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 장악 (1)
중국 국가안전부 부부장 링윈은 피눈물을 흘리며 입찰 가격을 적어내고 있었다.
“이 미친놈들아 그만해! 반사회 주요 인사 명단이 왜 필요한 건데!”
이번에 올라온 매물은 중국이 가지고 있던 국가체제에 반하는 블랙리스트 명단이었다. 누가 봐도 중국 외에는 하등에 쓸모가 없는 문서인데 다른 나라들이 참여한 것이다.
11번: 700만 달러
30번: 850만 달러
46번: 900만 달러
이쯤 되면 모두가 눈치를 챈 것이다. 중국이 모든 문서에 상위입찰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국가들은 그냥 찔러보기 용으로 눌러댈 뿐이다. 중국이 안 사가면 적당한 값을 치르고 정보 하나를 손에 쥘 수 있는 거고,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총알을 소비하게 할 수 있으니 어찌 됐든 이득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가격이 올라가도 안 살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어쩔 수 없이 또 상위입찰할 수밖에 없었다.
8번: ···1000만 달러
링윈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1000만 달러를 찍었다. 무려 저 문서 하나에 120억이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란 말씀. 정말 기본적인 행정 문서에도 수억씩 붙어서 팔려나가고 있었다. 그걸 수백, 수천 개를 사야 하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노릇.
그때,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3번: 2000만 달러
3번. 미국이었다. 그들에게는 중국의 블랙리스트 명단이 딱히 필요 없지만, 그저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 한 번 지른 것이다.
꾹꾹 참고 있던 링윈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만하라고 이 새끼들아!”
*
미국 백악관.
로날드 클린턴은 두 국장이 경매에 참여하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번호밖에 표시되지 않았지만 대충 어떤 나라가 몇 번인지는 가져가는 문서를 보고 눈치챌 수 있었다.
이번에 올라온 문서는 <반사회 주요 인사 명단>였다. 시작가는 100만 달러였지만 가격은 가파르게 치솟고 있었다.
11번: 700만 달러
30번: 850만 달러
46번: 900만 달러
로날드 클린턴은 국가별 번호표를 정리해둔 자료를 보았다.
“11번은 대만, 30번은 프랑스, 46번은 인도이군. 도대체 프랑스랑 인도는 왜 끼어든 거야?”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였다. 중국이 1000만 달러를 불렀고, 다른 참가자들은 슬슬 발을 빼는 분위기였다. 로날드 클린턴은 흥미가 동했다.
“잠시 비켜보게.”
“예?”
로날드 클린턴은 컴퓨터에 다가왔고, 거침없이 2000만 달러를 써넣었다. 로날드의 행동에 국장은 당황했다.
“가, 각하? 그 문서는 저희에게 필요 없는 것입니다만.”
로날드 클린턴이 악동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재미있지 않은가.”
“······.”
“장웨이 주석의 고함이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군.”
국장은 그냥 한숨만 내쉬었다. 확실히 로날드 클린턴과 이건우라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닮은 점이 있었다.
중국의 기밀문서를 해킹해서 경매에 올리는 사람이나, 경매에 참여해서 일부러 가격을 올리는 사람이나.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미국은 이제 필요로 하던 정보들은 거의 다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중앙정보국 직원은 빠르게 얻어온 자료를 취합하여 분석하고 있었고, 대충 일을 끝낸 로날드 클린턴은 느긋하게 몸을 뉘었다.
“그나저나 이제 중국이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이미 KW 코퍼레이션에 대해 보복 조치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KW 코퍼레이션은 꿈쩍도 하지 않고 이번 일을 단행했지요. 이번에는 더 강력한 수단을 취할 겁니다. 아마 단순히 수입을 금지하는 걸 넘어서 전방위적이고 직접적인 압박에 들어가겠지요.”
“고작 기업을 상대로 국가에서 강력한 규제를 한다라···.”
“각하. 이제 KW 코퍼레이션은 고작 기업이라고 불릴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오늘 중국이 입은 피해액을 추산한 결과 대략 7조에 달했습니다. 그 어떤 기업도 지금껏 중국에게 이만한 피해를 준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군. 그래도 KW 코퍼레이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내가 본 미스터 리는 절대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거든.”
저돌적인 승부사. 그게 로날드 클린턴이 이건우에 대한 평가였다.
