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 (3)
캐리온이 말했다.
[미국의 대형 희토류 업체, 몰덴코프를 인수하길 추천해 드립니다.]
[몰덴코프는 2년 전에 네오 머티리얼이라는 그룹을 인수했는데, 그 이후 포비드 사태가 터지면서 아직까지 흑자 전환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화된 재무건전성과는 달리 생산 능력은 우수합니다.]
[몰덴코프는 네바다 사막의 희토류 광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곳의 희토류 품질이 세계정상급입니다.]
[또한, 몰덴코프가 인수한 기업은 다양한 희토류 제품을 디자인하고 개발하고 있어서 2차 가공 산업으로 확장에도 용이합니다.]
캐리온이 이렇게까지 추천하길래 나는 몰덴코프의 기업 상태를 한번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뭐야, 진짜 망하기 직전이잖아?"
부채 규모는 17억 달러, 즉 2조이다.
웃긴 건 시가총액이 1억 5000만 달러라는 것이다. 무려 시가총액의 15배를 부채로 가지고 있었다.
뭐, 몇 년 전에는 시총 60억 달러에 이르렀던 건실한 기업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때 생긴 부채들로 인해 지금은 파산 직전이다.
이번에 융자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한 달 동안 유예기간을 거쳐 파산 신청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공공연히 떠돌고 있었다.
“딱 내가 원하는 기업이네.”
생산시설에서 크게 손보는 것 없이, 바로 자금만 투입되면 정상화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지가 좋다. 무려 미국에 공장이 있다.
미국에서 희토류를 생산할 수 있으면, 조금 더 쉽게 미국 내에 있는 수많은 첨단기업을 고객사로 둘 수 있다.
미국에서 희토류를 공급받을 수 있는데 굳이 먼 중국에서 운송비를 들여가며 희토류를 수입해올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더 볼 필요도 없이 나는 결정을 내렸다.
“캐리온. 여기에 연락을 넣어. KW에서 인수할 의사가 있다고.”
*
몰덴코프 사장은 망해가는 기업을 살리려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었다. 은행에 대출을 알아보는 한편, 투자자도 구해보았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 모든 방법이 실패했다.
일단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뭔 놈의 포비드 사태 때문에 거의 반년 동안 공장을 못 돌리고 있었다.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상황이라서 다들 대출을 신청한 통에, 대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통보만 받았다.
그리고 지금 중국이랑 KW라는 두 고래의 싸움 때문에 희토류 가격은 똥값이라고 할 정도로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희토류 거품이 꺼졌다느니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누가 폭락하는 시장에 들어오고 싶어 하겠는가.
심지어 회사에 있는 부채 17억 달러를 안아야 하는데, 그 돈을 감수하고 기업을 인수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채권단이 17억 달러에 달하는 회생채권에 대해 40∼50% 수준의 변제율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인수자금은 최소 1조 원대 이상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오늘도 회사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결국 실패한 사장은 터덜터덜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러다가 진짜 파산 절차를 밟아야 하는 건 아닌가?'
애정이 담긴 회사였다. 더군다나 그가 책임지고 있는 직원만 수백 명이다. 어떻게든 끌어안고 가고 싶었지만, 어느새 파산이 눈앞에 다가왔다.
파산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비서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방금 전에 한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장은 고개를 기우뚱했다. 한국에는 그와 연이 있는 기업이 없었다.
"한국? 무슨 일로 한국에서 연락을 한단 말인가?"
"KW 머티리얼에서 우리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췄습니다만, 사장님께서 안 계셔...."
"KW 머티리얼!"
사장이 비명과도 같이 고함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망으로 가득 찼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비서가 놀라서 흠칫 뒤로 물러섰다. 사장은 비서의 어깨를 덥석 잡더니 재차 물었다.
