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08화 (108/183)

희토류 장악 (4)

나는 기쁜 발걸음으로 청와대를 나왔다.

차민태에게 든든한 지원을 약속받아왔다. 정치인의 약속이 믿을만한 게 못 되는 건 알지만,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게 희토류 산업이면 말이 달라진다.

최근 들어서 자원민족주의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자원을 가진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휘두르려 한다.

멕시코는 리튬 탐사 및 채굴권을 정부가 독점하도록 광업법을 개정했고, 중국은 희토류 기업을 통합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했으며, 인도네시아는 니켈 원광에 이어 보크사이트, 구리 등의 수출까지 금지했다.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리튬, 희토류를 포함한 6대 광물을 두고 자원 국유화를 해나가고 있다.

특히 이런 핵심 광물을 생산하는 국가는 석유나 가스보다 한정돼 있어 독과점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쥐뿔 아무것도 없다.

국내 자급률은 0%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중 배터리 생산에 꼭 필요한 리튬과 흑연, 희토류는 중국에서 70%가량 수입하고 있다.

그나마 리튬이야 워낙 널려있는 금속원소이니까 중국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오면 된다. 흑연도 워낙 중국의 의존도가 높아서 그렇지, 한국에서도 생산은 하고 있다.

하지만 희토류는?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중국이 희토류를 들고 세계 시장에서 갑질을 할 때마다 한국은 화들짝 놀라면서 비위를 맞춰줘야 했다. 실제로 지금도 그런 상황이고.

그저 중국에서 흔드는 데로 흔들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괜히 차민태가 희토류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말에 일정을 다 취소하고 나를 만나러 온 게 아니다.

심지어 내가 개발한 희토류 추출은 기존의 것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희토류를 추출하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환경 오염이다. 추출 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학약품 때문에 해당 지역의 환경은 말 그대로 박살이 난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역으로 초토화가 아니라 엄청난 지역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 희토류 시장에서 헛기침할 수 있는 강력한 카드를 손에 쥘 뿐만 아니라, 지역 발전을 이루고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기술.

이 정도면 차민태가 그토록 신경을 쓰는 그놈의 지지율은 자연히 따라온다. 그가 온갖 지원을 약속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차민태가 호언장담하던 것을 떠올렸다.

“일주일 안으로 필요한 기술 인증과 특허 취득을 할 수 있을 걸세.”

일주일이라. 내가 개발한 희토류 추출 기술이 워낙 새로운 것이라서 절차를 진행하는 게 만만치 않을 텐데···.

나는 마음속으로 갈려 나갈 공무원들을 위해 잠시 애도를 표했다.

정부에서 열심히 인증을 찍어주는 동안 나는 희토류 제련을 위한 두 번째 단계를 시작했다.

바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희토류 제련 공장을 가진 DK 머티리얼 사장을 만나는 것.

*

DK 머티리얼은 철강, 주물, 냉연강판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중견기업이다.

그리고 얼마 전 미래 성장동력의 일환으로 희토류 사업을 추진해왔다. 한국에 제련 공장을 짓고, 필요한 기술들을 연구하여 성과를 내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사업의 추진 동력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DK 머티리얼에서 희토류 사업을 이끌던 성경호 사내이사가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핵심 중의 핵심 인력이 빠져나갔으니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었다.

"성경호 이 새끼, 기껏 키워놨다니 받아 처먹기만 하고 도망가?"

문제는 성경호가 이직을 한 곳이, 바로 협력사인 호주 희토류 생산기업이라는 것이다.

작년에 힘을 합쳐 시험용 희토류 생산물을 제작하고 그 성과가 좋을 경우,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두 기업이다.

성경호는 당시 DK 머티리얼의 대표로 호주에 가서 희토류 제련에 관한 기술을 배워옴과 동시에 DK 머티리얼의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그런데 이놈이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도망을 가버렸네.

DK 머티리얼에서는 본인의 기술만을 쏙 빼앗긴 셈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어찌어찌 기존에 교류했던 내용을 가지고서 제련 기술과 생산 설비를 마련해내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DK 머티리얼은 충주를 오염시키는 공장을 폐쇄하라!"

