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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86화 (86/183)

좀 더 맞자 (1)

강원도 고성.

며칠 전만 해도 고성은 조용한 마을이었다. 농지와 푸른 야산이 대부분이며, 종종 돌아다니는 군인들을 제외하고는 번잡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그나마 자랑할만한 건 항구가 몇 군데 있는 것 정도랄까.

그러던 어느 날, 한적한 고성에 외지인이 우르르 몰려왔다. 공사장 인부처럼 보이는 그들은 열심히 자재들을 옮기고, 중장비를 타고 고성 곳곳을 누볐다.

열심히 일한 인부들은 점심시간이 되자 우르르 밥집으로 몰려들었다.

밥집 사장은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언제 고성에 이렇게 많은 인부가 온 적이 있었던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장은 밥을 먹고 있는 인부들에게 물어보았다.

“자네들은 어디서 왔는가? 다 처음 보는 얼굴이고만.”

“아, 저희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여기에 KW 에너지가 공장을 짓고 있거든요.”

“공장을?”

주인은 더더욱 이상해서 갸우뚱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촌구석에 공장을 지을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던 공장들도 떠나는 마당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니?

식사를 마친 인부들이 떠난 후, 식당의 사장은 놀러 온 이웃 주민과 얘기를 나눴다. 주제는 당연히 갑자기 나타난 인부들에 관한 것.

“요새 마을에 안 보던 사람들이 는 것 같지 않은교?”

“뭐, 공장을 짓는다던데.”

“나도 들었다. 무슨 빠떼리를 만들어서 수출을 한다더라고.”

그러고 보니 근처에 항구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공장을 짓고 수출을 할 만큼 큰 배가 들어오는 그런 항구는 아닌데···.

“우리가 뭘 알겠소. 사람들이 늘었으니 장사가 망하지는 않겠네.”

한 달 뒤, 주인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망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었다. 십 년 이상 식당을 운영한 이래로 최고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그만큼 수많은 인부가 몰려들었고 그들 덕분이었을까, 공장들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부들을 얼마나 많이 때려 박는 건지, 밤낮없이 공사가 계속 진행되었다.

또한 아예 새로 짓기보다는 기존에 버려진 공장을 사들여 증축했기 때문에, 공장이 생기는 속도는 더욱 빨랐다.

그렇게 공장들이 완성되자, 그곳에서 KW 본사 직원들이 하나둘씩 강원도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연구직부터 시작해서 생산직의 사람들까지.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고성으로 몰려왔다.

그런데도 일손은 언제나 부족했다. 채워지는 공장에 비해, 새로 생기는 공장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고용 시장이 커지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강원도로 인구 유입이 되었다.

고성군에 있는 사람이 2만 명이 조금 넘는데, 그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한 번에 들어온 것이다.

사람들의 유입이 늘면서 숙박업이나 식당들도 덩달아 잘되기 시작했다. 최근 포비드의 영향이 무색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워매···. 한 달 매출을 하루 만에 벌어들이네.”

“그러게 말이여. 저기 춘식이네 아들도 이번에 공장에 들어갔대잖어.”

“거 참 잘됐그랴. 도시에 나가서 살라카믄 그게 다 돈이여.”

고성군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도 일자리가 있으니까 굳이 밖에 나가서 일을 찾지 않아도 되었다.

주인은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와따 이게 무슨 일이라. 여기서 살면서 우리 동네가 이렇게 활기찬 거는 처음 보는기라.”

고성군은 한적한 시골이나 다름없었거늘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았건만, 제법 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물론 원주 같은 도시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주인이 보기에는 이 정도도 충분히 번화해 보였다. 그가 기억하는 고성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이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 자기가 나고 자란 마을이 발전하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게 다 KW 덕분이었다. 여기에 KW에서 강원도에 공장을 짓기 시작하자, 정부에서 항만 개발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지원해주었고 이는 마을 전체의 발전으로 이루어졌다.

주인은 잘되지 않는 영어를 굴리며 말했다.

“그 뭣이냐, 케떱이 우리 마을의 은인이여.”

이는 고성군뿐만 아니라 강원도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강원도 곳곳으로 KW의 이름을 달고 있는 공장들이 뚝딱뚝딱 올라가고 있었다.

강원도에 자리 잡은 KW 에너지. 그곳에서 만들어진 파워온은 전세계로 뻗어 나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

강원도에서 만들어진 파워온은 테슬라에도 전해졌다. 성격이 급한 일론은 파워온을 받은 즉시 트위트에서 온갖 주접을 떨었고,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은 그가 파워온을 장착한 신형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형 모델 출시를 발표했다.

기존에 계획하던 모델의 배터리를 모조리 파워온으로 교체한 모양이다.

아무리 파워온이 마음에 든다고 해도, 기존에 있던 계획을 모두 바꿔버리다니. 추진력을 보면 일론 머스크도 보통 사람은 아니라니까.

테슬라는 신형 모델을 발표하기 위한 시연회를 열었고, 당연히 나도 초대받았다. 나는 일론이 마련해준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 편안하게 미국으로 향했다.

시연회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테슬라 본사에서 있었다. 나는 일론의 배려로 이번에 공개될 차량을 미리 볼 수 있었다.

“와···. 잘 빠졌는데?”

보급형 차량인 T1도 보자마자 ‘갖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지만, 고급 세단인 TS는 사람의 마음을 매혹할 정도로 우아하게 생겼다.

미래 공학적인 디자인에 깔끔한 그릴과 헤드램프. 그리고 세련된 트렁크와 백라이트까지.

나는 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할 만큼 푹 빠져버렸다.

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본 일론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씩 웃었다.

