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02화 (102/183)

좋은 건 나눠봐야지 (4)

리더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고작 비서 따위에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래선 안됐다.

그가 그대로 다시 기름통의 뚜껑을 떼려는 순간,

화아악!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본능적으로 동시에 옆으로 굴렀다.

검은색 킬힐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따끔한 느낌에 손을 뺨에 가져다 보니 어느새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마치 칼에 베인 것같이 날카로운 자상.

평범한 솜씨가 아니었다.

"당신...."

한서진이 입술을 혀로 핥았다.

"아, 아깝다. 한 방에 끝낼 수 있었는데."

리더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보통 여자가 아니었군."

그러고 보니 한서진이 나타난 타이밍이 너무나 공교로웠다. 이 시간에 비서가 서버실에서 나타난다고? 그것도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사람이?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한서진이 비웃었다.

"으이그, 병신. 눈치재는 것도 늦다. 너네 기밀문서가 우리한테 넘어왔는데, 당연히 너희 신상도 다 털렸지 않겠어?"

사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KW가 바보도 아니고 모를 리가 없지.

물론 마음이 급한 중국에서도 공작원들의 정체가 탄로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정체가 탄로 난 요원을 작전에 투입시킨다는 것이 뭘 뜻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평생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고 있었고, 국가를 위해서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를 했지만, 막상 그 상황을 마주하니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여기가 내 무덤이겠군.'

하지만 그래도 그는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여기에서 함께 불살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려면 네년부터 제압해야겠군."

"할 수 있으면 해 봐."

동시에 리더가 달려들었다.

묵직한 주먹이 한서진을 향해 날아왔다.

빠악!

한서진이 가드를 올려서 막아냈지만, 기본적으로 체급의 차이가 나다 보니 그녀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역시 베테랑은 다르다는 건가?'

최근에 상대했던 어중이떠중이들과는 달랐다. 한서진은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기세가 달라졌다.

비록 공백기가 있을지언정, 그녀도 뒷세계에서는 한 손가락 안에 꼽히던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한서진이 먼저 공격했다.

촤악!

그녀의 늘씬한 다리가 허공을 가르며 쇄도했다. 리더는 황급히 피했지만, 한서진의 다리가 지나간 자리마다 힐에 베인 상처가 생겨났다.

시간도, 상황도 리더의 편이 아니었다.

무언가 결심한 리더는 한서진을 향해 달려나갔다. 매서운 공격이 이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돌진한 리더는 한서진을 코너에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좋아, 이대로 끝장낸다.'

하지만 이 순간을 노리는 것은 한서진도 마찬가지였다.

한서진의 발이 채찍처럼 리더를 향해 쇄도했다. 날아오는 발을 향해 리더가 손을 뻗는 순간, 발의 각도가 기묘하게 휘어지며 리더의 목을 휘감았다.

그리곤 두 사람은 땅으로 쓰러지며 그라운드 싸움이 펼쳐졌다.

"커억"

리더는 숨이 막힌 채 쓰러졌다. 초크를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았다. 여자 주제에 힘이 뭐 이렇게 쎈 건지.

리더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아직 그의 목에는 한서진의 발이 감겨있었지만, 그는 서서히 일어났다. 그대로 벽을 향해 돌진해 한서진을 떼어내려는 순간.

한서진은 생긋 눈웃음을 지으며 뒷주머니에서 준비해온 물건을 꺼냈다.

리더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그, 그, 그거!”

테이저건이었다.

“이건 반ㅊ···.”

따다다다다닥!

“으갸갸갸갸각”

경련하며 쓰러지는 리더를 보면서 한서진이 코웃음을 쳤다.

“반칙은 무슨.”

상대는 훈련받은 요원이며, 그녀는 한때 킬러였다곤 해도 몇 년을 쉰 여성이었다. 당연히 무기를 쓸 수 있으면 써야지.

몇 번 공방을 주고받은 것은 그저 쉽게 안쪽으로 파고들기 위해서 그랬을 뿐이다.

기절한 리더를 한서진이 몇 번 발로 밟아주었다.

그녀는, 아직 아줌마라고 불린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내 후련해진 표정이 된 한서진은 이건우에게 연락했다.

“네, 사장님. 여기는 정리가 끝났어요.”

