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맞자 (2)
프리온. 파워온에 이어 등장한 새로운 기술에 세계는 다시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론이 프리온을 터뜨린 직후, 나는 무수한 전화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타자는 할아버지였다.
“건우야, 프리온을 만들어 놓고 할애비한테 한 마디도 안 하다니 섭섭하구나.”
“···할아버지는 자율주행에 관심이 없으셨잖아요.”
“다다익선이라고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하여튼 내일 사장단에게 신차 스펙을 변경해두라고 말해야겠구나.”
할아버지는 프리온을 탑재하는 걸 기정사실로 얘기하시고는 끊어버렸다.
나한테 맨날 능구렁이 같은 놈이라고 하시더니. 내가 누굴 닮았는지 이제야 알겠다.
할아버지의 전화가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 파워온 계약을 통해 알게 된 자동차 업체 사장들이 하나둘씩 전화를 걸어왔다.
먼저 파워온의 공급을 확정 지은 포드사의 회장님부터,
“허허허. 사장님도 참 이런 걸 숨기고 있으셨다니.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독일 3사 중 하나인 BMW에서도 연락이 왔으며,
“프리온 시스템을 공급해주신다면야 바로 전세기를 띄우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미팅을 잡을까요?”
심지어 둘째 삼촌도 나를 찾아왔다. 나는 본사 응접실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삼촌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들어가자 삼촌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어, 건우야. 오랜만이다.”
“······.”
흠, 얼마 전 미국에 다이아몬드 엠퍼러 호 사건을 해결하러 갔을 때만 하더라도 까칠하시던 양반이 인제 와서 친한 척을 한다라···.
그런데 둘째 삼촌은 중공업을 맡고 있는데, 프리온이 필요한 일이 있으려나?
내가 머릿속으로 질문을 떠올리자마자 캐리온이 대답했다.
[제일중공업은 자회사로 아비커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 그랬지.
캐리온이 말해주니까 이제야 기억이 난다.
아비커스는 선박 자율운항 전문회사로, 제일중공업이 사내벤처 1호로 출범한 회사이다.
아직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회사인지라, 일단은 소형 크루즈 선박을 사람의 개입 없이 완전자율운항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있다.
역시나 삼촌도 프리온 이야기를 꺼냈다.
“기사로 프리온에 대해서 읽어봤는데 흥미롭더구나. 조금 더 발전시켜서 선박에도 적용한다면, 너도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 텐데 네 생각은 어떠냐?”
삼촌의 아이디어는 괜찮아 보였다. 포비드의 여파로 해운물류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인데, 내가 자율주행 선박을 개발한다면? 돈을 꽤나 만질 수 있을 거다.
그럼 나로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지만, 굳이 삼촌이랑 할 필요도 없었다.
“한번 생각해 볼게요. 지금은 조금 바빠서요.”
“알았다. 연락 기다리고 있으마. 잘 부탁한다.”
삼촌은 할 말이 더 있어 보였지만, 나의 시큰둥한 태도에 쭈뼛거리며 문을 나섰다. 그가 문을 나서자마자 내 마음을 읽은 캐리온이 말했다.
[프리온의 선박 모델을 참조하여 인공신경망을 변형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율주행이 일상화됨에 따라 ‘카인포테인먼트’가 성행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해당 사업도 같이 추진하겠습니다.]
크으. 이제 척하면 척이다.
세계 각국에 데이터센터를 늘리는 과정에서, 캐리온은 이제 스스로 학습하면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혼자서 사고하고 필요한 부분을 발전시키는 게 마치 사람 같았다.
캐리온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고, 내 사업 또한 날개라도 돋친 듯 훨훨 날아가고 있다. 점점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내 신기술의 이기를 제대로 누리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순항 중인 것처럼 보였다.
단 한 곳, 일본만 제외하고.
*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모두 발전하는데 자신들만 뒤처지는 기분. 조급해진 마음에 일본 정부는 두 번째 실험을 강행했다.
당연히 결과는 똑같았다.
실패.
두 번째 실험에서 일본이 얻은 거라고는 또 한 번의 폭발밖에는 없었다.
심지어 이번 폭발은 먼젓번의 폭발보다 규모도 훨씬 대단했다.
연구소가 아니라 연구소가 있던 언덕을 통째로 날려버린 것이다. 대규모 폭발에 수십 명이 죽고, 수백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 탓에 미스리늄을 연구하겠다는 생각은 접어버렸다.
아니, 이제는 연구하려고 해도 아무도 연구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국에 기대는 것인데. 이건우는 이미 일본에는 절대로 배터리를 공급할 생각이 없다고 못을 박은 후였다. 심지어 다른 나라를 통한 재수출까지 막아버린 상황.
일이 이렇게 되자 배터리를 사용하는 일본의 모든 기업은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 정부가 잘못했는데 왜 기업이 피해를 보냐
- 남의 재산권을 빼앗은 게 잘못이다
- 정부가 나서서 빨리 배터리를 받아와라
- 이러다가 자동차 기업 다 망하겠다
자동차 사업이 다 망하겠다는 게 빈말은 아니었다. 경쟁 업체들은 배터리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시스템까지 장착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데,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내연기관을 달고 저 아래서 기어 다니는 상황이었다.
일본에서 자동차가 내수와 수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자동차 업체가 타격을 입으면 국가 경제도 피해가 크다.
결국, 보다 못한 일본 정부에서 나섰다. 일본 정부는 주한대사에게 연락해서 어떻게 좀 해보라고 다그쳤고, 그 서슬 퍼런 재촉에 주한대사는 부랴부랴 외교부 장관을 만나러 갔다.
