만약 내 임기 내에 핵융합에 성공할 수 있다면?’
핵융합 발전이 성공한다면, 아니 하다못해 이번 임기 내에 실증만 할 수 있다면?
차민태는 에너지 자립의 첫발을 내디딘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얼마나 탐이 나는 타이틀인가.
지하자원 하나 나오지 않는 나라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나라로.
국가의 격이 다시 한번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건우 코인은 단 한 번도 차민태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차민태의 마음속에서 이건우 코인이 조금씩 보신주의를 밀어내고 있었다.
일단 이건우를 불러서 얘기를 좀 들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비서실에서 연락을 해왔다.
“대통령님. 이건우 사장이 뵙고자 하는데요? 핵융합 발전과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고···.”
“당장 불러와!”
결국 이번에도 이건우 코인을 탑승하기로 한 차민태였다.
*
나는 차민태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 저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거지?’
나는 차민태가 핵융합 발전에 부정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임기 말에 이렇게 대형 프로젝트를 하는 건 보신주의에 찌든 그에게 상당한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득하려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꽤나 준비해왔는데···.
“너무 미국하고만 놀지 말고, 우리나라에서도 핵융합 장치를 하나 만드는 건 어떤가?”
오히려 차민태가 먼저 말을 꺼냈다. 딱 내가 요구하고 싶던 사안이라 조금 놀랐다. 역시 내 버스를 여러 번 타 본 사람은 다르다는 건가?
하지만 뒤이어, 그의 소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핵융합 장치를 만드는 데에는 시간이 좀 많이 걸리겠지? 내 임기 내에 가능하려나? 역시 다음 정부랑 하는 게 낫겠는가?”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일단 나는 그의 걱정을 덜어주기로 했다.
“실증하는 건 임기 안에 끝납니다.”
“뭐라?”
차민태가 귀를 의심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내 임기 안에 끝낼 수 있다고? 어떻게? 아니, 내가 듣기로는 건설하는 데만 수년이 걸린다는데.”
“물론 제대로 하려면 몇 년이 걸리겠지요. 하지만 첫 관문을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관문이 몇 개 더 있기는 하지만, 일단 첫 관문으로는 장시간 플라스마 유지가 있다.
그 시간은 대략 300초.
300초면 플라스마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다루어져야 할 물리적 현상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미 국가적 사업으로 KSTAR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지요.”
KSTAR는 한국의 인공태양으로, 핵융합로 개발에 필요한 국내 연구 개발 역량을 집중시킨 범국가적 사업이다.
내 말에 차민태는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KW 에너지가 KSTAR 프로젝트에 함께 해주겠는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차민태는 KW 에너지를 국가 프로젝트에 끼워 넣으려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국가 차원의 연구 프로젝트는 수년간 협상하고 투자 약속을 변경하면서 어려움을 겪지만, 기업의 태생적인 민첩성으로 이른 시간 안에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KSTAR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KSTAR는 기본적으로 토카막 장치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저는 스텔라레이터 장치를 사용해서 지금까지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뭐라?”
아무래도 우리 대통령께서는 이쪽으로 잘 모르시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캐리온-출력 모드로 들어갔다.
캐리온의 간략하고 깔끔한 설명 끝에 차민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본적인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거군.”
“네. 제가 KSTAR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주장치부터 다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러자 차민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지금까지 수천억 원을 쏟아부은 프로젝트가 다 헛된 것이란 말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플라스마를 가열하기 위한 장치와, 핵융합 플라스마의 상태를 측정하고 제어하기 위한 진단장치 등은 여전히 유효하니까요.”
“호오. 그렇군.”
내 말에 차민태는 감명 깊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이해 못한 게 보이는군.
“저는 빠르게 주 장치를 뜯어고친 다음 이 이론을 실증할 겁니다.”
이제야 차민태는 이해했다.
“그렇군. 그럼 필요한 걸 처음부터 다시 세울 필요가 없는 거지.”
이게 내가 찾아온 이유이다.