그는 판은 유리하게 바꿀 줄 알았고, 또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카드도 쥐고 있었다.
“미스터 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이라 보는가?”
국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모든 정보를 분석하여 최선의 방향을 내리는 입장이었지만···.
“사실, 미스터 리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워낙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인지라···. 다만 이번에 중국을 상대로 총알도 두둑이 챙겼으니, 당장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버틴다라.
로날드 클린턴은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에도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가지고 나타날지도 모르겠군."
*
경매에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경매가 끝나고 난 뒤, 렛과 해커들은 널브러졌다.
경매가 워낙 세계가 주목하는 이벤트였고 많은 하이에나가 뭐라도 주워 먹으려고 달려들었다. 특히 북한으로 추정되는 해커팀은 경매 내내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거액의 돈이 왔다갔다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가로채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 꼬박 날이 선 상태로 있으니, 경매가 끝난 지금 완전히 긴장이 풀려서 방전되고 말았다.
그래도 다들 진이 쏙 빠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엄청난 고양감을 느끼고 있었다.
“와씨 하얗게 불태웠다.”
"야, 이걸 해냈네."
“다들 돈을 얼마나 써재끼는 거야.”
“나는 십억 밑으로 떨어진 걸 본 적이 없다.”
“십억은 무슨. 문서 하나에 천억을 주고 샀잖아. 하여튼 미친 새끼들.”
수백 건의 해킹을 막아내고, 서버를 안정화하고, 보안코드를 짜서 낙찰자들에게 기밀문서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도 단 하나의 실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 규모의 의뢰를 완벽하게 수행하다니. 커리어에도 큰 도움이 되고 국제적으로도 로덴트라는 해커 그룹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수확은 해리와 함께했다는 것이다.
“해리는 미친 거 같아. 그만한 공격을 받아내고도 끄떡없네.”
“마지막에 중국 새끼들이 눈 뒤집혀서 달려들던 거 기억나? 어떻게 그걸 실수하나 안 하고 막아내냐.”
“직접 만나고 싶다. 만나면 진짜 사람인지부터 확인해야지.”
해리가 하는 방식을 보면서 그들은 간접적으로 그의 사고방식을 체험할 수 있었다. 치밀한 논리성과 그 가운데서도 상대의 수를 읽고 먼저 한 걸음 내디뎌서 선수를 치는 방식.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도 독창성을 발휘해서 어떻게든 우회로를 만들어내는 번뜩이는 기지는 그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데 우리 얼마를 번 거지?”
뭐니뭐니 해도 바로 돈이었다.
이번에 초대받은 나라 중에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부국도 있었는데, 그들은 중국의 기밀문서를 얻기 위해서 돈을 펑펑 지르고 다녔다. 조금 전에 말한 천억짜리 문서도 그들이 사 갔다.
물론 로덴트에서 가지고 가는 금액은 총 수익의 5%이지만, 그것만 해도 그들에게 수천억은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한 사람당 수백억은 떨어지지 않을까?
다들 이 한 번의 거래로 돈방석에 앉은 셈이다.
들어올 돈에 행복해하던 그들의 머릿속에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번 경매에서 사용된 돈의 95%를 가지고 가는 사람.
“우리도 이렇게 행복한데, 이건우는 대박 맞았네.”
하룻밤 사이에 십수 조를 벌어들였으니 말이다.
*
내 책상 위에는 커피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실질적인 업무는 캐리온과 해커들이 다 했지만, 그래도 나도 전반적인 사항을 관리하면서 바짝 긴장했더니 머리가 몽롱했다.
그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것이 있으니···.
[총 수익은 14조 3000억 원입니다.]
“와···. 미친.”
하룻밤 만에 이만큼 돈을 벌어본 적이 있었던가. 물론 이 돈은 음지에 있으므로 몇 번 세탁을 거쳐야 하지만, 이제 캐리온에게 그 정도는 일도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사업을 시작한 이래, 단일 수익으로는 최고의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이제 반격에 대비해야겠지.”
중국은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자존심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놈들인데, 고작 한국의 기업인에게 이만큼 타격을 받을 것으로는 생각 못 했겠지.
“캐리온. 중국의 예상 행동과 그에 따른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정리했어?”
