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24화 (124/183)

쏟아지는 러브콜 (3)

<로날드 클린턴 방한! KW 에너지 사장 이건우와 만날까?>

<이건우의 한 마디에 클린턴과 베일리가 움직여···누가 KW 에너지를 유치할까>

클린턴과 베일리.

미국의 대선 후보 두 명이 모두 한국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전세계를 강타했다. 심지어 대선 후보 중 한 명은 현직 대통령이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황당해했다.

"···대통령 후보들이 이렇게 마음대로 움직여도 되는 거야?"

그렇다고 영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지금 내 위치는 킹메이커나 다름없다. 파워온과 나노온 공장을 어디에 짓느냐에 따라 표를 확실하게 끌어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미국의 거물 정치인이 직접 한국에 오겠다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다른 국가에서도 일개 기업인이나 외교관을 보낼 수 없는 노릇이다.

두 사람이 공식 발표를 내는 것과 동시에 회사로 엄청난 전화가 쏟아졌다. 참석 명단을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니카타현 현지사가 아니라 외무대신이 직접 방한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주한 프랑스대사가 대신 참석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그중에는 중국도 있었다.

"···사과랑 배상도 다 했는데 참석하면 안 될까요?"

응, 안돼. 돌아가.

나는 중국을 빼고는 다 수락했다.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가 기술이 털릴 일이 있나. 새끼들이 정신 못 차리고 어디서 머리를 들이밀어.

그렇게 또 KW 본사에서 전에 없는 외교의 장이 펼쳐졌다.

나는 예상보다 커진 규모를 보고 중얼거렸다.

"이거 우리 대회의실에서는 할 수가 없겠는데."

각국의 대사와 외무부 장관을 모아놓고 회의실을 쓸 수는 없지 않겠는가.

"외할아버지께 연락을 드려서 한라 호텔 연회장을 빌릴 수 있는지 말씀드려봐야겠군."

*

오성 그룹 전병철 회장은 요즘 손자 녀석 때문에 살맛이 났다.

희토류 공급망을 안정시켰을 뿐만 아니라 1나노 반도체 공정에 성공하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건우가 오성 ENP의 사장을 갈아치우며 간섭했던 일쯤은 까맣게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으허허. 손자를 잘 둬서 내가 덕을 보는 날이 오는군요.”

그러자 함께 있던 제일 그룹의 이만호 회장도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서 낮술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오. 중국에서 제일 자동차가 이렇게 잘 팔릴 줄은 꿈에도 몰랐구려."

더군다나 원자재인 희토류 가격이 내려간 덕분에 그들이 얻는 이익은 더 컸다.

또, 주가는 얼마나 올라갔던가. 두 달 동안 손해를 본 것은 간밤에 잠깐 꾼 악몽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도 두 할아버지를 기분 좋게 할 빅 이벤트가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건우가 연다는 컨퍼런스 얘기는 들으셨지요?"

"듣다마다요. 미국 대통령이 우리 건우를 본다고 한국에 온다고 하지 않소이까."

"허허, 내 손자놈을 보러 미국 대통령이 오다니. 우리도 건우한테 말해서 한발 걸쳐 볼까요?"

그때 전병철 회장의 휴대폰이 지잉지잉 울렸다.

발신인 이건우.

전병철 회장은 함빡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어, 그래. 건우야. 무슨 일이냐?"

- 외할아버지. 한라 호텔 연회장 좀 대관해도 될까요?

"어? 한라 호텔?"

전병철 회장은 눈을 끔벅거렸다. 지금 상황에서 연회장을 대관한다고?

"설마 너?"

- 이번에 귀빈들을 초청해서 기술설명회를 열려고 했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전병철 회장은 귀가 쫑긋했다. 이건우가 말하는 귀빈이라고 하면···.

"그 미국 대통령이랑 외국 대사들 말이냐?"

- 네. 아무래도 우리나라 최고 호텔에서 하는 게 품격이 있지 않을까요?

전병철 회장의 입이 헤벌쭉 찢어졌다.

KW에서 여는 컨퍼런스는 거의 국가적인 외교행사와 맞먹는다. 이런 초대형 이벤트를 한라 호텔에서 한다면, 글로벌 호텔로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데다 엄청난 홍보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외국인들은 자국 고위인사가 방문하는 곳을 더 선호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각국 귀빈들이 한라 호텔에 투숙한다면 앞으로의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

"으허허허. 그럼 당연히 빌려주고말고. 암, 이런 건 가족이랑 같이 해야지. 내가 잘 말해두마."

전병철 회장은 다시 한번 손자를 잘 뒀다고 생각했고, 이만호 회장은 그런 전병철 회장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호텔업을 시작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

KW에서 컨퍼런스가 열린다. 처음에는 공장 유치와 신기술 설명회를 위한 가벼운 행사였다.

수많은 국가와 기업에서 사람을 보냈는데 보통 대기업의 임원이 주요 참석자였다.

물론 이것만 해도 엄청나다.

한국의 신기술을 바라보고 각국과 기업들에서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뛰어드는 것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거기에 급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바로 미국의 대선 후보 두 명.

그 순간 KW의 컨퍼런스는 사교 모임이 아니라 외교의 장으로 변했다. 오는 사람들의 면면도 확 바뀌었다. 각국의 대사와 외무장관이 여러 회사 대표와 기술 고문 및 참모들을 거느리고 방문했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들은 국뽕에 취하고 있었다.

- 와 스케일 지렸다

- 이쯤되면 전 세계 외교관들이 다 한 번씩 KW에 들르는 수준 아니냐.

