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넘봐? (3)
내 폭탄 발언에 세 사람은 잠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들은 귀를 의심했다. 자기가 알아서 해줄 테니 뭘 줄 수 있냐고?
이건 협상이나 회의가 아닌 통보였다.
세 사람 중 차민태 대통령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허, 허허. 그래. 젊은 사장이 기백이 있네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지 들어나 봅시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일본과의 문제는 어려울 게 없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미스리늄을 가지고 아무것도 못 할 거니까요.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나는 말을 끊고 세 사람을 보며 빙긋 웃었다.
"이미 미스리늄을 제련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그 배터리들은 전세계로 퍼져나갈 예정입니다.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말이죠."
"전고체 배터리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는 분명 산업적인 차이가 발생할 겁니다. 그럼 그들도 이제 알게 되겠죠. 자기네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내 말을 듣고 있던 외교부 장관이 날카롭게 물었다.
“하지만 그건 한 가지가 전제되어야 할 텐데요.”
일본에서 미스리늄으로 배터리를 만들 수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 내 말이 성립한다.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미스리늄을 가공하는 기술은 전 세계에서 저와 김상현 교수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둘을 빼고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겁니다. 이건 분명히 하죠. KW 에너지가 아니었으면 미스리늄은 그저 흔하게 굴러다니는 돌멩이에 불과하다는 것을요.”
차민태는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이를테면 공수표와 같다.
파워온이라는 실물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게 정말 안전한 건지, 다른 국가에서 미스리늄을 이용한 다른 전지를 개발해낼 가능성은 없는지, 그리고 내가 말한 정도의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수표를 발행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미니온-트래킹을 개발하여 한국과 미국의 집단감염을 조기에 진압하고, 지금은 미국 최고의 제약회사 파이저와 치료제 개발에 착수한 천재 사업가.
그럼 이쯤에서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상기시켜줘야겠군.
나는 은근슬쩍 말했다.
“파워온과 미스리늄이 있으면, 한국도 커다란 무기를 하나 쥐는 셈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쉽게 건드리게 할 수 없는 무기를요.”
"그리고 희귀 광물과 새로운 기술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는 대통령님이 제일 잘 아시겠지요."
희소한 자원으로 갑질하는 거, 그것을 제일 잘 하는 게 중국이니까 모를 리가 없겠지.
차민태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 중국을 적으로 돌린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기 또한 미스리늄이라는 자원이었다.
결국 차민태는 결정을 내렸다. 물론 이번에도 차민태의 보신주의가 한몫했다.
“알겠소. 그럼 사장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나는 산업부 장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파워온의 특허와 기술인증이 막혀있습니다. 자료를 제출한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직 답변이 없더군요.”
이유야 뭐 뻔했다. 오성 ENP에서 손을 써둔 것이겠지.
차민태 대통령의 시선도 산업부 장관에게 향했고,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죄송합니다. 직원이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한 것 같습니다. 바로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산업부 장관이 나섰으니 특허 등록과 기술인증은 곧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정식으로 제품을 출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 요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연구소에 엄중한 보안 시설을 설치해주고, 김상현 교수도 신변 보호를 해주십시오.”
차민태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요.”
“그리고 강원도에 KW 자원개발과 에너지가 있습니다. 수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강원도의 항만 시설을 재정비해주시면 합니다. 물론 공사는 저희 쪽에서 수주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차민태 대통령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 요구는 너무 노골적이었다. 대놓고 밀어주기를 해달라고 하다니.
물론 그도 도지사로 있을 때 각종 국책 사업을 하며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준 적이 있다.
대신 그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돌아왔다. 맨입으로 이만한 혜택을 주려고 하니 무척이나 아까워하는 게 표정에 다 드러났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아직 요구할 게 하나 더 남아있는데.
“그뿐만 아니라 전기차충전소가 필요합니다. 전기차충전소를 국책사업으로 해서 각 시도에 건설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희 KW 에너지에서 그 사업을 맡을 수 있으면 좋겠군요.”
내 말에 세 사람이 황당해했다. 차민태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지금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물론이죠.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근데, 방금 이것들의 가치랑 미스리늄과 전고체 배터리의 가치. 뭐가 더 높을까요?"
두말하면 잔소리다. 미스리늄을 독점하면 세계 시장에서 엄청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나는 빙글 웃었다.
"미스리늄의 가치에 비해서는 새 발의 피지요. 뭐, 들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신 일본 일은 알아서 잘 하십시오.”
외교부 장관이 책상을 탁 쳤다.
“말조심하세요. 감히 지금 대통령을 협박하는 겁니까?”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협박이라니요. 이런 건 협상이라고 하지요. 각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미스리늄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차민태 대통령은 고심 끝에 결정했다.
“자네 요구대로 해주지. 대신 일본과의 일은 자네 손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짓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정도면 내가 대통령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얻은 셈.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청와대를 나섰다.
*
대통령은 즉시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일본에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의 조치로 인해 우리 기업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이는 양국 간의 우호 협력 관계를 훼손하는 것으로서 양국 관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입니다. ···(중략)···그러므로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책임도 전적으로 일본 정부에 있습니다.”
오랜만에 나온 정부의 단호한 발표에 사람들이 환호했다.
