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의 서막 (4)
대통령의 집무실.
차민태 대통령은 지난 일주일 동안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간 기분이었다.
최근 두 달간 지지율은 내리막길을 걷다 못해 바닥을 뚫기 일보 직전이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프레임을 야심차게 내세웠는데, 그 경제가 망해버린 것이다.
중국을 못 막았다느니, 자국 기업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느니 온갖 질타에 시달렸다.
사실 차민태는 억울했다.
'중국이 저러는 건 이건우 때문인데···.'
물론 중국이 먼저 파워온 기술을 빼돌리려고 했던 건 맞다.
하지만 이건우는 그런 중국의 기밀문서를 역으로 빼돌려 버렸다. 심지어 그걸 팔아서 십수 조를 벌어들였다. 불난 집에 기름을 트럭으로 들이부은 격이다.
차라리 이건우처럼 돈이라도 벌고 두드려맞으면 덜 억울하겠건만, 욕이란 욕은 차민태가 다 먹고 있었다.
특히나 최근 일주일은 그 정도가 더 심했었다. 정치인이 되고 나서 먹은 욕보다 최근 일주일 동안 먹은 욕이 더 많았을 정도.
그리고 그렇게 피똥 싸며 두 달을 채우는 순간,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건우가 1나노미터 반도체와 희토류 양산을 발표한 것이다.
심지어 이건우는 25조라는 거금을 쏟아부으면서 공매도 세력 조지기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증시가 살아나고 경제도 살아났다.
덩달아 차민태의 지지율도 올라갔다. 이건우가 희토류 사업을 할 때 국책사업으로 지정해주고, 각종 투자와 편의를 봐준 내용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덕을 톡톡하게 보았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국격도 올라갔다.
한국이 어려울 때는 본 척도 하지 않던 여러 국가에서 이건우가 나노온과 희토류 발표를 하자마자 친한 척 연락을 하며 이건우와 다리를 놓아줄 수 있겠냐며 연락을 해왔다.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차민태는 깨달았다.
'이건우 코인에 탑승해야 하는구나.'
그의 본능과도 같은 보신주의가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판단이 서자마자 그는 이건우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로 결심했다.
"크흠. 앞으로 이건우 사장이 하는 일이라면 다이렉트로 나에게 보고하도록 하게. 그만한 인재라면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야지, 암."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마침 조금 전 이건우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독도에 관해서 대통령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답니다."
"독도?"
차민태는 의아했다. 갑자기 독도가 나온다고?
차민태의 표정을 본 보좌관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알아보니까 바로 어제, KW 본사에 야마모토 주한대사가 찾아가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죄했다고 합니다."
"야마모토 그 작자가?"
일본 주한대사는 차민태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외무성 관료의 넘버 투인 차관급 외무심의관 출신인데, 그만큼 콧대가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정도 되는 사람이 이건우에게 가서,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사과했다니.
"아마 나노온과 희토류 때문인 것 같은데···. 자세한 건 직접 들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좌관의 이야기를 들은 차민태의 눈이 반짝였다. 이거, 다시 한번 지지율이 떡상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당장 이건우 사장을 불러오게!"
*
나는 보좌관에게 독도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한 다음 날, 청와대에 바로 들어가서 차민태를 만날 수 있었다.
"어이구, 이 사장. 왔는가!"
심지어 차민태는 굉장히 친근하게 나를 대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자주 만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살갑게 대해주지는 않았는데. 뭐, 이유는 뻔했다.
'내 덕분에 지지율이 많이 올라서 그렇겠지.'
임기 말인데도 레임덕이 없는 대통령은 흔치 않았다. 내가 워낙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끊임없이 벌이는 까닭에 차민태의 권력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차민태 입장에서는 내가 올 때마다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 같겠군.
하긴, 미니온부터 시작해서 미스리늄에 이어 희토류와 나노온까지. 이 정도면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다.
차민태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에게 은근히 물어보았다.
