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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12화 (112/183)

피아식별

나는 외할아버지댁으로 찾아갔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달려 나오셨다.

"어이구 우리 손주 왔느냐."

지난번 중국이 KW와 세트로 희토류를 제재한 것 때문에, 회장실에서 만났을 때는 엄청 툴툴거리셨는데. 그때와는 백팔십도 달라진 태도였다.

물론 지금도 오성 전자 주가는 신나게 꼬라박고 있었다. 한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은 41.1%이고 홍콩을 통한 우회 수출까지 합치면 60%에 달한다. 그리고 이 수출 중 대부분이 오성 전자가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수출이 다 막혀버린 덕분에 전월 대비 이번 달 수출액이 80% 가까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오성 전자의 입장에서는 유례없는 암흑기를 맞이한 셈.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그런 것쯤은 신경쓰지 않으셨다.

내가 얼마 전 알려드린 1나노급 반도체는 그 모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네가 보내준 자료를 토대로 연구소에서 테스트칩 생산에 성공했다. 단순히 미세공정을 할뿐만 아니라 설계 자체가 새로운 것이더구나."

그렇다. 기존의 설계에서 반도체는 트랜지스터가 칩 표면에 평평하게 놓이고 전류가 수평으로 흐른다.

하지만 이번에 캐리온이 개발한 방식은 트랜지스터를 수직으로 적층했다.

"그렇습니다. 기존의 칩보다 2배 더 빠르고, 85% 더 적은 전력을 사용할 수 있지요."

이 설계를 적용하면, 이론상으로는 1회 충전으로 1주일을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도 만들어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암호화폐 채굴과 같은 에너지 집약적인 작업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등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나노미터 수준의 초미세 공정을 하려면 소재 자체를 새로 개발해야 합니다. 그 핵심 원료가 미스리늄이지요.”

1나노미터 반도체는 세계에서 오직 KW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3나노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전자가 회로 밖으로 튀어나가서 집적화가 더 힘들다. 특히 1나노미터 공정은 양자 한계에 가까운 초미세공정이기 때문에 그 어려움이 극악하다고 볼 수 있다.

소재의 핵심은 반금속을 비롯한 단층 반도체 사이의 접촉 저항을 낮추는 것.

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소재 중에서는 그러한 조건을 모두 맞출 수 있는 소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캐리온은 그냥 신소재를 개발해버렸다.

반도체의 핵심 재료인 실리콘을 미스리늄(Mt)과 결합해서, 높은 접촉 저항과 낮은 전류 전달 능력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고 반도체 효율을 최고 수준으로 높일 수 있었다.

1나노미터 공정에 필수적인 미스리늄.

그리고 반도체 생산의 핵심 원료인 희토류.

두 가지를 KW가 쥐고 있으니, 외할아버지로서는 지금 아무리 오성 전자가 나락을 향해 가고있다고 하더라도 두렵지 않은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말했다.

“1나노미터 반도체 칩을 양산할 수 있다면, 우리가 시스템반도체기업 사이에 기술 격차에 원인을 제공하겠지.”

1나노 미세공정을 도입한 직후, 생산 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건 파워온 생산 및 공급에도 있었던 문제이다.

생산 초기, 파워온의 물량은 제한적이었고 주요 고객사에만 우선적으로 배정했다.

당시 주요 고객사였단 포드, BMW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가 파워온을 제품화해 선보이는 사이, 다른 완성차 업체는 한 단계 뒤처지는 배터리를 시장에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작은 차이는 시장에서 큰 격차를 만들어냈다. 마케팅과 판매량이라는 부분에서 파워온을 장착한 제품들은 기존의 제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익을 올린 것이다.

그와 똑같은 일이 1나노 미세공정, 나노온 프로젝트에서 벌어질 게 분명했다.

우리가 게임 체인저가 되는 것이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주요 고객사를 누구로 선점하느냐가 시장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있겠지요.”

우리의 최신 공정 활용에서 소외되는 일이 시장경쟁력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홀홀 웃었다.

