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넘봐? (2)
로날드와 연락을 끝낸 후, 저번에 미국에 가서 뚫어둔 스피커인 문서영에게도 연락했다.
“지금 일본과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있죠?”
“당연하죠. 일본이 수출규제한 거 KW가 가지고 있는 광산 때문이잖아요.”
한국 사람도 잘 모르고 있는 내용인데, 괜히 젊은 나이에 팀장을 단 게 아닌지 정보력이 남달랐다.
“일본이 한국이 점유한 광산을 빼앗으려고 수출규제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나요?”
문서영은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이죠. 이참에 일본도 국제적으로 한 번 망신을 당해봐야 해요. 미국인들 중에는 KW에 호감이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들이 당신의 편이 되어줄 거예요.”
다행히 다이아몬드 엠페러 호 사건으로 미국에서 내 이미지는 굉장히 좋아졌다.
해외는 이만하면 됐고, 나는 국내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 윤단아에게도 연락했다.
내 것을 건드린 대가는 확실하게 치르게 해줄 것이다.
*
윤단아는 일본의 미스리늄 수출 규제에 관한 글을 커뮤니티에 공지를 올렸다. 당연히 이번에도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미스리늄. 이름만 봐도 판타지스러운 이 신비의 금속은, 요즘 뉴튜브에서 가장 핫한 주제 중 하나였다. 날카로운 분석과 정확한 팩트로 무장한 윤단아가 미스리늄에 대해 다룬다니 다들 관심을 가질 수밖에.
그리고 윤단아는 여기서 한술 더 떴다.
- 오늘 게스트로 우리 사장님이 나올 거예요!
그 한 마디에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 사장님이면 이건우?
- 헐 대박 이건 꼭 봐야됨
- 미스리늄 어떻게 개발했는지 궁금하다
- 아 그때 학원?Z있는데ㅠㅠㅠㅠ 그냥 쨀까
미스리늄과 함께 KW 에너지의 사장인 나도, 어느새 뜨거운 감자가 되어있었다. 윤단아가 말했다.
“사장님은 긴장도 안 하네요.”
“적어도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쉬울 테니까요.”
“좋은 자세에요. 그냥 딱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세요.”
내가 평소에 어떻게 했더라?
진짜 그렇게 하면 이 방송, 노란 딱지 받는 건 아닌가?
나의 행실을 되짚는 사이 윤단아는 그새 방송을 켰다. 아직 시작하기 십 분 전인데도 사람들이 벌써 오천 명이나 들어와 있었다.
- 단하!
- 와 이건우다
- 헐 진짜네?!
- 우와 미스리늄은 어떻게 발견한 거에요?
- 저도 광산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주르륵주르륵 올라오는 채팅창. 정신이 하나도 없다.
윤단아는 사람들이 충분히 들어오기까지 기다린 후, 화면에 자료사진을 띄었다.
<일본 미스리늄의 수출 규제···무엇을 노린걸까?>
“일본이 갑자기 미스리늄을 전략물자로 지정하면서 과한 행동을 보인 적이 있었죠. 그 뒤에 숨겨진 의도에 대해 오늘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 이제 하다하다 일본도 저격하네
- 와 클라쓰 쩐다
- 그래서 이건우는 왜 나옴?
- 사장님 소개 해주세요!
윤단아는 채팅창을 보며 미소지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이건우에게 쏟아지고 있다.
“아, 제가 게스트 소개를 깜박했네요. 요즘 유명한 분이라 뭐, 소개 안 해도 다들 아시죠?”
윤단아는 나에게 턴을 넘겨주었다.
“KW 에너지의 이건우입니다. 일본이 발표한 수출 규제가 저희 회사와 관련이 있어서 자리를 빌렸습니다.”
- 근데 계열사가 많은데 직접 경영하려면 안 힘들어요?
ㄴ 그러게 그것도 대단하네
- 일본이랑 KW 에너지가 무슨 상관이지?
- 아 나 알거 같은데
- 잘생겼어요@
- KW 에서 보유한 광산중에 일본에도 뭐 하나 있지 않았나?
