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 장악 (6)
지역 카페라고 할만한 곳에는 동시다발적으로 희토류 공장에 대한 우려와 KW 머티리얼이 공장을 돌리면 안 된다는 성토가 올라왔다.
하지만 기자를 동원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카페에 글을 올려 여론을 움직이려고 하는 게, 뭔가 우스웠다.
내가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이 대기업 사장에서부터 강대국까지,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겨우 이런 지역 조폭이라니. 오히려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오리온 작가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맞불을 놓을 수도 있고, 아니면 글을 묻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흠···."
고민하던 와중 내 머릿속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잘 하면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차피 희토류 생산 시설은 반대 여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친환경 산화물 제조 공법이 나온 적이 없는 만큼, 주변에 희토류 관련 시설을 짓는다면 주민들이 불안해할 게 뻔했다.
KW에서 아무리 신기술을 개발하고 늘 히트를 쳐왔다고 해도, 이번에도 똑같이 그럴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게다가 환경부에서 검증을 해주었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 이게 안전한 건지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혹여나 오염물질이 새어나가서 지역에 피해를 끼친다면 그거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일으키니, 반대의 여론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반대 여론을 확실하게 단도리쳐야겠군."
“일단 사람들은 추출 기술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 확실한 대책을 세워서 말해줘야 해. 그리고 공장이 들어서면 어떤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도 알려줘야 하고.”
[그럼 기술에 관한 내용에 대한 보도자료부터 돌리고, 해당 기사가 주민들 속으로 잘 퍼질 수 있도록 부채질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저쪽 언플이 너무 묻히지는 않게 하고. 최대한 논란이 커지게 만들어 보자고. 무슨 말인지 알지?"
[상대가 너무 허접해도 이런 문제가 생기는군요.]
똘똘한 오리온 작가가 움직이자 여론은 즉석에서 반으로 갈려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럼 이제 슬슬 불을 더 키워야겠군.
*
위원장은 여론이 불붙는 것을 보고 신이 났다.
'이게 되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지역 주민을 선동한다는 계획은 급조된 것이었고, KW는 워낙 큰 기업이기 때문에 전담대응팀이라도 나서는 날에는 말짱 도루묵이 될 터였다.
더군다나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겨우 지역 카페와, 좀 더 힘을 써봤자 지역 신문기자 정도?
하지만 반응이 너무 좋았다.
지역 카페에 들어가면 희토류 얘기밖에 없을 정도였다. 물론 여론의 달인 캐리온이 교묘하게 조작을 해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긴 했지만, 이미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는 그의 눈에는 반대하는 이야기만 보였다.
한번 질러본 계획이 성공하자, 그의 마음속에서 욕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온라인으로만 움직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사람들을 모아서 KW에 쳐들어가야 해.”
그는 지역시민권익위원회의 장이고, 그 밑에는 그에게 돈을 상납하는 회원이 많이 있었다. 전부 지역의 기업체로 지역 내에서는 방귀 좀 뀐다는 유지들이었다.
위원장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로 계획했다.
“어이, 상팔아. 그 누구냐, 지난주에 만났던 인테리어 업체 사장이 우성타운 입주민 대표였던가?”
“네 맞습니다!”
“거, 연락 좀 해서 그 아파트 주민들 좀 선동해보라고 해. 충주를 지키려면 뭐든 해야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이번에 시위하러 갈 건데 사람 좀 보내달라고 해봐.”
“알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그는 하나둘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렇게 불러모은 숫자가 수십 명이 되었다.
수십 명을 앞에 둔 위원장은 두려울 게 없었다. 집단이 주는 용기는 그의 머릿속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거세했다.
"좋아, 이대로 KW의 사옥으로 가자!"
위원장은 그들이 가는 길이 꽃길인 줄로만 알았다.
그 꽃길이 금세 불꽃길로 바뀔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
나는 KW 코퍼레이션 사옥 앞을 가득 메운 시위를 내려다보았다. 수십 대의 차량에 꽂힌 붉은 깃발들이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KW가 충주를 죽인다!"
"KW는 충주에서 물러나라!"
"희토류 공장에 결사 반대한다!"
충주야 저들 앞마당이니 떼거리로 몰려와서 시위해도 딱히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서울은 아직 집합제한이 있었다. 때문에 저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차량시위를 하고 있었다.
