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판치기 (4)
내 농담을 들을 맥코넬은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이 상황에 농담이라니요! 지금 청문회를 우습게 보는 겁니까?"
"그럴리가요. 그랬다면 제가 이 자리에 안 나왔겠지요."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나의 표정은 능글맞은 웃음을 한껏 머금고 있었다.
"이건 모욕이에요! 사과하세요!"
한바탕 난리가 났고 보다 못한 위원장이 나서서 그녀를 진정시켰다. 엘라 맥코넬은 씩씩거리며 앉았고 결국 다른 의원이 나섰다.
이번 의원도 야당 측 인사로 나를 까기 위해 나온 사람이었다.
"이건우 씨가 제시한 핵융합 발전소는 학계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아직 실증도 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미국에서 고작 그 이론 하나 때문에 각종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이건 미국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아직 핵융합 발전소는 실증되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투자하려니까 부담이 되겠지.
그런데 내 입장에서도 금전적인 지원은 필요 없다.
주면 좋기는 하지만, 어차피 성공할 사업인데 굳이 다른 사람과 지분을 나눌 이유가 없지.
“짓는 건 제 돈으로 하겠습니다.”
내 쌈박한 대답에 질문한 의원은 말이 막혔는지 잠시 종이를 뒤적거리다가 겨우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크흠, 그래도 다른 사업과 달리 핵융합 발전소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발전방식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위해 법안을 바꾸는 것은 미국에서도 리스크를 안고 간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에너지법을 바꿔야 한다는 소리는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였는데.
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핵융합이 아니더라도 미국에서는 신재생에너지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법안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꼭 저 하나만을 위해서 법을 바꾼다는 것은 어폐가 있군요.”
“그래도···.”
의원이 자꾸 반박하려고 하자 짜증난 나는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요. 핵융합 발전소를 짓지 못하는 경우 제 돈으로 미국이 손해 본 금액을 메꿔드리겠습니다.”
“오, 그래 주겠습니까?”
내 말에 의원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드디어 내가 순순히 나온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천만의 말씀.
나를 아무리 물고 뜯으려고 해도 내가 눈 하나 깜짝하나 봐라.
"대신 발전소를 짓는 데 성공하면 제가 추가로 인센티브를 받는 걸로 하죠."
"···뭐라고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말씀하신 논리대로라면 그렇잖아요. 제가 못해서 미국에서 피해를 보면 배상을 해줄 테니, 제 덕분에 이득을 보면 제가 보상을 받아야겠네요."
"말도 안 됩니다!"
"저도 의원님의 말씀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의원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소리쳤다.
"지금 감히 미국의 신성한 청문회를 농락하는 겁니까?"
"농락은 의원님이 하는 거겠지요."
"뭐요?"
“오늘 이 자리는 미국 에너지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마련한 자리 아닙니까? 그런데 의원님은 무기 밀수업자를 가장해 접근한 FBI 요원에게 무기 구매 방법을 설명해주고 중계료까지 요구했군요.”
“뭐, 내, 내가 언제!”
“이거야말로 자국을 좀먹고 신성한 청문회를 농락하는 일 아닌가요? 먼저 수사부터 받으셔야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는 질의를 이어가고 싶지 않군요. 아, 참고로 관련 자료는 이미 제출했습니다.”
의원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빽 소리를 질렀다.
“이 건방진 놈이!”
나를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그에게 방긋 미소를 지어줬다.
째려보면 어쩔건데?
청문회라면 인사청문회가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여러가지 쟁점에 대해 일상적으로 청문회가 열린다.
국회 활동에 있어서 청문회는 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청문회는 일상이며, 특히 선거철에 양 후보가 중요한 쟁점으로 들고 온 이 사안은 많은 국민의 이목이 쏠려있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내가 비리를 터뜨렸으니 꼭지가 돌만도 하다. 아마 다음 선거 때는 자리 얻는 게 쉽지 않을 거다.
나는 자리를 툭툭 털면서 일어났다.
"어쨌든 청문회를 통해서 미국이 제 사업에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겠습니다."
