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 장악 (7)
충주 시장실
충주시 시장은 희토류 공장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자신이 끼어들 사이즈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어차피 희토류 사업은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관리하는 사업이다. 충주 시장인 자신이 그 과정에서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그리고 희토류에 대한 인식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잡음이 좀 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려 대통령과 KW가 함께 하는 사업이다. KW가 개발한 기술이 친환경 인증을 받고 대통령이 보증한 기술인데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그저 이번 희토류 사업이 잘 되어서 충주시에도 콩고물이 떨어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희토류 사업에 대한 보고가 올라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부 승인을 내려주고 제발 잘 되기를 기도했다. 그 대단한 KW에 편승할 기회가 왔는데 놓칠쏘냐.
그때였다.
"시장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보좌관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충주 시장은 의아해했다. 조용한 충주시에 보좌관이 저렇게 놀라며 들어올 일이 있던가.
"왜? 무슨 일이 생겼는가?"
"그게 KW에서 기자회견을 했는데, 아니, 일단 보십시오."
보좌관은 바로 시장실 한쪽에 놓여있던 TV를 틀었다. 스크린에서는 이건우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런데 강단에 걸린 현수막이 좀 이상했다.
"···충주 희토류 공장 설립에 관한 토론회? KW에서 저런 걸 왜 하고 있나?"
"그게 말입니다. 최근에 충주 지역 카페에서 희토류 공장에 대한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충주 시민이 오늘 단체로 KW 본사로 몰려가서 항의했다고···."
"뭐?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거야!"
"그게 시민단체에서 말도 없이 행동에 들어가서 저도 뒤늦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사실 보좌관도 지역시민권익위원회가 어떤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이 워낙 위쪽까지 기름칠을 잘 해놓은 탓에, 보좌관은 몇 번씩 그들의 편의를 봐주곤 했다.
지난번에도 희토류 공장에서 시위한다길래, 당시 KW에서 공장을 인수하기 전이라서 별 생각 없이 넘어간 게 화근이었다.
그도 위원회에서 이런 사고를 칠 줄은 몰랐다.
'미친 새끼들. 뜯어먹을 게 없어서 KW를 뜯어먹으려고 해? 또라이 새끼들 아니야?'
충주시 시장 보좌관쯤 되면 위쪽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있다. 그가 보기에 이건우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 똘끼와 욕심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었다.
제 아버지를 내치고 미디어를 장악한 것부터 시작해서, 오성 ENP의 사장이 교체되는 데에도 이건우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더군다나 미스리늄을 가지고 일본에게 지랄을 해서 1조 원이나 뜯어냈던 놈인데, 그런 미친놈을 건드려?
위원회가 아무리 주제 모르는 하룻강아지라고는 했지만 이런 간 큰일을 저지를 줄을 몰랐다.
그리고 그 대가는 충주시 전체가 치르게 되었다. TV에서 이건우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KW에서 6조 원가량 투자할 예정입니다. 국내 최대 반도체 제조 허브가 되겠지요. 수백 개의 협력업체가 들어올 것입니다.
충주 시장이 눈을 끔벅거렸다.
“방금 KW에서 충주시에 6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한 거 맞지? 6000억도 아니고, 6조를?”
“예. 그렇습니다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 일자리 창출은 약 10만 개 정도로 예상하며, 전문 일자리도 3만 5000개가량 생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 십만 개!”
충주 시장은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희토류 공장을 지으려고 하니 반도체 제조 허브까지 딸려오니 말이다.
“부지부터 확보해야지. 으허허허. 일자리가 10만 개라고? 그럼 충주시도 대도시로 늘어나는 거 아닌가.”
충주 시장은 발전할 충주시를 생각하며 행복에 부풀었다. 이 정도면 역대 최고의 충주 시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보좌관은 달랐다. 윗사람 눈치를 보는 데 도가 튼 그는, 조금 전부터 이건우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우의 말을 들을수록, 그의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역시나, 그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 하지만 충주에서 이렇게 반대를 하니 저로서도 어쩔 수 없군요. 방금 말한 계획은 그냥 때려치우겠습니다.