*

KW에 중국 요원이 위장 취업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상황이었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 컨트롤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리더가 서버실에 불을 지르려는 장면은 초고화질 CCTV에 의해 완벽하게 녹화되었다.

한서진은 훌륭하게 리더를 포함한 중국 요원들을 막아냈고, 세 사람은 그대로 줄줄이 묶여서 경찰에게 끌려갔다.

오랜만에 만난 최진태 형사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냐. 어떻게 하면 중국 요원이 서버실을 박살내려고 침입해?"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데, 세상이 절 가만히 놔두지 않네요."

"음. 확실히 그건 아닌 것 같다."

사건이 일단락된 뒤, 나는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발표를 하기 전, 먼저 엘렌 홉스에 오랜만에 연락했다.

“헤이 닥터 온. 오랜만이에요!”

이 여자는 아직도 내가 닥터 온이라고 믿고 있다.

“···닥터 온은 죽었습니다만.”

“알았어요. 비밀이라는 거죠?”

그리고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았다.

“어쨌든 다음 달에 들어가게 될 임상 2상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닥터···아니, 미스터 리의 의견이면 당연히 받아들여야죠. 무슨 일인데요?”

나는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했다. 중국이 파워온 기술을 훔치려고 했던 것도 모자라 회사 서버실에 침입하여 방화하려고 했던 사실까지.

이 일을 들은 엘렌 홉스는 격분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에서 호주의 ASK에 스파이를 보냈다고 했다더라고요.”

그녀는 최근 내가 다크웹에 뿌린 자료를 언급했다. 해당 내용은 호주 정부가 사실임을 공언하면서 전세계에 알려졌다. 같은 제약회사의 CEO로서 엘렌 또한 스파이라면 치를 떨었다.

‘보자···. 파이저에도 스파이가 있었던가?’

나는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민간 기업의 경제 스파이를 포함해 중국의 스파이가 천 명이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터지면서 저희도 내부 단속을 했어요. 다행히 아직까지 발견된 사람은 없겠지만 주의하는 게 좋겠지요.”

“그래서 말입니다. 임상 2상을 글로벌 임상으로 진행하기로 했었는데, 거기에서 중국을 제외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임상 2상이라고 해도, 포비드 치료제는 이미 임상 1상에서 유의미한 효과를 보았다.

임상 1상을 겪은 사람들은 (생식능력 감소 부작용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염병을 극복해내고 일상생활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엘렌 홉스는 흔쾌히 내 의견에 동의했다.

“글로벌 임상에서 중국을 제외하는 것은 좋은 경고가 될 거예요. 중국은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확실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리고 잠시 뒤,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

대회의실에 모인 기자들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다들 나에게 무언가 바라는 게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시작은 중국이 오성 ENP를 통해 파워온의 기술을 훔치려고 한 사건이었다.

"지난주에 중국 요원이 오성 ENP의 그룹장과 연락해 파워온 기술을 탈취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저희 측에서 사전에 인지하였기 때문에 기술 탈취는 막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KW의 직원들이 힘겹게 이룬 결과물을 탈취하는 파렴치한 행위로, 아직까지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만 해도 특종이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자들은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나며 손을 들었다.

“동국일보 이성민 기자입니다. 오성 ENP에서 중국에 기출을 유출했다는 말입니까?”

“한양일보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성 ENP와의 기술 제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해당 정보는 어떻게 알아내셨습니까?”

“기술을 유출하려고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손을 들어 그들의 입을 막았다. 아직 메인디쉬는 등장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끝이 아니라는 말에 기자들이 잠시 주춤하며 나의 입을 바라보았다. 나는 빙긋 웃으며 폭탄을 터뜨렸다.

"금일 새벽, 중국 요원 3명이 KW 코퍼레이션 본사에 침입해 서버실의 설비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어지는 말에 기자회견장은 조용해졌다.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말문이 막힌다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나서야 한 기자가 정신을 차리고 겨우 질문을 했다.

“···어, 중국에서 KW의 서버실을 공격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테러를 당하셨다는 말이네요?”

테러! 기자 양반이 단어선택을 아주 적절하게 해주었다.

마음에 쏙 드는 단어에 나는 상큼하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정확합니다. 중국이 KW를 테러하려고 했습니다. 관련해서 CCTV 자료를 경찰에 제출한 상태입니다.”