나와 같이 저들을 내려다보던 이동국 사장 물었다.
"괜찮을까요? 본사까지 올라와서 시위할 줄은 몰랐는데."
"어차피 다 예상했던 겁니다. 그래서 기자들까지 불러모았지 않습니까."
그렇다. 대회의실에는 지금 기자들이 모여서 내가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저들까지 모이면 모든 배우가 무대 위에 올라오게 되겠군요. 자, 가서 저들을 불러옵시다."
*
시위 현장.
위원장은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차 안에서 확성기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희토류 공장으로 충주를 죽이려 드는 KW는 물러나라아악!"
피 끓는 목소리로 외치는 위원장은 투사 그 자체였다. 누가 보면 정말 충주를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사옥에서 정장을 입은 한 사람이 나오더니 그에게 다가왔다. 위원장은 그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다.
사옥의 주인이자, 국내에서 가장 핫한 인물.
"어···이, 이건우?"
"네. 맞습니다."
이건우가 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지금 보니 젊은 게 아니라 어린 수준이었다. 잘 쳐 줘봐야 이제 겨우 20대 후반. 하지만 막상 이건우를 마주한 위원장은 마치 큰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친가가 제일 그룹, 외가는 오성 그룹.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며, 그런데도 집에서 뛰쳐나와 KW라는 대기업을 직접 일궈낸 천재.
자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건우를 보는 순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흔들리고 있다고는 해도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십 쌍의 눈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일만 성공시킨다면 최소 수십 억 원은 땡길 수 있을 터였다.
위원장은 가까스로 용기를 내서 말했다.
"무, 무슨 일이요?"
그래도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이건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시위에 아주 열심이시던데요? 그래서 제가 특별히, 충주 시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토론회를 준비했습니다. 들어와서 얘기하시죠."
"뭐요?"
토론회라니? 갑자기?
이건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여기에 말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거절하려는 순간,
"사장님. 준비 다 됐습니다!"
갈색 웨이브 머리를 한 여자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동시에 차 안에서 헉 소리가 터져나왔다. 지난번 공장에 다녀왔던 녀석들이었다. 놈들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곤, 눈을 밑으로 깔았다.
하지만 한서진은 친절하게도 차 안까지 들여다보더니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어머? 그때 맞은 곳은 괜찮아?"
경호원에게 맞은 것으로 알고 있던 위원장은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눈을 피하며 딴청을 부리는 놈들을 보니 순식간에 전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자한테 맞아놓고 나한테 거짓말을 했군.'
그때였다. 한서진이 창틀에 팔을 걸치더니 그들을 싹 훑어보며 물었다.
"토론회를 준비했는데 안 들어올 거예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직원들이 차에서 벌떡 내렸다.
"드, 들어갑니다!"
···이 새끼들이?
*
부하들은 허둥지둥 한서진을 따라 들어갔고, 사람들도 뭔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위원장을 쳐다보았다.
"와, 우리 위원장님이 토론회도 준비했나 보네."
"진짜 우리 지역사회에 진심이신 분이라니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위원장은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상황이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위원장은 이건우를 따라 KW의 사옥으로 들어갔다.
바야흐로 여름. 햇볕이 내리쬐는 도로와 달리 본사 대회의실은 쾌적했다.
에어컨 바람을 맞는 순간 잘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패널석에는 시원한 생수와 다과들이 준비되어있었다.
좋은 환경에 있자 마음이 조금 풀린 위원장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자들은 전부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고, 강단에는 <충주 희토류 공장 설립에 관한 토론회>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마음이 풀어지자 그의 머릿속에서 행복회로도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흐흐. KW도 이제 유하게 나오는 건가?'
KW에서 대화하려고 시도하는 순간부터 반은 성공한 셈이다.
어차피 그의 목표는 진짜로 KW가 희토류 공장을 못 하게 막는 게 아니라, 시간만 끌어서 애를 태운 다음 최대한 많은 돈을 뜯어내는 것.
'얼마를 달라고 할까? 대기업이니까 한 20억이면 되려나?'
어차피 KW는 돈도 많은데, 이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원장이 한참 망상에 빠진 사이, 이건우는 강단에 올라왔다.
