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온의 등장 (1)
협력업체의 사장들은 결국 모두 계약서에 사인했다.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계약서를 넘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다 시원하군. 그러게 누가 오성 쪽 줄을 잡으랬나.
앞으로 저들은 내 새로운 배터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부품들을 오래오래 저렴한 가격에 납품해줘야 할 것이다.
이로써 배터리를 구현하는데 필요한 모든 협력업체와의 계약은 끝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미스리늄을 추출하여 양극재와 전해질로 만드는 과정이 남았다.
그리고 몇 주 뒤, 김상현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 성공했습니다!”
김상현 교수가 마침내 미스리늄으로 새로운 전지를 개발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계 전지 시장의 패러다임을 뒤흔들 배터리, ‘파워온(Power-On)’의 등장이었다.
*
캐리온이 밝혀낸 건 시뮬레이션에 그쳤을 뿐이다.
물론 이미 포비드 치료제로 증명된 바가 있듯, 캐리온의 사고 실험은 100%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내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나도 캐리온의 실험 결과만 보았을 뿐, 실물 배터리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아무리 결과를 알고 있더라도 그래픽으로 구현된 것을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건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연구소로 향하는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심지어 그게 세계를 뒤흔들만한 발명품이라는 까닭에 흥분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미세한 먼지도 들어가면 안 됐기 때문에 나는 소독을 하고 방진복을 입은 다음 랩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김상현 교수의 피곤한 얼굴도 흥분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전부 닥터 온의 말대로 됐어요. 어떻게 이런 미친 물건을 만들어낼 생각을 하다니!”
그는 엄청난 물건을 만들어냈다는 고양감에 주절주절 떠들었다.
“미스리늄은 기적의 금속입니다. 용량과 출력을 최대한 높여도 발열도 적은 데다 안정적으로 출력해낼 수 있어요. 덕분에 배터리의 소형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이걸 전기차에 적용한다면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을 거예요. 심지어 전고체 배터리로 만들 수 있다니, 오 맙소사! 제가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어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걸 학회에 발표한다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늘 본론만 딱딱하게 말하던 김상현 교수였는데, 이렇게 길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는 구성품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줬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완성된 배터리를 실물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배터리를 들어 올렸다. 작은 은색의 배터리는 내 손가락 사이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배터리가 그렇게 대단한 물건이라 이거지?
김상현 교수의 설명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게 엄청난 물건이라는 것은 알겠다. 이 녀석이 내 사업을 이끌어줄 생각을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이 조그마한 게, 대단하네요.”
“그렇죠. 대단합니다. 닥터 온의 발상은 정말이지, 천재적이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에요.”
김상현 교수는 아무래도 닥터 온의 열렬한 신봉자가 된 모양이었다. 역시 그에게 닥터 온을 대신해서 논문을 쓰는 작업을 시키면 딱 맞겠군.
“그러면 이제 이걸 논문으로 써서 학회지에 올리는 건 어떻습니까?”
나의 마지막 말에 김상현 교수의 설명이 뚝 끊겼다.
“...예? 저더러 이걸 바탕으로 논문을 쓰라고요?”
“네. 실험하신 분이 교수님이니 당연히 교수님이 논문을 쓰셔야죠.”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 실험은 처음부터 끝까지 닥터 온이 설계했습니다. 제가 이 실험을 두고 논문을 쓰는 건 도둑질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 이런 문제가 생길 줄 알았다. 김상현 교수 같은 사람이 날름 남의 논문을 받아먹을 리가 없지.
고지식하고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김상현 교수에게 이런 역할을 맡기려고 하는 거고.
김상현 교수의 표정은 단호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를 설득할 수 없겠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수단을 썼다.
“후 어쩔 수 없군요. 이건 원래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내 비장한 표정을 본 김상현 교수도 덩달아 긴장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사실 닥터 온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
[······?]
김상현 교수와 캐리온이 침묵에 빠졌다. 잠시 후 둘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닥터 온이 죽었다고요? 아니, 대인기피증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여기 멀쩡하게 잘 살아있습니다만?]
나는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예. 교수님이 아시는 닥터 온이라는 천재 과학자는 많은 논문을 남겼지만, 대인기피증으로 단 하나도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극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그만···.”
[아니, 저한테는 우울증도 없고 대인기피증도 없습니다.]
캐리온의 말이 내 머릿속으로 전해져왔다. 보기 드물게 캐리온의 말투에 황당하다는 느낌이 담겨있었다.
나도 알아 캐리온아. 근데 지금 생각나는 변명이 이것밖에 없는데 어쩌냐.
그러니까 눈치 챙기고 잠시만 조용히 있자.
김상현 교수는 입을 뻐끔거렸다.
그래 황당하겠지.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죽었다니까?
나는 간곡한 어투로 부탁했다.
“그러니 교수님께서 닥터 온이 저술한 논문을 발전시켜서 공표해주십시오. 이것이야말로 닥터 온을 기리는 일입니다. 아마 닥터 온도 저세상에서 교수님이 그렇게 해주시길 원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발 나 대신 논문을 써라. 당신이 안 하면 내가 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단 말이야. 얼마나 귀찮아질 줄 알고.
간절한 진심이 통했는지 김상현 교수는 약간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수많은 논문이 공개되지 못한 이유가 있었군요. 그것들이 묻힌다니 이건 과학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하지만 그래도 이건 표절이나 다름없는 행동입니다. 남의 연구를 고작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로챌 수는 없어요.”
