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러브콜 (1)
주석의 특명을 받은 외교부 부장이 직접 이건우와 배상금 및 중희토류 광산 채굴권에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한국으로 떠났다.
900억 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배상금.
지난번 일본이 미스리늄 광산을 제재해서 지급한 배상금이 90억 달러이다. 그런데 중국에 요구한 금액은 그 10배에 달하는 거금.
이는 제일 자동차 시총과 맞먹는 수준으로, 이렇게 많은 배상금을 한꺼번에 지급하는 경우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중희토류 광산 채굴권.
이미 이건우가 경희토류 시장은 꽉 잡은 상황에서, 이제는 중희토류까지 넘보고 있다.
이걸 내주면 희토류 시장을 완전히 뺏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주지 않으면 그냥 나라 전체가 주저앉게 생겼다.
외교부 부장은 눈물을 흘리며 이건우에게 채굴권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웨이 주석은 들고있던 하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굴욕적인 항복 의사가 쓰여있었다.
‘중국이, 감히 대중국이 어떻게 사과라니!’
지금껏 그들은 다른 나라에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일 거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었고.
그런데 일개 기업인에게 고개를 숙이라니!
중국 기업이나 고위관리가 사과해도 경악할 일인데, 이건우는 감히 주석이 직접 사과를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장웨이 주석은 모멸감을 곱씹으며 눈을 감았다.
‘···이건우’
고작 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당할 줄은 몰랐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끌어올렸던 경제는 다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나라 안은 시위로 들끓었고, 심지어 정적마저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
집권 체제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은 제발 공격을 멈추고 살려달라고 비는 것뿐이었다.
그때 수행비서가 들어와서 말했다.
“나가셔야 합니다.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웨이 주석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패배감이 배어있었다.
*
장웨이 주석이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번 한국의 기업에 대한 규제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절차였지만, 그 정도가 과하여 해당 기업에 피해를 주게 되어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피해를 본 기업에는 배상금을 줄 것이니 심심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후략)”
세계는 난리가 났다.
그 오만한 중국이 결국 머리를 조아리다니. 국내의 언론들은 물론, 외신들까지 이 사실을 특종으로 퍼 날랐다.
<중국, 결국 KW에 항복하나.>
<처음으로 고개숙인 장웨이 주석···. 무엇이 그를 고개 숙이게 했나.>
<희토류 치킨 게임의 승자, KW 머티리얼>
그리고 국내 여론도 무척이나 뜨거웠다.
-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고!
- 와 중국이 사과를 했다고? 이거 거의 처음 아니냐?
- 짱깨새끼들, 꼴 좋다ㅋㅋㅋㅋㅋㅋ
몇 달 동안 중국에게 시달렸던 사람들은 장웨이 주석의 사과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회사 사장실에서 뉴스를 보던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여러모로 대단하군.”
캐리온도 동감했다.
[일본도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예전에 일본이 사도 광산을 제재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할 때도 유체이탈 화법을 써서 논란이 됐던 적이 있었다.
중국은 거기서 한술 더 떴다. 저 정도면 유체이탈 화법이 아니라 거의 자아분열 화법인데?
위 사과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너희가 난리를 치니까 사과는 해줄게. 돈도 줄 테니까 그냥 화 풀어라.
일본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사과가 왜 다 이따위야?
그래도 중국은 내가 요구한 건은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저게 사과인지는 의문이지만 장웨이 주석이 직접 나서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중국의 주석이 국가도 아닌 기업에 사과하다니.
이것만 해도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미’자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는 중국으로서는 하늘과 땅이 뒤집힐 정도로 큰일인 것이다.
900억 달러라는 거액의 배상액도 한 푼도 빠짐없이 들어왔다. 이 배상액은 재단에 출연하여 이번 두 달 동안 피해를 본 기업에 분배를 해주기로 할아버지들과 합의를 봤다.
마지막으로 중국 남부에 있는 중희토류 광산.
지금 남부 희토류의 대부분이 매장되어있는 장시성은 오염수가 한바탕 휩쓸고 가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됐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있는 중희토류 광구를 손에 넣었다. 당장 채굴을 할 수 있지는 않겠지만, 중국이 열심히 정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중희토류도 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네바다주에 있는 경희토류 광구.
그리고 장시성에 있는 중희토류 광구.
