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의 서막 (2)
기자회견 이후, 이건우의 발언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나는 이건우다···KW 자사주 매입에 200억 달러 투입!>
<외국인 놀이터로 변한 한국 증시···이건우가 응징에 나서>
<치솟는 KW 주가, 이건우 혼자서 공매도 세력을 무너뜨리나?>
1나노미터 반도체와 친환경 희토류 기술은 묻혀버렸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저 이번에도 KW가 대단한 것을 개발했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공매도 세력을 포함해 두 달 동안 한국 시장을 유린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분노였다.
주가가 사람들의 생활에 더욱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그 고통이 더욱 강하게 다가온 까닭이었다.
과거에도 한국 주식시장과 파생상품시장은 외국인 놀이터이니, ATM이니 하는 말로 불려왔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번 뛰놀고 가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왔지만, 이에 대한 처벌이나 제재는 경미한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국민들은 그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참아왔다.
하지만 이번 두 달 동안 그들의 행동은 도를 지나쳤다. 제일 그룹과 오성 그룹 같은 쟁쟁한 대기업에도 공매도를 걸었는데, 다른 기업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버티지 못하고 도산한 기업이 줄을 지었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실직했다.
예전부터 이어오던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반감은 고통스러운 두 달을 거치며 증오로 변했고, 이건우는 그 감정을 터뜨릴 포문을 열어주었다.
이번에도 오리온 작가가 활약했다.
「모두가 주식을 하는데 저희만 가만히 있으면 돈을 못 벌 거 같았습니다. 이제 곧 아이도 계획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아끼고 아낀 적금 5000만 원을 해약하고 주식에 투자했어요.
오성 전자, 제일 자동차, KW 미디어 같은 우량주에만 투자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두 달 동안 5000만 원은 휴짓조각이 되었고 저희 부부는 끔찍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식도 주식이지만 각자 일도 힘들어지면서 매일같이 싸우고···. 거의 이혼 직전까지 갔습니다.
저희는 어찌어찌 버틸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자영업하는 친구는 결국 못 버티고 장사를 접었습니다.
저희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제가 가진 재산 전부를 KW에 투자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헤지펀드 놈들의 피를 보고야 말 겁니다.」
게시글과 함께 작성자는 가진 돈을 KW에 투자한 인증샷을 찍어서 올렸다.
외국인 투자자들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다. 그리고 이제 놈들에게 엿을 먹일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골자를 가진 글들이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밑에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 고생하셨습니다ㅜㅜ
- 우리를 좆으로 보는 외국인 새끼들. 좆되게 만들어 주자!
- 어차피 망가진 인생...나도 KW 주식 산다
- 남일 같지가 않네요···. 저희도 회사가 어려워져서 애 등록금도 못 내줬습니다. 최악의 두 달이었어요.
이건우가 한 발 내딛자, 사람들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헤지펀드 놈들 쫄딱 망해버려라
- 월가 씹새끼들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본거야.
- ㅅㅂ왜 맨날 당하고 사냐. 우리도 반격할 때가 왔다.
- 다들 주식 들고 있어! 버텨!
- 공매도 더 해봐. 안팔면 그만이야
함께 끔찍한 시간을 버텨냈다는 동질감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도 생생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끔찍한 경험 때문일까?
모두 합심하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물론 이건우가 발표한 신기술로 인해 기대심리가 생겨 KW를 비롯한 각종 주가가 올라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은 경제 논리와 전혀 상관없는, 비이성적인 원한이 지배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유행이라도 된 듯, 너도나도 KW를 비롯해 제일과 오성 그룹의 주식을 사들고 인증샷을 올렸다.
- 나도 샀다
- 돈 버리는 거라고 말려도 상관없어. 헤지펀드한테 엿먹일 수만 있다면
- 응원합니다
- 존버 가즈아!
마치 해일이 휩쓸어가는 듯했다.
KW 미디어 주식은 이미 두 달 전 가격을 회복한 것도 모자라, 하늘을 뚫고 올라갈 기세로 올라갔다.
이쯤되면 상투에서 산 사람도 투자를 잘 했다고 칭찬을 받을 상황이었다.
전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똘똘 뭉쳤다. 그러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 시작했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던 오성 전자나 제일 자동차뿐만 아니라, ENP, 중공업, 식품, 제약 등 관련 계열사까지 덩달아 오른 것이다.
당연히 계열사의 협력업체와 하청업체의 주가도 같이 올랐다.
두 달 동안 위축되었던 심리가 폭발하며 오히려 반동적 투자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거품이라고 할 법도 하지만 이번 상승은 실질적인 원인도 있었다.
바로 이건우가 개발한 나노온과 희토류 기술.
이미 나노온과 희토류는 양산에 들어갔고, 이 든든한 소식은 사람들의 투자 열기에 연료가 되어주었다.
수많은 돈이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에 유입되었다.
<오성 전자 또 고점을 찍어···상승세 언제까지 이어지나>
<코스피 2647.38 마감, 과연 2700선 돌파할까>
그 시발점이 된 것은 바로 이건우. 이건우의 발표 하나만으로 상황이 뒤집힌 것이다. 그러자 한 기자가 이 상황을 가리켜 재미있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건우 이펙트’ 제2의 호황기 맞이해>
이건우 이펙트.
