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1)
이건우의 선택을 받은 영국.
파워온과 나노온을 받은 영국의 제조업은 확실하게 부활하였다.
제조업뿐만이 아니었다. 무역업을 비롯한 요식·숙박업 등 각종 연관 업종이 기대심리로 인하여 성장하게 된 것이다.
포비드 이전에나 보았던 활기찬 경제를 목격한 영국인들은 그저 이건우와 KW를 찬양할 뿐이었다.
하지만, 옆 나라인 영국이 잘 나가는 것을 본 미국은 너무나도 배가 아팠다.
'저거 원래 우리 꺼였는데.'
우리도 저렇게 잘 살 수 있었는데, 망할 야당 의원 놈들이 깽판을 쳐놨다.
오히려 이건우가 공장을 설립한다는 소식에,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준비한 것들이 악성 재고가 돼버리면서 더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사람들의 분노가 이 모든 일을 망친 야당 의원들에게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야당에 대해 비판을 하였고, 각종 커뮤니티에도 중요한 사업을 말아먹은 야당에 대한 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 심리를 귀신같이 눈치챈 이건우는 여론을 선동했다.
이번에도 여론전의 달인, 캐리온이 나섰다.
캐리온은 커뮤니티에 이번 청문회와 관련되어 야당이 잘못한 부분들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 청문회에서 야당이 이건우를 쪼은 게, 다 반도체랑 배터리 노조가 시위를 일으켜서 그런 거더라.
- 야당에서 정유사에서 뒷돈 받고서 KW를 막은 거라던데?
- 무기 밀매한 의원도 진짜라며? 다들 한통속인 거 아니야?
또한 여론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시위를 유도했다.
- 우리도 야당 놈들 규탄하는 시위 해야하는 거 아니냐?
- 우리도 맞불 시위에 나가자!
- 애리조나, 미시간, 캘리포니아. 우리는 이미 시위 시작했음.
미국은 기본적으로 시위가 많은 국가이다. 한번 시위에 대한 여론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번에 수혜를 입을 뻔했다가 뺏긴 업체가 한두 곳이 아니다.
가게의 주인, 공장의 사장, 심지어 실리콘밸리의 슈트쟁이까지 몰려나왔다.
"이건우를 데려와라!"
"우리는 KW가 필요하다"
"KW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
한번 시위가 시작되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시위가 커졌다. 야당 의원들의 집무실은 이제 시위대로 인해 출입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조 베일리를 비롯한 야당 의원은 당혹스러웠다. 고작 청문회에서 압박한 거치고는 사태가 너무 커져버렸다.
조 베일리가 소리쳤다.
"당신들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일을 저질렀으면 수습을 해야지. 이건우를 데려오지도 못해, 시민들을 달래지도 못해. 어떻게 할 거냐고!"
선거캠프 위원들을 포함해 야당 중진들은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푹 수그렸다.
'아니, 이건우가 이렇게 또라이 새끼인 줄 알았냐고.'
공장을 짓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해놓고, 심지어 용지 매입과 계약 체결까지 다 해놓고, 마지막에 엎어버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건 말건, 조 베일리는 초조해졌다.
'이러면 경제를 망친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붙는데.'
대선이 문제가 아니었다.
미시간,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세 곳 모두 굵직굵직한 곳이다 보니 사안은 더 심각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평생 이 일은 그의 정치 생활 내내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닐 것이다.
수십 년간 정치인으로서 국가에 헌신한 그이다. 후대에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니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결국 조 베일리는 결단을 내렸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한국에 가서 협상해야지."
모든 유세 일정을 접고 한국에 가기로.
그때였다.
모여있던 선거캠프 대책위원들이 휴대폰만 내려다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저, 후보님. 로날드 대통령이 벌써 한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직접 KW와 담판을 짓는다고 합니다. 방금 이건우를 만났다고···."
베일리의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이번에도 기회를 놓친 베일리였다.
*
나는 일이 있어서 잠시 청와대에 들렀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만났다.
"미스터 리!"
"···대통령님?"
로날드가 성큼성큼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가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미스터 리가 여기는 어쩐 일인가?”