- 이번에 오는 사람도 다 1, 2급 고위관리던데

- ㄹㅇ 국격이 높아지는 게 눈으로 보이네ㅋㅋㅋ

그리고 국뽕에 취한 사람 중에는 차민태 대통령도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겠다는 연락을 받은 차민태가 수행비서에게 물었다.

"그래, 시간은 비워두었나?"

"네?"

"KW···아니, 한라 호텔이지. 거기서 하는 연회 말일세."

수행비서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저희에게는 초청장이 오지 않았습니다만?"

차민태가 당황했다.

"초청장이 오지 않았다고?"

"네."

"흠. 이건우 사장이 바빠서 뭔가 착오가 있는 모양이군. 다시 한번 확인해보게."

말은 태연하게 했지만 차민태는 살짝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설마 자국 대통령을 초대 안 하지는 않겠지?

괜히 이건우와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차민태였다.

*

컨퍼런스가 있는 당일.

나는 아침부터 한라 호텔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행사 준비에 신경을 썼다.

'원래 이렇게까지 큰 이벤트가 될 줄은 몰랐는데···.'

그냥 가볍게 사람들을 불러서 몸값 좀 높여볼까, 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이제 출발하려는 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갈색 포마드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백인 남자였다.

현대에 귀족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귀티 나는 외모에 클래식한 정장을 입은 그는 걸음걸이 하나하나에서도 예법이 느껴질 만큼 반듯했다.

한서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막았다.

"약속을 잡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한서진도 여자치고 큰 편인데, 남자는 그런 그녀보다 한 뼘이나 더 컸다. 그는 한서진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Make way."

상류층에서 사용하는 영국 발음 끝에, 부탁조를 가장한 강압이 담겨있었다. 마치 자신이 말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는 말투.

"Please."

다른 나라 언어였지만 한서진은 거기에 담긴 우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과 별개로 무척 재수가 없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

그는 방을 스윽 훑어보고는 품평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가 현대적이고 좋군요. 특히 저기 걸려있는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누군지 몰라도 꽤나 훌륭한 센스를 가지고 있군요."

“이봐요···당신.”

“잠깐만요 서진 씨.”

한서진은 그를 막으려 했지만, 나는 그에게서 풍겨오는 귀족적인 분위기에 손을 들어 한서진을 제지했다.

"남의 방에 쳐들어왔으면 신원을 밝히는 게 예의가 아닐까요?"

상대는 내 질문에 오히려 놀랐다는 듯이 되물었다.

"나를 모릅니까?"

"제가 알아야 하는 사람입니까?"

몸에 저절로 배어 나오는 기품을 보건데 절대 보통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가 예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이 불쾌하지 않은 것 아녔다. 나는 짜증 어린 어조로 말했다.

"지금 곧 나가봐야 해서 말입니다."

그러자 상대가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뭐, 이 작은 나라에는 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군요. 에드먼드 S.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 가문의 차남입니다."

“로스차일드?”

나는 솔직히 깜짝 놀랐다.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나를 찾아왔다니.

현재는 영국을 기반으로 거대한 규모의 금융업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세계에 그들의 손이 안 뻗친 곳이 없는 산업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가문이다.

에드먼드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이었다.

"피차 바쁜 것 같으니 용건만 간단히 하지요. 저는 사장님의 기술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제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직접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니까요.”

그러더니 명함을 꺼내 책상 위에 탁 올려두었다.

“그러니 이런 작은 나라에 있지 말고 내 밑으로 오세요. 제가 더 키워드리지요. 그럼 좋은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그러고는 휑하니 가버렸다.

“······.”

"······."

한서진이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재수없는 사람이네요.”

나는 말 없이 화려하게 장식된 명함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불쾌함을 넘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일단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나를 찾아왔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의중을 알아챈 캐리온이 말했다.

[에드먼드 로스차일드에 대한 조사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확실히 미적 감각은 있어 보이는군요. 저의 센스있는 가구 배치를 알아차리다니.]

“······.”

이 문제는 캐리온에게 맡겨두면 되겠지.

에드먼드 로스차일드가 나에게 접근한 이유에 대해서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나는 일단 당장 닥친 빅 이벤트를 향해 나아갔다.

*

나는 연회장에 도착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있었고 그중에는 네바다 주 주지사도 있었다.

“또 보는군요. 미스터 리.”

“반갑습니다 주지사님. 희토류 공장은 말썽부리지는 않죠?”

예전에 몰덴코프가 환경오염 문제를 터뜨렸을 때 이야기였다. 네바다 주 주지사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말썽은요. 당신 덕분에 다음 재선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우리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는데, 한 노년의 신사가 다가왔다. 백발에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지만, 쉽게 대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풍겨지는 사람이었다. 네바다주 주지사는 화들짝 놀라며 그에게 인사했다.

“오, 베일리 후보님.”

“주지사님 여기에 있었군요. 저기 수행비서가 찾고 있덥니다.”

대놓고 꺼지라는 명령에 주지사는 재빠르게 물러났다.

“어이쿠. 두 분 말씀 나누십시오.”

조 베일리. 온화한 인상의 그는 부드럽게 인사를 했다.

“반갑소 미스터 리. 지난번에 미국에 왔을 때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아쉬웠다네.”

글쎄. 지난번 미국에 갔을 때는 내 영향력이 작았기에 딱히 만나볼 필요가 없었던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파워온은 세계 배터리 시장을 이끌고 있었고, 나노온을 보유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향후 시장을 선점하는 중요한 가름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관심도 없었던 조 베일리가 친히 이 먼 땅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뭘 원하는지도 뻔히 보였고.

경합지역에서 이기기 위해 내 파워온과 나노온 공장이 필요하시겠지.

나는 웃으며 베일리와 악수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후보님.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준비해놓은 것들을 꺼내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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