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15화 (115/183)

반격의 서막 (3)

일본이 나노온을 원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산업 구조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일본은 각종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비롯한 정밀기계·첨단 산업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국가이다.

그리고 이런 산업일수록 최신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1나노미터 반도체라는 최신 기술이 나온 이상, 그걸 적용하지 않는다면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미 그들은 파워온으로 비슷한 일을 겪지 않았던가. 사도 광산을 제재하면서 파워온을 받지 못했을 때 완성차 업체의 주가가 폭락한 적이 있었다.

배터리인 파워온도 그랬는데, 반도체인 나노온은 그 파급력이 파워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노온을 받지 못한다면 주가가 폭락하는 수준으로 그치지 않을 테며, 산업 전반이 완전히 고사해버릴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게 나노온은 국운이 걸린 문제와도 같았다.

총리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우리 일본이 나노온을 받아올 수는 없겠는가?”

그의 물음에 다들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하긴, 바로 두 달 전에 파워온 배터리 계약을 해지하고 중국 배터리 업체인 CTL과 손을 잡은 게 그들이었다.

심지어 KW가 망할 줄 알고, 미스리늄 광산 인부에 대한 임금 지급도 미뤄뒀다.

아무리 보살이라도 기술을 넘겨주지 않을 텐데, 상대는 무려 이건우였다. 고작 사도 광산 하나를 제재했다고 배상금을 엄청나게 뜯어가고 국제적으로 망신을 준 이건우.

심지어 월가에서 유명한 멀린 캐피탈이 이번에 KW를 잘못 건드렸다가 말 그대로 박살이 나버린 게 바로 며칠 전이다.

그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경제산업성 대신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 그게 하필 기술을 개발한 놈이 이건우인지라···.”

총리가 책상을 쾅 쳤다.

“그러게 경제산업성에서는 나와 단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렸단 말인가!”

“······.”

경제산업성 대신은 억울했다. 고작 두 달 전에, 총리가 본인의 입으로 직접 계약을 해지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눈을 돌려 옆의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저 사람들은 총리의 말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억울함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저 총리의 화가 자신에게 미치지 않았음에 안도할 뿐이었다.

총리는 싸늘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대신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건우의 마음을 돌려놓으시오. 어떻게든 반도체를 받아오란 말이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뒤집는 총리의 말에, 대신들의 속도 같이 뒤집어지고 있었다.

*

본국 외무성에서 연락을 받은 야마모토 주한대사는 울고 싶었다.

미스리늄 사태 당시, 이건우에게서 온갖 트집이 잡히고 갑질을 당하면서 겨우겨우 미스리늄과 파워온을 받아왔다.

그리고 얼마 전 그렇게 받아온 미스리늄과 파워온을,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걷어 차버렸다.

당시 이건우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하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뭐? 이제와서 다시 이건우한테 나노온을 받아오라고?

“이 미친 새끼들이! 왜 나한테만 지랄인건데, 지랄이!”

이건우의 성질머리에 맞춰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털이 빠질 것만 같았다. 아니, 실제로도 이건우에게 시달리느라고 탈모의 조짐이 보였다. 정수리와 이마를 중심으로 그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고 있었다.

야마모토 대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답이 없었다.

이쯤 되니 그가 뭔가 외무성에 잘못한 게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주한대사라는 직분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본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본국의 명령은 딱 하나였다.

-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든 이건우를 설득해서 나노온을 받아와라.

간단하지만 그 어조는 무척이나 단호했다. 어떻게든 임무를 수행하라는 압박이 느껴졌다.

근데 솔직히 이건우가 연락을 잘 받을지도 의문이었다. 미스리늄을 받는 것도 그렇게나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그래 썅. 내가 더러워서 한다, 해!"

각오를 다진 주한대사는 정말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다.

기본적인 전화와 서신은 물론이요, 측근 비서인 한서진을 공략하기도 해보고, 친하다는 윤단아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심지어 다 막혀서 차민태 대통령에게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든 게 소용이 없었다. 그저 벽을 보고 영업을 하는 기분이었다.

주한대사는 싸한 기분이 들었다. 저번 미스리늄 사태 때도 쉽지 않았지만 그때는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건우의 코빼기조차 보지 못하고 있었다. 지옥불 난도가 있다면 바로 이게 아닐까.

‘그냥 본국으로 도망칠까?’

그런 유혹이 들었지만 이번에도 가족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야마모토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건우가 퇴근할 때까지 KW 본사 정문 앞에 죽치고 앉아있는 것. 일본의 대사가 되어서 체면 구기게 이런 짓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이건우의 머리카락도 보지 못할 게 뻔했다.

‘제발 나와라.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만나주지는 않겠지?’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저 멀리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이건우의 모습이 보였다.

*

나는 야마모토 주한대사가 어떻게든 나를 만나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서진, 윤단아 등 내 주변 인물부터 시작해서 외무부 장관과 대통령까지 만나고 다니면서 다리를 놓아달라고 사정해댔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 거절했다. 거절이 아니라 무시라고 해야하나?