“저는 차민태 대통령과 할 말이 있어서요.”
“오, 그래? 둘이서만 재미있는 걸 하는 건 아니겠지? 뭔진 모르겠지만 그대가 하는 사업이라면 나도 무조건 참여하지.”
나는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해보았다.
아무래도 미국 대선이 시작하기 직전에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재미있는 발표가 하나 있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대통령님께도 연락을 드리죠.”
나는 씩 웃으며 말했고, 자신만만한 말에 로날드는 입이 헤벌쭉해졌다.
워낙 내 덕을 많이 본 사람이라 그런지 이제는 내가 한다면 뭐라도 같이 할 기세다.
한참을 웃던 로날드는 마침 할 말이 생각난 모양인지 내게 조용하게 말했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오는 게 어떻겠나? 이쯤 했으면 야당 쪽도 고분고분해졌을 걸세."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미국 시장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건 나도 알고, 그도 알았다.
그러니 언제쯤 나에게 연락을 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벌써 한국에 와있었을 줄이야. 생각보다 빠른데?
내 표정을 보고 의문을 짐작했는지, 로날드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요즘 미국 상황이 말이 아니야. 그리고 시위가 정점에 달했을 때,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됐을 때 움직여야지. 안 그러면 관심받을 기회를 놓치거든."
나는 그의 말에서 차민태의 향기를 느꼈다. 원래 정치인들은 다 관종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습니다. 원래 대통령님과 함께하려고 했던 사업이니 지금 재개한다고 해도 문제는 없지요. 다만 그 발표는 일주일 뒤가 좋겠군요."
로날드가 눈을 끔벅였다.
"일주일 뒤? 무슨 일이 있는가?"
나는 씩 웃었다.
"바로 발표하면 짜고 친 것같이 보이잖아요. 일주일 동안 치열한 협상 끝에 극적으로 타결했다고 하면 얼마나 보기 좋겠습니까?"
"······."
로날드는 한 방 먹었다는 얼굴이었다.
그러자 캐리온이 조용히 말했다.
[··· 제가 보기에는 둘 다 관종인 것 같군요.]
내가?
*
[美 대통령···한국으로 직접 가서 이건우와 협상!]
[로날드, "유세보다는 민생 안정이 중요하다"]
[일주일간에 걸친 긴 협상··· 극적인 타결 성공]
[이건우,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미국 "KW를 환영한다" 한목소리로 화답해]
일주일 후 KW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발표가 났다.
로날드는 교활하게 이 기회를 이용해서 선거보다는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했고, 한발 늦은 조 베일리는 선거에 정신이 팔린 대통령이 돼버렸다.
나는 미국 선거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간 정치는 무섭다니까. 고작 하루 늦게 도착한 걸로 승패가 갈렸네."
선거는 이제 딱 두 달 남았다.
하지만 로날드는 확실하게 승기를 잡았고, 조 베일리는 뒷수습만 하다가 끝나게 생겼다. 로날드가 똥만 싸지 않는다면 재선은 무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확실하게 킹메이커를 하면서 미국 시장에 진출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나는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 재수없는 새끼는 꽤 열 받았겠는데?'
*
에드먼드는 이건우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재수없는 놈.'
조 베일리는 그에게 중요한 패였다.
메이저 세븐을 위시한 국제석유자본과 미국 정계는 떼놓을 수 없을 만큼 끈끈한 관계를 자랑했고, 미국 대통령에 선을 댈 수 있으면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그래서 그렇게 공들이면서 대선 후보까지 될 수 있도록 올려놨고, 청문회 직전까지만 해도 여론몰이를 하면서 조 베일리에게 관심이 쏠리도록 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단 한 번에 박살났다.
이건우를 압박하라고 만든 판을, 이건우가 아예 엎어버리고 나온 것이다.
베일리는 나가리되었고, 차기 대통령은 아무래도 로날드가 유력해 보였다.
덕분에 에드먼드는 앞으로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그때 비서가 말했다.
"에드먼드 님. 막내 아가씨가 찾아왔습니다."
"클로이가?"
클로이 로스차일드.
그의 막내 여동생으로 그와는 열 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꽤 예뻐하는 아이였다.