하지만 외교부 장관이 주한 일본 대사를 곱게 만나줄 리 없었다.
전화를 무시하는 건 기본이요, 약속을 잡을라치면 바쁘다는 핑계로 몇 번이나 퇴짜를 놓았다. 일본 대사는 눈물을 삼켜가며 겨우 미팅을 잡았고, 심드렁한 얼굴로 나온 외교부 장관을 만날 수 있었다.
일본의 특명을 받은 주한대사가 알랑방귀를 뀌었다.
“아이고, 바쁘실 텐데 이렇게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알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요즘 KW 때문에 할 일이 태산 같으니 빨리 용건만 말하세요.”
싸늘한 태도에 주한대사는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그래도 프로는 프로였다. 일본 대사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미스리늄 말입니다. 저희 일본에도 규제를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기업이 정한 방침이라 정부가 나서서 뭐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온갖 규제로 재산권을 침해하는 누구와 달리, 저희는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거든요.”
외교부 장관이 딱 잘라서 말하자 주한대사가 우는소리를 했다.
“아이고 장관님. 저 좀 봐주십시오. 제가 무슨 힘이 있어서 미스리늄 수출 규제를 했겠습니까. 저도 중간에 껴서 처지가 난처합니다. 본국에서는 KW에 미스리늄에 대한 개별허가를 내준다고 했으니 어떻게 좀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외교부 장관은 콧방귀를 꼈다.
수출 규제를 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선심 쓰듯이 개별허가를 내준다고 해?
이 새끼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일본의 의사는 잘 알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희 정부에서도 미스리늄을 전략물자로 정하고 수출 규제를 할 방침이라서요.”
“예? 그런 말은 처음 듣습니다만.”
“그러시겠지요. 아직 발표는 안 했지만 곧 할 겁니다. 얼마 전 옆 나라에서 하는 걸 보고 저희도 한번 따라 해보기로 했거든요. 참고로 이 정책은 일본 한정으로 시행할 계획입니다.”
외교부 장관의 말을 들은 주한대사는 구걸하러 왔다는 처지도 잊고 벌떡 일어섰다. 그의 표정이 붉어진 것이 마치 미스리늄 폭발하듯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그건 본국에 대한 차별입니다!”
“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런 거겠지요. 지난번 일본 정부에서 저희가 북한에 전략물자를 유출했다며 수출 규제를 걸었지요?”
외교부 장관은 차분하게 자료를 꺼냈다.
“그래서 저희도 자료를 분석해봤습니다. 2010∼2019년까지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 총 10건을 분석한 결과 일본에서 1996년부터 2013년까지 17년 동안 30건이 넘는 대북 밀수출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네요.”
“······.”
“일본이 오히려 대북제재 품목을 북한으로 반출했으니, 저희도 당연히 수출을 규제해야지요.”
주한대사는 할 말을 잃었다. 북한을 핑계로 수출 규제를 한 것은 일본이 먼저였으니, 같은 이유로 똑같은 행동을 하는 한국에게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역시. 땡깡 앞에서는 팩트로 패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었다.
주한대사는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갔고, 외교부 장관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게 쪽바리 주제에 어딜 까불어.”
이건우 덕분에 저 건방진 놈의 콧대를 누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
결국 주한대사는 별 소득 없이 돌아갔다. 그는 일본 외무성에 연락했고, 외무성 대신의 시름이 깊어졌다.
총리, 외무성 대신, 그리고 미쓰비시 회장. 세 명이 밀실에 모였다.
총리는 제일 먼저 미쓰비시 회장에게 따졌다.
“이보시오. 그쪽이 미스리늄을 수출규제하자고 해서 했더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오. 지금 전자 업계와 자동차 업계가 어떤 불황을 겪는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국민은 책임을 정부에게 돌리고 있단 말입니다.”
미쓰비시 회장은 그 나름대로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가 의견을 내긴 했지만, 욕심에 눈이 멀어 넙죽 받아들인 건 총리 본인이었다. 이제와서 책임 돌리기라니!
“저는 의견만 냈지 총리 각하께서 직접 규제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 제게 책임을 지란 말씀입니까?”
“그럼 당연히 먼저 발의한 사람이 잘못이지! 지금 내가 잘못 했단 말이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사이에 껴있던 외무성 대신이 말렸다.
“두 분 다 진정하십시오. 지금 책임을 따질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입니다. 저희가 개별허가를 내준다고 했음에도, 한국 측에서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각하. 지금 광석에서 미스리늄을 추출하는 건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
총리는 할 말이 없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연구소를 통째로 날려 먹었고, 두 번째 실험에서는 산 하나가 사라져버렸다.
그로 인한 인명 피해가 엄청났다. 특히 연구소에 모아놨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일본에서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만 다 모아뒀었는데 그들을 모조리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본 과학계가 퇴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총리의 침묵에서 부정적인 스탠스를 읽은 외무성 대신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이제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이건우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말도 안 되오. 어떻게 대일본이 일개 기업인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단 말인가!”
총리의 거부에 외무성 대신은 욱했다. 그럼 네가 가서 미스리늄을 만들어오던가!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상대는 총리였다. 그는 가까스로 분노를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돈으로 배상해주는 쪽으로 조용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 한발 양보해줘야 한다는 건 분명합니다.”
총리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돈으로 배상하는 건 나았다. 어차피 본인의 돈이 아니라 나랏돈이 들어가는 거 아닌가. 총리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주한대사에게 전권을 넘겨주고 비밀리에 이건우에게 접촉하라고 일러두게.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이건우를 너무 몰랐다.
일본은, 정신 차리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