"오, 맙소사! KW 머티리얼에서 연락을 했다고? 이건우가 내 회사에 관심을 보여? 정말 KW 맞는 거지? 다른 회사랑 잘못 들은 건 아니고?”
“아, 예. 똑똑히 들었습니다. 한국의 KW 머티리얼이라고요.”
비서의 확답에 사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우린 살았다, 살았어!”
“···분명히 어제만 해도 이건우가 개새끼라면서 욕하지 않았나요?”
“뭐? 내가? 내가 언제? 누가 우리 이건우 사장님을 욕해?”
재빠른 태세전환에 비서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지만, 몰덴코프 사장의 머릿속에는 이미 KW 머티리얼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KW 머티리얼 이야기는 사장도 잘 알고 있었다. DK 머티리얼이라는 작은 희토류 제련 기업을 인수하면서 만들어진 회사가 아니던가.
그러고 얼마 되지 않아 친환경 희토류 공법을 발표하면서 KW 머티리얼은 온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DK 머티리얼의 입장에서는 로또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작은 제련 공장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곳이 한국에 위치했다는 이유만으로 이건우의 눈에 들어서 한순간에 세계적인 기업이 됐으니까.
심지어 이건우는 전 사장을 자르지도 않고 고용을 보장해주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이건우는 인수합병을 한 회사의 사장들을 대부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전에 인수했던 마스크 공장의 공장장부터 하이텍 파운드리의 사장도 직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그걸 보고 몰덴코프도 한국에 있었으면 저렇게 될 수 있었을 거라고, 그가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하지만 이제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몰덴코프 사장이 보기에는 이보다 완벽한 인수합병이 없었다. 아마 모든 직원들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당장 비행기 표부터 끊어. 내일 아침, 아니다. 오늘 제일 빠른 시간으로 끊어!”
신이 난 몰덴코프 사장은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면서 인수합병에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하러 갔다.
비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표를 알아보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 비서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
몰덴코프를 인수하는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본 인수합병 중 가장 빠른 것 같았다.
캐리온이 인수 의사를 타진하자마자 다음 날 점심, 몰덴코프 사장은 KW 본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 뒤에는 인수에 필요한 각종 자료들이 가득 담긴 캐리어를 끌고 온 비서가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를 해댔다.
몰덴코프 사장은 제발 인수해달라고 사정을 했고, 내가 제시한 모든 조건에 무조건 오케이를 했다.
정말로 하루 만에 인수 계약을 체결하게 된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돌아가서 이사진과 얘기해봐야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이사진에게 KW에게 회사를 팔 거라고 하니 다들 만세를 부르더군요."
"......."
이런 신박한 일처리는 또 처음인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세부사항은 몰덴코프에서 검토하고 온캐리 변호사와 조율한 뒤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그래도 몰덴코프 사장이 적극적으로 나온 덕분에 협상은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다. 몰덴코프 사장은 한국에 온 김에 홍천과 충주에 있는 공장을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그는 희토류 침출 방식을 보더니 감탄했다.
"대단하군요. 몰덴코프는 네바다 주 마운틴패스에 광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염물질이 네바다 사막 지하수로 흘러 들어가는 바람에 환경오염문제로 크게 마찰을 빚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안전한 공법이라면 그런 문제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네바다 주에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며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지요. 아시다시피, 거기는 라스베이거스 말고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네바다 주의 면적은 우리나라보다 크지만 인구는 그 10분의 1인 400만 명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지형의 대부분이 사막 아니면 산이라서 산업경제가 크게 발달할 수 없었다.
네바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사막과 라스베이거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
라스베이거스의 관광업에 의존해서 먹고 사는데, 희토류 산업이 나타난다? 그것도 환경오염이 전혀 없는 희토류 산업이?
몰덴코프 사장은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말을 조금 흘리면 분명히 네바다 주에서 나서서 유치를 도와줄 겁니다. 그 부분은 제가 돌아가서 손을 써보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사업을 오래 해서 이쪽 정치인과는 연이 있거든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우리는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기왕 공장을 인수할 거 남의 돈으로 하면 더 좋지.