일부러 애를 태우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이 파워온을 버리고 중국으로 배를 갈아탄 시점에서 모든 관계는 끝난 것이다.

그래서 자존심 때문에라도 물러날 줄 알았는데, 주한대사는 더운 여름 KW 정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야마모토 주한대사가 나를 보고 반색하며 달려왔다.

“이건우 사장님!”

한서진이 내 앞을 가로막았고, 나는 칼같이 잘라냈다.

“네. 관심 없습니다.”

“······.”

마치 잡상인 대하듯 하는 나의 행동에 야마모토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그는 끈질기게 나에게 따라붙으며 말을 늘어놓았다.

“파워온 계약을 해지한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이건 저희 정부와는 절대 관계가 없고 완성차의 독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광산의 임금을 미룬 것도 다 지급했습니다.”

“심지어 이번 달에는 특별 보너스까지 두둑하게 챙겨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절대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는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오해요?”

내가 드디어 말을 걸자 야마모토의 얼굴이 환해졌다.

“네 오해입니다. 저희 정부는 귀사와 돈독한 관계를 맺기를 원했는데, 경제산업성에서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나는 그의 말을 끊고 물었다.

“대사는 경제산업성 소속인가요?”

“예? 그게 무슨?”

“두 달 전에 대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사도 광산 일은 없던 거로 하겠다’라고 통보한 건 기억하지 못하나 봅니다? 제가 기가 막혀서 녹음까지 해놨는데 들려드릴까요? 이게 단지 오해였다는 말이죠?”

야마모토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 그, 그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새끼들이 어디서 씨알도 안 먹히는 변명을 씨불여?

“그럼 서로 오해는 없던 거로 하고 갈 길이나 갑시다.”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야마모토 대사가 허리를 90도로 굽히더니 홀이 울리도록 소리를 쳤다. 지나가던 사람이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볼 정도였다.

한서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쫓아낼까요?”

“일단 들어나 봅시다.”

야마모토 대사는 그대로 몸을 펴지 않은 채 말했다.

“이번에 중국과 손을 잡은 건 KW를 무시하는 처사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무슨 일이든 다 할 테니 나노온과 희토류를 받아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흠···.”

콧대 높은 주한대사가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일 줄은 몰랐다. 아마 일본 정부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노온과 희토류를 받아오라고 당부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던 와중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 머릿속에서 일본은 배신자라는 인식이 박힌 상태였다. 그리고 한번 배신해본 놈들이 두 번이라고 못하겠는가. 이 배신의 아이콘을 이용해서 중국의 뒤통수를 때리는 앞잡이로 쓰는 건 어떨까?

그리고 일본의 스탠스를 보건데 꽤나 많은 것을 받아낼 수 있을 듯했다.

순식간에 계획을 세운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대사께서 길 한복판에서 이러시면 제가 마음이 다 아픕니다.”

나의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에 한서진이 나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고, 야마모토 대사도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왜 이래? 다들 젠틀한 남자 처음 보나 보지?

“일본이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니 제가 정말 기쁘군요. 그런데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거 맞습니까?”

야마모토 대사는 당황했지만, 그는 프로였다. 그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저희 일본 정부는 KW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겁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파워온을 팔지 못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부터 받아야겠군요.”

야마모토 대사는 욕이 치밀어올랐다.

‘계약해지에 대한 위약금까지 다 받아놓고 또 손해배상까지 받는다고? 돈 귀신 들린 새끼.’

하지만 이제와서 안 된다고 할 수 없는 노릇. 그리고 미스리늄 사건 때 이건우가 돈에 미친 놈이라는 것은 충분히 깨달은 일본이다. 이 정도는 예상했던 바이기 때문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돈으로 때울 수 있다면 그거만큼 깔끔하고 간단한 방법이 없다.

“좋습니다. 원하시는 금액을 말해주시면 제가 전달해드리겠습니다.”

“대사께서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나와주시니 아주 좋군요. 일단 손해배상액은 우리 법무팀과 상의해서 산정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나노온을···.”

“무슨 소리입니까. 아직 조건이 두 개 더 남았는데.”

“두 개나요?”

나는 빙긋 웃어주었다. 단순히 돈으로 때우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다음 조건입니다. 중국 CTL과 거래를 끊고 앞으로 배터리는 파워온만 쓰세요. 희토류도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서만 받아가시고.”

일본은 중국 희토류 시장의 큰손이다. 정밀기계, 전자제품, 첨단 산업 위주로 산업이 발달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내 말은 중국을 배신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훨씬 강해진 두 번째 조건에 야마모토 대사는 허둥댔다.

“그, 그건.”

“싫으면 나노온을 받아가지 말던가요.”

“···정부와 얘기해보겠습니다.”

야마모토 대사는 이 건도 넘어갔다. 어차피 KW의 물건을 받아가기로 한 이상 중국과 척을 질 수밖에 없다. 이 정도는 본국에서도 잘 처리하겠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마지막 조건은 뭡니까?”

나는 쌈박하게 웃었다.

“독도는 누구 땅일까요?”

“네?”

“독도는 누구 땅인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

야마모토 대사는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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