"네? 이봐요. 이건···."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는지 맥코넬이 내 말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미국 야당의 의원님들께서 제 배터리와 반도체 공장을 이렇게 싫어하는지 알았다면 저도 굳이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 미시간주와 애리조나주에 공장을 짓는 건 그냥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물론 핵융합 발전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슬쩍 한 마디를 흘렸다.
"대통령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어서 미국에 지으려고 했던 건데, 야당에서 이렇게 반대할 줄은 몰랐네요."
원내대표 엘라 맥코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자리를 떠 청문회장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제 야당 의원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이 몰려올 것이다.
*
엘라 맥코넬을 위시한 야당의 중진이 모였다.
이건우의 갑작스러운 공장 건설 포기 선언.
그들은 절대 이런 결과를 원하던 게 아니었다.
그저 현 대통령의 업적을 까내리고 관련 이익 집단을 결집시킨 다음, 이건우에게서 더 많은 것들을 뜯어내려고 했을 뿐이다.
그래서 야당도 이건우에게서 뭔가 받아왔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는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건우는 생각보다 더한 또라이였다.
일을 모조리 망쳐버렸다는 사실에 야당의 의원들 사이에는 침중한 분위기만이 가득했다.
그때 조 베일리가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평소의 온화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얼굴은 흉신악살 마냥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원내대표를 다그쳤다.
“맥코넬. 자네,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는가?”
청문회가 실시간으로 공개된 이후 이번에 공장을 짓기로 한 주에서 조 베일리의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조 베일리가 상원의원으로 있는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이미 지지율이 역전되었을 정도니, 다른 지역은 어떨지 안 봐도 뻔했다.
심지어 이러한 분위기는 전국으로 퍼지고 있었다. 야당 의원들이 무능해서 중요한 사업을 날려 먹었다는 여론이 어디선가 끊임없이 생산되는 중이었다.
조 베일리는 속이 터졌다. 잘 해보라고 에드먼드랑 손을 잡고 판을 깔았는데, 같은 편이 깽판을 쳐도 이런 깽판을 치다니.
엘라 맥코넬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직접 이건우 사장을 만나서 설득을 해보겠습니다.”
“무조건. 오늘 안으로 어떻게든 해결해놓게.”
조 베일리의 으름장에 엘라 맥코넬은 이건우가 머무르는 호텔로 찾아갔지만,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대신 기사를 통해서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있었다.
- [속보] 이건우, 미국 시장 진출 포기 선언
- 자기 복을 걷어차 버린 미국
- 나노온과 파워온 공장, 이제 기회는 누구에게 갈 것인가
- KW에 쏟아지는 러브콜, 이건우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
기회는 순식간에 날아갔고, 이제 상황은 수습할 수 없었다.
맥코넬이 소리 질렀다.
“이건우!!!!!!!!!”
*
이건우가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기로 했다는 보도가 속보로 나갔다.
[KW 에너지 핵융합 발전소 건설계획 철회]
[이건우, 애리조나주와 미시간주의 용지 매입 취소]
[이건우 청문회서 "없던 일로 하겠다"···. 관련 업계 비상이 걸려]
이건우는 말을 터뜨리자마자 바로 진행하던 모든 사업을 중단시켰다. 이 소식이 나가자 가장 먼저 공장이 들어설 '뻔'했던 지역 주민들은 허탈한 심정이 되었다.
"이번에 가게 인테리어도 다시 했는데···."
"아니, 왜 그만두는 거야? 다시 돌아와!"
"망할 의원 새끼들. 도움이 안 될거면 가만히나 있지."
포비드 사태로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소상공인은 직격타를 맞았다. 그 와중에 이런 대규모 사업의 수주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거라는 생각에 다들 들떴는데, 갑자기 들려온 청문회 소식은 거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찬물을 맞은 건 미시간주와 애리조나주 지역뿐만이 아니었다.
핵융합 발전소를 짓는 거대 프로젝트에 참여하려고 했던 기업들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발전소를 안 짓겠다고? 왜?"