“그러면 교수님이 발표하시고 닥터 온에게 공로를 돌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후로도 공들여 설득했고, 김상현 교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말대로 하지요.”
드디어 닥터 온의 대행자를 찾았다. 내가 발표할 수는 없으니 앞으로도 김상현 교수의 이름을 팔아서 발표하면 되겠군.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닥터 온이 하늘에서 기뻐할 겁니다.”
[이건 범죄입니다!]
범죄는 무슨.
내 최고의 협잡 파트너 캐리온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우습지도 않군.
그 뒤로도 캐리온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
이제 실험도 마쳤겠다, 나는 공장 설립에 박차를 가했다. 배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양극재. 미스리늄을 이용해 양극재만 대량생산해낼 수 있다면 배터리는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캐리온은 칠레와 멕시코에 있는 광구를 추가로 찾아냈고 나는 모조리 인수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한 광산에서 미스리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구를 발견했습니다.]
“알았어. 연락해두고 매도 의사가 없더라도 어떤 수를 써서든 계약해.”
[알겠습니다.]
나는 캐리온에게 추가적으로 미스리늄 광구를 찾아보라고 일러두었다. 다다익선이라고, 안정적인 원자재 공급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배터리 사업에 있어서는 필수였다.
특히 배터리가 나오면 일본도 미스리늄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알게 될 테니, 사도 광산을 채굴하는 데 훼방을 놓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 광구를 세 군데나 추가적으로 확보했으니, 사도 광산이 없어도 당분간 미스리늄을 공급하는 데는 차질이 없을 것이다.
원재료 공급망도 안정시켜놨고, 캐리온 덕분에 미스리늄 양극재 또한 선행기술과 양산기술 및 공정의 동시개발이 가능해졌다.
모든 건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논문을 다 쓴 김상현 교수가 국내와 세계에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등재했다.
동시에 나도 발표했다.
“KW 에너지에서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선도할 전고체 배터리, ‘파워온’을 개발했습니다.”
배터리 시장의 판도를 바꿀 파워온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
이건우. 국내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망나니 재벌 3세로 간간이 뉴스에 등장하던 그는, 양소희 스캔들을 통해 젊고 유능한 사업가라는 이미지로 확 탈바꿈했다.
심지어 포비드 치료제를 개발해냈고, 한국의 방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주역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미국에도 퍼져있었다.
다이아몬드 엠페러호 사건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미니온-트래킹과 알람온을 통해 유명세를 떨쳤다.
또한 게임스탑 사건 때 개미들을 응원하면서 호감을 쌓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이건우의 이름을 못 들어봐도, 적어도 KW이라는 브랜드를 들어본 사람은 있었다.
그런 KW 에너지에서 이번에 새로운 배터리를 개발해냈다고 한다. 미디어, 제약에 이어 배터리 사업에 뛰어든 것도 놀라운데, 더 기가 막힌 것은 꿈의 배터리라고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한 것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다들 의심했다.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그 어려운 기술을 어떻게 구현화해? 그것도 이제 막 배터리 사업에 뛰어든 신생 회사가?”
"전고체 배터리가 지금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이라고?"
몇몇은 비웃기도 했다.
“코딱지만한 나라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신종 농담인가?”
하지만 아무도 그 발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만약 이게 진짜라면?
혹시라도 진짜 개발한 거면 그건 배터리 업계의 판도를 바꿀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걸 발표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다. 미니온-트래킹부터 치료제의 개발까지.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연달아 성공시킨 이건우와 KW가 가진 신뢰도는 절대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건우의 보도자료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내용은 판타지에 가까웠다.
미스리늄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금속을 원료로 했고, 배터리의 용량과 출력을 기존의 것보다 10배로 높이면서 안정성을 확보했고, 심지어 원가도 기존의 것보다 훨씬 싸다!
다들 ‘이런 게 어딨어?’ ‘미친 거 아니야?’라고 하긴 했지만, 적어도 배터리를 연구 좀 해봤다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보도자료가 사실이라면, 이 말도 안 되는 성능의 배터리가 실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보도자료는 논리적이고 자세했다. 그저 판타지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고증이 철저했달까?
무엇보다, 그들은 보도자료의 마지막 말에 주목했다.
‘이 기술은 김상현 교수의 <미스리늄을 이용한 전고체 배터리의 개발 및 실험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개발했다.’
보도자료를 뒷받침해줄 논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보도자료를 뿌린 타이밍에 맞춰 김상현 교수도 논문을 올린 것이다. 논문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 보도자료를 읽어본 사람들은 고민도 하지 않고 김상현 교수가 쓴 논문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상현 교수의 논문이 연구진들에 의해 연구되었고, 완벽한 사고 흐름과 논리적 정합성을 보이는 실험에 할 말을 잃었다.
미스리늄과 전고체 배터리.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
하지만 당연하게도,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 새로운 기술을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 경각심을 느낀 기존의 배터리 업체들이 움직였다.
“KW에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했단 말입니까?”
“큰일입니다. 그러면 저희 기존의 배터리는 다 쓰레기가 될지도 몰라요.”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을 것 같습니까?”
둘, 일본 미쓰비시 그룹이 눈치를 챘다.
“이건우 그놈이 사도 광산을 사간 것도 설마···?”
“한국인에게 우리의 사도 광산을 빼앗겼습니다! 다시 찾아야 합니다!”
내 성공에 배 아파하는 놈들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