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00화 (100/183)

좋은 건 나눠봐야지 (2)

중국에서 빼낸 기밀을 경매에 부치는 것.

나는 내 계획을 한서진에게 얘기했고, 이번에도 한서진이 나를 보는 눈빛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니까, 기밀문서를 두고 전세계에 경매에 부친다고요?”

“정확합니다.”

“······.”

“그런데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건지?”

“됐어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그녀이지만, 이건우의 사고회로도 만만치 않게 비범했다. 몇 달을 같이 일했는데도 저놈의 똘끼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서진은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그거 범죄행위라는 거는 알죠?”

“범죄면 뭐 어떱니까.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에 적임자가 하나 있습니다. 서진 씨도 아는 사람이지요.”

한서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요?”

*

청부해커 렛은 최근 활동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었다. 명색이 국내 최고의 해커이건만 이건우와 캐리온에게 손도 쓰지 못하고 당한 이후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젠장. 어떻게 하면 그렇게 감쪽같이 프로그램을 숨길 수 있었던 거지?’

그는 의뢰를 최소한으로 받으며 남은 시간 동안 연구에 몰두했다.

바로 이건우가 사용했던 해킹툴을 분석하는 것.

몇 번이고 방법을 알아내 보려고 했지만, 매번 벽에 가로막히는 기분을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궁금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건우는 이런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거지?’

렛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혁신이었다. 잘만 활용한다면 모든 국가의 방화벽을 뚫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예전에 만나서 대화할 때도 느꼈지만 이건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코딩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난 것은 물론, 프로그래밍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얼마 전 프리온이라는 세계 최초의 완전자동화 자율주행 시스템을 만든 것만 봐도 그렇다.

프로그래밍에는 큰 관심이 없는 그였지만, 이건우가 만들었다길래 반쯤 호기심으로 알고리즘을 분석해보려고 했지만···실패했다. 어떻게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걸까?

그도 젊었을 때 프로그램 개발을 해본 적이 있었기에, 그게 얼마나 정교하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치욕과 질투, 그리고 감탄.

이건우에 대한 감정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었다.

그때 팀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렛. 밖에 손님이 찾아왔는데.”

“손님이?”

렛은 고개를 기우뚱했다. 그의 본거지를 알고 있는 클라이언트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도 잡지 않고 오는 클라이언트는 더더욱 없었고.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렛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러 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잊을 수 없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건우”

그가 렛을 찾아왔다.

*

나는 누가 봐도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렛에게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줬다.

“이게 얼마 만이야. 내가 자료를 털어간 뒤로···보자, 반년만인가?”

나는 렛을 찾아왔다.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내 기밀문서를 원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범죄행위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잘못하면 인터폴 수배가 내려질 수 있는 만큼, 나는 이 일을 대신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렛은 썩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당장 꺼···”

꺼지라고 말하려고 했던 그는 뒤이어 들어오는 여자를 보고 흠칫 놀랐다. 한서진이 렛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렛!”

“한서진?”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한서진의 위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저 여자의 과거 기록들을 지워준 게 본인이 아니던가. 저 여자가 과거에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건우는 꼴 보기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한서진 앞에서 마음 놓고 뻗댈 수 있는 담력은 없었다.

렛은 툴툴거리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지?”

나는 씩 웃었다.

“너,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일? 우리가 그런 걸 같이 할 사이었나?”

“너도 꽤 구미가 당길 텐데. 이번 프로젝트에는 예전에 네 서버망을 털어버린 사람도 끼기로 했거든.”

가장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자 렛은 움찔했다.

“내 서버망을 턴 사람? 그건 네가 아니였나?”

“내가 그런 귀찮은 일을 뭐 하려 해? 그 해킹툴을 만든 해커는 따로 있어. 해리라는 코드명을 쓰고 있는데, 내가 아는 세계 최고의 해커지.”

[···설마 그 해리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절 가리키는 건 아니지요?]

크흠.

[해커와 캐리온을 합쳐서 해리라고 지은 거라면 최악의 작명 센스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군요.]

응 안 들려.

