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러브콜 (5)
한라 호텔의 연회장.
기술설명회를 가진 후 각국의 대표들과 기업의 임원들은 데리고 온 참모들과 함께 회의에 들어갔다.
너무나도 갑작스레 발표된 핵융합 발전, 뉴클리온 프로젝트.
나노온과 파워온 공장을 유치하는 것도 급하지만, 이번에 발표한 뉴클리온 프로젝트는 국가의 기간 산업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내용이었다.
“대략적인 개요는 충분히 합리적인 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던 기술들이 사용되었습니다.”
“불가능한 기술?”
“네. 예를 들자면 플라스마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초고온을 만들어야 합니다.”
“초고온이라면 어느 정도인가?”
“실용화하려면 대략 5억 도를 꾸준히 유지해야 하죠.”
어마어마한 수치에 대표가 턱을 툭 떨어뜨렸다.
“5억도?”
지구에서의 핵융합 폭발 반응은 태양의 중심보다 몇 배 더 뜨거운 온도와 거대한 자기장이 필요로 한다.
참고로 현재 최고 신기록은 1억 도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20초간 안정적으로 유지한 것이다.
그런데 이건우는 이 다섯 배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닙니다. 핵융합로를 5억 도로 유지하려면 외부에서 에너지 공급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부에서 공급하는 에너지양보다, 얻어지는 에너지양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건우 사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적으로 핵융합로를 유지할 방식을 고안해내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핵융합의 핵심은 플라스마를 가두는 장치이다. 특히 어떤 가둠 방식을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유지되는 플라스마 온도와 시간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 기술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 방식이 설계부터 괴랄한 난이도를 자랑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어려운데 어떻게 한 것인지···.”
하지만 이건우에게는 캐리온이 있다.
나노온으로 메인 서버를 모두 교체하면서 캐리온은 성능이 비할 데 없이 좋아졌다. 심지어 서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양자컴퓨터의 기술을 사용하여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처리속도를 얻게 되었다.
그런 캐리온이 스텔러레이터 방식을 설계하기 위해 나노온으로 만든 서버의 대부분을 활용하여 가상의 원자로 하나를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만든 가상의 원자로에서 캐리온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실험을 진행했다.
덕분에 핵융합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최적화할 수 있었으며, 카오스 상태의 입자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저 캐리온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술고문은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어떻게 성공한 건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이건우는 플라스마 회전 경로를 기하학적으로 풀어···.”
“······.”
태반은 모르는 내용이었지만 흥분한 그들의 표정을 보니 이건우가 이번에도 엄청난 걸 해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후에도 이건우가 발표한 핵융합 기술에 대해서 한참 동안 토론을 나눴다. 그리고 그들은 공통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직 KW에서 실증로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지금까지 나온 연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핵융합 발전 방식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인가?”
“네. 그리고 그가 이것을 실현하는 순간 화석 연료는 이제 사장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각국 대표들의 눈이 번뜩였다.
기술고문의 말을 듣고 보니 장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바닷물만 있으면 전국민이 에너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살 수 있다. 바닷물을 다 쓴다? 그러면 우주에서 갖고 오면 된다. 우주에 널린 게 수소와 헬륨이니까.
거기에다 화력 발전과 달리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심지어 환경오염도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각국에서 내세웠던 ‘탄소 중립’에 가장 어울리는 발전이다.
지금까지는 기술 개발이 너무 어렵고 돈이 많이 들어서 못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건우가 해줬다!
뉴클리온 프로젝트의 가치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이 재빠르게 이건우에게 달려갔지만, 아쉽게도 한발 늦고 말았다.
이건우는 이미 선객을 맞고 있었다.
조 베일리. 그가 누구보다 빠르게 이건우를 찾아온 것이다.
*
나는 두 후보 중, 조 베일리를 먼저 만나게 되었다. 로날드 클린턴은 일단 현직 대통령이었기에 청와대부터 들러야 했다.
한 나라의 수장이 다른 나라에 방문하면서, 다른 나라의 수장에게 인사하지도 않고 자기 볼일만 보고 가버리는 것은 외교적 결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로날드가 한국에 오자마자 한 것은 컨퍼런스 장소에 와서 내 등을 후려친 것이지만.
그러나 조 베일리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이었기 때문에 그런 제약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다.
조 베일리는 참모들과 함께 누구보다도 빠르게 KW를 방문했다. 로날드보다 먼저 나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농담을 건넸다.
“이제야 그 징글징글한 놈을 빼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군.”
나는 조 베일리를 만날 때마다 나타나서 훼방을 놓고 가던 로날드를 떠올렸다. 나중에는 학을 떼는 조 베일리를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였긴 했지만···. 로날드가 없어진 덕분에 우리는 다소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뉴클리온 프로젝트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술고문이 찬사를 늘어놓더군. 덕분에 나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네.”
하지만 조 베일리가 관심을 가진 건 핵융합보다는 공장 유치 쪽이었다.
“그런데 배터리와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어디에 지을 건가?”
“일단 미시간주와 캘리포니아주에 지으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미시간주는 제조업을 대표하고, 캘리포니아주는 아시다시피 실리콘밸리가 있으니까요.”
