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스파이 (2)
중국 주석의 집무실, 그 가장 깊숙한 곳.
장웨이 주석을 비롯하여 상무부, 과학기술부 등 중국을 이끄는 각 부처의 부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파워온의 등장으로 인해 중국은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을 한 주석이 입을 열었다.
“지금 그놈의 파워온 때문에 우리 중국 기업들이 다 망하게 생겼네.”
배터리 업체의 점유율이 벌써 10%p나 빠졌다. 웃긴 건 배터리 업체는 파워온을 막으려고 로비를 펼치고, 완성차 업체들은 어떻게든 파워온을 들이려고 로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업체들이 감히 주석에게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장웨이 주석이 물었다.
“KW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는 나왔는가?”
“기본적인 자료는 수집했습니다만, KW 코퍼레이션의 보안망이 너무 두터워서 아직 큰 성과는 없습니다.”
국가안전부 부장이 고개를 숙이며 자료를 제출했다. 주석은 자료를 훑어보았지만, 국가안전부 부장의 말대로 정말 ‘기본적인’ 자료밖에 없었다.
공식적인 정보는 KW 코퍼레이션에서 확증한 것들일 뿐, 나머지는 허무맹랑한 소문뿐이었다.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 이 바닥에서 이건우가 얼마나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고작 이게 다인가?”
“죄송합니다. W의 보안이 처음 보는 방식인 데다, 일주일마다 보안 패턴이 달라지는지라···.”
"쯧쯧. 최고의 해커들을 지원해줬건만, 겨우 이 정도 성과밖에 못내? 자네는 잘하는 게 뭔가?"
주석의 질책에 국가안전부 부장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주석은 혀를 차며 다음 타자를 찾았다.
“CTL과 합작법인을 세우는 건 어떻게 되고 있소?”
CTL은 중국 최대의 배터리 제조회사이며, 파워온의 발명 이전 세계 배터리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던 회사이다.
그리고 중국 특유의 기업 밀어주기 특혜로 급성장한 배터리회사이기도 했다.
테슬라를 비롯한 BMW, 폭스바겐, 닛산 등에 배터리를 공급했지만, 이제는 파워온에게 그들의 거대 고객을 다 뺏기고 말았다.
이번 분기 실적은 말 그대로 땅바닥에 꼬라박은 수준. 내수 시장이 아니면 버티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이 많다.
상무부 부장도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모든 조건을 다 맞춰준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원래 계획은 이랬다. 합작법인을 세워서 정상적으로 운영을 한 뒤, 갑작스레 부도 처리를 내서 기술과 인력을 유출하는 것. 중국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건우가 바보가 아닌 이상, 기술을 뺏어가려는 의도가 노골적인 중국과 합작법인을 세울 리가 없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놈들이 없군.”
그다음 표적은 과학기술부 부장이었다. 주석이 물었다.
“파워온 배터리를 분석하는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그, 그게···.”
마지막 타자인 과학기술부 부장도 고개를 푹 숙였다. 최후의 수단으로 완성차를 잔뜩 사 와서 파워온 배터리만 따로 빼내서 분석했다.
결과는?
“죄송합니다. 배터리가 실험 도중 모두 폭발해버렸습니다.”
일본과 똑같은 폭발 엔딩을 맞이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일본에게서 교훈을 얻어서 오지에서 실험했기 때문에, 연구소 직원의 인명피해 외에는 산 하나가 날아간 정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느덧 회의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장웨이 주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정보 캐내는 것도 못해, 합작법인도 세우지 못하고, 배터리는 실험 중에 폭파해. 자네들은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는가?”
그들은 움츠러든 고개를 더욱 숙이고 그저 주석의 진노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길길이 화를 내던 주석은 진정하고 물로 텁텁해진 입안을 축이며 물었다.
“그래서 대안은 있겠지?”
국가안전부 부장이 나섰다.