“첫차는 너한테 줄게.”

“영광인데. 자율주행차는 처음이거든.”

“왓? 프리온을 개발해놓고 자율주행차가 처음이라고?”

“뭐, 기사를 쓰니까 자율주행을 할 필요가 없지.”

그러고 보니 이건우의 몸에 빙의된 후 내 돈으로 차를 사본 적이 없었다.

일단 차고에 스포츠카부터 최고급 SUV까지. 각종 슈퍼카들이 일곱 대나 있는 데다가, 일이 워낙 바쁘다 보니 차에 전혀 관심을 두질 못했었다. 그냥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맡기고 일을 하기에 바빴었지.

그런데 이번 자율주행차는 디자인도 그렇지만 굳이 기사가 없어도 알아서 목적지까지 안내해준다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번거롭게 기사를 대동할 필요도 없고, 차 안에서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어 보였다.

우리는 시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아쉽게도 미국은 아직 집합제한이 있었기에 기자들과 주요 인사 몇 명만 모아놓고, 나머지는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방송을 보았다.

나는 단상과 가까운 맨 앞 테이블에 앉았다. 같은 테이블에는 미국의 자동차 업체 사장이 있었는데, 그는 반가워하며 나에게 아는 척을 했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리.”

그는 포드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 캐딜락의 CEO였다. 캐딜락 CEO가 먼저 나를 알아보는 날이 오다니. 나도 많이 컸구나.

“칼라일 씨. 처음 뵙는군요.”

“하하. 그러게요. 저는 미스터 리를 뉴스에서 많이 봐서 친구 같은데 말입니다.”

우리는 친근하게 대화를 나눴다. 아니, 칼라일이 나에게 일방적인 구애를 날렸다. 주된 내용은 파워온을 공급해주지 않겠냐는 거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벌써 네 곳과 계약을 해서 물량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캐딜락이 대기표 1번을 받았다는 건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내 말치레에 칼라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공급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근데 내가 가지고 있는게 파워온이 다가 아니거든. 나는 칼라일에게 넌지시 말했다.

“파워온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다른 거요?”

칼라일의 눈에는 의문이 떠올랐다. 아직 KW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제품은 파워온 하나일 텐데, 혹시나 놓친 게 있나 싶은 표정이었다.

칼라일이 나에게 물어보려는 순간, 타이밍 좋게 설명회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대화는 끊겼다. 일론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테슬라는 이번에 KW 에너지의 배터리 ‘파워온’을 탑재한 두 종류의 신모델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 신모델에는 처음으로 완전자율주행프로그램 '프리온'이 적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처음 등장하는 프리온의 이름에 놀란 모양이었다. 다들 파워온은 많이 들어봤지만, 프리온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프리온? 그게 뭐야?”

“아, 나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맞아. 예전에 머스크가 한국에 가서 프리온을 받아왔다고 잠깐 기사에 났었어.”

“그래서 프리온이 뭔데?”

칼라일 또한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그저 씩 웃었다. 그리고 일론이 설명했다.

“프리온은 KW 코퍼레이션에서 개발한 세계 최고의 자율주행 시스템입니다.”

“보통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 라이다를 써서 주변의 차량과 사물을 정밀하게 측정한 후, HD맵을 만들지요. 하지만 라이더 센서는 너무 비싸고 거추장스러우며 HD맵 역시 실시간 도로 환경 변화에 즉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효용이 낮은 기술입니다.”

“프리온은 이 한계를 극복했습니다. 알다시피 자율주행을 하기 위해서는 센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이 더 중요합니다.”

“전 세계 흩어진 120만대의 테슬라 전기차로부터 받은 도로 환경 영상 데이터를 프리온이 딥러닝 기술을 이용해 분석하는 겁니다. 데이터 분석 및 처리는 테슬라 전기차에 내장된 뉴럴넷 칩(NPU)이 맡았습니다."

"테슬라는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운전자가 없이도 더 정확하고 신속 대응이 가능한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테슬라가 전 세계 도로 현장에서 수집한 자율주행 데이터는 35억km 분량에 달합니다.”

폭탄선언에 시연회장이 뒤집혔다. 이제 시연회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프리온에 대해서 알아내고, 자기네 차량에 도입하는 게 더 시급했다.

칼라일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내게로 몰려오는 건 당연한 수순.

“어, 어어?”

나는 우르르 달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당황했고,

“굿럭!”

일론은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 새끼가!

*

파워온과 프리온에 관한 내용은 자연스럽게 포털의 메인 뉴스란에 올라왔다.

「테슬라는 미국 시각으로 5월 8일 저녁 새로운 모델을 소개하는 행사를 캘리포니아의 테슬라 본사에서 가졌다.

이날 일론 머스크(CEO)가 발표한 두 가지 전기차 모델은 고급 세단인 TS와 보급형 중소형 차량인 T1을 라인업으로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신모델은 KW 코퍼레이션에서 만든 자율주행 시스템인 '프리온'과 전고체 배터리인 '파워온'을 탑재하고 있다.

머스크는 이날 슈퍼카와 고급 SUV 라인으로 확장할 계획이라며 미래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 프리온?

- 파워온 알겠는데 프리온은 또 뭐야?

- 기사 보니까 KW에서 만든 자율주행 시스템이라는데

- 뭐야 또 KW야?

이름이 잘 알려진 배터리 ‘파워온’과 달리 자율주행 시스템인 ‘프리온’은 알려지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와 이건우의 개인적인 만남 속에서 기술 제휴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냥 테슬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자율주행 시스템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발표를 하면서 프리온 또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날 이후로, KW 코퍼레이션 직원들은 무수한 전화 요청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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