렛은 이건우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해킹툴에 대해서는 그도 언젠가 한번 물어보고 싶었으니까.

‘그나저나 해리라고? 흔한 이름이기는 한데···.’

‘해리’라는 이름을 몇 번 굴려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유명한 해커 중에서 해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던 거 같은데. 어디서 활동하는 사람이지?”

당연히 없겠지. 방금 만들었는데.

“뭐 그건 차차 알아보면 되는 문제고. 그래서 들어올 거야 말 거야?”

렛은 혹했다. 이 바닥은 폐쇄적이다. 실력 좋은 해커와 협업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리고 이 해리라는 해커가 지난번의 해킹툴을 만든 것이 사실이라면 배울 점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뻐팅겼다.

“흠흠, 일단 무슨 의뢰인지 들어보고 결정하지.”

나는 피식 웃었다.

[렛의 안면근육이 지나치게 경직되어있습니다. 고양감을 일시적으로 참고 있습니다.]

좋으면서 아닌 척하기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윤곽만 말해주었다.

“이번에 중국 국가안전부 서버망을 털었다.”

렛은 눈을 끔벅이더니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뭐?”

“기밀문서를 빼냈는데 이걸 전세계에 경매에 부치려고 해. 다크웹에 경매장을 개설해서 암호화폐로 거래를 할 거다.”

“···뭐?”

나를 바라보는 렛의 눈빛이 한서진과 비슷해졌다.

아니, 대체 왜? 이게 그렇게 이상한 거야?

*

렛은 이게 진짜냐고 묻는 의미로 한서진을 쳐다보았고, 한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게 왜 진짜인가 싶지만, 말 그대로야. 얼마 전에 중국 국가안전부를 털어버렸어.”

렛은 기가 찬 웃음을 내뱉었다.

“허, 참. 중국 국가안전부를 털었다고? 어떻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세한 건 네가 들어오기로 하면 말해주지. 그리고 경매 금액의 5%를 네게 수수료로 넘겨주겠다.”

렛은 고민에 빠졌다.

‘한서진이 공언할 정도이면 진짜라는 말인데. 어떻게 국가안전부를 털었지? 해리라는 해커의 솜씨인가?'

중국의 국가안전부는 해킹하는 것이 불가능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에서 손꼽는 보안망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내부망을 가지고 있으며, 수십 명의 해커가 상주하며 서버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곳을 털어버렸다?

해리의 솜씨를 견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분명 그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분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커미션도 꽤 컸다.

국가안전부의 기밀문서이면 다른 나라에서 수천억을 주고 사가려고 할 텐데, 거기에서 떨어지는 콩고물만 주워 먹어도 평생 모을 돈을 다 버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큰 건을 성공시키면 그가 리더로 있는 해커 그룹도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칠 수 있게 된다.

그런 생각이 모여서 렛은 결국 승낙했다.

“좋아. 경매장부터 개설하면 되나?”

*

일반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는 암호화된 지하 네트워크를 다크넷이라 하며, 그중에서 웹만을 따로 다크 웹(Dark Web)이라고 부른다.

다크 웹 사이트는 이용자에 대해 철저하게 익명화, 암호화를 해놓았으며, 웬만한 국가 기관에서도 이를 추적하기는 쉽지 않았다. 현재로는 다크 웹은 말 그대로 무법지대였다. 덕분에 수많은 기밀이 은밀하게 웹을 통하여 거래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다크웹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상점이 있었다. 표면에 드러나 있는 상점이 있는 반면, 다크웹에서도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상점이 있다.

그런 상점 같은 경우 회원제로 운영되어 운영진에게 링크를 받아 접근하거나, 아니면 특별한 방법으로만 접근할 수 있었다.

캐리온의 여덟 번째 부캐, 해리는 다크 웹을 통해 회원만 들어올 수 있는 은밀한 경매장을 열었다. 그리고 미국의 중앙정보국부터 시작해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에 초대장을 발부했다.

바로 중국의 기밀들을 판매하는 경매에 초청한다는 초대장이었다.

