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러브콜 (6)
로날드 클린턴은 눈을 끔벅였다. 그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게 아니다.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누가 베일리를 후원한다고?”
위원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드먼드 로스차일드입니다.”
에드먼드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 가문의 차남이었다.
그 말에 로날드는 침이 마르는 걸 느꼈다.
‘로스차일드가 베일리를 후원한다고? 왜? 무엇을 원하는 게 있어서?’
“진짜인가? 확실한 정보이냔 말이다.”
로날드는 다급하게 물었고, 위원장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금 흐름 추적을 끝냈습니다. 확실합니다.”
“허”
로날드의 입에서 기가 찬 한숨이 터져나왔다.
한때 사업가였던 로날드는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로스차일드가 원한다면, 그렇게 된다.
금융업은 물론이고 각종 주요 산업을 로스차일드의 직계와 방계가 차지하고 있다.
상장되지 않은 회사들이라서 그 규모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가끔씩 드러나는 그 편린만으로도 그들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건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이번 대선에서 조 베일리의 뒤에 있는 사람은 에드먼드 로스차일드.
직계 중의 직계이자, 계승권자 2위이다. 가문에서도 정말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석유 부문을 관리하고 있다.
석유 부문은 로스차일드에서 신경 써서 관리하는 분야이다. 왜냐하면 록펠러가 석유산업을 일으켰을 때부터 로스차일드의 자본이 거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남은 금융업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차남인 에드먼드에게 석유업을 관리하게 시킨 것이고.
그런 자가 조 베일리를 후원하고 있다면, 그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 셈이다.
‘심지어 지금 베일리와 나의 지지율 차이는 얼마 나지도 않아. 이런 상황에서 로스차일드가 끼어든다면···.’
그들이 작정하고 금융계와 정치계의 인맥을 휘두른다면 그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방도를 내야한다.
그때 머릿속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건우’
그가 가진 배터리와 반도체 공장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로스차일드와 베일리에 맞설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로날드는 이건우가 컨퍼런스에서 뉴클리온 프로젝트를 발표했던 것을 떠올렸다.
기존의 에너지를 얻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었다.
에드먼드가 관리하는 석유는 그저 뉴클리온의 하위호환으로 보였다. 이건우가 핵융합을 제대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에드먼드와 부딪힐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 관계를 잘만 이용하면 이건우를 내 편으로 끌어올 수 있다.’
로날드는 어떻게든 이건우를 붙잡아야 했다. 그런데 그 당사자는 지금 다른 국가들과 얘기 중이라고 한다. 로날드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석비서들과 선거캠프 대책위원들을 불러모아서 말했다.
“각국에서 이건우에게 어떤 제안을 했는지 알아내고, 그것보다 더 좋은 제안들을 준비해 놔. 무조건 이건우는 우리가 잡아야 해!”
로날드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는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정신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느긋하게 로날드를 기다렸다.
이쯤되면 로날드는 깨달았을 것이다.
로스차일드의 후원을 받는 베일리를 물리치려면, 나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약속 시각에 딱 맞춰서 로날드가 나타났다. 앞서 다른 나라들을 만나는 나를 기다리는 동안 인내심이 바닥난 그는, 회의실에 도착하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베일리가 무엇을 제시했든 내가 두 배로 해주지.”
나는 씩 웃었다.
“그거 감동인데요.”
“농담이 아닐세. 그리고 자네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겠네. 조 베일리와 손을 잡으면 안 되는 중요한 정보지.”
로날드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갔다. 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글쎄요. 저한테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로날드는 코웃음을 쳤다.
“내 정보력을 무시하는가?”
“딱히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조 베일리 뒤에 로스차일드가 있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 조 베일리 뒤에···뭐?”
로날드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고,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주었다.
“자네, 설마.”
“맞습니다. 제가 드린 정보지요.”
로날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우스운 꼴을 보였군. 하긴 자네가 보여준 능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 정보쯤이야 쉽게 물고 오겠지.”
생각해보면 로날드는 내 정보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 사건 때 크리스 워녹이라는 간첩을 잡아냈고, 중국 국가안전부를 역으로 해킹해서 경매를 연 적도 있다.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냥 로날드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절박함을 느끼길 바랐을 뿐.
로날드는 중얼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자네가 조 베일리의 배후에 에드먼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아무리 베일리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손을 잡을 수 없었겠군.”
“자네와 에드먼드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이니 말일세.”
“···그래 그렇게 된 거야. 에드먼드 로스차일드는 석유업계의 대변인이나 다름없지.”
요즘 석유 기업의 성적표는 썩 좋지 않았다.
먼저 팬데믹 공포로 전 세계적으로 생산시설 가동이 중단되었다. 덕분에 제조업의 근간인 석유 소비가 줄어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사람의 이동도 급감하면서 운송에 사용되던 석유 수요가 하루 평균 800만 배럴 감소했다.
또한 친환경 시대로 전환되는 만큼 석유에 대한 수요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석유의 가장 큰 수요처는 자동차와 항공 등 수송 부문이다. 전 세계 석유 소비량 중 약 60%는 도로 수송과 항공, 선박에 사용된다.
그런데 내연기관차가 빠르게 전기차로 대체되었고, 특히 파워온 배터리의 등장은 그 흐름을 가속했다.
