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의 서막 (1)
나는 일본 경제산업성의 연락을 받았다. 앞으로 사도 광산에 일하는 광부의 임금을 지급해주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자동차제조협회에 소속된 완성차 업체가 줄줄이 연락해서 파워온 공급 계약을 해지했다.
위약금을 지급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중국과 손을 잡은 것이다.
파워온을 탑재하기로 한 완성차 업체는 파워온 재고에 대해서 일단 미국과 유럽 쪽에 풀기로 하고, 다음 생산에서부터는 중국의 CTL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했다.
일본에게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당한 이후, 해당 내용은 즉시 기사화되었다.
일본 측에서 벼르고 있다가 재빠르게 손을 쓴 모양.
지난번 미스리늄 사태 때 1조를 뜯어낸 일을 기사화한 것에 대한 복수인듯싶었다.
덕분에 기사가 나자마자 눈치를 보고 있던 다른 나라의 완성차 업체에서도 줄줄이 비슷한 통지를 해왔다.
하지만 이건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들과 계약해지를 해줬다. 물론 그에 따른 위약금은 확실하게 받아두었고 말이다.
한때는 모두가 가지고 싶어하던 파워온이었지만, 이제는 파워온을 사용하는 회사는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나쁜 일은 함께 찾아온다고 했던가. KW의 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KW 미디어는, KW 코퍼레이션 계열사 중에 유일하게 상장되었다는 이유로 끔찍한 고통을 받았다.
바로 공매도 세력의 작전 대상이 된 것이다.
놈들은 바로 멀린 캐피탈을 위시한 헤지펀드 세력.
게임 스탑 사건에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본 그들은 이건우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복수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들은 언제나 이성적으로 투자한다고 자부했지만, 당시 멀린 캐피털이 입은 손실액이 무려 8조 원이다.
게임스탑이라는 작은 기업에 투자한 대가로는 뼈아픈 손실이었고, 그때 많은 클라이언트가 거래를 중단하며 큰 타격을 입었다.
그뿐만 아니라 운용 자산의 30%가량 손실이 나서 유동성 위기로 긴급 자금을 차입 받는 수모까지 겪었었다.
말 그대로 파산 직전까지 갔었지만 그들은 이를 악물고 버티는 데 성공했고, 드디어 복수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KW 코퍼레이션 계열사 중에 상장된 주식은 KW 미디어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KW 미디어가 지나치게 고평가된 기형적인 구조로 되어 있지요."
어쩔 수 없었다.
일반적인 시장에서라면 미스리늄이 발굴되면 KW 자원개발이, 파워온이 잘 되면 KW 에너지가, 포비드 치료제가 개발되면 KW 제약의 주가가 올라야겠지만, 그들의 주식은 발행이 되지 않은 상황.
그 대신 계열사인 KW 미디어의 주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그러니까 미스리늄이 발굴되어도, 파워온이 잘 팔려도, 치료제 임상 소식이 들려도 전부 엉뚱한 미디어가 수혜를 입은 셈이다.
덕분에 KW 미디어는 실적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 말은 미디어 외의 다른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품이 꺼지는 순간 KW 미디어 주가는 폭락할 것입니다."
멀린 캐피탈의 근거는 타당했고, 실제로도 작전세력이 계속해서 공매도하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탓에 KW 미디어의 주가는 반의 반 토막 수준까지 떨어져 버렸다.
한번 KW를 통해서 재미를 본 멀린 캐피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KW뿐만 아니라 제일과 오성 그룹의 주가도 놈들의 장난질에 흔들렸으며, 대기업이 휘청거리자 연관된 협력업체와 하청기업까지 흔들렸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하락세는 전반적인 경제시장에 악영향을 끼쳤으며, 여러 외국인 투자자 및 기관투자자가 매도세로 돌아서면서 코스피가 대폭락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7월 18일 개장하자마자 사이드카, 그리고 나흘 뒤인 7월 22일 개장하자마자 서킷브레이커가 발동하는 초유의 사태가 터진 것이다.
중국의 KW 때리기로 일어난 악재들이, 대한민국 전체를 고통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힘겹게 두 달이 흘렀다.
*
끔찍한 두 달이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KW가 곧 망한다면서 보도를 때렸고, 하다못해 전혀 관계가 없는 엘렌 홉스마저 전화해서 ‘괜찮으세요?’라며 걱정할 정도였다.
중국의 경제 제재의 전말을 알고있는 각국의 거물 사이에서는 언제 KW가 항복선언을 할지를 두고 내기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두 달 동안 나노온과 희토류 공장을 빠르게 올리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판매 가능한 최소한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데는 성공했다.
모두 캐리온의 능력 덕분이었다.
먼저 공장을 설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없었고, 필수 부품은 사전에 제작하고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프리패브리케이션 (부분생산) 공법을 도입했다. 캐리온의 완벽한 설계 덕분에 부품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맞아 들어갔다.
또한 캐리온은 하나의 컨트롤 타워가 되어 공장에 대한 정보를 규합하고, 그것을 실시간으로 직원들에게 전달하여 일의 효율을 극한까지 높였다. 캐리온은 심지어 직원들의 동선까지 하나하나 계산하여 공장의 건설 속도를 높였다.
이런 디지털 기반 작업흐름과 산업화된 건설 접근법으로 KW는 빠르고, 효율적이며, 경제적으로 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락을 받았다.
먼저 KW 머티리얼의 이동국 사장.
“홍천에 있는 희토류를 채굴해서 제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광산부터 금속까지. 마침내 모든 공정을 국내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심지어 희토류 공장은 광맥만 있다면 언제든 양산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완성이 되었다.
그다음에는 나노온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외할아버지, 전병철 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1나노 공정 수율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빨리 반도체 칩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구나.”