이건우가 핵융합 발전소를 짓기 위해서 끌어들인 여타 기업만 이백 곳이 넘는다. 그중 대부분 기업이 미국에 있었고, 그들은 몇 년은 먹고살 먹거리가 생겼다면서 기뻐했다.
이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인 상황에서 야당 의원들의 방해로 이건우가 갑자기 떠나버린 것이었다.
그러자 미래 먹거리는커녕 현재 먹고살 길도 막혀버렸다.
실리콘밸리에 있던 스타트업은 그들보다 사정이 더 안 좋았다.
반도체 공장이 들어오면서 혜택을 입을 것으로 간주되어 스타트업의 주가가 조금씩 뛰어올랐다.
그중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반도체 장비 업체는 아예 몇 배씩 껑충껑충 오른 곳도 있다.
그 돈으로 각종 설비를 추가로 주문하고 사업의 규모를 넓히는 등, 관련 산업이 전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비명을 지른 것도 얼마 되지않아, 그들은 끔찍한 비명을 질러야했다.
이건우 덕분에 수혜를 입은 만큼, 이건우가 사라지자마자 주가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타트업인 특성상 주가가 곤두박질치면 큰일이다.
수익이 없는 상황에서 투자를 계속할 돈을 구하기도 어렵고, 스톡옵션을 주고 인재를 구하는 일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베일리 이 개새끼야!"
심지어 이 일을 저지른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주 상원의원이란 놈이다. 덕분에 실리콘밸리의 배신감은 더 컸다.
텃밭에서 이러니 조 베일리는 어떻게든 수습하겠다며 민심 다독이기에 나섰지만, 캘리포니아주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자기 집 앞마당까지 빼앗긴 베일리에게, 미래는 없어보였다.
*
미국 시민들이 허탈해하며 빨리 나를 데리고 오라고 난리치는 사이, 나는 이미 다른 나라와 협상을 하는 중이었다.
영국 원자력에너지부 장관이 내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영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차선책으로 고른 지역은 영국. 영국은 옛날옛적에 전기 민영화를 했고, 덕분에 민간에너지 시장이 많이 활성화되어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특히 영국 정부는 상업 핵융합로 개발을 위해 이미 투자를 하고 있었다.
장관이 말했다.
"저희는 오 년 안으로 핵융합 연구시설을 건설할 계획이고 이에 따라 민간사업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40년까지 상업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지요."
그는 어떻게든 나를 잡기 위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나는 이제야 뭔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영국의 계획을 들여다보면 썩 웃음이 나지는 않았다. 2040년이라니. 그렇게 느릿느릿해서 어느 세월에 발전을 시작하겠어.
나는 단언했다.
"그 시간, 제가 줄여주겠습니다."
일은 시원시원하게 진행됐다.
영국은 이미 원자력 발전소 대부분이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핵융합 원자로 1기를 나한테 맡긴다고 해서 크게 부담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핵융합 발전소의 경제성과 타당성을 파악하고 앞으로 에너지 정책에 반영할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반도체와 배터리 공장도 짓기로 했다. 여기에 짓는 배터리와 반도체 공장은 앞으로 유럽에 공급할 물량을 전담하게 될 것이다.
나는 관련 부처랑 협의한 다음 열심히 사진을 찍고 기사를 냈다.
[이건우 반도체 공장 영국에 지어··· 영국 자동차 업체 '대환영']
[고질적인 반도체 부족에 시달리던 영국, 드디어 벗어나나]
[롤스로이스 CEO, 이건우 사장과 '파워온·나노온' 공급계약 맺어]
특히 영국의 자동차 업체가 호재를 알렸고, 그와 관련된 제조업체들이 모두 살아났다.
내가 공장을 짓기로 한 주민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고, 정부에서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며 열심히 경기를 부양하려고 했다.
덕분에 영국은 포비드 사태로 악화된 경기에서 벗어났다. 아니, 오히려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이건우 이펙트의 모범 사례였다.
그리고 옆 나라 미국은 이 꼴을 보며 배가 더욱 아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