"폐쇄하라! 폐쇄하라!"

"충주 시민을 위협하는 DK 머티리얼은 철수하라!"

"철수하라! 철수하라!"

창밖에서 소란이 들리자 이동국은 인상을 팍 썼다.

"어후 저 새끼들은 또 쳐들어와서 저 지랄이야."

시뻘건 피켓을 들고 확성기를 켠 수십 명의 사람이 공장의 정문 앞에서 시위하고 있었다.

바로 충주의 시민단체였다.

시민단체에서 환경 오염을 문제 삼아 공장을 못 돌리도록 방해하고 있었다.

사업 지도부가 회사를 나가버리고, 기껏 지어놓은 공장은 시민단체가 몰려와서 방해하는 덕에 가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DK 머티리얼 사장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비서가 사장실로 들어왔다.

"사장님. KW 자원개발에서 희토류 산업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연락을 하셨는데요."

"···뭐?"

이동국은 귀를 의심했다. 방금 굉장히 뉴스에서 자주 들리던 이름이 나온 것 같은데···.

누가 여기에 왔다고?

당황한 이동국을 보며 비서가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했다.

"KW 자원개발의 이건우 사장님이요. 희토류 산업으로 협력하고 싶답니다."

세상에. 그 유명한 이건우가 직접 연락을 다 해오다니!

이동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미팅 잡아! 아니, 내가 KW 본사로 가겠다고 전해드··· 아니다, 전화부터 바꿔!"

이건 못 먹어도 고다.

*

나는 KW 코퍼레이션 본사에서 이동국을 만났다. 이동국은 유쾌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어이쿠 반갑습니다. 뉴스로 봤던 것보다 더 젊으시네요.”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사장님이 고생이시죠. 요즘 KW의 사정이 어렵다는 건 들었습니다. 하여간 중국 놈들은 우리 기업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니까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호주에서 정제된 희토류 분말을 들여와서 제련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과 납품 계약을 맺으시면 희토류 걱정은 접으셔도 될 겁니다.”

이동국은 대본이라도 읊듯이 장황하게 말했다.

근데 말 속에 구라가 너무 많이 섞여 있다.

내가 지금 회사 사정을 뻔히 알고서 왔는데 말이야.

일단 나는 이동국이 하는 오해부터 짚어주기로 했다.

“DK 머티리얼의 제련 기술이 필요하기는 합니다만, 방향이 다릅니다. 저는 희토류 납품 계약을 하기 위해서 사장님을 모신 게 아닙니다."

“예? 그럼···.”

"우리 KW 자원개발에서는 자체적으로 희토류를 채굴하고 정제하는 기술을 발명했습니다.”

“···예?”

“KW의 희토류 추출 기술과 귀사의 제련 기술이 합쳐지면, 국내 최대의 희토류 생산기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우선적인 목표는 연간 5000톤 생산 규모의 공장을 완공해 희토류에 대한 안정적인 대체 공급망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오, 오천 톤 말입니까?”

한국에서 희토류를 채굴하고 가공하여 합금화하는 것까지, ‘광산부터 금속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기업이 되는 것.

그리하여 국내 희토류 가치사슬을 구축하고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

이게 내 일차적인 목표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관문이 있다.

“그러려면 성경호 이사가 희토류 사업 부문을 내팽개치고 다른 협력체로 도망가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면 안 되겠지요.”

내 말에 이동국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내부의 사정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건가?

“그리고 지금 시민단체의 시위 때문에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정말로 저희가 원하는 납품을 맞춰줄 수 있나요?”

“그, 그건···.”

“사장님도 우리 회사 사정을 잘 아시겠지만, 중국이 희토류를 규제하는 바람에 참 난처해졌습니다. 그러니 협력사에 있는 작은 리스크까지 감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변수가 제 통제 아래에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변수를 통제하는 최고의 방법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중국 덕분에 총알이 두둑하다.

“DK 머티리얼을 인수하겠습니다. 시총이 1385억 원이니 그 두 배인 3000억 원에 인수하지요.”

“삼천억 원!”