일반적으로 반도체 공장은 최적화된 설비와 제조 환경을 조성하는 데 수많은 미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수율이 안정화되려면 공장을 가동한 후에도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걸린다.
여기서도 캐리온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조정 작업이 필요없을 정도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공정제어 능력을 보여준 덕에 그 모든 작업이 겨우 두 달 만에 끝이 나버렸다.
나는 씩 웃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지요. 저희가 손에 쥐고 휘두르는 게 어떤 무기인지를 말입니다.”
피아식별은 끝났다. 이제 내 적들을 향해 내가 가진 무기를 휘두를 때이다.
반격의 서막이 올랐다.
*
나는 즉시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나노온 프로젝트를 세상에 알릴 때가 되었다.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있던 KW가 두 달 만에 침묵을 깨고 하는 기자회견. 수많은 기자가 몰려오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모여든 기자들은 대회의실 걸려있는 흥미로운 내용의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1나노미터 반도체?"
"나노온 프로젝트라는데?"
기자회견에 관한 공문을 받을 때만 해도 그저 오성 전자와 함께 세운 합작법인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뿐이었다.
"얘기 들은 거 있어요?"
"오성 전자 홍보실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한번 물어볼게요."
"내가 물어봤는데 그쪽도 모르더라고요. 아무래도 정보 통제를 철저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수군거리면서 나노온 프로젝트에 대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진짜 KW가 1나노미터 반도체를 생산했을까요?"
"말도 안 됩니다. TSMC에서 3나노를 개발한 게 몇 달 전인데 1나노미터를 어떻게 만들어요."
"만들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양산하는 건 다른 문제에요."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하지만 이건우잖아요."
그 말에 의견을 나누던 기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칩 하나에 트랜지스터가 현재 10억 개 이상 들어간다.
그러면 웨이퍼 한 장에는 트랜지스터가 1조 개 들어간다.
한 달에 1만 장의 웨이퍼를 생산한다고 치면, 1경 개의 트랜지스터가 동시에 균일한 동작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다.
현재로서는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기술.
그런데 1나노미터 반도체를 양산하다고?
공돌이의 입에서 ‘꿈꾸고 자빠졌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말을 꺼낸 게 무려 이건우였다.
혁신의 아이콘이자,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기술들을 발명한 장본인.
‘두 달 전에는 친환경 희토류 기술을 만들어냈지.’
‘그리고 파워온과 프리온도 만들어냈고.’
‘심지어 포비드 치료제도 임상 2상 진행 중이잖아.’
'설마'하는 마음이 '어쩌면'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감 좋은 기자들은 특종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기대감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이건우가 등장했다.
*
나는 기자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아마 1나노미터 반도체에 관해서 물어보고 싶은 거겠지.
나는 연단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다들 1나노미터 반도체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같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의 짐작대로, KW와 오성 전자는 1나노미터 반도체 양산에 성공했습니다. 제1공장을 완공했고 이미 나노온을 탑재한 각종 제품을 생산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나노온에 관한 정보가 스크린에 주르륵 올라왔다. 나는 추가적으로 정리된 자료들을 기자들에게 배부했다.
"먼저 나노온 기술을 적용한 파워온 배터리 ver. 2가 출시될 예정이며, 파워온 2는 휴대폰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에 성공했습니다. 참고로 오성 전자는 오로라폰 신형 모델에 해당 배터리를 탑재할 예정입니다."
1나노미터 반도체. 나노온이라는 그 압도적인 이름의 기술에 기자들은 입을 떡 벌렸다.
과거 파워온을 개발했을 때와는 달랐다.
배터리가 특정 분야에서만 사용되는 물건이라면, 반도체는 현대 산업에서 안 쓰이는 곳이 없다.
휴대폰, 컴퓨터를 위시한 각종 전자기기에서부터 자동차와 첨단정밀 산업까지. 말 그대로 모든 곳에 사용이 된다.
파워온이라면 중국이 어찌어찌 막을 수 있었다지만. 과연 나노온이 사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심지어 KW는 반도체에 들어가는 희토류도 자체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상황은 역전되었다.
중국은 더이상 KW를 막을 수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기자들이 질문하려고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본론은 이게 아니다.
1나노미터 반도체, 나노온이 개발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중요한 건 내가 나노온이라는 무기를 어떻게 휘두르냐이다.
첫 번째 상대는 공매도 세력이다.
"지난 두 달 동안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놀이터가 되어서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멀린 캐피탈을 비롯한 헤지펀드 세력은 KW의 가치가 고평가됐다며 무려 100억 달러에 해당하는 공매도를 걸었습니다."
공매도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대놓고 특정 세력을 언급하며 저격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나노온에 이어 다시 한번 특종이 나올 것 같은 예감에 다들 집중했다.
"가치가 고평가되었다고요? 멀린은 틀렸습니다. 저는 이건우입니다. 그 누구도 KW의 잠재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때 한 기자가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말씀하시는 의도가 뭡니까. 공매도 세력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겁니까?"
"네."
간결한 대답에 기자는 뒤늦게 반응했다.
"···예?"
"KW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두 배인 200억 달러를 들여서 KW의 주식을 매입하겠습니다."
"이, 이백억 달러!"
"맙소사. 25조잖아!"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겠다는 말입니까!"
몇몇 기자들은 주가를 확인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니, 지금 주가가!"
"이건 미쳤어!"
내 말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캐리온이 나서서 시중에 나온 매물을 모두 쓸어 담았다. KW의 주가가 미친듯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
기자들은 나노온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랴, 실시간으로 오르는 주가를 확인하랴 정신이 없었다.
혼돈 그 자체가 되어버린 회견장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두 달 동안 재밌게 놀았으니, 이제 그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