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금속 (2)
당연한 말이지만, 미쓰비시 그룹을 찾아가서 ‘님 광산 나한테 파쉴?’이라고 묻는 바보같은 짓을 할 생각은 없다.
폐광이 된 광산을 산다고 하면 상대가 누구든 의심하고 보지 않겠는가?
특히 그 사람이 한국인이고, 그 광산이 조선인이 징용된 역사가 있는 곳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회책을 썼다.
사도 광산이 있는 니가타현을 통해서 미쓰비시 그룹에게 광산을 받는 것으로.
“캐리온. 니가타현이랑 현지사에 대해서 샅샅이 조사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캐리온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과물을 들고왔다.
“빨리 물어왔네. 좋은 거라도 나왔나 봐?”
[네. 현지사의 아들이 확진자와 밀접접촉해서 격리 중입니다.]
[그리고 현지사의 아들 때문에 사도섬에 집단 감염이 발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와우. 내 생각보다 훨씬 쎈데?
어쩌다가 현지사의 아들씩이나 되는 놈이 확진자와 접촉하게 됐을까.
그리고 녀석이 어떻게 집단 감염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 걸까?
점점 흥미진진해졌다.
“어째서 일이 그렇게 됐지?”
[사건의 발단은 현지사 아들의 친구입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단순했다. 녀석들이 포비드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자가격리 기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것.
현지사는 일본에서 나름 알아주는 가문 출신의 정치인이다.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게 흔한 일본인지라, 자연스럽게 아들도 정치인이 되었으며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도 다 갓 입문한 정치인들이었다.
그중 한 명이 중국에 출장을 다녀왔다. 일본은 해외에 갔다 온 사람에게 무조건 2주간 격리시키므로, 그 또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문제는 자가격리 기간에 발생했다. 격리를 시작하고 열흘째 되는 날, 그는 긴 자가격리 기간에 몸에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열흘 동안 포비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도 방심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꼬셨다. 같이 놀자고.
현지사 아들은 좋다구나하며 사도섬에 있는 아버지의 비밀 별장으로 그들을 초대했다.
인적이 드문 사도섬은 몰래 무언가를 하기에는 딱 좋았다. 딴에는 격리 중이니 비밀리에 논다고 사도섬에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이틀 동안 거나하게 놀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격리가 끝나는 마지막 날, 그 친구는 발열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결국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포비드에 걸렸고, 현지사의 아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놀았던 장소가 사도‘섬’이라는 데 있다.
섬에는 노년층이 많았고 폐쇄적인 특성에 따라 감염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번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공기를 통한 감염도 이루어지는 상황.
그 때문에 사도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포비드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캐리온의 설명을 들은 나는 진한 미소를 띠었다.
“이것 참 너무 안타깝네.”
너무 안타까워서 웃음이 다 나온다.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현지사가 아닐까?
조만간 나한테 탈탈 털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도섬을 날로 먹을 기회를 제공해준 놈들에게 감사하며, 나는 현지사에게 연락할 준비를 했다.
*
이건우의 짐작대로 현지사는 실시간으로 똥줄이 타고 있었다.
잘못은 아들의 친구에게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일이 벌어진 장소가 자신의 별장이며, 심지어 아들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수준을 넘어서 파티의 주최자가 아들놈이었다.
자신은 현지사로서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최근 포비드 청정국이라며 국제 사회에서 열심히 홍보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아들 때문에 집단 감염이 일어난 게 밝혀진다면?
국제적 망신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고 입국거부를 한 일본인데, 역으로 그런 일을 당한다면 보통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정부 차원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이 모든 걸 생각하니 화가 울컥 솟아올랐다.
“저딴 새끼를 내가 아들이라고! 그러니까 격리도 안 풀린 놈이랑 왜 놀러 다니냐고!”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지금껏 현지사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데, 그걸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려고 해?
심지어 화낼 대상인 아들조차 격리시설에 들어갔기에, 그의 분노는 갈 곳 없이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제기랄!”
일단 사도섬으로 향하는 배편은 다 중지시키고,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사람들은 전부 격리시설로 보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었다.
한국은 어플을 통해서 격리 중인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지만, 일본은 그런 것도 없었다. 2주간 무조건 격리시설에 있어야 한다고는 했지만, 아들의 친구는 빽을 써서 자가격리로 전환해서 니가타현으로 들어왔다.
놀러 사도섬까지 간 놈이 과연 시내를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그리고 선착장부터 시작해서 인구가 밀집된 곳은 모조리 돌아다녔겠지.
숨은 감염원이 사회 속에서 돌아다니며 바이러스를 전파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끔찍해졌다.
곧 있으면 니가타현 시내에도, 그리고 사도섬에도 잠복기가 끝나고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아들 친구의 동선을 추적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한국과 달리 일본은 CCTV도 많이 없고 전산 시스템이 노후화되어있어서 추적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아들과 자신의 정치 인생까지 엮여있던 지라 공공연히 밝히고 적극적으로 방역하기도 어려웠다.
“미치겠네.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차라리 일본도 그 미니온-트래킹이라는 것을 미리 깔았다면 지금보다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까지 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데, 휴대폰이 지잉 울렸다.
“바빠 죽겠는데 또 누구야.”
신경질적으로 폰을 확인하던 그는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이, 이···.”
휴대폰 화면에는 아들이 친구와 함께 선착장을 통해 사도섬에 들어가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순간 등골이 섬찟해졌다. 자신도 오늘 알게 된 이 비밀을 도대체 누가 알고 영상을 보낸 것인가? 그리고 바로 이 타이밍에 이런 걸 자신한테 보낸 이유가 뭐지?
그 순간 전화가 왔다. 그는 화면에 뜬 번호를 노려보았다.
