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 (2)
중국의 주석실.
주한중국대사는 KW가 감히 대국의 호의를 거절했다면서 난리를 치며 본국으로 소식을 전했고, 이 소식은 외무부를 거쳐 장웨이 주석에게까지 들어갔다.
이건우의 대답을 들은 장웨이 주석은 길길이 날뛰며 대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관련 부처를 소집했다.
"이건우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감히 본국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도 모자라서 싸움을 걸어? 그래, 자네들이 보기에 놈이 내놓은 희토류 기술이 시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 같은가?"
국토자원부 부장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KW는 이제 막 공장을 설립한 생산 초기 단계입니다. 감히 저희와 싸움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닐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이 1년 동안 생산하는 희토류 총량은 14만 톤에 달한다. 아무리 이건우가 대단한 기술을 발견했다고 해도 그 압도적인 양을 쉽게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국토자원부 부장의 말을 들은 장웨이 주석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는 상대가 이건우라는 점에서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이미 KW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 주석이다. 놈들을 밟으려고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고도 오성과 제일 그룹까지 엮어서 규제를 했는데, 밟히기는커녕 신기술을 들고 나왔다.
나노온.
그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지금 역으로 중국의 희토류 시장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게 이건우라는 놈이다. 주석은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을 원했다.
"그런 마음 편한 소리를 하니까 일본 시장을 이건우한테 뺏기는 거 아냐! 지금 이건우가 우리 중국의 독점 체제를 깨버린 거라고. 여기서 더 여지를 주면 우리는 전략 물자라는 무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거 모르나? 여기서 더이상 밀리면 안 돼. 아니, 이건우가 희토류 시장에 발조차 디디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야. 알아들었어?"
이미 한국과 일본 시장은 KW에 뺏겼다. 그리고 이건우는 미국과 유럽에 있는 고객사에게 직접 연락을 돌리며, 희토류 가격을 낮추면서까지 새로운 판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노온까지 끼워팔기를 하고 있었으니 중국이 손 놓고 있다가는 모든 시장을 빼앗겨버릴 터이다.
그는 국토자원부 부장에게 명령했다.
"가격을 더 내리고 가지고 있는 물량을 다 풀어. 희토류 생산량을 늘려버리란 말이야. 무조건 이건우가 판매하는 가격보다 싸게 팔아. 덤핑을 하던, 장기계약을 맺던 고객들이 떠나지 않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묶어둬."
하지만 주석의 명령에 국토자원부 부장은 주저했다.
"그런데 그런 조치를 취하기에는 지금 국내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내수시장에도 공급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국의 희토류 시장은 지금 큰 악재가 무려 세 가지나 닥친 상황이었다.
먼저 포비드 사태.
중국은 전염병 때문에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희토류 공장이 몰려있는 장시성은 현재 봉쇄 조치가 내려진 상태였다. 2500만 시민 대부분이 자택에 격리되면서 생산 시설이 가동을 멈췄고 소비도 극도로 위축됐다.
당국에서 이달 하순부터 직원들이 공장 내에서 숙식하는 ‘폐쇄 루프’ 방식으로 중요 업체부터 운영을 재개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고는 하지만, 글쎄.
공급망과 물류 마비는 여전히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상태이며, 공장의 가동률도 아직은 정상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
그리고 중국에서 채굴하는 것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채굴한 광물을 수입해서 제련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서는 그것도 불가능해 희토류 생산량의 절대치 자체가 낮아진 상태였다. 이번 분기 희토류 생산 증가율은 각각 -2.9%로 역성장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지금이 여름 장마철이라는 것이다.
장시성이 있는 중국 남부는 장마철이 되면 침수가 일어나곤 해 희토류 광산 채굴이 어려워졌다. 또한,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환경오염물질이 유출될 수 있는 리스크가 있어 생산량을 늘리는 게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현재 중국희토그룹은 내분이 일어난 상태였다.
원래 중국은 소규모 국영기업이 희토류 채굴, 생산, 교역, 수출까지 모두 담당해왔다. 그러다 보니 소규모 기업이 너무 분산돼 있어서 산업 질서가 무질서하고 효율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장웨이 주석은 희토류 회사 및 연구소 5개를 통합해 중국희토그룹을 출시했다.
세계 희토류 시장에서 중국의 가격 결정능력을 강화하고 중국회사들 사이의 경쟁을 피하려는 의도였지만 문제가 없을 리가 없었다.
연구소 2개를 제외하면, 3개의 회사를 합쳤는데 그 회사들이 동등한 비율로 합쳐지면서 구조재편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당 회사들은 이전부터 꾸준히 경쟁을 해온 탓에 관계가 썩 좋지 않았다.
잡음이 발생하는 건 당연지사. 한 회사가 3개 분파로 나뉘어 저들끼리 내분을 일으키며 아직도 직급 조정 문제로 소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전문성이나 능력과 무관한 나눠먹기식 인사에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사업부제를 급히 시행하는 바람에 내부 업무 차질이 상당했다. 위에서 이러고 있으니 밑에 생산이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조정이 끝나려면 아직 몇 달은 더 걸릴 것 같았고, 그동안 생산이 저하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지금 희토류 생산량을 늘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장웨이 주석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특히 희토그룹 문제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합쳐놨더니, 그 안에서 저들끼리 싸우느라 경영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그는 고함을 질렀다.