채팅창을 봤더니 내용이 중구난방이다.
새삼 윤단아가 대단해 보였다. 어떻게 준비한 내용도 전달하면서, 이걸 읽고 일일이 반응해주지?
“짐작하시는 대로 일본에도 미스리늄 광산이 하나 있죠.”
나는 니가타현에 있었던 일과 미쓰비시에서 사도 광산을 가져온 일을 적당히 각색해서 들려주었다.
“미쓰비시 그룹에서 넘겨받았는데 원래는 거기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큰 광산 하나가 앞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나는 여유롭게 썰을 풀었다. 쏟아지는 채팅을 보는 것도 이제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 미쓰비싴ㅋㅋㅋ눈 뜨고 코베였넼ㅋㅋㅋ
- 형 사랑하게 될거 같아
- 이건 인정이다
- 그래서 일본이 수출 규제한건가?
“Apfhd99님 말 잘하셨네. 일본이 갑자기 미스리늄을 전략물자로 규정하고 수출을 규제하는 건 무조건 절 겨냥한 거라고 봅니다. 솔직히 말해서 세상에 미스리늄을 가진 사람이 저 말고 더 있나요?”
- 그러게. 쪽바리들은 왜 지들것도 아닌걸로 ㅈㄹ이지?
- ㅅㅂ 선넘네
- 이거는 대통령이 나서야하는 거 아님?
- 이건 좀 심각한 문제임. 일본이 그랬으면 다른 나라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거니까.
나는 마지막 말에 매우 동의했다. 일본이 미스리늄 광산을 빼앗는 게 성공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거리낌 없이 빼앗으려 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미스리늄을 선점한 의미가 없어지겠지.
그렇기에 나는 확실하게 일본을 처리해야 한다. 감히 내 물건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전세계에 보여줄 것이다. 모두 기겁하며 다시는 내 것을 탐낼 수 없게 만들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다.
윤단아의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기사가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본 수출 규제···KW 에너지를 노린 것>
<일본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해···한-일 무역 분쟁으로 번지나?>
<일본의 미스리늄 규제에 대한 강력한 항의, 국민청원이 올라와>
윤단아의 저격은 항상 옳았고, 또한 자극적이었다. 그녀가 방송하는 것만 받아적는 기자가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윤단아가 방송을 키자마자 기자들은 얼씨구나 좋다 하고 받아적었다.
일본이 미스리늄 광산을 빼앗기 위해서 수출 규제를 한 것은 명백한 재산권 침해이다. 특히나 상대는 일본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 상대.
다른 나라가 해도 빡치는데, 상대가 일본인 만큼 그 반향은 어마어마했다.
캐리온의 부캐, 오리온 작가는 국민청원에 심금을 울리는 글을 올렸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캐리온의 글을 읽다보면, 일본이 또 한번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우리나라 국민이 빡친 것은 당연지사.
이 국민청원은 하루 만에 20만 명을 돌파했고, 반일 여론이 국내에 들끓기 시작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였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 국가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해라!
*
청와대 깊은 곳. 차민태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을 불러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차민태의 미간에는 숨길 수 없는 깊은 골이 패 있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해야 하겠소?”
며칠 전만 해도 차민태의 기분은 매우 좋았었다. 이건우가 미스리늄을 개발한 덕분에 이곳저곳에서 로비가 들어왔기 때문.
평소에 교류가 없던 선진국의 정상들이 직접 전화를 걸어 미스리늄을 받아갈 수 있냐고 물었으니 말 다 했지.
그때 차민태는 온갖 생색을 떨면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물론 이건우의 동의는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이 거기에 끼어든 것이다. 미스리늄을 수출 규제 품목에 넣겠다는 거지만, 실제로는 이건우의 미스리늄 광산을 뺏어가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각국 정상들의 태도도 변했다. 새로운 미스리늄 판로가 보이는 마당에 굳이 차민태 하나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여론이었다. 이번에도 한 뉴튜버가 일본이 이건우의 광산을 강탈하려 한다는 내용의 영상을 내보낸 것.