- 대신 다른 시도에 반도체 제조 허브를 짓겠습니다. 관심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뭐?”
충주 시장의 꿈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충주 시장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어, 없, 없던 일로 하겠다고? 도대체 왜?”
그는 충주시에 반도체 제조 허브를 유치할 마음이 넘쳤다. 심지어 이미 충주에 희토류 제련 공장도 떡하니 있었다.
줄 사람도 주겠다고 하고 받을 사람도 마음이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놈이 나타나서 훼방을 놓은 것이다.
티비에서는 지역시민권익워원회의 위원장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저 망할 놈의 새끼가 모든 일을 망쳤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시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 미친 새끼들이! 저거, 저 위원회는 도대체 뭐야! 당장 데려와!”
호통이 시장실 가득 울려 퍼졌다. 보좌관은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이제 발에 땀이 차도록 뛰어다닐 때였다.
그리고 지역시민권익위원회는 과욕을 부린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
충주 시민도 뒤통수가 얼얼했다. 어이없게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리다니.
이전까지는 찬반 여론이 팽팽했다면, 지금은 반대 여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혹여라도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으면 순식간에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졌다.
그리고 당연히, 이 일에 앞장선 위원회는 역적 취급을 받고 있었다.
- 지역시민권익위? 여기 뭐 하는 곳인가요?
- 거기 질이 좀 안좋다고 유명해요...
- 맞아요. 우리 아파트 공사할 때도 위원회가 와서 행패를 부렸다고 했는데, 이름이 비슷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는 건 캐리온이었다. 캐리온은 이제 더이상 봐주지 않고 지역시민권익위를 조지기 시작했다.
나는 카페 반응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원래 줬다가 뺐으면 더 화가 나는 법이지. 그리고 뺏긴 것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커지고."
반도체 제조 허브도 같이 들어온다고 하자 희토류 공장에 대한 걱정은 쏙 들어갔다. 오히려 친환경 기술이라는 점이 주목받으면서 더욱 공장을 반기는 분위가 조성되었다.
- KW에서 개발한 기술이 친환경이라는데 왜 난리인가요?
- 그리고 부지도 단지에서 떨어진 충주 외곽에 짓는다더라고요
- 반도체 제조 허브가 들어오면 집값이 오를텐데
- 권익위는 무슨. 저놈들 때문에 충주 망하겠다
그렇게 공장이 가동하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희토류 공장에 논란이 있었다는 것을 모두 잊을 것이다.
캐리온이 개발한 이 기술은 확실하게 환경오염과는 관계가 없으며, 사람들은 공장이 주는 달콤함에 서로 다음 공장을 유치하려 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위원회가 내 공장에 어떤 짓을 했는지 잊지 않았다. 고소장은 진즉 접수한 상태이고, 충주의 검경은 합심해서 특별 수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추가로 캐리온은 지금까지 지역시민권익위가 벌여왔던 모든 불법적인 행위들을 익명으로 신문에 제보해버렸다. 기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기사화해버렸고,
<조폭이 시민단체를 가장해...'지역업체 써달라'는 미명 하에 일감 뺏기>
<공사 이권을 갈취하는 사이비 시민단체, 이대로 괜찮은가?>
<시민단체의 민낯, 35억 원 상당의 이권을 빼앗아>
이번 일이 이슈가 되면서 충주 시민들 사이에는 또다시 곡소리가 터졌다.
- 저새끼들한테 충주 시민이 다 속았다!
- 알아보니 KW의 희토류 기술은 다르더만.
- 이건우님 제발 충주로 오시면 안 되나요ㅠㅠㅠ
- 하여간 정확한 정보도 모르고 난리를 쳐댔으니···.
충주 시민들은 땅을 쳤지만, 이미 열차는 떠나간 뒤였다.
대신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은 신이 났다.
특히 이번 토론회를 하면서 KW에서는 희토류 추출 기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관련 연구자료를 모두 공개했다.
동시에 홍보를 위해 각종 연구기관에 연구자료를 보냈고, 그들은 하나둘씩 나서서 기술에 대해 인증을 해주었다.
그게 계속해서 보도되면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신뢰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문제가 없는 희토류 공장. 그리고 거기에 딸려오는 상품인 반도체 제조 허브. 그리고 수조 원에 이르는 투자금까지.