"그래, 그 독도 얘기는 무엇인가?"
"별거 아닙니다. 최근에 일본이 쓸데없이 독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다시는 헛짓거리 하지 않도록 소유권을 확실히 하려고요."
"···뭐?"
차민태는 눈을 끔벅였다. 그러니까 그 말은,
"독도의 영유권이 한국에 있다는 걸 확실히 하겠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걸 말하려면 일본과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할 말이 너무 많아지므로, 나는 깔끔하게 요약해주었다.
"잘 타이르면 됩니다."
"······."
차민태는 내 말에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이야 어찌되었든 KW가 나서서 독도를 가지고 온다면 그로서는 땡큐이다.
독도 영유권 분쟁은 지난 수십 년간 논란이 되어왔던 문제가 아닌가. 그 어떤 대통령도 뚜렷한 성과를 낸 적이 없는 문제였다.
'그걸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해결한다면?'
다 자신의 공이 되는 것이다. 계산이 선 차민태는 말했다.
"알았네. 내 필요한 게 있으면 최대한 돕겠네. 그러면 이번에는 내가 뭘 해주면 되겠나?"
나는 씩 웃었다. 역시 차민태는 계산이 확실해서 좋다.
"일단 독도를 받아오면 해양탐사권과 채굴권을 저희 KW 자원개발에 넘겨주십시오."
"그건 문제가 없지."
차민태는 쉽게 승낙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정말로 독도 분쟁을 확실히 매듭짓는다면, 그건 지금까지 어떤 정부도 해내지 못한 일을 혼자서 해낸 것이다.
탐사권과 채굴권을 몰아주는 것쯤은 그 공로를 인정해 쉽게 넘겨줄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아니면 해양탐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업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요구사항이 더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또? 독도에 있는 자원을 성공적으로 채굴한다면 못해도 10조는 될 텐데."
차민태는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나는 씩 웃었다.
"이건 대통령님께도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국민연금공단에서 KW 미디어 주식을 매입해주길 바랍니다."
"호오."
차민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눈치챘다.
"이번에 공매도 세력 때문에 25조 원어치 자사주를 매입했다지?”
“맞습니다. 그중 일부를 블록딜로 국민연금에 넘기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꽤나 괜찮은 제안이지요?”
나는 지금 나노온과 희토류 공장을 추가로 지어야 해서 현금이 필요하다.
이번에 공매도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서 중국 경매장에서 벌어들인 돈의 두 배를 갖다박아서 남아있는 현금 보유량이 없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자사주를 함부로 매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가 KW의 주식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전자산이라는 신뢰도가 생긴다.
그리고 이건 차민태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KW 미디어 주식은 일반적인 엔터주와는 다른 위치에 있다. 계열사 중에서 유일하게 상장되어있기 때문에, 기업의 가치를 대표하고 있다.
그리고 KW는 앞으로의 발전이 무궁무진하다. 나노온과 희토류가 세계시장을 장악한다면 그 가치가 얼마나 뛰어오를지 알 수 없다.
또한 KW 미디어 주식이 지금 씨가 마른 지금, 이런 식으로 한 발 걸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거래는 분명 양쪽 모두에게 큰 이득이 되는 제안이었다.
빠르게 계산을 마친 차민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내가 관리공단에 직접 말해두도록 하지. 나머지 사항은 그쪽과 얘기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용건을 모두 마친 차민태는,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런데 말일세. 독도를 꼭 얻어올 수 있는 게지? 내가 특별히 직접 발표를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다.
*
일본 외무성.
야마모토 주한대사의 말을 전해들은 일본은 크나큰 고민에 빠졌다.
일단 이건우가 내건 배상금은 어찌어찌 납득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액수를 듣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지난번 미스리늄 사태 때 1000억 엔을 뜯기고 난 뒤에 내성이 생긴지라 감당할 만했다.
중국과 손절하는 것도 괜찮았다.
