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금속 (4)
니가타현 현지사는 미쓰비시 그룹과 다시 한번 만났다. 이번에는 미쓰비시 측에서도 그냥 자회사 사장이 아니라, 관련 계열사의 사장이 직접 나왔다.
바로 미쓰비시 은행장.
메가뱅크라고 불리는 일본 3대 은행 중 하나로, 현지사로서도 부담이 되는 상당한 거물이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쪽에서도 나름대로 이건우의 행보를 유심히 보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고.
백 년도 지난 옛날, 미쓰비시 그룹은 금광으로 유명한 사도 광산에 투자했고 많은 수익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더이상 광물이 나오지 않은 지 30년도 지난 폐광.
미쓰비시 은행으로서는 돈도 되지 않은 폐물이기에 자회사에 경영권을 넘겨버렸는데, 폐광이 팔렸다고 한다.
폐광을 판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거기에 광물이 나왔다면 문제가 된다. 심지어 광물의 정체를 아무도 모른다.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에 미쓰비시 은행장이 말했다.
“연구소에 광물 샘플을 보내서 분석을 의뢰했지만 아무것도 밝혀낸 게 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돌덩어리일 뿐이에요.”
“허 참···. 그런데 이건우는 여기에서 무엇을 봤길래 갑자기 광산을 개발한다고 난리일까요.”
“이제와서 생각해보는데, 어쩌면 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는 것도 광산을 사려고 했던 명분이 아닐까 싶네요. 생각해보면 사도섬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게 왜 이건우에게 채굴 허가를 내줬습니까.”
“······.”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할 말이 없었다. 미니온을 중단하겠다느니, 아들에 대해서 폭로하겠다느니 협박을 해대는데, 허가를 안 내주고 버틸 수는 없었다.
현지사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는 이건우가 폭로하겠다는 말에 정신이 없어서 다 들어줬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기에 니가타현보다 입지가 좋은 곳은 천지에 널렸다.
하지만 이제와서 어쩌겠는가. 현지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허가를 내줬으니 어쩔 수 없지요. 이 돌이 뭔지 밝혀지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은행장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이 중대한 사안을 말 한마디도 없이 허가를 내준 게 언짢기는 했지만, 이건우가 이 광석을 가지고 당장 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건우가 뭘 하든 그는 그저 초보 기업인일 뿐이었다. 대 일본의 미쓰비시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것을 이건우가 알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요. 저희 그룹에서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이건우의 근처에 눈들을 깔아두기로 했다. 그는 이런 쪽으로 최고의 전문가라고 불리는 해커집단과 회사의 엘리트인 전략기획실 사람들을 보냈다. 이제 그들이 실시간으로 이건우가 광물로 뭘 하는지 감시하고 보고를 해 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광물이 뭔가 특별한 것이라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다.
*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때 가서는 이미 늦었지.”
광산 문제는 어쨌든 해결이 되었다. 일본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반드시 부딪힐 수밖에 없겠지만, 당분간은 조용할 것이다.
그리고 부딪힌다면, 그때는 내가 충분한 양의 미스리늄을 채굴한 뒤가 되겠지.
어차피 지금 사도 광산에서 채굴하는 미스리늄으로 당장 뭔가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이걸 가공해서 사용하려면 설비도 필요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았기 때문이다.
일단은 채굴하는 즉시,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차곡차곡 쌓아놓을 계획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들이 훨씬 많다.
[미쓰비시 은행에서 한국으로 전략실 사람 다섯 명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산망을 기웃거리는 놈들을 발견했습니다. 침입하는 즉시 역추적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쓰비시 은행장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 하긴 갑자기 폐광에서 광물을 캐냈으니 신경이 거슬릴 만도 하겠지. 그것도 정체 모를 광물을.
예상하였던 바지만 이러면 행동하기가 매우 불편해진다. 그리고 나는 이런 종류의 관심을 받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를 볼 시간조차 없게 만들어주지.
“미쓰비시의 시선을 돌릴만한 게 필요한데···. 뭐, 커다란 거 터뜨릴 게 없나?”
그리고 캐리온은 언제나 답을 알고 있었다.