이걸 유치하기만 하면 재선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엄청난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리고 뜬금없이 예전에 개설해둔 단톡방이 활성화되었다.
예전에 파워온 공장을 짓는 경매를 진행했던 곳으로, 어쩐 일인지 단톡방이 아직 살아있었던 것이다.
- 보조금 줄게. 제발 울산으로 와줘.
- 부산은 항만시설이 잘 돼있습니다. 알고있겠지만 그렇다고요.
- 6조를 투자하려면 부지가 많이 필요할 겁니다. 창원으로 오는 건 어떻습니까? 없던 땅을 만들어서라도 드리겠습니다.
- 저···여기 평택도 있어요.
지자체장들은 서로 공장을 유치하려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
경매를 단톡방에서 했다고 한동안 구시렁거릴 때는 언제고.
나는 피식 웃으며 단톡방을 나섰다.
*
[이건우 님이 나갔습니다. (채팅방으로 초대하기)]
“···?”
“?!”
“나갔어? 왜?”
이건우가 나가자 그를 붙잡으려고 했던 지자체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당장 부하 직원들을 불러모아서 다그쳤다.
"어떻게든 반도체 공장단지를 유치해!”
무려 6조짜리 프로젝트이다. KW에서 투자하는 금액이 6조이고, 오성 전자까지 합쳐진다면 10조 규모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다른 지역보다 무조건! 무조건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내일까지, 아니 오늘 안으로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해와악!”
그들은 공무원들을 들들 볶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공무원들을 갈아넣은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시작은 숨죽이고 있었던 평택 시장부터였다.
"평택시에는 오성 전자의 연구인력이 밀집해있습니다. 평택에 반도체 특화단지가 조성되어야 KW와 시너지를 내며 경제발전을 이끌 수 있습니다."
"KW가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현행법상 제약으로 다른 지역에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큰 오산입니다."
"저희 평택은 시민단체와 힘을 합쳐 시행령을 개정할 의사가 있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같은 경기도의 용인시장이 나섰다.
"커흠. 반도체 공장단지 조성에는 용인이 가장 적합합니다. 저희는 어제 여야 4당 대표를 만나서 KW가 용인에 공장을 유치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경북도지사도 질 수 없다는 듯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저희는 KW가 필요한 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장기 임대하고, 인재 육성과 인프라, 근로자 정착을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되니 KW 공장 유치 논의가 국회까지 확산되었다. 이번 건은 정부가 특히 관심을 갖는 사업이라서 다들 어떻게든 한 발 걸치려고 애썼다.
하지만 온갖 러브콜을 뒤로한 채 나는 이미 정해둔 후보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충주와 함께 희토류 광맥이 묻혀있는 곳, 홍천이었다.
충주에 KW 머티리얼 공장이 있기는 하지만 홍천과 거리가 멀지도 않아서 운송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원도는 파워온 공장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배터리 공장이 있는 곳에 관련 시설을 짓는 것이 훨씬 더 좋다.
그런 이유로 나는 강원도지사를 다시 만났고, 그는 흔쾌히 내 의견을 받아들였다.
"KW가 다시 강원도에 와준다면 저야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지요. 그리고 희토류 산업은 이번에 국책 사업으로 지정될 거라는 얘기가 돌더군요. 저희가 중앙정부와 보조를 맞춰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은 다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도지사는 이미 파워온 공장을 지으면서 한 차례 뽕을 맛본 적이 있었다.
당시 규모가 1조 원짜리 사업이었는데, 지금은 무려 그 여섯 배에 달한다. 추가적으로 생기는 일자리들과 인프라들을 생각한다면 그 기대효과는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도지사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각종 면세조항과 지원책을 제시했고, 그 정도는 충주'시'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것보다 엄청났다.
그러면서 강원도지사는 은근히 물었다.
“그런데 오성 전자와 합작법인을 세운다고 들었는데 그건 언제쯤 추진할 예정입니까?”
나는 빙긋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곧 발표할 계획입니다.”
희토류에 이어, 나노온 또한 세상에 나오기 위한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