“주요 고객사를 누구로 정하는지도 고민해봐야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피아식별을 제대로 해야한다. 진정한 친구는 어려움에 처할 때 알 수 있는 법.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노온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부치기로 했다.

*

중국이 KW에 대해서 제재를 가했다. KW뿐만이 아니라, KW에 엮인 업체들까지 싸그리 묶어서 두들겨팼다.

덕분에 파워온을 장착한 전기차는 중국 시장에 발도 못 내밀게 되었고, 오성 그룹과 제일 그룹은 중국에서의 모든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각종 조사에 시달려야만 했다.

일반 사람의 눈에는 중국이 으레 하던 기업 길들이기 정도로만 보였지만, 그 이면에 있는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다들 생각했다.

'중국이 정말 제대로 빡쳤구나.'

'저러다 KW가 망하겠네. 그러게 좀 적당히 설치지.'

'이건우가 외가랑 친가까지 전부 말아먹는구만.'

KW의 기술이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그래도 일개 기업일 뿐이다. 그것도 한국이라는 작은 국가에 붙어있는 기업.

한국 정부에서도 분통을 터뜨리며 씨익씨익거리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대책을 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중국이 희토류 카드를 꺼내며 제재를 가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KW의 입장에서 희토류를 제재하겠다는 말은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세계 희토류의 80%는 중국이 공급하고 있다.

경제 대국이라는 일본조차도 희토류 중단이라는 말에 두손 두발 다 들고 설설 기지 않았던가.

KW의 배터리

오성의 반도체

제일의 자동차

희토류가 없다면 세 그룹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이 모두 타격을 입을 것이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번에는 KW도 어쩔 수 없겠구나.'

'그 대단한 파워온도 반짝하고 사라질 물건이었네.'

'휴. 우리 회사는 파워온 받지 않길 잘했다. 몇몇 기업들은 이번에 모든 생산 라인을 파워온으로 대체했던데, 우리가 반사이익을 좀 보겠군.'

KW는 혁신이었지만, 중국이라는 세계의 거인 앞에서는 그 혁신도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대단한 물건이라고 해도 시장에서 쓰지 않으면 그만.

그렇게 중국은 각국의 기업을 협박하고 어르며 KW에게서 등을 돌리게 했고, 반 KW 정책의 선두에 선 곳은 재미있게도 일본이었다.

*

일본.

얼마 전 경제산업성 대신이 미스리늄 폭발에 휘말려 죽어버리고, 일본은 파워온을 받기 위해서 일조 원이라는 엄청난 지출을 해야만 했다.

심지어 이건우라는 놈이 비밀로 주고받기로 한 배상금을 공개하는 탓에 이만저만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겨우 파워온을 받아오고 생산라인까지 바꾸면서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려고 할 때쯤, 또다시 날벼락이 떨어졌다.

"중국이 파워온을 장착한 제품은 모조리 수입을 금지했다고?"

중국이 KW에 대한 제재정책으로 파워온을 위시한 KW의 모든 제품에 대해서 수입 금지령을 내려버린 것이다.

말 그대로 일본으로서는 죽 쒀서 개 준 꼴이 돼버린 상황.

하지만 이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었나 보다.

"네. 그리고 중국 측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파워온을 자국의 CTL에서 생산한 배터리로 대체할 경우, 혜택을 주겠다고 합니다."

중국은 KW에게 호되게 당한 일본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원래 적의 적은 친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일본을 한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수를 썼다.

일본 총리는 고민에 빠졌다. 중국 측의 제안이 무척이나 매력적이기도 했고, 얼마 전 이건우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쓰렸다.

하지만 독단적으로 결정했다가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총리는 일본 자동차제조협회를 불렀다. 경제산업성 아래 있는 13개 자동차 제조회사로 구성된 그들은 다 함께 고민에 빠졌다.

먼저 파워온을 도입한 업체에서는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파워온이 써보니 대단한 물건이긴 합니다. 배터리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주행거리가 4배로 늘어났어요. 심지어 원가도 싸서 가격경쟁력에서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지요."