나는 CCTV 복사본을 틀어주는 친절함을 발휘했다. 잠입 전 중국어로 얘기하는 세 사람. 서버실에 기름통을 들고 오는 한 남성. 그리고 한서진이 그를 제압하는 장면까지.

물론 한서진은 철저하게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었으며, 중국인 3인방의 얼굴은 특별히 고화질로 나오게 해주었다.

중국이 서버실에 지르지 못한 불이, 내 기자회견장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중국 요원의 신상은 어떻게 됩니까?”

“KW에서는 이 사실을 어떻게 인지했습니까?”

“저 여성분은 누구입니까?”

사실 이번 사건은 중국에서 도둑맞은 기밀문서를 되찾아오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지만, 나는 그 사실은 쏙 빼놓고 내가 테러를 당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번 일로 양국의 신뢰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이 되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당국의 조속한 조치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나는 최후의 발표를 했다. 이번 기자회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인즉슨,

"우리 회사는 중국을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파워온과 미스리늄을 비롯한 우리 회사의 모든 제품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 파이저와 협력하여 포비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아실 겁니다. 얼마 전 임상 1상이 성공하고 이제 임상 2상을 시작합니다. 임상 2상은 글로벌 임상으로 진행될 것이지만, 그 대상에서 중국은 제외될 것임을 분명히 하는 바입니다."

바로 중국에 대한 보이콧 선언.

국가가 아닌 일개 기업이 이런 일을 벌인 적이 있었던가?

유례없는 이 상황에 기자들은 신나서 내 말을 받아 적었고, 나는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를 만끽했다.

기자회견은 오늘도 대히트였다.

*

<중국 요원, KW에 방화하려 시도···테러 행위로 규정>

<"국가 흔드는 기술유출에 무기력"···간첩죄는 언제 개정될까>

당연하게도 해당 사건은 우리나라 국민의 공분을 샀다.

- 밝혀진 게 세 명일 뿐이지, 더 많을 텐데···.

- 이래도 2년 징역 살고 나오면 끝임. 미국처럼 20년 때리면 좋겠다

- 스파이는 어느 나라에나 다 있긴 하지.

ㄴ 대신 중국이 좀 많을 뿐ㅋㅋㅋㅋ

- 기술도둑놈들도 문제지만 나라 팔아먹는 새끼는 뭐하는 놈들이냐?

- 근데 이건우가 중국 개짓거리는 진짜 잘 막은 듯

ㄴ ㅇㅇㅇ 중국 스파이 새끼들 두들겨 패는 거 보니까 속이 다 시원하더라

이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에 많은 쟁점을 만들었다. 과거부터 행해지던 중국의 선이 넘는 기술유출, 그리고 안하무인격인 태도들까지.

심지어 국제적으로 이슈도 되었다. 바로 며칠 전에 호주의 제약회사인 ASK에서 산업 스파이 사건이 터졌었기 때문에, 중국은 짝퉁과 스파이의 나라로 인식되며 이미지가 나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중국은 어떻게든 이 여론을 잠재우고 싶었다.

그리고 주한중국대사는 장웨이 주석의 특별 명령을 받고 청와대로 향했다.

*

차민태 대통령은 주한중국대사의 방문을 받았다. 하지만 차민태의 표정은 평소와는 다르게 시큰둥하기만 했다.

차민태는 흔히 내오는 다과도 대접하지 않은 채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대사는 여기까지 무슨 일이오?”

주한중국대사는 장웨이 주석의 명령을 떠올렸다.

- 이건우가 국가안전부의 기밀문서를 가지고 있다. 대통령을 어떻게든 압박해서 이건우를 막아라.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주석의 눈에 들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내가 대통령을 압박하는 데 성공해서 당국의 어려움을 해결해준다면?’

지금 중국이 당면한 문제를, 심지어 국가안전부 요원조차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한 공로를 세울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있었다. 본인은 대중국을 대표하는 대사가 아닌가. 소국을 상대로 압박할 수 있는 카드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 이건우라는 기업인이 산업 스파이를 보냈다면서 중국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사과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그 말에 차민태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이 뭔 개소리야?

중국은 정신을 차리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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