그렇게 몰덴코프 인수는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몰덴코프 사장은 이건우와의 협상이 끝나자마자 네바다 주지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네바다 주 주지사는 눈이 번쩍 뜨이는 걸 느꼈다.
“KW가 우리 네바다 주에 투자를 한다고?”
“네. 이번에 KW가 개발한 희토류 기술은 들어보셨지요?”
“당연히 들어봤다마다. 이번에 개발한 그 기술이 환경오염이 전혀 없다는 것은 내 익히 알고 있지.”
이번 이건우가 발표한 희토류 기술에 관한 자료에는 특히나 환경오염이 없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그 자료를 열심히 물고 뜯은 결과 정말로 KW의 기술은 환경에 어떠한 오염도 가하지 않았다.
지금 한국만 보더라도 정화시설 없이 열심히 공장을 돌리고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희토류 공장의 환경오염 문제는 꽤 신경이 쓰이던 문제였는데 말이야. 지난번에 폐수처리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네바다 사막의 지하수가 오염됐지 않은가.”
“···그거 배상하느라고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맸었죠.”
“아무튼, 그것 때문에 환경단체에서 얼마나 물고 늘어졌는지. 한동안은 희토류의 희자도 듣기 싫어지더군.”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우는 이번 매각이 완료되는 대로 친환경 기술을 전수해주고 자금을 투입해서 공장을 정상화하기로 했습니다. 아시겠지만 환경오염 문제만 해결되면 희토류 산업은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매각이 문제라는 건가?”
“예. 주 정부가 나서서 채권단을 설득하고 지원을 해주면 이건우도 네바다 주에 호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흠···.”
주지사는 고민했다. 몰덴코프가 미국의 유일한 희토류 생산기업이라 과하게 밀어준 것도 있지만, 때문에 부채 비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사실 이건우가 인수하겠다고 나선 게 신기할 정도이니.
주지사가 망설이는 기색이 보이자 몰덴코프 사장이 속살거렸다.
그로서는 이번 인수에 모든 게 걸려있었다. KW로 회사가 넘어가는 순간 자신의 숨통이 트이는 것을 모자라 대반전의 기회로 잡을 수 있다.
“제가 이번에 한국에 가서 강원도를 가봤습니다.”
“강원도?
“예. 원래는 산밖에 없고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곳이라고 합니다. 마치 네바다 주 처럼요 그런데 이번에 KW에서 투자를 하면서 지역경제가 되살아나고 근 일 년 사이에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자세하게 썰을 풀었다.
강원도에서 미스리늄 광맥이 발견됐고, 파워온 배터리 공장이 들어섰으며, 그 이후 희토류 생산시설과 반도체 공장까지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따라왔다는 것까지.
“KW가 강원도에 쏟아부은 돈만 십조 원이랍니다.”
“시, 십조!”
사장이 주지사를 살살 꼬드겼다.
“그가 희토류 공장을 정상화하면 현지에서 약 17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원래 원재료가 있는 곳에 관련 공장을 짓는 법입니다. 강원도를 보십시오. 미스리늄 광맥이 있다고 거기에 배터리와 반도체 공장까지 들어앉았지 않습니까.”
"네바다 주 차원에서 조금만 지원해 준다면, 그런 공장을 투자받는 게 꿈만은 아닐 겁니다."
이 마지막 말이 주지사의 결정에 쐐기를 박았다.
“좋아. 이건우를 네바다 주에 초청해볼까?”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당연히 주지사님이 가셔야죠. 가서 한국 구경도 하고 오십시오. 거기는 물맛도 좋더군요.”
그렇게 몰덴코프의 사장은 주지사 설득에 성공했고, 네바다 주 주지사는 즉시 경제개발부 대표단을 꾸려서 한국으로 향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