- 웬일로 일 처리를 잘하냐
- 우리도 보복 조치를 하자!
-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싸울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차민태가 말한 ‘앞으로 벌어질 사태’란 바로 이것이다.
“KW 에너지는 앞으로 일본의 모든 기업에 파워온 배터리를 공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파워온 배터리는 특허 등록과 인증을 마쳤으며, 여러 전기차 기업에 배터리를 납품할 계획입니다. 물론 일본은 제외하고요.”
"그리고 파워온 배터리를 일본으로 재수출하지 못하는 특별 조항을 납품계약서에 추가할 것입니다."
그러자 한 기자가 질문했다.
“그러면 어떤 회사에 배터리를 공급할 생각입니까?”
“제일 자동차와 테슬라는 이미 계약을 마쳤습니다. 추가적으로 포드와 BMW도 신형 모델에 파워온 배터리를 탑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내 기자회견에 기자들은 미친듯이 질문했다.
“김상현 교수님과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입니까?”
“파워온 배터리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해 주십시오!”
“안정성 문제는 없는 겁니까?”
이번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었다. 지금은 파워온 배터리에 대한 광고가 필요할 때였다.
그러다가 한 기자가 질문했다.
“일본에서 미스리늄 광산의 채굴과 수출을 막았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이 미스리늄을 이용해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코웃음을 쳤다. 걔네가 미스리늄을 만든다고?
캐리온이 지구상의 모든 물질을 조합해서 미스리늄을 만들어 냈다. 질량과 온도 그리고 압력까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광석에서 미스리늄을 추출하는 게 불가능하다.
어찌어찌해서 그 방법을 알아냈다고 치더라도, 전고체 배터리에 관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문제였다. 미스리늄을 이용해 양극재와 전해질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내가 장담하지.
“그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내가 발표한 회사들의 주가가 일제히 올랐으며, 반대로 일본의 완성차 업체는 주가가 소폭 하락했다.
크게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일본이 미스리늄 광산 개발에 성공해서 기술 구현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비난하든 노재팬 운동이 일어나든, 일본은 꿋꿋했다.
- 우리가 미스리늄 광산을 가진 게 부러워서 저런다!
- 한국놈에게서 우리 광산을 빼앗다니 잘했다
- 우리도 기술 개발을 하면 저런 식으로 나오지 못할걸?
그들은 자기네도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으며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나도 얘네들이 이럴 줄 알았다. 그랬으니 로날드와 문서영에게 연락을 했지.
적절한 타이밍에 로날드가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국제질서를 어기며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동이다. 일본이 당장 규제를 철회하고 양국의 우정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테슬라와 포드를 비롯해 내게서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한 완성차 업체들도 전부 내 편을 들어줬다. 그들은 공식 SNS 계정에 한두 마디씩 올렸다.
-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면, 어떤 기업이 일본을 믿고 일하겠는가?
- 일본은 지금이라도 수출규제를 풀고, 광산을 합법적 소유자에게 돌려줘라!
거기에 마지막으로 US Today의 문서영이 기사를 올렸다.
<일본의 욕심···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국제적 신뢰를 무너뜨려>
「일본 정부는 미스리늄을 전략 물자로 규정하고 수출규제를 했다. 하지만 현재 일본 내에서 미스리늄 광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건우(CEO) 한 명뿐으로 알려졌다.
이건우 사장은 한국인으로 현재 파이저와 함께 포비드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으며, 미니온-트래킹을 도입함으로써 방역에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다. 또한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 사건 때 제일 먼저 미국을 도와줌으로써 양국의 우정을 재확인하기도 했었다.
일본의 조치는 사유재산을 침해하여 G20 회의에서 강조한 자유무역질서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이며,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려 세계 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민폐 행위이다.」
···어우야 이 여자도 감정이 실렸나. 이기적인 민폐 행위라니, 기사치고는 어조가 상당히 쎈데.
어쨌든 US Today가 서민층에서는 영향력이 강한 기사이다 보니 파급력이 엄청났다.
이렇게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 나서다 보니 발언의 영향력도 거셌고, 세계적으로 일본을 비난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황한 일본은 “절대 개인의 재산을 침해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라며 반박했지만, 뒤로는 나에게 광산을 판매하라는 뻔뻔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귀하의 광산은 관광지구에 있어서 개발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미스리늄은 수출규제품목 중에서도 민감품목에 포함된 지라, 시가대로 쳐줄 테니 일본에 파는 건 어떻습니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시가의 열 배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시가에 팔라고?
내 대답은 하나였다.
“좆까.”
처음 들어보는 원색적인 단어에 경제산업 대신은 '이런 모욕을 주다니 가만히 있지 않겠어!'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니가타현 현지사도 그러더니, 이놈들은 전화할 때 왜 이렇게 소리를 빽빽 지르는 거야?
어찌 되었든 일본 사도 광산은 지금으로서는 개발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저들이 미스리늄을 안전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경비인력도 다 치웠다.
왜냐고?
미스리늄은 잘못 추출할 경우 폭탄이나 다름없는 물질이다. 심지어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폭발력도 만만치가 않다. 그런 예민한 물질을 이들이 다룰 수 있을까?
어느새 내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어디 한번 마음대로 가져가 봐라. 어떻게 되나 한번 두고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