초대장을 받은 각국의 정보기관은 뒤집혔다.

“중국의 기밀문서가 유출됐다고?”

“사실인지 교차검증을 해봐.”

“중국 현지 정보원에 의하면 국가안전부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답니다. 국가안전부 부장과 쓰촨성 지부장이 나란히 숙청됐습니다.”

“뭐야, 그럼 이게 진짜야?”

“사이트를 역추적해서 누가 그랬는지 추적해.”

“어···. 저쪽에서는 이미 이름을 밝혔는데요?”

“뭐?”

“로덴트라는 국제 해커 그룹입니다.”

이게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다들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문서가 하나 날아왔다.

「저를 추적하려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못 믿는 것 같으니 정보를 하나 드리지요. 중국 기밀문서 중 하나입니다.

사흘이 지나면 초대장은 무효가 되니 빨리 움직이길 바랍니다.

참고로 한번만 더 추적하면 그 국가는 리스트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문서는 다음과 같았다.

「호주 제약회사 ASK에서 항체 개발을 담당한 티안 쉬에가 (44세)가 중국을 위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훔쳤다.

그녀는 2018년 1월부터 단클론 항체 연구에 관한 기밀 정보가 포함된 문서를 현재 중국에 있는 남편인 얀 메이에게 보냈다.

얀 메이는 중국에서 30만 달러에 달하는 지원과 함께 무료 실험실 공간을 제공받아 제약회사를 세웠다.

새어나간 기밀의 가치가 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호주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ASK는 호주에 있는 최대 제약회사였기 때문이다.

“우리 제약회사의 기밀이 3년이나 넘게 중국 쪽으로 새어나갔다는 말이잖는가! 당장 조사해서 산업스파이를 뿌리까지 뽑아내!”

그리고 초대장을 받은 모든 국가의 정보기관은 호주의 사태에 이목을 집중했다.

과연 다크웹에 올라온 기밀문서가 진짜일까?

호주에 있는 산업스파이가 정말로 중국으로 기밀을 유출했을까?

그것도 걸리지 않고 3년씩이나?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에도 산업스파이가 있지 않을까?

문서에는 관련자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박혀있었기 때문에 조사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호주 정부에서 직접 발표했다.

「호주 연방경찰은 중국이 3년 동안 자국의 제약회사인 ASK의 기밀을 빼돌린 것을 밝혀냈다.

호주는 중국이나 어떤 다른 국가의 절도 행위를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호주의 독창성이 모여 만든 결실을 불법으로 훔치려는 자들을 계속 수사하고 기소해,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제보를 해준 해커 그룹 ‘로덴트’에 감사를 표한다.」

호주가 성명을 발표해 중국의 산업스파이 건이 사실임을 밝히자, 각국의 정부에서 난리가 났다.

“중국 산업스파이는 도를 넘었습니다!”

“FBI에서 조사한 결과, 중국의 스파이 활동이 밝혀진 것만 연간 규모 2000건에 달합니다. 기밀문서를 받아오면 훨씬 효율적으로 잡아낼 수 있습니다.”

“중국이 과연 스파이 활동만 했을까요? 무조건 경매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들은 더이상 경매를 벌인 사람을 추적하려고 생각하지 못했다.

분명히 범죄이기는 하지만, 로덴트에서 들고 있는 문서의 가치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역추적하다가 들킨다면, 그날로 리스트에서 제외되고 기밀문서에서 영영 멀어진다.

대신 그들은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서 로덴트에게 연락을 했다.

-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줄 테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스파이 명단만 넘겨주면 안 될까?

- 지명수배가 걸려있다면 해제해주고 안전을 보장해주겠다. 대신 중국 요원 신상만 알려줘.

- 경매 최고가에서 30%를 더 쳐주지. 우리에게 모든 정보를 넘겨.

하지만 로덴트는 그들에게 일일이 답변해주는 대신, 단 한 줄의 공지사항을 올렸다.

- 사흘 뒤, 00:00에 경매를 시작합니다.

각국의 정보기관을 대상으로 한, 세계 최대 규모의 경매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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