“최고의 해커 그룹을 동원했지만, 보안망을 뚫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KW 본사 내부에 침입해서 직접 서버망에 접속해야 합니다. 한국으로 직접 사람을 파견하겠습니다.”
“겨우 그것뿐인가?”
“동시에 김상현 교수와 이건우에게 접촉해서 정보를 빼내겠습니다.”
드디어 나온 대안 같은 대안에 주석의 화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 안 되면 발로 뛰어야지. 돈은 얼마든지 가져가서 집행해도 되니 무조건 일을 성공시키시오.”
중국의 KW 코퍼레이션을 향한 대대적인 공습이 시작되었다.
*
중국의 산업스파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이 산업 기밀을 빼내는 방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먼저 인적 자원을 유출하는 방법이 있다. 해당 회사의 핵심 인력을 높은 몸값에 스카우트하거나 퇴직한 연구인력을 포섭한다.
중국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에는 영화에서 나오는 화려한 스파이 작전이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내뱉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있다.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 상대가 먼저 기꺼이 주겠다는 결론에 이르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회를 유도한다.
그렇다고 화려한 스파이 작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미인계를 이용한 스파이 활동도 꽤 유명한 편이다.
마지막으로는 경쟁회사에 잠입하여 불법적으로 기밀 정보를 빼돌리는 방법이 있다. 냉전 시대의 고전적인 방법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최근까지도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대놓고 기술을 빼돌리고는 오리발을 내미는 뻔뻔한 자태를 보인다.
그리고 국가안전부 부장은 이번에 지금까지 중국이 개발한 모든 작전 기술들을 동원하여 KW를 공략하기로 했다. 그들은 먼저 모든 가능한 인력을 동원해 공략해야 하는 인물들을 조사했다.
“가장 첫 번째 목표는 김상현 교수이다. 이자를 회유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그들의 우선적인 목표는 파워온 기술을 빼내오는 것. 목표가 정해지자 다양한 방법이 나왔다.
“제가 과학기술증진협회 관계자로 위장해 관련 기업의 전문가들을 강연에 초청하며 접촉해보겠습니다.”
“저는 미스리늄 제련 공장 쪽으로 파보겠습니다. 관련 연구원이나 공장장을 회유하겠습니다.”
“오성 ENP 쪽에서 최근에 기술제휴를 맺었다고 합니다. 오성 전자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우회책이 될 것입니다.”
“원격 해킹에 실패했으니 본사 서버실에 들어가서 직접 해킹툴을 심어야 합니다. 관련 전문 인력을 파견하길 원합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고, 그 의견들은 모조리 채택되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작전은 모조리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은 이번 작전에 사활을 걸었다. 기술과 자원을 이용하여 세계의 패권 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던 중국이다. 하지만 이건우와 KW의 등장으로 인해 그 계획이 모두 틀어지게 되었다. 엄청난 자본을 들여 잠식하고 있던 시장이 통째로 넘어가게 된 상황이다.
중국은 물불 가릴 처지가 아녔다.
국가안전부 부장이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우. 우리의 최종목표이지.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를 포섭하는 게 최선이다.”
이건우만 잡으면 파워온뿐만 아니라 미니온 트래킹, 포비드 치료제, 그리고 미스리늄까지 가져올 수 있다.
“마침 2주 뒤에 오스턴 기업과 미팅이 있다고 하는군. 그리고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건우는 여자라면 사족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
오스턴은 호주에 있는 중국계 트럭 회사이다. 호주는 넓은 국토 때문에 트럭 회사가 많았는데, 그중에서 오스턴은 중국 자본이 50% 이상 들어가 있어 그냥 중국의 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한 회사이다.
그리고 국가안전부에서는 오스턴의 사장이 파워온을 공급받기 위해서 이건우와 미팅을 잡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미인계를 쓰자는 말씀입니까? 하지만 이건우 같은 냉철한 사업가가 미인계에 넘어갈까요? 그는 최근에 여자를 만난 기록이 없습니다.”