나는 금액을 듣고 놀라는 사장에게 웃어주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185억 원, 맞죠? 작년에 생산 설비를 투자하는데 300억 원 이상이 들어간 거로 알고 있는데, 공장이 저 모양이니 곤란하지 않으십니까? 차라리 저희 KW의 자회사로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KW가 나름 건실한 기업이거든요.”

이동국은 입을 뻐끔거렸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한참 말을 찾지 못하던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에···. 저희가 희토류 산업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맞지만, 제안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갑작스럽긴 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내 할아버지가 제일 그룹 회장이고, 외할아버지는 오성 그룹 회장이다. KW 계열사로 들어온다는 것은, 오성 전자와 제일 자동차에 납품할 권한을 따낸다는 것과 다름없다. 더이상 판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좋은 조건에도 이동국은 망설이고 있었다. 그가 왜 이런 고민을 하는지 아는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KW가 지금 위기를 겪고 있어서 망설이는 겁니까?”

중국의 공격을 받고 휘청거린다는 인식 때문이겠지.

정곡을 찔렸는지 이동국은 당황하다가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

“예. 솔직히 중국에서 왜 KW를 이렇게까지 못살게 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업이 국가를 이기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을 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세간에는 지금 KW가 곧 무너질 거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아무래도 다른 대기업과 달리 너무 급격하게 성장한지라 더욱 그렇지요.”

“걱정은 이해합니다만 국내에서 희토류를 생산할 수만 있다면 그 정도 압박은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에서도 각종 정책으로 보조해준다고 확답을 받았고요.”

그러자 이동국은 실질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KW의 기술은 믿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성공을 거듭해왔으니까요. 하지만 기술이 확보된다고 해도 제품을 상업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만약 희토류를 생산하고 제련까지 성공한다고 해도, 중국 회사들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중국에서 덤핑으로 대응해버리면 시작도 못 하고 망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지적이다.

국내 거래에서의 덤핑(dumping)은 일반적으로 원가 이하의 판매를 말한다. 반면 국제 무역 거래에서 덤핑은 약간 의미가 다르다.

원가 이하 판매한다는 개념보다는, 특정 수출국에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덤핑으로 수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쟁자의 제거이다. 덤핑을 이용하여 수입국 시장에서 경쟁기업을 무너뜨리고 시장 지배력을 공고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덤핑 수출은 중국이 가장 잘하는 짓이니까 말이야.'

예를 들어, 한국은 희토류 수입만 하던 나라이다. 인제 와서 희토류를 생산하기 위해 새로운 산업을 설립하려고 하면 당연히 생성 초기인 만큼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초기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물건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은 약탈적 가격으로 대폭 수출가격을 낮추는 덤핑을 해버리고, 열심히 개발한 한국의 희토류는 가격경쟁력을 잃어 시장에서 외면당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껏 돈을 들여서 공장을 지어봤자, 중국이 작정하고 희토류 가격을 내려버린다면 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 아마 공장 완공 후 수년 내로 고사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나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번에 누구 덕분에 초기 투자비용을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 벌었거든.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상관없습니다. 공장을 짓는 데 드는 돈은 제 돈이 아니거든요.”

“예?”

이동국은 어리둥절해 했지만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우리나라 희토류 산업 발전을 위해 누군가가 친절하게 수조 원을 투척해줬거든.

그리고 캐리온이 발명한 희토류 기술은 중국 측의 기술보다 월등하다. 단순히 환경 오염이 없는 것을 넘어, 효율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나다는 소리.

같은 시간 동안, 훨씬 더 적은 자본을 가지고, 더 많은 양의 희토류를 정제할 수 있다.

KW가 희토류를 더 싸게 공급한다면?

KW가 희토류를 더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면?

심지어 KW는 환경오염도 시키지 않네?

그러면 갑질을 당하면서까지 중국에서 희토류를 구매할 이유가 없어진다.

여기서 오히려 중국이 치킨게임을 걸어준다면 내 입장에서는 땡큐다. 과연 중국이 KW의 파상공세를 버틸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니온, 미스리늄, 파워온, 프리온. 모두 사람들이 혁명이라고 일컫는 것들이었지요.”

나는 빙긋 웃으며 장담했다.

“희토류는 그 선두에 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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