그와 닮은 금발이 풍성하게 흘러내렸고, 하얀 피부에는 옅은 홍조가 맺혀 싱싱한 장미 같았다.
클로이는 방긋 웃으며 그를 안았다.
"에디!"
에드먼드는 표정이 풀어질 뻔했으나 애써 다잡고 엄하게 말했다.
"여자애가 채신머리없기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딱딱하게 굴 거야?"
비서가 가벼운 티와 과자를 내왔고 두 사람은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다. 에드먼드가 물었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느냐?"
"그냥. 요즘 재미있는 소식이 들려서 말이야. 오빠가 이건우한테 당했다며?"
에드먼드가 아무 말 없이 눈썹을 꿈틀거렸고, 클로이는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어때? 어떤 사람이야?"
"네가 신경 쓸만한 사람은 아니다."
"흐응? 그래? 나도 이번에 파워온이 들어간 자동차로 갈아타보려고 했는데."
"너!"
에드먼드가 소리치자 클로이는 헤헤 웃었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클로이는 물류 사업 쪽으로 진출해있었다. 육상과 해운, 그리고 항공까지. 세 분야 모두 석유를 많이 쓰는 분야이기에 둘은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놀리려고 온 거냐?"
조금 전까지 헤실헤실하던 클로이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게 주목적이기는 한데, 파워온으로 갈아타려는 거 완전 없는 소리는 아니야. 요새 조선업계에서도 파워온을 이용해 하이브리드 선박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거든."
"으음."
그 말이면 심각하다. 과거에도 하이브리드 선박을 개발하려는 동향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수소나 LNG(액화천연가스)를 기반으로 한 연료였지, 미스리늄 전지를 넣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 1나노 반도체 칩이 나타나면서 파워온 배터리의 성능이 대폭 올라가는 동시에 초소형화가 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조선업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네 말이면 큰일이구나.”
이미 파워온이 전기차로의 전환을 가속했다. 여기에 선박과 항공까지 그쪽으로 가버린다면, 석유 소비를 담당하는 운송의 한 축이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이건우가 핵융합 발전소를 만든다면 화석연료 에너지가 없어지면서, 석유 소비가 또 줄어든다.
석유업계는 큰 타격을 받을 게 틀림없다.
“이건우. 보통 놈이 아니다.”
“···!”
클로이는 에드먼드가 하는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저 자존심이 높은 에드먼드가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에드먼드는 원래 사람을 깔보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을 왜곡할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었다.
클로이는 그런 이건우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에디한테 한 방 먹이고 이런 평가까지 끌어낼 사람이라면 보통은 아니라는 말인데.’
클로이는 머릿속으로 조만간 이건우를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두 남매는 이건우에 대한 생각에 빠졌고,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클로이였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에드먼드가 말했다.
“언젠가 닥칠 일이기는 했다. 석유업계도 이제 석유에서 벗어나서 ‘에너지’로 나아가야지.”
OECD 국가의 석유 소비는 정체하였지만, 비 OECD 국가의 소비는 90% 증가하였다. 포비드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아직 개척할만한 시장도 있었다. 바로 개발도상국.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도시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졌다.
동시에 각종 산업시설이 증가하면서, 이동과 생필품 소비도 늘어났다.
이들이 석유 소비를 늘려준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게다가 석유는 에너지원으로도 사용하지만, 모든 재화의 원료이기도 하다.
각종 내장재, 합성수지. 옷의 합성섬유. 등등. 원료로서 용도가 연료보다 생활과 더 밀착해서 존재하며, 아직까지 이걸 대체할 수 있는 원료는 없다.
‘언젠가 석유가 사용되지 않을 날이 오기는 하겠지.’
하지만 에드먼드는 그런 일이 당장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김상현 교수가 엄청난 논문을 가지고 나왔다는 건 인정하지만, 상식적으로 핵융합 발전소를 단기간에 만든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그는 클로이에게 단언했다.
“아직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 개발도상국이 새로운 석유소비국이 되는 동안, 신에너지 사업에 투자하면서 중장기적 대책을 세우면 돼.”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한 발표회장. 이건우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KW는 핵융합 발전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