"충주 시민 여러분. 먼 곳까지 올라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희토류 공장에 관한 오해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를 빌려서 서로의 앙금을 청산하고 화합과 협력의 길로 들어서길 바랍니다."
사업가라 그런가 혀가 매끄럽게 굴러간다. 며칠 전에 자신의 부하들을 때려눕힌 다음 수억짜리 청구서를 보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위원장이 '간사한 새끼'라며 투덜거리고 있는데, 이건우가 그를 지목했다.
"그러면 지역시민권익위원회의 위원장께서 충주 시민을 대표하여 허심탄회하게 말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한서진이 그에게 마이크를 갖다 주며 생긋 웃었다. 살기가 엿보이는 미소에 위원장이 주춤했다.
'허심탄회하게 말했다가 죽는 거 아닌가?'
열심히 'KW 타도'를 외쳤지만, 막상 마이크를 받아드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그는 희토류 공장에 대해서 아는 것 없이 돈을 받기 위해서 앞장섰던 것뿐이었으니까.
기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히고, 같이 올라온 충주 시민들도 그가 무언가 말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화룡점정으로 이건우는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압박감에 못 이겨 위원장은 더듬더듬 입을 떼기 시작했다.
"에, 희토류 공장은 황산, 염산을 들이부어서 가공하는지라 환경오염이 많습니다. 원래 소재 가공이 환경오염물질이나 화학약품이 제일 많이 들어가잖아요."
충주 시민들이 모였다 하면 떠들어대는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즉시 이건우에게 반박당했다.
"전제부터 잘못됐습니다. KW에서 발명한 추출 기술은 독성가스나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고순도 금속으로 환원시키는 친환경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증명된 것도 아니고 믿지 못하겠습니다."
"영구자석 원료인 NdFeB 합금을 시험 생산하는 데 이미 성공했으며 한국희토금속산업기술센터를 비롯한 각종 기관에서 기술 인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증명되지 않았다고 하니 할 말이 없군요.”
"그러다가 오염물질이 새어 나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반도체 공장처럼 완전히 밀폐된 공장에서 생산하고 완전자동화를 할 것이라 사람이 관리만 하기만 하면 됩니다. 새어 나올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사람이 관리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이런 건 다 인재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기자들의 이맛살이 점점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같이 온 충북 시민들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누가 봐도 위원장은 꼬투리를 잡으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군거렸다.
“완전자동화면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 것 아닌가?”
“밀폐된 공간에서 가공한다면 환경오염물질이 새어 나올 염려는 없어 보이는데.”
“친환경 기술 인증도 받았다고 하잖아. 화학약품이 안 들어가는데 어떻게 환경오염을 시킨다는 거지?”
이건우는 그 분위기를 눈치채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위원장은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이건우가 이런 분위기를 바랐던 것 같은 기분.
이건우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사실 이번에 희토류 공장을 돌리게 된다면, 충주에 반도체 제조 허브를 지으려고 했습니다."
"···네?"
위원장은 불안함을 느꼈다. 갑자기 반도체 제조 허브?
그건 희토류 공장과 달리 환영받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이건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대회의실 스크린에 커다란 첨단 허브 조감도가 떠올랐다.
"KW 에너지와 오성 전자에서 만든 합작법인이 세울 곳으로, KW에서 6조 원가량 투자할 예정입니다. 국내 최대 반도체 제조 허브가 되겠지요. 수백 개의 협력업체가 들어올 것입니다."
충주 시민이 홀린 듯이 말을 되받았다.
"유, 육조 원!"
"일자리를 10만 개 정도 만들어낼 수 있고, 전문 일자리도 3만 5000개가량 생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순간 충주 시민의 얼굴이 바뀌었다. 이건 무조건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건우의 폭탄 발언이 회의장을 뒤덮었다.
"하지만 충주에서 이렇게 반대를 하니 저로서도 어쩔 수 없군요. 방금 말한 계획은 그냥 때려치우겠습니다."
"대신 다른 시도에 반도체 제조 허브를 짓겠습니다. 관심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언제든지 연락을 주세요.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이 기자회견이 방송으로 나가는 순간, 지자체들의 엄청난 러브콜이 이건우를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충주 시민은 닭 쫓던 개마냥 그 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