당장 코앞에 닥친 대선에서 로날드보다 우위에 서려면 어떻게든 대규모 공장을 유치하는 게 중요하다.
조 베일리는 눈을 빛내며 열정적으로 말했다.
“한국으로 오기 전에 당 차원에서 지원할 방안을 찾아보았네. 우리 당에서는 반도체 및 배터리 제조 생태계 개발을 위해 100억 달러를 지출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네. 이와 관련된 지원 정책도 10개가 넘지.”
원래 반도체 산업은 각종 모바일 장치, 통신장비, 자동화, 기계, 자동차 등등.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는 기반 산업이다.
게다가 1~2개 기업의 유치가 아닌 수십~수백 개의 관련 기업들이 진출해야 한다. 제조 허브가 생기기 위해서는 수백 개의 다른 회사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공장을 짓는 순간 그 주위에는 정말 하나의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되는 셈이다.
조 베일리는 자신이 당선됐을 때 해줄 수 있는 각종 지원방안을 늘어놓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물론 자네에게는 이게 허황된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 나는 아직 당선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네. 그러니 내가 상원의원으로 있는 캘리포니아주에 먼저 시행할 수 있도록 손을 써주겠네.”
그는 공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세심함도 보였다.
“확실히 끌리는군요.”
그가 해줄 수 있는 지원은 다른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것과는 규모가 달랐다. 기본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금액만 100억 달러이다.
또한 일개 주가 아니라 연방정부 차원에서 직접 법안을 상정시키는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KW가 미국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그렇지만 후보님께서 할 수 있다면, 현 대통령 또한 할 수 있겠지요.”
미국에는 똑같은 지원을 해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베일리 후보를 밀어주길 원한다면, 그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함을 더해야 할 것이다.
내 말에 조 베일리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거리다 말았다.
‘뭘 망설이는 거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화의 흐름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요구하는 건 뻔했다.
배터리와 반도체 외에, 핵융합 발전에 대해서 뭘 어떻게 지원해줄 수 있냐.
확답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조 베일리는 이상하리만큼 신중했다. 그저 말이라도 좋게 해줄 수 있는 건데, 이렇게 선을 긋는 이유가 있을까?
그때 내 머릿속에 캐리온의 음성이 들려왔다.
[에드먼드 로스차일드에 대한 조사가 끝났습니다.]
[미국 정유회사 오일로드의 대표이사로, 배후에서 정유 메이저 세븐의 지분을 다량 취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아람코를 위시한 OPEC의 산유국들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대단한 놈이었다. 현재의 석유왕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그리고 비상장 자회사를 통해 조 베일리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미국이야 로비스트가 양성화되었으니 정치자금을 받든 말든 문제가 될 건 없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꽤 중요한 정보였다.
내가 지금 하려는 뉴클리온 프로젝트가 신에너지 사업인 만큼, 기존의 석유사업으로 대표되는 화석 연료 사업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유사에서 후원을 받는 조 베일리도 신에너지 사업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베일리의 태도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자, 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쪽은 완전히 물 건너갔군.’
어차피 조 베일리가 나와 손잡을 수 없다는 걸 안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미팅을 마무리 지었다.
조 베일리를 떠나보내고, 나는 혼자 남은 사장실에서 오늘 오후에 찾아왔던 오만한 남자를 떠올렸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밑에 들어오라고 제안하던 남자.
에드먼드 로스차일드.
당연히 내가 그 밑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다니, 어처구니없기는 했지만 그의 배경을 생각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현대판 귀족이나 다름없이 살았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미국 대선에 모습을 드러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조 베일리를 후원하고 있다라···.’
나는 이 정보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로날드 클린턴에게 흘리면 많은 걸 뜯어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결심이 선 나는 캐리온에게 말했다.
“로날드와의 약속을 최대한 나중으로 미루고, 그에게 정보를 흘려.”
[알겠습니다.]
로날드의 똥줄이 타게 만들어줘야겠다.
*
한국에 도착한 로날드 클린턴은 조금 짜증이 났다.
야당 후보인 조 베일리는 지금쯤이면 이건우와 만나서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텐데, 자신은 청와대에 박혀있다가 이제서야 겨우 나올 수 있었다.
차민태 대통령이 어찌나 달라붙던지, 떼어내고 나오는 게 쉽지 않았다.
연회가 저녁에 시작되었기에 모든 일정을 끝마치니 벌써 늦은 밤이 되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건우와 약속은 잡았는가?”
수석비서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잡기는 잡았는데, 그 앞에 프랑스와 영국과 독일이 있습니다.”
“···우리 앞에 세 국가나 있다고?”
“그래도 내일 마지막 순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끄응”
로날드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조 베일리는 이미 미팅을 끝냈는데 그는 만나보지도 못했다는 게 그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악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선거캠프 위원장이 그에게 다가왔다.
“대통령님.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무언가?”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위원장은 그를 스위트룸 안으로 들인 후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다음 말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베일리 후보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로날드의 선거운동에 급제동이 걸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