지금 중국과 이건우는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나노온을 선택하는 순간 중국을 버리는 건 당연히 밟아야 할 수순이었다.
"하지만 다케시마라니요!"
다케시마 문제는 쉽지 않았다.
지금 영유권 문제로 양국이 다툰 시간이 벌써 수십 년이다. 다케시마에 매장된 천연자원은 차치하고서라도 이건 자존심 문제였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독도에 관한 이야기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고요. 정치적인 부담이 너무 큽니다.”
하지만 외무대신은 조금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존심 세우다가 미스리늄 사태 꼴이 날 겁니까?"
그의 지적에 사람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미스리늄 사태는 국가도 아니고 일개 기업에 대해 굴욕적인 외교를 겪은 사례였다.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내줄 건 내주고 그 사이에서 실리를 취합시다."
"실리라니요?"
외무성 대신이 교활하게 웃으며 계획을 설명했다. 그의 계획은 상당히 그럴듯해서 총리를 비롯한 모든 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전제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이건우는, 감히 일본이 협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
외무대신이 직접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KW를 일본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와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양국의 신뢰를 돈독히 하면 좋겠군요."
나는 코웃음을 쳤다. 누구보고 오라가라야?
- 네가 와.
"......."
나의 짧고 굵은 대답에 외무대신은 부르르 떨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쉬운 사람이 찾아와야지.
그렇게 외무대신이 KW 본사를 방문했다. 외무대신이 한 기업인을 찾아 방한하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다. 거기에 지금 차민태 대통령이 독도 문제를 이슈화해서 지지율을 얻겠답시고 잔뜩 언론플레이를 해놓은 상태였다.
덕분에 KW 본사 앞은 기자들로 드글드글거렸다.
나는 본사 앞에 모인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양국 국민이 이번 만남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그러니까 좋은 결과가 나와야하지 않겠습니까?”
응접용 소파에 앉아있던 외무대신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그는 연신 친절하고 매너있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이지요. 그래서 본국에서는 KW에게 위로금을 건네며 힘을 합쳐 중국의 압박에 대항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위로금이라···. 이번에도 손해배상액치곤 이름이 이상하다.
"그건 좋군요. 그럼 마지막 사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독도는 누구 땅이냐.
거기에 대해 일본은 어떤 대답을 내놨을까.
하지만 외무대신의 말은 가관이었다.
"저희는 독도의 영유권을 한국으로 넘기는 대신 KW와 합작하여 독도의 천연자원을 공동개발하고, 거기서 나온 자원에 대해 선매권을 얻는 방식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일본은 독도에 있는 천연자원을 자국의 기술로 개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가능성이 큰 이건우에게 붙어서 콩고물이라도 주워먹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또한 그 대가로 매년 나노온과 희토류를 저희 일본에 먼저 판매해주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나는 빙긋 웃었다.
영유권을 한국으로 넘겨준다고? 아주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누가 들으면 언제는 일본이 독도를 차지한 적이라도 있는 줄 알겠다.
아무래도 외무대신이 단단히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착각을 박살내줘야지.
"내 물건을 내 것이라고 하는데 어디서 협상질을 하고 있습니까."
"···뭐?"
“제 요구사항은 간단합니다. 세 가지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노온과 희토류는 없습니다.”
내 강경한 말에 외무대신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
*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협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외무대신이라는 직책이 무색하게, 그는 나노온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외무대신은 내 마음대로 써내린 계약서에 결국 서명하고 나왔고, 몇 시간 째 본사 앞에 서 있던 기자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기자단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외신들도 많이 있었다. 특히 이번 일은 일본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건이었다.
외무대신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독도가 한국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국민이 알게되면 자신은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때 한 기자가 물었다.
"독도가 누구 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외무대신은 울 것만 같은 표정이 되었다. 저기 KW건물의 꼭대기 층에서 이건우가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결국 그의 입에서 한국인들이 그토록 원하던 대답이 나왔다.
"···한국 땅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일본 길들이기는 끝났다. 이제 중국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