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러브콜 (4)
높은 층고에 화려한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연회장.
기술설명회가 있기 전에, 컨퍼런스에 참석한 각국의 대표들은 자유롭게 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허 KW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질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두 후보가 참여한다는 말을 듣고, 저도 급하게 일정을 다 취소하고 왔지 뭡니까.”
그들 역시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지만, 포비드 사태 이후로 이런 대규모 연회가 열린 적은 처음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KW에서 발표하려는 새로운 기술은 뭘까요?”
“저희 쪽에서는 소프트웨어 관련 분야라고만 분석했습니다. 아무래도 KW가 그쪽으로 강세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속단할 수는 없겠죠. 갑자기 또 신기술을 가지고 등장할지. 미스터 리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 천재이니까요.”
“그건 그렇지요. 그나저나 미스터 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기에 베일리 후보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네요.”
저 멀리 조 베일리가 이건우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들은 약간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이런. 선수를 빼앗겼군요.”
“그런데 저희 차례가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기 클린턴 대통령도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건우와 조 베일리.
그들을 향해 로날드 클린턴이 눈에 불을 켜고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황급히 달려오는 경호원과 수행비서는 뒤로 한 채.
*
나는 베일리 후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로날드 클린턴과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클린턴처럼 직설적이고 정력적인 면모는 없지만 듣는 사람을 부드럽게 자신 쪽으로 이끌고 가는 기품있는 화술이 돋보였다.
조 베일리가 말했다.
“네바다주에 희토류 공장을 지었다고 들었네. 자네 덕분에 미국도 마침내 희토류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군.”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고마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희토류 문제로 시시각각 중국과 마찰을 빚으며 패권 다툼을 벌였는데, 갑자기 내가 나타나서 희토류 시장을 빼앗더니 중국을 거꾸러뜨렸다. 미국으로서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셈.
“미국에서 나노온과 파워온 공장을 유치한다면 우리의 관계가 더 돈독해질 수 있겠지요.”
내가 웃으며 기다리던 화두를 던지자 조 베일리의 표정이 좋아지며 내 말을 넙죽 받았다.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만일 내가 공장을 유치한다면···.”
퍼억!
우리가 공장 유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순간, 내 등에 강한 충격이 울려 퍼졌다. 뒤를 돌아보자 로날드 클린턴이 서 있었다.
“···대통령님?”
“으하핫. 나를 빼놓고 어떤 얘기를 하려고 그러나.”
하필 공장 유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말을 하려던 시점에 로날드 클린턴이 귀신같이 나타난 것이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조 베일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미스터 리는 나와 먼저 이야기하고 있었소. 당신이 여기저기 끼는 걸 좋아한다지만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베일리는 나름대로 강한 어조로 항의를 했지만, 로날드 클린턴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무례하기는. 미스터 리는 고리타분한 자네보다는 나와 이야기하는 걸 더 좋아한다네. 그렇지 않은가?”
두 후보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선택을 강요하는 눈빛. 이건 뭐,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두 분이서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다음 식순을 준비하러 가야겠습니다.”
말을 마친 내가 재빠르게 자리를 뜨자, 두 후보는 당황했다.
“미스터 리! 잠시만··· 아니, 자네가 끼어드는 바람에 기회가 날아갔잖은가!”
“흥. 기회라니. 애초에 그쪽에게 기회는 없었다네.”
뒤에서 들려오는 투덕거림은 애써 무시한 채 나는 다음 식순인 기술설명회를 준비하러 갔다.
*
KW의 신기술설명회.
나는 지금까지 모든 기술을 혼자서 독점해왔다. 따로 투자유치를 받지 않고 KW 안에서만 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심지어 미디어를 제외한 KW의 어떤 계열사도 주식조차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세력은 끼고 싶어도 낄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처음으로 KW에서 전세계에 기술설명회를 한다고 광고를 때렸고, 이 말인즉슨 KW에 투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각국의 고위관리와 글로벌기업의 관계자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지사.
지금까지 수많은 기술을 발표하고 대히트를 친 KW의 이름은 성공의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였다.
마스크의 혁신, 에코브레스
전세계의 방역을 책임지는 미니온-트래킹
신비의 금속 미스리늄
완전자율주행기술 프리온
배터리의 패러다임을 바꾼 파워온
거기에 이번에 발표한 희토류와 나노온까지.
하나하나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리는 혁신이었으며, 이번에 발표할 신기술 역시 그럴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렇기에 각국 고위관리의 눈은 활활 타올랐다.
‘KW를 우리나라에 유치하면 그날로 잭팟 터지는 거다.’
‘이번 기술이 뭐가 됐든 일단 지르고 보자.’
‘다른 나라에 선수를 뺏기면 안 돼!’
쏟아지는 수많은 기대감 속에서 나는 단상 위에 올라섰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만 바라보며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빛들.
“먼 길을 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가 발표하는 기술은, 분명 긴 여정이 헛되지 않게 할 겁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대형스크린에 한 줄이 떠올랐다.
뉴클리온 프로젝트.
나의 새로운 기술의 이름이었다.
“뉴클리온 프로젝트. 핵융합 발전 기술입니다.”
*
뉴클리온 프로젝트, 핵융합 발전 방식을 완성하는 기술.