"희토류가 얼마나 중요한 국가 산업인데 그걸 보고만 있었나!"
"죄, 죄송합니다."
"직접 개입해서라도 당장 희토그룹 경영부터 정상화시켜! 이번 주 안으로 성과가 없으면 자네에게 책임을 물을 테니 알아서 하게."
국토자원부 부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장웨이 주석은 계속해서 명령했다.
"생산 인력을 세 배 더 투입해서 공장을 돌리고, 발생하는 폐수와 금속물 찌꺼기에 대한 임시처리시설을 늘려서 장마철을 대비하도록 하게."
주석의 조치는 위험천만했다. 생산 인력이 몰린 가운데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포비드가 퍼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임시처리시설에 대한 관리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해당 지역은 환경오염으로 초토화된다.
하지만 국토자원부 부장은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따르지 않으면 그의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었으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중국이 이건우가 시작한 치킨게임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
십 년 전, 세계 무대에서 치킨 게임이 일어났었던 적이 있었다.
오성 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후발 업체를 죽이기 위해서 나섰던 것이다.
이때 당시 치킨 게임의 여파로 D램의 가격이 똥값 수준으로 떨어졌다.
오성 전자는 업계 1위 수준의 원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가격을 낮춰버렸다. 그리고 당시 오성 전자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였다.
치킨게임은 깨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기술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방은 원가에서도, 기술력에서도 상대가 안 되는 셈.
결국, 치킨게임의 상대이던 독일의 반도체 업체는 버티지 못하고 파산했고, 그 다음 해에는 일본의 엘피다도 파산했다.
어쨌든.
이와 비슷한 치킨게임이 희토류 시장에도 벌어지고 있었다.
중국과 KW의 경쟁 속에서 희토류 가격은 이미 90% 가까이 하락했다.
하지만 나에게, 가격이 낮아진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캐리온이 개발한 기술은 기존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효율성을 자랑한다.
일반적인 공정은 일단 전해액을 침출하여 희토류 침출액을 얻으면, 여기서 옥살산이나 탄산암모늄을 사용하여 희토류 산화물로 침전시켜 회수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침전기술은 공정이 복잡한 데다 다량의 화학약품을 소비하고, 결정적으로 불순물을 제거하기가 어려워서 생산물의 순도가 낮고 수율이 낮다.
그래서 캐리온은 초기 침출액으로부터 직접 희토류 농축액을 얻을 수 있는 비침전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양의 희토류를 뽑아내서 원가를 확 낮출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그렇게 생산한 희토류를 마구잡이로 시장에 풀어버릴 수 있었다.
가격이 똥값이 되긴 했지만, 총알도 든든하고 효율이 좋은 기술이라 이 정도 손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광맥의 개수가 다른 것은 극복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제 슬슬 국내의 광맥으로 생산하는 데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국가를 상대로 치킨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찌되었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 한다.
특히 나는 생산 초기 단계라 중국의 완숙한 공정에서 나오는 생산량을 따라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이미 준비해둔 상태였다.
"중국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하면 되지."
그동안 받아놓기만 한 희토류 사업 제안서가 내 책상에 사람 키만큼 쌓여있었다.
내가 생산을 못 한다면 다른 기업을 끌어들이면 된다.
"캐리온. 기술력은 좋지만 재정상태는 좋지 않은 희토류 기업을 골라서 연락을 돌려."
[알겠습니다.]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곳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 치킨게임이 피똥 싸는 게임인지라 중국뿐만 아니라 호주, 브라질, 인도 등 전세계에 있는 희토류 기업이 다 함께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 국민연금에게 주식을 넘기고 20조를 받아왔기에 버틸 여력이 되지만, 다른 기업도 그럴까?
분명 떨어진 희토류 가격 때문에 휘청거리고 있는 기업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딱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었다. 나는 씩 웃었다.
“그럼 이제 등 터진 새우 시체를 주워볼까.”
*
그리고 캐리온의 레이더에 한 업체가 걸려들었다
몰덴코프.
몰덴코프(Molden Corp.)는 미국의 유일한 희토류 대형 생산업체이다. 하지만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부채 규모도 눈덩이같이 불어나고 있었다.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건만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중국과 KW가 치킨게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KW였다. 갑자기 희토류 시장에 뛰어든 KW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희토류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가격에 수많은 업체들이 KW의 희토류를 받아가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몰덴코프의 거래처도 있었다.
그 다음은 중국이었다. 수출량을 제한하며 희토류를 독점하던 중국은 갑자기 수출 쿼터를 폐지하고 수출세도 폐지해버렸다.
그 결과는 즉각 나타났다.
희토류 중 하나인 란탄과 세륨 가격이 150달러에서 4달러로 폭락했다. 영구자석 원료로 쓰이는 네오디뮴의 가격도 330달러에서 60달러로 떨어졌다. 심지어 희토류의 가격은 아직도, 실시간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희토류 거품 붕괴를 넘어서 이미 생산가보다 시장가가 더욱 낮아진 기현상이 발생했다.
그 직격타를 제대로 맞은 몰덴코프 사장이 비명을 질렀다.
"그만 좀 하라고 개새끼들아아아!"
그리고 그런 몰덴코프의 사장에게, 이건우의 제안서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