[역추적한 결과 미쓰비시 은행의 코어시스템이 굉장히 복잡하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은행 내 IT 인력을 운영하지 않고, SI(System Integration)에 외주를 맡겼습니다.]
미쓰비시 은행 시스템은 말 그대로 개판 5분 전이었다.
일본의 전산 시스템이 후진 건 알고 있었지만, 미쓰비시 은행의 경우 그 정도가 심했다.
최근 한 달 동안 무려 세 번이나 거래중단 사고를 낸 것이다!
대형은행이 전산 사고를 이렇게 빈번하게 내는 건 이례적이다. 그래놓고 이후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게 더 놀라울 따름.
일단 나는 미쓰비시 은행의 전산망을 살짝 건드려주기로 했다. 워낙 엉켜있는 녀석이다 보니 조금 건드려주는 것만으로도 아마 미쓰비시 은행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흠. 그래도 이건 좀 약한데.”
하지만 뭔가 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산 장애가 일어난다고 해도 미쓰비시에서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행보로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도 뭔가 아쉽단 말이야. 이런 관심을 받았는데, 겨우 이정도로만 돌려주면 망나니가 아니지.
조금 더 강한 게 필요했다. 미쓰비시의 정신을 쏙 빼놓을만한 뭔가가 없을까?
[찾아보겠습니다.]
.
.
.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나의 믿을맨 캐리온이 또다시 해냈다.
[미쓰비시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전산을 조작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이거다!
*
미쓰비시 은행에서 근무하는 겐타 타쿠야는 날아온 카드 명세서를 보고 과거의 자신을 저주했다.
“맙소사. 지난달에 너무 많이 썼어.”
피규어를 수집하는 그의 비싼 취미 생활에 너무 투자한 탓이다.
특히 이번에 한정판이 나와서 프리미엄을 주고 비싸게 질러버렸다.
통장의 잔고를 확인한 그는 절망적인 얼굴을 했다. 카드값은 며칠 후에 빠져나가는데 아직 월급이 들어오려면 한참 남았다.
일단 출근한 그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가 어쩌다 보니 카드 이야기가 나왔다.
“일단 돌려막기하고 있는데 한계가 있어···.”
“나도 오늘 명세서 날아왔어. 카드값 갚으면 마이너스야.”
다들 카드값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러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다.
“전산을 조작하는 건 어때?”
그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야, 미쳤어?”
“그러다가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하지만 겐타는 솔깃했다. 전산 업무를 맡고 있었기에 그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카드값을 제때 내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에, 그의 이성이 잠시 마비되었다.
“뭔데. 일단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
겐타가 관심을 보이자 그 직원은 이야기를 풀었다.
“사실 나도 몇 번 해봤는데, 카드값을 이미 갚은 것처럼 허위 입금 처리를 하면 되더라. 카드사에서도 전혀 모르고 넘어갔어.”
얘기를 들어보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빼돌린 돈으로 외환거래에 투기해서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이미 전적이 있는 직원이 그렇게 말하자, 마음이 급한 겐타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고 나머지 직원들도 혹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그날, 미쓰비시 은행에서는 총 9건의 전산 조작이 일어났다.
실제로 입금하지 않고 사이버머니처럼 전산으로 입금을 한 것으로 결제 처리를 하면 신용카드에 한도가 복원된다.
은행원들은 매일 나간 돈과 들어온 돈이 맞는지 체크하는데, 입출금 자체가 맞아서 그냥 대충 넘어가고 묻힌다.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싶어 조마조마했지만, 진짜 걸리지도 않고 카드값을 내지 않아도 되자 그들은 계속해서 조작했고 이제는 범죄행위를 하고 있다는 자각도 무뎌졌다.
그러다 몇몇 사람이 합류해서 전산 조작을 한 사람도 13명으로 늘었다.
‘아무도 모를 거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똑같이 하면 된다.
그들은 점점 과감해졌다. 금액은 올라갔고, 횟수는 늘어났다. 걸릴 거라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다.
옆 나라에서 이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른 채.
*
나는 캐리온이 전해준 자료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13명이 6억 7천만 원을 빼돌리다니 간도 크지.”