[네. 지금까지는 KW 코퍼레이션과 파워온에 대한 규제가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뿐만 아니라 혈연으로 맺어진 오성 그룹과 제일 그룹과 각종 협력사에까지 전방위적인 보복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입니다.]
[KW 코퍼레이션, 제일 그룹, 오성 그룹에 동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요소는 반도체입니다.]
그렇다. 오성 전자에서 반도체를 만들고, KW에서는 파워온 배터리를, 제일 그룹에는 제일 자동차가 있다.
이들의 교집합은 반도체밖에 없다.
[그러므로 반도체 생산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겠지.”
세계의 자원 무기라고 할 것은 세 개가 있다.
중동의 석유, 러시아의 천연가스, 중국의 희토류.
중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희토류 생산국이며, 센카쿠 열도 분쟁 때 자원 무기화하여 휘두른 일화는 유명하다.
파워온 배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희토류가 필수적이고, 전기차 한 대 만들어내는데 1.5kg의 희토류가 필요하니 얼마나 그 가치가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대비를 해야 한다.
경제 제재를 가해도 흔들리지 않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바로 압도적인 기술력.
내가 만드는 제품을 쓰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과거 미스리늄 제련과 파워온 배터리를 만들 때, 캐리온에게 추가적으로 관련된 기술에 대해서 정리하고 발전시키도록 했다.
그리고 캐리온은 게걸스럽게 지식을 흡수하여 새로운 기술들을 만들어내었다. 사고의 틀에 갇히지 않는 창의적인 영감과, 극한에 다다른 효율성은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기술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2차전지 소재 관련 기술, 반도체 관련 기술, 에너지 관련 기술 외 9가지 분야에 대해 총 156가지 기술을 이론화했습니다.]
나는 씩 웃었다.
"그럼 선물 보따리를 한번 풀어볼까?"
[신기술 프로젝트 목록을 불러옵니다.]
1. 친환경적 희토류 정제 기술
2. 스컬레레이터 방식을 이용한 핵융합
3. 2차전지 음극재 대체재-인공흑연
4. 방사능 흡수제
5. 나노온 프로젝트: 1나노미터의 반도체 미세공정
6. ···.
백 개가 넘는 기술 목록이 나타났다. 이 중에서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이론으로 정립된 것도 있고, 아직 개발 중인 것도 있다.
그중 나는 파일 한 개를 짚었다.
[친환경적 희토류 추출 기술]
예전부터 중국이 워낙 희토류를 가지고 난리를 친 덕에, 각국에서는 독자적으로 희토류관련 기술을 발전시켰고 대체재를 찾는 움직임도 또한 일어났다.
캐리온은 기존의 희토류 기술을 발전시켜서 신기술을 개발해냈다.
기존의 희토류를 추출하는 기술은 엄청난 환경오염을 발생시켰기에 쉽사리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캐리온이 만들어낸 기술은 환경오염이 없을뿐더러, 추출에 걸리는 시간까지 획기적으로 줄였다. 희토류 광맥에서 원하는 물질만을 손쉽게 추출할 수 있는 것은 덤.
"캐리온. 이 기술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고 바로 상용화할 수 있도록 준비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나노온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예전에 나는 하이텍 파운드리라는 반도체 공장을 인수한 적이 있었다. 중견기업이지만 캐리온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이텍 파운드리를 세계 1위의 반도체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려고 했고, 그 집약체가 나노온 프로젝트였다.
바로 1나노미터의 반도체 미세공정을 실현하는 것.
[기술 개발에 성공했고 양산에 들어갈 단계입니다.]
반도체는 개발 시작, 개발 성공, 양산의 의미가 다 다르다.
개발 성공 기사가 나온다고 해도, 1년 정도는 있어야 제대로 양산을 할 수 있다. 라인을 깔고 공정을 바로잡고 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리온의 오차가 없는 연산과정은 이미 미스리늄과 파워온 배터리를 만들어낼 때 증명된 바가 있었다. 캐리온은 그 과정을 모두 사고실험으로 때우고, 곧장 양산에 들어갈 수 있는 설계 작업에 들어갔다.
“좋아. 마무리 짓는 대로 바로 공장을 짓도록 하지.”
이로써 방어 수단은 충분히 마련해놨다. 아니, 단순히 방어하는 것에 넘어서 상대의 틈을 노려 반격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중국은 내 예상에 한 치의 빗나감 없이 행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