파워온의 등장으로 전기차와 내연기관차가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동등해졌는데, 세계 각국에서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그러면 굳이 소비자가 내연기관차를 살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나노온의 개발로 인해서 파워온의 성능은 날로 좋아지고 있다. 현재는 자동차에만 사용이 되지만, 빠른 미래에는 선박과 항공에도 배터리가 장착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파워온 때문에 수송 부문에서도 석유 수요가 감소하는데, 핵융합 에너지가 향후 화석 연료를 대체한다?
석유업계에서는 나를 공공의 적으로 볼 것이 분명했다.
로날드는 나와 몇 마디 나눈 것으로 이 모든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분명히 조 베일리는 뉴클리온 프로젝트 때문에 망설이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할 행동은 분명했다.
바로 뉴클리온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것.
“좋아. 나는 핵융합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참모들 말로는 뉴클리온 프로젝트가 파워온과 나노온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하더군. 뭐, 자네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어렵지 않게 해내겠지. 그러면 내가 뭘 해주면 되는가?”
나는 씩 웃으며 생각해둔 바를 말해주었다.
“향후 핵융합 발전소 짓는 걸 국책사업으로 선정해 KW 에너지가 수주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요.”
“···지금 자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있나?”
당연하지. 미국 전력 생산을 외국인에게 맡기라는 건데,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무작정 거부하기에는 지금 미국의 상황이 꽤나 개판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전기 민영화를 하면서 문제가 많이 되고 있지요.”
미국이 자국 내에서 석유 생산을 하는 국가인데도 전기요금은 한국이랑 비슷한 수준이라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알 수 있다.
심지어 텍사스주에서 전기 민영화를 했다가,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한파로 많은 사람이 얼어 죽고 전기세가 2000만 원이 나온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많은 사람에게 값싼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안정적이게 말이지요.”
로날드는 생각에 잠겼다.
그도 자국의 전기 민영화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탄소 배출부터 시작해서 각종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얽혀있어 쉽게 손을 데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우의 제안을 수락하기만 한다면, 미국에서는 더이상 에너지로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국민들을 에너지 문제에서 해방해준 대통령. 먹음직스러운 타이틀이 아닌가?
심지어 여기에 파워온과 나노온 공장이 딸려오는 것은 덤.
어차피 여기서 이건우의 손을 잡지 않으면 대선은 물 건너간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무것도 못 하고 베일리와 로스차일드에게 패배하는 것은 로날드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자네가 이겼네. 원하는 조건을 모두 들어주도록 하지."
"절대로 후회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나와 로날드는 두 손을 강하게 마주 잡았다.
*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캐리 교수와 김상현 교수를 공동저자로 한 논문이 올라갔다.
김상현 교수는 일전에 미스리늄에 관한 연구로 이름을 떨친 적이 있었던 데다, 내가 각국을 불러모으며 뉴클리온 프로젝트에 대해 광고를 했다.
덕분에 학회는 큰 관심을 가졌고, 당연히 논문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향후 몇십 년은 완성될 줄 몰랐던 핵융합 기술의 완성.
물리학계는 완전히 뒤집혔다.
“만약에 논문대로 스텔라레이터 방식을 구현할 수만 있다면 핵융합 실현은 일 년 내로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맙소사. 미스리늄이 핵융합에도 쓰인다고?”
“그런데 캐리 교수는 도대체 누구야?”
이 논문은 노벨상심사위원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8월 말.
위원회는 매년 1월 전세계의 분야별 심사위원단 2천 명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는다.
이후 심사위원회는 추천 후보들을 압축하고, 8월이면 위원회 자체적으로 최종 1명을 선정해서 스웨덴 왕립한림원에 후보를 올린다.
이렇게 선정된 노벨상 후보는 전문가의 평가를 거쳐 10월에 왕립한림원에서 최종 결정된다.
이번 화학상은 많은 사람이 김상현 교수를 추천해서 올렸다. 미스리늄이라는 물질을 처음 발견했으며, 이걸 상용화해서 세계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니 당연하였다.
그런데 그 김상현 교수가 또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심지어 미스리늄보다 더욱 어마어마한 논문을.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이자 저명한 물리학자인 맷 존슨은 시뻘게진 눈을 비비며 말했다.
“일주일 동안 김 교수의 논문을 분석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물리학상의 최종 후보를 김상현 교수로 바꾸고 싶은 심정이에요. 아니, 바꿔야 합니다. 이런 논문을 발표하고도 수상을 하지 못한다면 세계가 우리를 손가락질 할 겁니다.”
사실, 그런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심사위원회가 후보를 선정했다고 해서 왕립한림원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08년에 심사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올린 후보가 왕립한림원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경우가 있다.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던 캠벨 교수가 말했다.
“일단 지켜봅시다. 이 논문이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연구하다 보면 어떤 반박이 나올지 모르니까요. 또, 늘 그렇듯 이론을 실증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리잖습니까.”
보통 새 기술을 실용화하기까지에는 기초연구로부터 시작해서 요소기술의 연구개발, 실험로, 원형로, 실증로, 상업로의 단계를 거친다.
그렇기에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핵융합 발전방식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기는 했지만, 이걸 입증하려면 적어도 오 년은 필요합니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핵융합이 실현되려면 한참은 남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건우가 처음과 중간 단계를 다 건너뛰고, 곧바로 마지막 단계인 상업화에 진입하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캐리온은 그들이 말하는 ‘한참’을 지금 이 순간으로 당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