2년 동안 열심히도 해 먹었다. 이후 빼돌린 돈으로 투자를 해서 큰돈을 만지고 퇴사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아직까지는 은행에 근무하고 있으며,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승진하기도 했다.
옆 나라 일이긴 하지만 도덕 정신이 투철한 나는 이 사건을 그대로 넘기기에 양심에 너무 거슬렸다.
“캐리온. 유명한 일본 커뮤니티에 게시물을 올려.”
그래서 놈들이 횡령한 내용을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익명으로 일본 커뮤니티에 뿌려버렸다. 그 말도 안 되는 내용에, 처음에는 대부분 믿지 못한다는 말들과 함께 단순한 찌라시로 생각했다.
하지만 캐리온이 누군가. 여론조작의 달인이자 물타기의 고수이다. 비슷한 내용을 조금씩 변조하여 커뮤니티에 올리고, 댓글들도 조작하여 여론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나갔다.
그러자 점점 찌라시에 대해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나 외에도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오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마이너한 신문사에서 이 사건을 다루며 쏠쏠하게 재미를 보았고, 대형 신문사 또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미쓰비시 은행은 감히 날 감시하려 들었던 결과물을 신문 1면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미쓰비시 은행, ‘카드 전산조작’?>
<은행원의 도덕적 불감증··· 강력처벌 촉구한다>
미쓰비시 은행장은 기함했다. 은행 전산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꾸준히 제기되어온 문제였다.
하지만 그걸 악용해서 자기 은행을 털어먹는 직원이 나오다니!
일본 언론은 신나게 미쓰비시 은행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심지어 미쓰비시 은행은 도쿄의 지정금융기관인 데다, 메가뱅크라고 불리는 3대 대형은행 중 하나였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엄중했다.
사람들에게 돈만큼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는 없다. 3대 은행 중 하나인 미쓰비시에 예금을 한 사람은 수백만 명이었고, 그 모든 사람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금융청이 직접 조사를 나온다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었다. 은행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직원들 감독도 안 하고 뭐 하고 있어? 우리도 몰랐던 사실을 기자들이 어떻게 알았냐고!”
부하 직원들은 땀을 뻘뻘 흘렸다.
“죄송합니다. 바로 해당 직원들은 바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말이 어디서 새어 나왔는지 최초 유포자를 추적해서 알아내.”
“알겠습니다.”
무슨 사태가 벌어지면 당국이 먼저 알아야 한다. 이 일이 새어나갔다는 말은 내부 통제가 안 되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만큼은 도저히 그 시작점을 찾을 수 없었다. 글을 올린 사람은 분명히 있는데, 추적을 하다 보면 어느 지점부터는 더이상 추적이 불가능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부하 직원을 다 쫓아낸 은행장은 시름에 잠겼다.
가뜩이나 그놈의 광산 때문에 그룹 내부에서도 말이 많다. 이건우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공공연하게 광산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놈의 시커먼 속도 파악하지 못했는데, 대형 사고가 또 터졌다.
‘일단 이 건부터 수습하고 광산 문제도 처리하자.’
은행장은 바로 기자회견을 하고 사과를 했다.
“···이번 사건은 본 은행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무너뜨리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횡령한 범죄행위로 관련자들을 강력히 처벌할 것을 표명하는 바입니다. 또한, 해당 사건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으므로 전수조사해 시스템상 오류나 허점을 밝혀내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쯤에서 어찌어찌 마무리되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원래 하나를 받으면 적어도 두 개로 되돌려주는 게 한국인의 정 아니겠는가?
나는 유난히 정이 많은 사람이라 두 개도 아니고 무려 세 개를 준비했다.
미쓰비시 은행장의 인터뷰를 지켜보던 나는 빙글 웃으며 컴퓨터의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기자회견장 기자들의 휴대폰이 띠링띠링거리면서 문자가 왔다.
동시에 울리는 핸드폰에 기자들은 기자회견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핸드폰에 온 문자를 확인했다.
그리고 문자를 본 순간, 기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맹수가 된 느낌이랄까?
“미쓰비시 은행에서 폭력조직에 대출해준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대해서 입장을 밝혀주십시오!”
은행장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