이것으로 나는 희토류를 완벽하게 장악하게 되었다.
중국의 희토류 공급량은 지금 바닥이 났고, 당장 채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앞으로 반년간은 희토류 시장에 발을 들이밀지 못한다. 그때를 틈타 나는 희토류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할 것이다.
내가 세계 희토류 시장을 장악하고 각종 보상을 받는 동안, 중국 내부에서는 나에 대한 반 이건우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중국인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존심 하나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높은 놈들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중국이 다른 나라에 고개를 숙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고작 기업인의 협박에 주석이 직접 사과를 한 것이다. 그게 제대로 된 사과라고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국인들의 자존심은 완벽하게 꺾였다.
그리고 중국의 관영매체는 나를 신나게 깎아내렸다.
“오성전자와 제일자동차의 자산과 공장, 설비 등 약 10%가 중국에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중국을 압박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보였다.”
“우리는 이 일에 앞장선 이들 기업과 관련된 어떠한 상품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KW 코퍼레이션은 중국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해야한다.”
물론 이런 여론의 뒤에는 장웨이 주석이 있었다.
장웨이 주석은 악재가 겹치고 경제가 파탄나면서 약해진 지지기반을 이런 방법을 사용해 끌어모은 것이다.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이고 공통된 외부의 적을 등장시킴으로써 지지층을 결집하게 만들었다.
그 전략은 어느 부분에서는 유효했다.
중국인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서 한국의 모든 제품에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지 타격은 없었다.
어차피 이미 지난 두 달 동안 한국 제품은 중국에 팔리지 않았었다.
그 사이 한국 기업은 다른 판로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중국 시장이 여러가지 정치 경제적 요인으로 쉽게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불안정한 곳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습게도···.
[대중 수출액이 역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상체는 최선을 다해 자존심을 지키려고 했지만, 자본주의 하체는 열심히 KW의 물건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미 중국에서는 파워온과 나노온이 불티나게 팔렸다. 각종 전자업체에서는 수입금지조치가 풀리자마자 나에게 연락해서 제품을 받아갔다.
하다못해 중국에서 그렇게 안 팔린다는 제일자동차도 이번에 파워온을 탑재한 신형모델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장웨이 주석이 내부 결집과 민심 다지기를 하는 틈을 타서 재빠르게 중국 시장을 침식하였다.
공격적인 수출로 내가 가진 물량들을 중국에 쏟아냈고, 중국은 지금까지 누리지 못하던 신기술에 내 제품들을 무자비하게 소비했다.
KW의 파워온과 나노온을 비롯한 제일과 오성의 제품들은, 어느새 중국 시장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렇게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시장은 KW가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사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
나노온, 파워온, 희토류.
이 세 가지 물건을 판 대금의 대부분은 새로운 공장을 짓는 데 쓰고 있지만, 어찌나 잘 팔리는지 쓰는 족족 돈이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자금은 충분했다.
내가 캐리온에게 첫 번째로 주문한 것은,
“독도에 매장된 메탄하이드레이트를 채굴하기 위한 기술을 발전시켜봐.”
독도였다.
메탄하이드레이트는 천연가스와 같은 훌륭한 화석연료이다. 특히 메탄은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완전연소를 하므로 청정에너지로 평가받는다.
독도 바다 밑에는 우리가 2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매장량이 있으며,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10조가 넘는다.
하지만 바다 밑에 있는 하이드레이트를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
먼저 하이드레이트층은 얇게 펴져있기 때문에, 험한 바닷속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면서 채취해야하고, 그 과정에서 지각 상태를 변화시켜 수중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이드레이트를 끌어올리는 동안 가스를 가두는 얼음이 녹아버리는 것도 문제다. 얼음이 녹아서 가스가 빠져나가면 상당한 대기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어쨌든 이런저런 문제가 많지만, 캐리온에게 맡긴다면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그다음에 집중한 것은.
“스페이스 온 프로젝트를 이제 슬슬 가동할 때가 됐지.”
민간우주 기업 프로젝트이다.
예전에 일론 머스크와 화성에 관해서 얘기하다가 영감을 얻어 캐리온에게 발전시켜보라고 했다. 워낙 거대한 산업이라 아직까지 손도 못 대고 있었는데, 이번에 중국 덕분에 크게 번 덕분에 슬슬 초기 투자 정도는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캐리온이 말했다.