“맞아요. 이번에 테슬라가 파워온을 탑재한 모델을 내놓은 다음, 판매량이 전 분기 대비 220%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테슬라의 품질 문제는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프로그램을 사면 자동차를 끼워준다는 말이 나올까. 하지만 이번에 파워온과 프리온을 달면서 품질 문제는 쏙 들어가 버렸다.

그만큼 파워온과 프리온 조합은 시너지가 좋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반론을 표했다.

"파워온이 좋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상대는 중국이 아닙니까. 14억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흐음. 이번 싸움이 언제까지 갈 것 같습니까?"

"중국은 아무래도 끝장을 보려는 모양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솔직히···그럴 만도 하잖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모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장에서 중국이 KW에게 뜯기는 걸 라이브로 지켜봤던 그들은 중국이 KW에 가진 원한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중국이 수조 원에 달하는 돈을 이건우에게 빼앗기는 것을 보면서 일본 정부도 중국 정부와 동병상련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일본 정부도 이건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은 이건우를 배척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맞습니다. 중국이 작정하고 KW를 망하게 하려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희토류를 규제하면 답이 없지요."

이번에도 사장들은 모두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십 년 전 중국이 일본에 대해 희토류 규제를 했을 때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당시 직격타를 맞은 게 일본 완성차 업체였으니 말이다.

일본 정부가 두손 두발 들고 잘못했다고 외친 것도, 모두 완성차 업체에서 못 살겠다고 들들 볶아서 그랬던 것이었다.

그만큼 희토류가 배터리, 반도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흘러갈 흐름을 예측했다.

"아마 중국은 망하기 직전까지 몰아붙인 다음, 시체나 다름없는 KW에서 전리품을 뜯어가겠지요. 아마 그것은 파워온 기술과 미스리늄 제련 기술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중국 최대의 배터리 회사인 CTL이 파워온 기술을 받아가고 수혜를 입을 것입니다. 그런 고로 우리는 CTL과 미리 손을 잡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때 파워온을 이미 탑재하고 출시 직전까지 놓인 한 완성차 업체 사장이 말했다. 파워온을 받아왔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인데 그걸 포기해야 한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한마디 던졌다.

“제가 듣기로는 이건우가 희토류 제련 공장을 인수했다고 합니다. KW에서 희토류를 자체 생산하려는 건 아닐까요?”

그러자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KW에서 희토류를 자체 생산한다고요? 그건 우리 일본이 십 년 동안 달라붙어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입니다.”

십 년 전 중국에게 희토류 규제를 당한 이후, 일본은 희토류 생산을 자국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아직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가성비가 너무 좋지 않고, 환경오염도 심각한 탓에 도무지 사업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인수한 것도 ‘제련’공장이 아닙니까? 기껏해야 다른 나라에서 가공된 희토류를 수입해서 제련하는 것뿐이지요. 그리고 그 가공된 희토류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옵니다. 희토류를 공급해줄 사람이 없는데 제련공장을 사봤자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건우가 급한 나머지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모양새인데, 거기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며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으음.”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말을 꺼냈던 사장은 본전도 찾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래도 이건우가 이렇게 순순히 당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는 속으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KW가 중국을 이겨낸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조차 않았다. 그들이 기존에 이건우에 대해 가지고 있던 반감, 그리고 파워온을 받지 못한 회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때 경제산업성 대신이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건우와의 약속도 굳이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그가 말한 약속은 파워온을 받는 대가로, 사도 광산의 인부에게 임금을 지급해주는 것이었다. 그 돈만 한 달에 수십억씩 나가고 있었다.

“이건우는 이제 지는 해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중국이 내민 손을 잡고 한국을 압박하는 것으로.

총리는 경제산업성 대신에게 말했다.

"이건우에게 연락하게. 얼마 전 맺었던 계약은 무효라고."

총리는 통보를 받은 이건우가 당황해하는 꼴을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이건우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짐작도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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