동영상을 보내자마자 전화가 오다니. 분명히 동영상을 보낸 놈이 건 게 분명했다.
그가 망설이는 동안 전화가 끊어졌다.
그러자 그의 핸드폰이 한번 더 울렸다.
이번에는 사진 한 장이 그의 핸드폰으로 도착했다.
무려 아들이 사도섬 비밀 별장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진이.
그리고 다시 한번 전화가 울렸다. 현지사는 결국 전화를 받았다. 이 상황에 짜증이 치솟았고,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졌다.
“누구야! 뭐 하는 놈이길래 이딴 장난을 치고 있어!”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유들거리는 목소리가 넘어왔다.
“어? 지금 나한테 소리 지른 건가? 나한테 소리를 지를 상황이 아니실 텐데 말이야.”
*
수화기 너머로 고래고래 고함이 들려왔다. 어휴 목청도 좋아. 그런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을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
현지사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너 누군데 아들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거야!”
나는 딱히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었기에 솔직히 대답해줬다.
“나? 나 이건우야.”
“이건우? 이건우라고 하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에 현지사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떠올릴 수 있었다.
요즘 가장 핫한 젊은 사업가의 이름을.
한국이 방역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이유를 제공한 사람이자, 미국의 다이아몬드 엠퍼러 호 사건을 조기에 진압한 인물.
“KW 제약 사장의 이건우?”
“잘 알고있네.”
당황한 현지사가 말을 더듬었다.
“네, 네가 어떻게 내 아들의 사진을···.”
“그건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이거지.”
나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비밀 별장에서 현지사의 아들이 확진자와 함께 놀다가 포비드에 걸렸다. 그리고 사도섬과 니가타현 전체에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뭐, 뭐?”
“일단은 나만 알고있기는 한데. 만약 내가 이 사실을 퍼뜨리면 어떻게 되려나?”
현지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이 사실을 퍼뜨리면 퇴임은 기본이요, 평생 손가락질당하면서 살겠지.
이제야 상황 파악이 좀 되는 모양이군.
잠시 침묵이 흐르고 현지사의 진정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하는 게 뭐요.”
“원하는 거라···.”
원하는 게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네. 사도 광산을 달라고 냅다 말할 수는 없으니 일단 착한 척부터 조금 해볼까?
“내가 원하는 건 니가타현이 하루라도 빨리 포비드의 감염 위협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인도적인 내 말에 전화기 너머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근데 한국에서는 이런 말이 있지. 말은 끝까지 들어라.
"그러니까 미니온-트래킹을 니가타현 전체에 깔아줬으면 좋겠군요. 물론 금액은 알아서 지불하시고.”
일단 미니온-트래킹부터 팔아야겠다.
이건 미국도 방역에 톡톡히 효과를 본 물건이다. 현지사로서도 뒤늦게라도 방역을 시작하려면 미니온-트래킹을 까는 건 이제 필수가 되었다. 그는 군말 없이 동의했다.
“끄응. 알겠소.”
“그런데 미니온-트래킹을 설치하려면 새로운 서버가 필요합니다. 지금 있는 서버는 이미 꽉 찼거든요. 그러니 사도섬에 데이터센터를 지어줬으면 합니다.”
원래 물건을 팔 때는 끼워팔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참에 남의 나랏돈으로 데이터센터나 좀 짓자.
“데이터센터를 짓는 게 아니라, 지어달라고?”
현지사는 어이가 없었다.
물론 미니온-트래킹은 지금 당장 필요한 시스템이지만, 데이터센터는 짓는 데 몇 년은 걸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금액도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걸 그냥 공짜로 지어달라고?
그는 당장 반박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늑장을 부리면 언제 사도섬에 확진자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어. 싫으면 미니온-트래킹을 깔지 말던가. 아들내미가 슈퍼확진자라는 사실이 퍼지면 다음 선거에 현지사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현지사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며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언제 그가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그는 무려 현지사였다. 게다가 이건우란 놈의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걸로 알고 있는데.
하지만 별수 있나. 이건우 앞에서 그는 슈퍼 을이었다. 현지사는 화를 억누르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한국인이라 잘 모르나 본데 사도섬은 데이터센터를 짓기에 위치가 좋지 않아요. 커다란 광산이 가로막고 있는데 그게 ···.”
“아, 그거 사도 광산이지요? 그럼 그것도 한꺼번에 저한테 넘기면 되겠네요. 내가 확인해보니까 미쓰비시 그룹 것이던데, 어차피 폐광인 거 미쓰비시 그룹에게 나한테 팔라고 하세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물론 싫으면 안 팔아도 됩니다. 남의 나라 현지사가 제 발로 나락 가겠다는데 나야 상관없지.”
현지사는 울화통이 치솟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상대가 약점을 쥐고 있으니까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 이건우가 세계 최고의 포비드 방역 전문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부터 미국까지. 벌써 두 번이나 집단 감염 사태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아마 이번 집단 감염도 막아낼 수 있겠지.
그리고 사도 광산이야 그의 말대로 폐광이라 별문제 없어 보이고.
“휴. 좋네. 그게 그대의 요구조건이오?”
“당장 생각나는 건 이것뿐이네요. 아, 사도섬 주민들 전부 접촉자이니까 격리시키는 것도 잊지 마세요. 사도섬은 꼭 비워주셔야 합니다.”
“···알겠소.”
용건이 끝났다고 말하자마자 전화는 가차 없이 끊겼다. 나는 끊어진 전화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미쓰비시를 설득해서 나에게 사도 광산을 가지고 오라고.
거기에 미니온-트래킹과 데이터센터까지 딸려오다니. 현지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말인가?
뭐, 나야 땡큐지.
이번에도 잘 먹었습니다. 꺼억!