[그런데 스페이스 온 프로젝트를 가동하기에는 처리 용량이 부족합니다.]
“···응? 그럴 리가 없을텐데?”
하지만 캐리온은 당당하게 요구했다.
[저와 연결된 데이터센터 장비를 나노온으로 업그레이드해주세요.]
미니온-트래킹을 깔아준다고 전세계에 캐리온 전용의 서버실이 한 개씩 생긴 지가 엊그제이다. 근데 그게 부족하다고?
나는 약간 불안해졌다. 이 녀석, 나 몰래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즉시 서버를 뒤져보았다. 그리고 나는 스페이스 온 프로젝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캐리온 프로젝트.
위풍당당한 그 이름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한 기억이 없는데.”
[흠흠,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캐리온이 묘하게 뿌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 위대한 프로그램을 구현하기 위해서 휴머노이드를 설계했습니다. 설계에 대부분의 서버 용량이 소모되었습니다.]
휴머노이드는 로봇의 최종진화 버전 중 하나이다. 일단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움직임 하나에도 수십, 수백 개의 부품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그만큼 정교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캐리온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인공 피부와 인공혈액을 비롯한 인공조직을 사용하여 정말 '인체'에 가깝게 구현했다.
"이걸 하려면 의료진과의 협업이 필요할 텐데."
[그래서 제가 백하영 교수에게 연락했습니다. 그쪽에서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렇게 추진력이 빠른데 나는 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을까.
백하영 교수는 피부조직 재생술을 위해 내가 데리고 온 인재이다. 캐리온은 백하영에게 완벽한 피부조직 재생을 위해 힌트를 줬고, 백하영은 마침내 기술을 완성했다고 했다.
그 도움을 빌미로 프로젝트에 가담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백하영은 고마움 반 호기심 반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양.
“그런데 돈은 어디서 나왔는데?”
[당연히 이건우 님의 비상금을 떼왔죠.]
“······.”
뭔데 이렇게 당당하지?
나는 일단 캐리온 프로젝트를 들여다봤다.
이름은 온캐리. 직함은 교수.
캐리온은 자신의 부캐인 캐리 교수를 정교하게 만들어냈다. 심지어 이미 전산상으로는 실존 인물이었다.
국가 전산망을 해킹하여 출생신고를 마쳤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사이트를 해킹하여 정보를 등록했고, 각종 학회에 다녀오거나 논문을 발표한 이력까지 만들어냈다. 그리고 심지어 사진까지 있었다!
[제 증명사진입니다.]
나는 캐리온의 사심이 듬뿍 들어간 사진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왜 여자냐?”
[제 마음입니다.]
그래.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아야지.
캐리온 프로젝트에 잠깐 정신을 뺏긴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찾던 프로젝트 파일을 꺼냈다.
뉴클리온 프로젝트.
한국에서는 정부 주도로 전기차 충전 사업이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또한 전기차 충전소 사업을 계획하면서 에너지 발전 사업도 같이 계획했다.
석유나 석탄을 통한 화력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는 만큼 기존의 전력량으로는 커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준비했다.
“캐리온. 미스리늄을 이용한 발전 방식을 구체화할 수 있을까?”
나는 예전에 일본에서 미스리늄 폭파 사건이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소량의 미스리늄으로도 작은 산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엄청난 열과 폭발.
그 에너지를 이용한다면 새로운 발전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아이디어에 착안해서 만들어낸 프로젝트였다.
이름하여 뉴클리온, 핵융합 발전 방식이다.
그때 캐리온이 말했다.
[그럼 이 프로젝트를 캐리 교수의 데뷔작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아무래도 캐리온은 자신의 부캐에 너무 심취한 모양이다. 나는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기에 수락했다.
“좋아. 이대로 진행해.”
그렇게 핵융합 에너지의 권위자, 캐리 온(Carrie On) 교수가 탄생했다.
*
중국의 항복선언을 주시하는 사람들은 대서양 건너편, 영국에도 있었다.
작은 성 같은 아름다운 저택.
붉은 방패 문장 아래 사람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층고가 높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드는 거대한 홀. 원목 탁자에 일곱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수장, 아이작 로스차일드.
그리고 여섯 명의 후계자.
그들이 새롭게 동아시아의 패자가 된 이건우를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