담담하고 간결한 설명이었지만 파장은 컸다. 갑작스레 등장한 엄청난 기술에, 각국의 대사부터 시작해서 데리고 온 참모진들까진 모두 웅성거렸다.
“핵융합 발전?”
“KW에서 갑자기 발전 사업에 뛰어든다고?”
“그건 아직 완성되려면 한참 남은 기술로 알고 있소만.”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까지 미스터 리가 발명한 기술은 모두 십 년 뒤에 나올법한 것이긴 했소.”
“아니, 그건 그렇지만···.”
물론 지금까지 내가 발명한 기술이 상식을 뛰어넘기는 했다. KW에서 발표한 기술들 모두가 각 분야에서 ‘미래를 십 년은 앞당겼다’라고 평가받을 만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핵융합 발전은 궤를 달리하는 기술이다. 일단 그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KW에서 주력한 반도체, 배터리, 첨단소재와 달리 핵융합 발전은 수백 개의 기술이 집약된 산업이다.
심지어 1950년대부터 핵융합 발전을 위해서 각국은 꾸준히 노력했지만, 아직 상용화는 갈 길이 먼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핵융합 발전에는 ‘난도 불변의 법칙’이 있다‘라고 할 정도니까.
핵융합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1억 도에 이르는 고온을 만드는 기술, 플라스마를 용기 안에 가둬두는 강력한 자석 기술, 안정적으로 플라스마 현상을 조절하는 기술 등 워낙 난관이 많았다.
그렇기에 학자들 사이에 종종 도는 농담이 있다.
“이십 년 전에 핵융합 학자들에게 상용화 시기를 물어보면 그들은 이십 년 뒤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또 이십 년이 흐른 뒤, 다시 똑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요?”
“또 이십 년 뒤에 가능할 것이라 하더군요.”
나는 그 유명한 농담을 언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농담은 내일부터 사용할 일은 없을 겁니다. 핵융합 발전은 지금 오늘, 여기서 완성됐으니까요.”
그리고 핵융합 발전방식으로 넘어가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기사용량은 생산량을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현재 화석연료로는 점점 늘어나는 전기사용량을 따라가지 못하지요.”
“그리고 환경오염을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안 되겠지요.”
내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은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대부분 나라는 (심지어 중국도) 이미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고 나섰으며, 특히 북유럽 쪽에서는 내연기관차를 판매하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은 데려온 기술고문과 각자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미스터 리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성공할 수만 있다면 핵융합은 가장 이상적인 발전방식입니다. 수소 1㎏으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석탄 8t을 사용한 화력발전만큼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수소는 지구상에 무한에 가깝게 존재하고, 발전 과정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도 나오지 않지요.”
“각국에서 괜히 돈을 쏟아부으며 수십 년 동안 핵융합을 연구한 게 아니에요. 핵융합이야말로 꿈의 청정에너지입니다.”
각국에서 온 기술고문은 입을 모아 얘기했다. 이건우가 말한 핵융합은 탄소중립을 실현 가능하게 만들고, 지금까지 화석연료로 발생한 모든 문제를 종식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단서를 붙였다.
“물론 실현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공돌이가 꿈꾸고 자빠졌네’라고 하겠지만, 이 기술을 발표한 게 다름 아닌 이건우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짜 뭔가 있는 거 아니야?’ 하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로날드 클린턴이 물었다.
“자네가 지금까지 대단한 일을 해온 것은 알겠지만, 수십 년 동안 난관을 겪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는지 모르겠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겠나?”
나는 싱긋 웃었다. 좋은 질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달 말에 학계에 올릴 내용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건 학자들이 분석하고 연구하겠지만,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건 그게 아니겠지요.”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스크린에 거무튀튀한 광석이 떠올랐다. 전세계에서 이 광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스리늄 광석 아닌가?”
“네. 뉴클리온 프로젝트의 핵심이자, 지금까지 핵융합 발전의 난관을 극복할 열쇠입니다.”
미스리늄.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을 넘어서, 반도체의 패러다임까지 바꾼 이 신비의 물질은, 이제 에너지 시장 자체를 뒤집으려고 하고 있다.
로날드 클린턴은 이제 흥미가 돋는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미스리늄으로 발전소를 만들 수 있나?”
“예. 지난번 일본에서 폭파 사건이 일어났던 것, 기억하십니까?”
“그래. 보고들은 바로는 산 하나가 날아갔다고 하더군.”
그렇다. 나는 이 점에 착안해서 캐리온에게 추가 조사를 시켰다.
“폭파한 장소를 조사한 결과 1억 도가 넘는 온도와 함께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일대를 쓸어버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엄청난 폭발력이지요. 외부 에너지 투입 없이 핵융합 반응이 스스로 유지될 수 있게 하려면, 특정한 온도와 밀도 가둠 시간을 만족해야 합니다. 양자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미스리늄을 이용한다면 이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자세한 건 논문을 읽어보시고.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겁니다. 상업로를 만들기 위한 모든 설계와 준비는 끝났습니다. 뉴클리온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세계는 에너지에 대한 걱정에서 해방될 겁니다.”
나는 씩 웃었다. 내가 세계 각국을 불러서 설명회를 연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기술과 달리 핵융합 발전소는 경쟁 시장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전세계에 발전소를 많이, 빠르게 깔수록 KW의 지배력은 높아진다.
록펠러가 석유왕이 됐듯이, 나는 이제 에너지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