국가안전부 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포비드 사태 때문에 잠잠해지긴 했지만, 일 년 전만 해도 호색한에다 망나니였다.”
사실은 사람 자체가 바뀐 거였지만, 그들은 포비드 때문에 밖에 나돌아다니지 못해서 여자를 못 만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이건우의 몸에 빙의한지 얼마 안 되서 포비드가 터졌기 때문에 묘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져 오해할만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호색한이 여자를 끊는다고? 차라리 똥개가 똥을 끊는다고 하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미인계는 확실히 먹힌다.”
국가안전부 부장의 강력한 주장에 직원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이건우를 위해 최고의 미인계 요원을 준비시켰다.
여전히, 중국은 이건우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
중국은 차근차근 물밑에서 작업했다. 먼저 과학기술증진협회의 이름으로 강연을 열면서 김상현 교수와 친분을 다졌다.
또한, 미스리늄 제련 공장 쪽으로도 사람을 보냈다. 기술제휴를 한 오성 ENP 쪽에서 포섭할만한 사람이 있는지 호시탐탐 노렸고, KW 코퍼레이션 본사에 침입하기 위해서 요원들은 관리팀에 위장 취업시키기도 했다.
파워온. 그 단 한 가지의 기술을 위해서 모든 첩보 역량을 동원하여 동시다발적으로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오스턴의 사장은 이건우와 미팅을 하기 전 한 여성을 만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밍메이. 연예인 뺨치는 화사한 미모와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매력적인 여성이다.
지금 오스턴의 사장도 연신 정신을 못 차리고 힐끔거리며 그녀의 몸을 훔쳐보기 바빴다.
밍메이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턱을 괴었다.
“다 보셨나요?”
그 말에 오스턴 사장은 소스라치며 손을 내저었다.
“죄, 죄송합니다. 너무 아름다우신 분이라 제가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서.”
“말 편하게 하세요. 이건우 앞에서도 이렇게 어색하게 굴 건 아니죠?”
“죄송합니다.”
상대는 연신 안절부절못하며 꾸벅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중국 국가안전부 장쑤성 지부 제6 판공실 소속으로 해외 정보와 방첩 임무를 담당하는 고위 관리이다.
오스턴은 엄연히 호주인이 운영하는 곳이지만, 이미 회사의 지분 절반 이상이 중국 자본으로 이루어졌다. 자본의 논리 앞에서 오스턴의 사장은 중국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밍메이는 손쉽게 오스턴 사장의 비서로 위장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 호주를 거쳐 드디어 한국에 입국한 그녀는, 이제 이건우와의 미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화장을 점검하며 중얼거렸다.
“좋아. 이번 작전도 별거 없겠군.”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니,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이건우를 만나기 전까지는.
*
나는 호주의 트럭 회사 사장, 맥 오스턴을 만났다.
이미 실무진들끼리 세부적인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조율을 마친 상태였고, 사장단끼리 최종적으로 계약서에 사인하는 단계만을 앞둔 상황이었다.
그리고 맥 오스턴은 처음 보는 수려한 미녀를 대동한 채 KW 코퍼레이션 사옥에 찾아왔다.
맥 오스턴은 유쾌하게 웃으며 나와 악수를 했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리. 당신을 만나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미팅을 하기 위해서 삼 주 가까이 기다려야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군요. 지금 세계적으로 파워온을 찾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제가 그 대열에 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오스턴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지만 나는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왜 지금의 상황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걸까?
특히나 저 여자. 얌전한 척 있지만 뭔가 일반인의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조금 전부터 거슬리던 여자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그런데 이 여성 분은 누구신가요?”
“아, 제 비서입니다. 재주가 많은 친구이지요. 제가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상하네. 캐리온이 말하기로는···.
[안면분석 결과, 오스턴 사장과 비서 사이의 관계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오스턴 사장이 계속해서 비서의 눈치를 보고 있군요.]
···그렇다는데.
오스턴아. 너 대체 뭘 데리고 온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