미니온 트래킹 덕분에 전세계가 경기 침체를 겪을 때도 한국은 성장했고, 이건우가 파워온을 투자한 강원도는 지역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건우가 신기술을 발표할 때마다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을 일컬어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이건우가 시작한 날갯짓이 순풍이 되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그 바람은 멀린 캐피털에는 폭풍과도 같은 재앙이 되어 몰아치고 있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멀린 캐피털 회장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될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KW 미디어의 주가는 종잇조각이 되어가고 있었고, 이제 공매도 포지션 청산만 하고 수익을 확정지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작은 나라의 기업 하나를 망하게 하는 건 일도 아녔다. 거기에 더해 소소한 복수까지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 만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1나노미터 반도체 양산
친환경 공법으로 희토류 생산
하나만 성공했다고 해도 믿기 어려울 판국에, KW는 두 가지 기술을 너무나도 손쉽게 선보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KW를 유린한 세력을 처절하게 응징했다.
25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자사주 매입에 나선 것이다. 덕분에 KW 미디어의 주식 매물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재앙에 가까운 일인데, 한국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를 단죄하자는 움직임이 일면서 너도나도 KW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주식은 이제 씨가 말랐고, 사람들은 얼마를 준다고 해도 주식을 내놓지 않았다. 공매도한 주식을 갚아야 하는 멀린 캐피털은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되살 수밖에 없었다.
같이 공매도를 건 헤지펀드 매니저가 씩씩거리며 쳐들어왔다. 그의 붉어진 얼굴이 마치 한국의 주식시장 같았다.
"이 멍청한 새끼. 네가 복수하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닥쳐! 좋다고 투자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나에게 책임을 넘겨?"
"아무튼 난 여기서 빠지겠어. 멀린 캐피털에 투자한 5억 달러, 내놔."
"이익!"
멀린의 헤지펀드에 함께 투자한 투자자들은 하나둘씩 발을 빼기 시작했다.
멀린은 게임스탑 사건을 떠올렸다.
그 당시 2조를 투자했지만 실패해서 8조를 날렸고, 자산은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여섯 배인 12조를 투자했다. 도대체 손실액이 얼마나 클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이번에 그는 파산을 피할 수 없어 보였다.
“망했다.”
그것도 아주 쫄딱 망했다.
*
[멀린 캐피털이 공매도 물량을 청산하고 손실을 현실화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캐리온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멀린 덕분에 이번에도 떼돈을 벌겠군. 나중에 밥이라도 한 끼 사줘야 할 텐데 말이야.”
두 달 동안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공매도 세력은 겨우 이 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들 덕분에 KW 주가는 예전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형성되었다.
물론 거품이야 서서히 빠지겠지만, 이 정도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공매도 세력에 대해 훌륭하게 분풀이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한동안 외국인 투자자들이 설치고 다니지는 못하겠지.”
멀린 캐피털이 탈탈 털린 것을 지켜봤다면 다시 시비를 걸 엄두는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멀린 하나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멀린은 이제 시작일 뿐, KW가 어려움을 겪을 동안 손절했던 놈들을 하나씩 두드려 패주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일본이 있었다.
*
1나노미터 반도체 칩 생산
친환경 공법 희토류 생산
충격적인 소식이 연달아 일본을 강타했다.
일본 총리를 비롯한 대신이 대책회의를 위해 모였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얼굴은 모두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KW에서 1나노미터 반도체 칩 제작에 성공했고 이제 양산까지 들어갔다고 하오.”
일본의 주요 산업은 전자제품, 정밀기계, 자동차 부품 등 기술집약적인 첨단 산업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그 모든 산업에는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일본에게 있어서 반도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뿐만 아니다.
"KW 머티리얼에서 정말 희토류 생산 및 제련에 성공했소. 환경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더군."
일본도 십 년 전 희토류 때문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 이후, 희토류 공급 확보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반도체는 희토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십 년 전과 같은 상황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대체 재료를 개발하는 데도 힘썼다. 그렇게 고생고생한 결과,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를 86%에서 55%까지 떨어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희토류를 직접 생산하는 건 손도 못 댔다. 그저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대체재를 생산하는 것에서 그쳤을 뿐이다.
희토류를 자체 생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일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KW에서 이 어려움을 극복해내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은 그때 그대로 당하고도 십 년 동안 성과를 못 냈는데, 고작 한국의 기업이 몇 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그걸 극복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저 십 년 전의 일본처럼, 중국의 제재에 KW도 결국 굴복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KW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감히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과 함께.
아니, 부활 수준이 아니었다. 반도체와 희토류는 미스리늄과 파워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문제라면 일본도 KW의 반도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노온을 달지 않는다면 바로 경쟁에서 뒤처질 게 뻔하다.
원래대로라면 누구보다 재빠르게 접근해서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근데···. 누가, 어떻게 말할건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게 엊그제이다.
그리고 이건우가 보통 놈이던가? 한 달 미스리늄 채굴을 못 하게 했다고 1000억 엔을 뜯어간 놈이다.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미스리늄 사태 때 겪었던 굴욕이 데자뷰처럼 떠올렸다.
일본은,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