“KSTAR 프로젝트에 우리 연구팀이 개입할 수 있도록 전권을 내어주십시오. 그러면 최대한 빨리 핵융합 발전이 헛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지요.”
“그러면 석유 수입국이 아니라 핵융합 수출국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조그만 나라에서 석유를 얼마나 펑펑 쓰는지, 한국은 세계 5위의 석유 수입국이다.
하지만 만약 핵융합 발전이 안정적으로 우리나라에 자리 잡으면?
더이상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당장 석유 수입부터 확 줄일 수 있겠지.
그리고 우리나라부터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순간, 산유국과 국제석유자본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나는 에드먼드의 얼굴을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내 밥그릇을 뺏으려고 들었으면, 자기 밥그릇이 엎어질 것도 생각했어야지.’
핵융합에 성공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석유의 지배력을 최대한 줄어들이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목표는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차민태의 의중에도 들어맞았다.
“좋아. 내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지.”
KSTAR가 KW STAR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
시간이 흘렀다.
KSTAR 연구팀은 캐리 교수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KSTAR 프로젝트에 투입된 수많은 업체는 새로운 설계도를 받아들고 당황했다.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설계들과 왜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없는 장치들까지.
하지만 그것을 이해할 시간도 없이 캐리 교수가 매일 같이 이메일을 보내며 빨리 제작하라고 쪼아대는 통에 정신없이 부품과 장치를 만들었다.
KSTAR는 기본적으로 중수소만을 이용해서 플라스마를 테스트하는 장치이다.
그런데 캐리온은 이걸 중수소와 미스리늄을 반응시켜 진짜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장치로 바꿔버린 것이다.
사실 이건우가 약속한 두 달은 이런 장치를 설치하는데 걸리는 최소한의 기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약속한 기한이 끝나는 날에도 연구소장은 반신반의했다.
‘이거 진짜 돌아가기는 하는 건가?’
그는 이것저것 실험도 해보고 잘 돌아가는지 확인도 해보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전에 이건우는 청와대에 핵융합로 건설이 끝났다고 통보해버렸다.
심지어 차민태가 직접 내려와서 시찰하고 격려를 하겠다고 했다. 무슨 실험도 한번 하지 않았는데 격려라니.
하지만 일은 이미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대통령과 정부 고위인사가 내려오는데 연구원이 있는 대전광역시 시장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대전 시장은 군기가 바짝 들어서 아침부터 연구원으로 왔고, 차량통제부터 시작해서 각종 의전 준비로 시끌벅적했다.
그리고 마침내 검은색 차량이 줄줄이 들어왔다. 차민태 대통령이 내리고, 기재부 장관과 경호처장이 근접 수행에 나섰다. 그 뒤로 관련 부처의 장·차관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기자들까지 주렁주렁 매단 것이 중대 하나가 내려온 느낌이었다.
연구소장은 밥도 안 먹었는데 체한 느낌이 들었다.
‘이거 실패했다가는 전국적으로 웃음거리가 되는 거 아니야?’
차민태가 위엄 가득한 얼굴로 이것저것 물어볼 때는 기절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대답할 수 있었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모였다. 실험을 시작할 때였다.
연구소장은 머리가 하얗게 질려버렸지만,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핵융합 발전이 성공하는 기적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위이이이잉
거대한 소리가 일어나며 기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중수소와 미스리늄이 반응을 일으키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장치를 통해 플라스마 안으로 원료가 투입되었다.
5억 도가 넘는 초고온으로 치솟고, 마침내 거기에서 전기가 생산되어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초, 2초 3초······ 그리고 300초. 성공이었다.
소장은 기뻐 소리쳤다.
“됐습니다! 성공했습니다!”
이건우의 뉴클리온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사람이 완성됐다고 말하는 순간,
[핵융합 반응 현상을 실제 관측하고 입력을 끝냈습니다.]
[뉴클리온의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핵융합로의 소형화, ‘아크 리액터’를 시작합니다.]
캐리온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
그 소식은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그리고 일 년에 단 한 차례만 열린다는 가문대회의. 그 회의가 이건우 한 사람으로 인하여 소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