이 때문에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국민은 얼른 뺏긴 미스리늄을 다시 찾아오라고 난리였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여당의 지지율이 깎이는 것은 뻔한 일이다. 바로 다음 해에 대선이 있으므로 차민태는 시름에 잠겼다.
외교부 장관이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강경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선례가 남을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선례.
미적지근하게 대응했다가는 아차 하는 순간 일본이 미스리늄 광산을 홀랑 빼앗아 갈 게 뻔했다. 그리고 한번 그런 식으로 물꼬를 트면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어? 미스리늄 광산을 뺏어도 별말이 없네? 그럼 나도 해야지.’
이쯤 되면 못 먹는 게 바보지. 미스리늄 광산이 있는 모든 나라에서 어떻게든 광산을 빼앗으려고 할 것이다.
미래의 먹거리를 잃은 국민의 반발은 심해질 것이며, 이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게 분명했다.
얼마 전 중국과 사이가 크게 틀어진 차민태는 지금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여기에 일본이라는 악재까지 덮치니 고민이 깊어졌다.
“일단 주한대사에게 서신을 보내도록 하세요."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공식 외교 채널을 통해 항의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건우 사장을 청와대로 부르세요. 어떻게 해결할지는 당사자를 만난 후에 다시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그렇게 차민태는 이건우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
청와대의 초청을 받았을 때,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새삼 윤단아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방송 한번 했다고 바로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니.'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당연히 긴장은 전혀 되지 않았다. 그 미국 대통령한테 황금 명함을 받은 게 엊그제인데, 겨우 한국 대통령과 만남에 긴장을 할 리가 없지.
나는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리무진을 탔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내가 테러범이 아닐까 하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엄격한 검사를 받았다.
복잡한 절차를 거친 후에야 나는 대통령이 있는 건물로 안내받았다.
대통령이 왜 이번 만남을 주선했는지 짐작이 가는 만큼,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협상을 끌고 올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회의실에 도착했다.
이미 회의를 하고 있었는지 분위기는 후끈했다.
앉아있는 사람은 세 명. 외교부와 산업부의 장관과 차민태 대통령이었다.
“KW 에너지의 이건우입니다.”
차민태가 대표로 말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젊은 사장을 만나서 반가워요. 제일 그룹에서 걸출한 인재가 나타났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지정된 자리에 앉았고 차민태가 운을 띄었다.
“지금 포비드 상황이 심각한 가운데 KW가 분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저 본분에 충실할 뿐입니다.”
“빈말이 아니오. KW 제약에서 힘써 주었기 때문에 한국이 방역 청정국가가 되었지요.”
그 말은 맞다.
미니온-트래킹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미리 확보한 마스크와 진단키트 물량이 없었다면 포비드를 이렇게 빨리 잡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전적으로 나의 덕분이지.
덕분에 차민태 대통령의 지지율도 조금 올랐다고 들었다. 그러니 차민태 입장에서는 내가 고맙겠지.
이쯤에서 나는 내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차민태는 예전에 성윤식과 선을 그음으로써 중국의 뒤통수를 때린 전적이 있다. 그 때문에 중국에서 차민태를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
그러니 그들로부터 보신하려면 방패막이가 필요한데, 내가 가진 미스리늄과 파워온이라면 차고 넘친다.
차민태 대통령에게 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여기까지 계산을 마친 나는 친절한 미소를 띠었다.
“다들 바쁘실 텐데 빨리 처리하도록 하죠. 자, 지금 일본이 미스리늄을 수출 규제 품목에 넣어서 입장이 애매하게 됐지 않습니까.”
세 사람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하긴 대통령 앞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말을 한 사람은 없었겠지. 하지만 나는 알고있다. 차민태 대통령은 나를 잡아야만 한다는 것을.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대신 저한테 뭘 줄 수 있습니까?”
어차피 미스리늄 광산을 가지고서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다.
그러니,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거하게 뜯어가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